-깊은 슬픔에 잠긴 박건하 감독, 2017년 동기 조진호 감독에 이어 절친한 친구 유상철 감독까지 떠나보냈다

-“(유)상철이는 A대표팀 시절 룸메이트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수원 감독이란 꿈 이룬 걸 진심으로 축하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

-“친구와 밥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게 꿈같은 일이 됐다”

6월 7일 세상을 떠난 유상철 감독의 영정사진(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6월 7일 세상을 떠난 유상철 감독의 영정사진(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화성]

“이틀간 술을 좀 마셨습니다. (유)상철이는 지도자로 이루고자 하는 게 많은 친구였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수원 삼성 박건하 감독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감독은 5월 29일 2021시즌 K리그1 19라운드 FC 서울전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6월 7일 절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왔다. 박 감독은 다음 날에도 빈소를 찾아 친구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향년 50세. 박 감독의 절친한 친구 유상철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박건하 감독 “A대표팀 원정 경기마다 (유)상철이와 같은 방을 썼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명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박건하 감독은 고 조진호 감독, 고 유상철 감독을 떠올리면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또 한 명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박건하 감독은 고 조진호 감독, 고 유상철 감독을 떠올리면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박건하 감독은 고(故) 유상철 명예감독(인천 유나이티드)과 1971년생 동갑내기다. 둘은 태극마크를 달고서 부쩍 가까워졌다.

먼저 태극마크를 단 건 유 감독이었다. 유 감독은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0-1)에서 A대표팀에 데뷔해 2005년 6월 3일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1-1)까지 뛰었다. 유 감독은 A매치 124경기에서 뛰며 18골을 터뜨렸다. 차범근(136경기 58골), 홍명보(136경기 10골), 이운재(133경기 115실점), 이영표(127경기 5골)에 이은 A매치 최다출전 5위다.

박 감독은 1996년 5월 16일 스웨덴과의 친선경기(0-2)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그는 1996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등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당시 박 감독과 유 감독은 룸메이트였다. 경쟁이 치열한 A대표팀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A대표팀에서 같은 방을 썼던 기억이 나요. 상철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죠. 상철이와 프로팀에선 손발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프로에선 경쟁자였죠. 상철이는 막기 어렵고 뚫기도 힘든 선수였어요. 공격과 수비 다 잘했습니다. 치열하게 대결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근황을 묻곤 했어요. 그렇게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죠.” 박 감독의 회상이다.

프로축구 선수의 삶이 여유로운 건 아니다. 선수는 매주 새 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 준비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시즌 중엔 사적인 일로 친구를 만나는 건 어렵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부족하다. 박 감독은 1998년 4월 22일 구 유고슬라비아전(1-3)을 끝으로 A대표팀과 멀어졌다. 유 감독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줄었다.

유 감독은 다양한 팀을 거쳤다. K리그 울산 현대, J리그(일본)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박 감독은 수원의 전설이다. 1996년 수원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해 2006년까지 뛰었다. K리그 통산 292경기에서 뛰며 44골 27도움을 기록했다. 박 감독은 K리그 우승 3회(1998·1999·2004), FA컵 우승 1회(2002), 리그컵 우승 4회(1999·2000·2001·2005),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2000-2001·2001-2002) 등에 앞장섰다.

둘은 은퇴 후에도 쉴 틈이 없었다. 유 감독은 춘천기계공업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대전 시티즌(대전하나시티즌의 전신), 울산대학교,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박 감독은 수원 유소년팀(매탄고등학교)을 시작으로 한국 U-23 축구 대표팀, A대표팀, 서울 이랜드 FC, 중국 슈퍼리그 다롄 이팡, 상하이 선화 등을 거쳤다. 팀에서 한솥밥을 먹지 않는 한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둘이 다시 한 번 가까워진 건 2019년이었다. 박 감독은 “유 감독이 인천 지휘봉을 잡기 전”이라며 “나도 일을 잠시 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분당에 산다. 상철이네 집은 수지에 있다. 차로 몇 분 안 걸린다. 자주 만났다. 옛날이야기로 시작해서 지도자로 꿈꾸고 있는 삶을 공유했다. 술도 여러 번 마셨다.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많이 꺼냈는데...” 박 감독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조)진호에 이어 (유)상철이까지...동기 둘을 떠나보냈다”

6월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스리랑카전을 찾은 모든 이가 고 유상철 감독을 추모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6월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스리랑카전을 찾은 모든 이가 고 유상철 감독을 추모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박건하 감독은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만남을 이어갔다. 유 감독이 항암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을 땐 자주 만났다.

박 감독은 “많이 좋아진 시기가 있었다” “그때 골프를 자주 쳤다”고 말했다.

“나와 유 감독 모두 골프를 좋아한다. 운동을 마치면 이전처럼 밥 먹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장 좋았던 건 골프장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상철이가 오랜 시간 운전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이 가까운 내가 상철이의 이동을 책임졌다. 차 안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차에서 내리면 마음이 후련하곤 했다.” 박 감독의 얘기다.

박 감독은 2020년 9월 8일 수원 지휘봉을 잡았다. 유 감독은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유 감독은 박 감독에게 수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박 감독에게 수원은 선수 시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감독은 언젠가 수원 지휘봉을 잡고 싶다는 꿈을 유 감독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박 감독은 “상철이가 프로에서 지도자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줬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상철이의 몸이 안 좋아졌다는 얘길 들었다. 상철이와 연락이 닿질 않았다. 가족을 통해서 상철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이겨낼 줄 알았다. 상철이니까. 선수 시절보다 더 멋진 지도자 생활을 꿈꿨던 친구다. 이제 막 꿈을 펼치려고 하는데 세상을 떠났다. 상철이를 보내면서 (조)진호 생각도 났다. 진호는 내 대학 동기다. 진호가 4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상철이까지...동기 둘을 떠나보냈다.”

조진호.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떠오르는 지도자였다. 그는 2017년 10월 10일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조진호.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떠오르는 지도자였다. 그는 2017년 10월 10일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박 감독과 경희대학교 동기인 조진호 전 감독(부산 아이파크)은 2017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숙소에서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급성 심장마비였다. 향년 44세. 박 감독은 세상을 먼저 떠난 동기 둘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통 친구를 떠올리면 설레잖아요. 웃음이 나고. 전 마음이 아픕니다. 집 앞에서 잠깐 만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감독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이젠 꿈같은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참 치열하게 살았다. 고생했다. 그리고 보고 싶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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