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전 빙상연맹 회장(사진 왼쪽부터)과 김 전 회장 이후 빙상연맹 수장이 된 김상항 현 회장. 김 전 회장은 삼성가의 사위이고, 김 회장은 '삼성맨' 출신이다. 빙상연맹 회장, 부회장 2명, 사무국장, 홍보담당이 모두 삼성맨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재열 전 빙상연맹 회장(사진 왼쪽부터)과 김 전 회장 이후 빙상연맹 수장이 된 김상항 현 회장. 김 전 회장은 삼성가의 사위이고, 김 회장은 '삼성맨' 출신이다. 빙상연맹 회장, 부회장 2명, 사무국장, 홍보담당이 모두 삼성맨이다(사진=엠스플뉴스)

- 앞에선 사과, 뒤에선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고 발끈한 빙상연맹

- 이사회에서 ‘김재열 ISU 집행위원 추천’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 “이번에 김재열 전 회장이 ISU 집행위원 되면 IOC 위원 될 가능성 크다.”

- 삼성맨들로 채워진 빙상연맹,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또 올인할까

[엠스플뉴스]

“우린 부끄러운 일 한 적 없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우호적인 언론 확보해 연맹 주장을 담아 보도하자…제일 못 하는 놈한텐 공부하라고 신경 덜 쓰는 건 당연지사. 메달이 필요없다? 공정히 하면 된다? 그러면 생활체육하자!

엠스플뉴스가 5월 1일 보도한 ‘[단독 입수] 빙상연맹 회장 “제일 못하는 놈한테 신경 덜 쓰는 건 당연지사’에 나온 내용이다.

1월 27일,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논란과 관련해 빙상연맹 김상항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열린 4월 20일 빙상연맹 이사회에선 다수의 이사와 합심해 반성 대신 반격을, ‘내 탓’ 대신 ‘여론 탓’을 하기에 바빴다.

심지어는 ‘우호적인 언론을 확보하고, 변호사를 고용해 연맹 주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처하자‘는 반격 시나리오까지 썼다.

압권은 “제일 못하는 놈한테는 공부하라고 신경 덜 쓰잖아요. 당연지사 아닙니까. 선수들 키우면 선수들 성적 잘 내는 게 최우선 목표 아닙니까”라는 김상항 회장의 철 지난 ‘1등주의 스포츠관’이었다.

김 회장은 공정한 과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그럼 왜 우리가 선수들을 지원하고, 엘리트를 키워야 하나. 그러면 생활체육하자”라는 냉소로 화답했다.

이사회 전부터 많은 빙상인이 “빙상 개혁이 최대 화두임에도 빙상연맹은 ‘전명규 부회장 사임’이란 꼬리 자르기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빙상연맹 수뇌부에게 개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장밋빛 환상”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김재열 ISU 집행위원 출마’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빙상연맹. 2년이 지난 지금은 ‘재출마 확정’에도 묵묵부답

2016년 4월 11일 전후로 많은 언론이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의 ISU 집행위원 출마' 소식을 다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출마가 확정됐는데도 조용하기만 하다(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4월 11일 전후로 많은 언론이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의 ISU 집행위원 출마' 소식을 다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출마가 확정됐는데도 조용하기만 하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의 억울함’, ‘자화자찬’, ‘여론 왜곡’, ‘과정보단 결과 중시’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던 빙상연맹 이사회에서 유독 거의 언급되지 않은 얘기가 있다. 바로 ISU(국제빙상연맹) 임원 추천건이다.

이날 빙상연맹 이사회에선 ‘2018 연맹 유공자 표창 대상자 추가 선정’과 ‘성적우수선수 포상금 지급안’ 그리고 ‘ISU 임원 추천안’ 등이 주요 심의사항으로 다뤄질 예정이었다. 이사회 녹취록을 보면 여타 사안은 여러 이사가 참여하며 폭넓게 논의됐다.

하지만, ISU 임원 추천건은 ‘ISU 기술위원 후보’로 나온 최재석 전 빙상연맹 부회장의 자격 여부를 두고 이야기가 오갔을 뿐 다른 후보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다른 후보자들’의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ISU 집행위원’으로 추천된 김재열 전 빙상연맹 회장이다.

2016년 빙상연맹 회장이던 김 전 회장은 빙상연맹의 추천으로 ‘ISU 집행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빙상연맹은 선거 두 달전부터 ‘김재열 ISU 집행위원 출마’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빙상연맹과 전명규 당시 부회장의 노력, 김 전 회장의 국제적 인지도, ISU 고위층의 내부정보 제공, 그리고 삼성에서 나온 관계자가 ISU 내부자에게 핸드폰을 주는 등 ‘훌륭한 선물’을 안긴 덕분인지 김 회장은 2016년 6월에 열린 ISU 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뽑혔다. ([엠스플 탐사보도] '김재열 당선’, 전명규-ISU-삼성의 공동작품이었나)

김 전 회장이 ‘ISU 집행위원’에 당선됐을 때 빙상계 일부에선 “집행위원이 무슨 대단한 자리라고, 빙상연맹이 저렇게 올인해 김 전 회장을 지원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나타냈다.

실제로 ISU 집행위원회는 국제빙상계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지만, 회장의 힘이 원체 절대적이라, 집행위원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크지 않다는 게 국제스포츠 외교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하지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지 않은’ ISU 집행위원에 김 전 회장은 2년이 지난 2018년 다시 도전장을 냈다. 올해 6월 5일부터 8일까지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제57차 ISU 총회가 그 무대다. 이 총회에선 ISU 회장, 부회장, 집행위원, 기술위원 등이 선거를 통해 다시 뽑힐 예정이다.

빙상연맹의'ISU 임원 후보 모집 및 추천' 공고안. 4월 20일 모든 추천이 끝났지만, 빙상연맹은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의'ISU 임원 후보 모집 및 추천' 공고안. 4월 20일 모든 추천이 끝났지만, 빙상연맹은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주목할 건 2년 전과 달리 지금은 ‘김재열 ISU 집행위원 출마’ 소식이 이례적일 만큼 조용하다는 것이다. 빙상연맹은 4월 6일부터 12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ISU 임원 출마’ 지원자 공고를 냈다. 지원자로 나선 4명에 대해 서류전형을 거쳐 16일 빙상연맹 추천위원회에서 ‘ISU 임원 후보 추천자’를 최종 결정했다. 그리고 20일 열린 빙상연맹 이사회에서 ‘ISU 임원 후보 추천자’를 승인했다.

그러나 빙상연맹은 무슨 영문인지 이 과정을 매우 조용히 처리했다. 20일 이사회에서 ‘ISU 임원 후보 추천자’를 승인했지만, 빙상연맹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고,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언론의 질의에도 최초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2년 전만 해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김재열 ISU 집행위원 출마’ 소식을 왜 빙상연맹은 이토록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일까.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빙상인은 “빙상연맹이 ‘ISU 임원 추천자 모집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어느 순간 지워버렸다”며 “지금은 공고문을 빙상연맹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실제로 빙상연맹 홈페이지에서 다른 모집 공고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유독 ‘ISU 임원 추천자 모집 공고’는 사라진 상태다.

ISU 집행위원 재선이 ‘IOC 위원’으로 가는 고속 계단인 이유

ISU 집행위원 선거에 재출마하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사진=엠스플뉴스)
ISU 집행위원 선거에 재출마하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사진=엠스플뉴스)

“집행위원이 무슨 대단한 자리라고, 빙상연맹이 저렇듯 올인해 김 전 회장을 지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빙상인들의 궁금증은 김재열 전 회장이 그리는 ‘큰 그림’의 실체를 알면 쉽게 풀린다.

김 전 회장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꿈꾸고, 그 꿈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ISU 집행위원은 IOC 위원으로 가는 ‘고속 계단’ 그 자체다.

국제스포츠 외교에 정통한 체육계 인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재열 전 회장의 꿈이 IOC 위원이라면, 네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선 개인 자격으로 출마하는 것. 두 번째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추천으로 나가는 것. 세 번째는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것. 마지막 네 번째는 국제경기연맹(IF) 추천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이 선택하기에 가장 수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네 번째, ‘ISU’라는 국제경기연맹의 추천을 받아 IOC 위원이 되는 거다.

특히나 2018년은 김 전 회장이 ISU 임원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되기엔 다시 없는 좋은 기회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ISU 회장 시절 IOC 위원이 됐던 오타비오 친콴타 전 회장이 IOC 위원 정년인 만 80세가 되면서 올해를 끝으로 IOC 위원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현 ISU 회장인 얀 디케마가 친콴타 전 회장의 뒤를 이어 IOC 위원을 노릴 수 있겠지만, 올해 만 74세인 디케마는 ‘1999년 이후 IOC 위원이 된 이들의 정년은 만 70세로 한다’는 IOC 규정에 묶여 IOC 위원직을 이어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IOC가 인정한 국제경기연맹 내에서 회장 또는 임원직(부회장, 집행위원 포함)을 맡은 인사가 위원이 될 수 있다’는 IOC 규정을 고려할 때 올해 다시 뽑힐 ISU 회장, 부회장, 집행위원 가운데 한 명이 친콴타 전 회장의 IOC 위원직을 승계할 수밖에 없다.

ISU가 유럽 귀족들 위주로 운영돼온 ‘폐쇄적 조직’이라고 해도, 시대가 흐르면서 지금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빙상 강국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유럽 빙상계 수뇌부들은 역대 ISU 사건, 사고를 분석했을 때 거대 자본의 공격적 움직임에 매우 취약하다.

세계적 브랜드 삼성의 절대적 지원을 받는 김재열 전 회장이 2018년 ISU 총회에서 새 회장이 될 만한 후보를 밀어주고, 자신은 IOC 위원직을 양보받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ISU 회장을 노리는 이들 역시 ‘IOC 위원 카드를 김 회장에게 넘겨주는 대신 김 회장으로부터 회장 선거 지원을 받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려면 김재열 전 회장은 반드시 ISU 집행위원 선거에서 다시 뽑혀야만 한다. 그러려면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보안에 신경써야 한다. 빙상연맹이 ‘김재열 ISU 집행위원 도전’을 홍보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본다.

'삼성맨'들로 채워진 빙상연맹,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가

2016년 3월 29일 번역을 거쳐 전명규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에게 전달된 ISU 내부자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의 이메일. 스토이체브는 이 이메일에서 전 부회장에게 “어제 삼성 측에서 나온 분으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하였고, 그 이후에는 삼성 핸드폰을 주었다. 그래서 소피아에서 받은 훌륭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때는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이 ISU 집행위원 출마를 준비 중일 때다(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3월 29일 번역을 거쳐 전명규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에게 전달된 ISU 내부자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의 이메일. 스토이체브는 이 이메일에서 전 부회장에게 “어제 삼성 측에서 나온 분으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하였고, 그 이후에는 삼성 핸드폰을 주었다. 그래서 소피아에서 받은 훌륭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때는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이 ISU 집행위원 출마를 준비 중일 때다(사진=엠스플뉴스)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이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에게 보낸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번역을 거쳐 전명규 부회장이 스토이초 스토이체브에게 보낸 이메일(사진=엠스플뉴스)

취재 중 엠스플뉴스는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의 핵심 인사들이 빙상연맹에 직함을 둔 '삼성맨'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빙상연맹 회장, 부회장 2명, 사무처장, 홍보담당 등이 ‘삼성맨’들이다.

이 가운데 김상항 회장은 삼성전자 재무팀과 전략지원팀을 거쳐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사장을 거친 ‘골수 삼성맨’이고, 지세근 부회장 역시 삼성전자 인사팀 부장을 거쳐 삼성전자 경력컨설팅 상무을 역임했던 이다. 이영국 부회장은 최순실 일가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재단을 도운 혐의로 특검조사까지 받았던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상무 출신이다.

2년 전인 2016년 6월 빙상연맹은 무려 10명을 ISU 총회가 열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보내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힘을 보탠 바 있다. 이때 이영국 부회장도 따라갔다. 물론 이 경비는 거의 대부분 빙상연맹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엠스플뉴스가 공개한 ‘빙상연맹 이사회 녹취록’에서 보듯 빙상연맹은 반성은 고사하고, 흔한 개혁안마저 내놓길 거부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이한 자세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런 가운데 빙상연맹이 ‘김재열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어떻게 나설지 주목된다.

빙상연맹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가.

박동희,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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