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연맹, 직원 채용시 입사지원서에 '추천인 써라' 요구

-체육계 "'추천인' 쓰는 체육단체는 빙상연맹이 유일할 것"

-'추천인 제도'는 은행권 채용비리 단골 메뉴

-빙상연맹 "예전부터 해왔던 것. 뭐가 문제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입사지원서에 '추천인'을 적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입사지원서에 '추천인'을 적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취업 준비생' 김명성(가명) 씨는 7월 초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에서 '신입(인턴)/경력직원'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빙상연맹은 다른 경기단체보다 연봉이 높고, 복지혜택이 좋아 스포츠계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김 씨는 “빙상연맹 공개채용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라, 채용공고를 보자마자 기분 좋은 마음에 부지런히 입사지원서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마음도 잠시. 입사지원서를 거의 다 작성했을 무렵, 김 씨는 뒷머리를 스케이트 날로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지원서 마지막에 ‘추천인’을 적는 난이 있더라고요. 그동안 많은 체육경기단체에 입사지원서를 내봤지만, 빙상연맹처럼 대놓고 '추천인을 쓰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 봤어요. 이거, 일종의 채용 비리 아닌가요?"

김 씨가 '채용 비리'를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부터 채용 인원이 1명이라서 ‘벌써 내정자가 있겠구나’하는 예감은 들었어요. '추천인을 쓰라'고 하는 거 보고 예감이 더 확실해졌죠. 지원하나 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사지원을 포기했습니다."

입사지원서 ‘추천인’란, 체육단체 가운데 빙상연맹이 유일

빙상연맹 입사지원서. 맨 하단에 추천인과 날인, 관계를 적는 난이 마련돼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 입사지원서. 맨 하단에 추천인과 날인, 관계를 적는 난이 마련돼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김명성 씨의 제보는 사실이었다. 7월 4일 빙상연맹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한빙상경기연맹 입사지원서’ 맨 마지막엔 추천인의 이름과 관계, 추천인의 ‘날인’을 받는 난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추천인’은 각종 금융권과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올해 초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를 불러온 하나은행 채용 비리 의혹 때도 합격 기준을 넘지 못한 지원자 16명이 ‘추천인’에 의해 특혜 채용된 사실이 금감원 특별검사 결과 드러났다.

하나은행 외에도 각종 은행과 투자증권, 신용평가사, 건설회사 등이 직원 채용 시 지원서에 ‘추천인’을 적도록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논란과 질타의 대상이 됐다.

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채용 비리 근절을 위해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는 중”이라며 "빙상연맹은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에 준하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이자 한국 동계스포츠 최대 경기단체"라는 말로 빙상연맹이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음을 시사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우리 체육회는 어떤 채용지원서에든 추천인을 쓰지 않는다" "모든 가맹 경기단체의 채용 방식을 확인해볼 순 없지만, 추천인까지 적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특히 일반 채용에 추천인을 적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체육 단체의 반응도 비슷하다. 대한체육회 출신의 한 체육 단체 간부는 “우리 단체엔 추천인 제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한체육회에서 개발한 채용공고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채용 기준을 입력해서 통일된 양식의 채용공고와 입사지원서를 만든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중에 지원서에 추천인을 받는 단체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간부의 말이다.

한 동계스포츠 관련 단체 관계자도 “추천인 같은 걸 지원서에 쓰게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며 “특별채용도 하기 어려운 게 요즘 체육계 분위기 아닌가. 만약 추천인을 쓰게 하는 단체가 있다면, 바로 대한체육회 감사가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빙상연맹 “뭐가 문제냐” 반문, 체육계 “전수조사해 채용비리 없었는지 밝혀야”

'추천인을 적는 게 뭐가 문제냐'는 빙상연맹의 태도는 각종 특혜채용과 차별에 눈물짓는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리는 태도다(사진=엠스플뉴스)
'추천인을 적는 게 뭐가 문제냐'는 빙상연맹의 태도는 각종 특혜채용과 차별에 눈물짓는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리는 태도다(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빙상연맹은 지원서 추천인란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단 입장이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추천인은) 그냥 형식적인 것이다. 기존에 쓰던 양식을 계속 사용한 것뿐, 의미가 없다"이라며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자가) 추천인이 없으면 안 써도 된다"고 답변했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빙상연맹 채용 지원서에 ‘추천인’란이 존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빙상연맹이 진행한 모든 채용 지원서마다 빠짐없이 ‘추천인’란이 존재했다. 신입과 인턴 채용은 물론 경력직 채용, 회계직 채용 공고에서도 ‘추천인’란이 있었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추천인이 외압을 넣는 일은 없다. 인사위원회가 외부인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다. 지금까지 인사청탁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빙상연맹 말대로 "지원서에 추천인을 쓰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면 처음부터 추천인란을 삭제하거나 지원서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안내했어야 한다. 그러나 빙상연맹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체육인 A 씨는 "문화체육관광부 특정감사 결과 특정 학맥과 인맥이 빙상연맹을 지배했다는 의혹이 죄다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비정상적인 경기단체에서 '추천인 제도'를 가리켜 아무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되느냐""추천인 기재 자체가 일부 지원자에 대한 특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빙상연맹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A 씨는 "청년 실업이 사회적 화두인 지금 빙상연맹이 오랫동안 '추천인 제도'를 활용해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빙상연맹 직원 채용과 관련해 반드시 전수조사를 해 '추천인 제도'를 채용에 어떻게 악용해왔는지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은 “빙상연맹은 빙상 종목 관련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단체로 공정성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 측면에서 채용 절차도 좀 더 공정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추천인을 두는 방식은 어디서도 보기 드문 방식으로, 충분히 우려할 만한 하다”고 지적했다.

빙상연맹은 “(추천인란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이번에도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빙상연맹 채용공고를 보고 큰 실망과 박탈감을 느낀 스포츠계 구직자들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지헌, 이동섭, 박동희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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