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국가대표→인턴사원 새 출발, “올림픽 메달 목표로 훈련할 때보다 힘드네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일 진행하는 게 가장 어려워”

-“스켈레톤 선수 시절 땐 올림픽 하나만 봤죠”

-“군 복무 시절부터 제2의 삶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행정가로 올림픽 무대에 꼭 서보고 싶어”

2012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 남자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준현. 현재는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인턴사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2012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 남자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준현. 현재는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인턴사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훈련할 때보다 힘든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이란 게 쉽지 않네요.

2012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 남자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준현의 말이다.

김준현은 2018년 12월 은퇴 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1년간 영어와 자격증 공부를 마친 뒤 3월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인턴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ISF는 국제 스포츠 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고, 스포츠 전문 교육의 활성화에 앞장서는 곳이다.

스켈레톤 전 국가대표 김준현은 스포츠 행정가란 새로운 꿈을 이루고자 ISF의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엠스플뉴스가 가까운 미래엔 정규직을, 10년 후엔 스켈레톤 선수로 이루지 못한 올림픽 출전의 꿈에 도전하는 김준현을 만났다.

“스켈레톤,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을 꿈꿨던 스켈레톤 전 국가대표 김준현(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을 꿈꿨던 스켈레톤 전 국가대표 김준현(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스켈레톤 전 국가대표가 ISF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3월부터 ISF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은 처음인 까닭에 정신이 없네요. 운동보다 어렵고 힘든 것 같습니다(웃음).

어떨 때 운동보다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걸 느낍니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2018년 12월까지 스켈레톤 선수로 살았습니다. 운동이 일상의 전부였어요. 만나는 사람은 감독, 코치, 동료로 매일 똑같았죠. 사회생활은 다릅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일을 진행해야 해요. 처음인 까닭에 낯설고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2012년 7월부터 한국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선수를 꿈꿨던 겁니까.

고교 시절까진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릴 적 육상과 축구부 생활을 한 게 운동 경력의 전부였죠. 자연스럽게 운동을 좋아했어요. 체육 교육학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체육대학교로 진학해서 스켈레톤과 첫 인연을 맺게 됐죠.

운동선수로 살아온 게 아닙니다. 스켈레톤 종목엔 어떻게 지원하게 된 겁니까.

체육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했어요.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달랐죠. 하지만, 강광배 교수께선 스켈레톤 대표 선발전에 제한을 두지 않았어요. 체대생이면 누구든 도전할 기회를 줬습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아주 좋아했던 까닭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죠. 그렇게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스켈레톤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윤성빈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2012년엔 비인기 종목이었습니다. 썰매 종목도 잘 알고 있었던 겁니까.

솔직히 잘 몰랐어요. 2009년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에서 봅슬레이에 도전하는 걸 본 게 전부였죠. 처음 시작은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국가대표에 도전할 기회는 흔하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도전했죠.

스켈레톤은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얼음 트랙을 활주하는 스포츠입니다. 텔레비전으로만 봐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죠.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선에 섰을 때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전에 없던 공포가 밀려왔죠.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어요.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까닭에 몸에 힘이 엄청나게 들어갔죠(웃음). 그렇게 한 번 두 번 타면서 스켈레톤이란 종목에 더 깊이 빠져든 것 같아요.

2012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2012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운동을 좋아했지만 운동부 생활을 꾸준히 해온 건 아닙니다. 성인이 되고 운동선수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운동선수로 살아온 게 아니다 보니 부상이 잦았어요. 몸에 무리가 간 거죠. 가장 힘든 건 국외 전지훈련이었습니다. 1년에 6개월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보내요. 주변 분들은 “부럽다”고 합니다. 국외서 훈련하면 쉬는 날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닐 줄 아는 거죠(웃음).

그게 아닙니까.

운동만 해요(웃음). 쉬는 날엔 말 그대로 쉬어야 합니다. 잠을 자거나 아픈 부위를 치료하는 데 집중하죠. 관광할 여유가 없어요. 6개월 동안 훈련장과 숙소만 오갑니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스포츠 관련 직종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스켈레톤 선수 생활을 이어간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엔 태극마크를 달아보고 싶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나니 올림픽이 보였죠. 올림픽을 준비하다 보니 메달이 눈에 들어왔고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꿈을 이루지 못했죠. 하지만, 스켈레톤 선수 생활을 한 건 후회하지 않아요.

2018년 12월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진 못했지만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느낄 땐 언제입니까.

2012년 썰매를 처음 탔을 땐 주변 분들이 스켈레톤을 몰랐어요. 어떤 종목인지 설명해줘야 했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후엔 많은 분이 스켈레톤이란 종목을 알아줍니다. (윤)성빈이와 다른 선수들이 큰 역할을 했죠. 이 선수들과 같은 꿈을 꾸고 함께 땀 흘렸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군대에서 제2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스켈레톤 국가대표 시절 김준현(사진 맨 왼쪽에서 네 번째)(사진=엠스플뉴스)
스켈레톤 국가대표 시절 김준현(사진 맨 왼쪽에서 네 번째)(사진=엠스플뉴스)

2018년 12월에 은퇴했습니다. 평창 올림픽은 2018년 2월 25일 마무리됐습니다.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는 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목표한 것 아닙니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이듬해부터 크게 줄었어요. 감독께서 “예산이 부족하다. 성빈이를 제외한 선수들은 전지훈련이 힘들 것 같다. 국내에서 훈련해야 한다”고 했죠. 결단을 내렸습니다. 스켈레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로.

2012년부터 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에만 매진했습니다. 제2의 삶에 대한 계획이 있었습니까.

스켈레톤은 실업팀이 강원도청 하나예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면 삶은 더 막막해지죠.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홀로 운동해야 하니까. 스켈레톤은 부상 위험이 큰 종목이기도 해요. 20대 중반을 넘어가면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지죠. 전 군대에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에서요?

스켈레톤은 국군체육부대 팀이 없습니다. 2013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의무소방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어요. 그곳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습니다. 군 복무 중인 까닭에 정상 훈련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요. 소방원에서 같이 근무한 분들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꾸준히 운동했지만 한계가 있었죠.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복잡했다?

스켈레톤은 감이 아주 중요한 스포츠예요. 스켈레톤 선수가 2년간 썰매를 탈 수 없다는 건 치명타죠. 운동을 최대한 하면서 새로운 길로 나갈 준비를 했어요. 영어 공부하고 스포츠 행정 관련 책들을 읽었죠. 컴퓨터 활용 능력과 같은 자격증도 준비했고요. 선배들은 은퇴 후 어떤 길로 나갔는지도 찾아봤습니다.

이런 준비들이 2015년 9월 전역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지속한 거군요.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와 자격증 공부를 이어갔어요. 고된 훈련으로 몸은 힘들지만 선수 생활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2018년 12월 은퇴 후엔 도서관을 오가면서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많은 운동선수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지도자는 고민하지 않았습니까.

지도자의 길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츠 행정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오랜 꿈이었죠(웃음). 지난해 8월엔 국외 연수도 다녀왔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에 있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진행하는 국외 연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어요. 미국 플로리다주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6개월간 공부하고 많은 경험을 쌓았죠. 선수 시절 전지훈련으로 찾았던 미국과 많은 게 달랐습니다.

어떻게 달랐습니까.

스켈레톤 선수로 살면서 포기한 게 있어요. 저는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성격입니다. 하지만, 운동선수로 살면서 성격을 감췄죠. 팀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까닭에 모든 걸 팀에 맞췄습니다. 은퇴 후엔 예전부터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운동도 했습니다. 쉬는 날엔 여행도 다녔죠. 자유를 마음껏 누린 겁니다(웃음).

미국에선 정확히 어떤 걸 공부한 겁니까.

영어와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배웠어요. 매주 스포츠 매니지먼트 교수님들과 한자리에 모여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3시까진 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했고요. 저녁엔 스포츠클럽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운동했습니다. 축구와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즐겼죠.

짧은 시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크게 배운 건 무엇입니까.

주변에 선수 생활을 마친 친구가 많아요. 대다수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미국은 달랐어요. 학생선수 시절부터 제2의 삶을 준비합니다. 대학엔 운동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죠. 미국 대학 선수들은 꼭 운동선수의 길만 고집하지 않아요. 이렇게 미국 스포츠 시스템과 산업을 조금이나마 배운 게 큰 소득인 것 같습니다.

“스포츠 행정가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스켈레톤 국가대표에서 ISF 인턴사원으로 새 도전에 나서고 있는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스켈레톤 국가대표에서 ISF 인턴사원으로 새 도전에 나서고 있는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ISF와 인연은 어떻게 맺은 겁니까.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란 이름을 보고 확 끌렸죠(웃음). ISF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스포츠 분야에서의 국제관계 발전을 도모합니다. 은퇴 선수의 교육에도 신경 쓰는 곳이죠.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궁금했어요. 직접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ISF에서 꼭 배워가고 싶은 건 무엇입니까.

ISF에서 근무하면 국제스포츠 정보와 지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어요. 양도 많습니다. 국제 스포츠 단체와 어떻게 소통하고 정보를 취합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요. 물론 쉽진 않을 겁니다(웃음). 사회생활은 처음이에요. 욕심내지 않고 하나하나 배워가야죠. ISF에서 일한다는 게 큰 경험입니다.

인턴 생활은 언제까지 하는 겁니까.

7월 6일이면 인턴 생활이 끝나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턴사원의 꿈은 정규직 아닙니까.

마지막까지 주어진 일에 온 힘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선수 시절엔 올림픽 도전을 목표로 했다면, 제2의 삶에선 정규직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웃음). 설령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고 해도 ISF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

방향은 같습니다. 스포츠 행정가를 향해 나아갈 거예요. ISF에서 일하면서 국제 스포츠 산업을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국제 연맹이나 스포츠 기구에 도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국외에 나가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있죠. 가장 좋은 건 ISF 인턴사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겁니다(웃음).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김준현(사진=엠스플뉴스)

제2의 삶을 준비 중인 운동선수가 많습니다. 사회 선배로 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 출발했습니다. 아직 조언할 위치는 아닌 거 같아요. 다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은퇴 후에 준비하면 늦습니다. 힘들겠지만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해요. 많은 분이 사회를 전쟁터로 표현합니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요. 나보다 뛰어난 인재가 아주 많습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준비밖에 없어요.

은퇴 후 새 도전에 앞서 도움을 준 지도자나 선배가 있습니까.

스켈레톤과의 인연을 맺어준 강광배 교수님이죠. 교수께선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했습니다. “운동은 평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힘들겠지만 은퇴 후의 삶을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고. 교수께선 하루하루 신문 읽고 글쓰기, 전화 영어 등을 추천해주셨어요. 교수님 덕분에 조금씩 제2의 삶을 준비할 수 있었죠. 정규직의 꿈을 이뤄 교수님을 찾아뵙고 싶어요(웃음).

지금처럼 준비하고 도전하면 정규직이 되는 건 시간문제 아닙니까.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게 정규직이라고 들었습니다(웃음). 주어진 일 확실히 처리하면서 차근차근 나아가야죠. 스포츠 행정가로 자리 잡으면 올림픽에 도전하고 싶어요.

올림픽이요?

스켈레톤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를 밟아볼 기회가 사라진 건 아니에요. 스포츠 행정가로 꼭 올림픽에 참가할 겁니다. 지금처럼 한 걸음씩 내디디다 보면 10년 후엔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운동선수로 살 때보다 더 치열하게 도전할 겁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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