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 '가해자들'은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전관 변호사를 만났을 때 우린 이런 판결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피고인들이 그동안 국위 선양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점,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트라이애슬론 경기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트라이애슬론 경기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필자는 대한농구협회 2급 정규심판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하던 ‘황금 같은 시절’, 대한농구협회에 무려 12주를 바쳐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취득한, 내게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보물이다.

변호사인 필자가 생뚱맞게 농구심판에 도전한 이유는 단순했다. ‘스포츠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만드는 가장 유용한 학습 도구’라는 필자의 가설을, 직접 입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설은 입증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이론이 되니까.

필자의 가설은 입증의 막바지 단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008년 11월 어느 날, 농구 명문 A고교와 B고교 농구부의 연습경기에, 필자를 포함한 대한농구협회 제12기 심판학교 수료생들이 5분씩 2인 1조로 투입됐다. 마지막 실기시험이었던 것이다.

비록 연습경기였지만 A, B고 선수들은 경이로울 만치 열정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다. 필자는 심판으로 들어갈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고작’ 연습경기에서,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양 혼을 담아 뛰는 어린 선수들을 보며 가슴 한쪽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 묘한 흥분과 긴장감, 감동이 뒤섞인 상황을 갑자기 끊어놓은 건 A고 감독의 벼락같은 휘슬이었다. A고 선수의 3점슛이 ‘에어볼’이 된 직후였다. A고 감독은 그 선수에게 다가가더니 사정없이 폭행하기 시작했다.

법조인인 필자가 봤을 때, 그건 폭행이 아니라 명백한 살인미수였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대한농구협회 관계자들과 학부모들 가운데 그 누구도 눈앞에 벌어지는 거짓말 같은 상황을 문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필자가 세우고 입증하려 했던 ‘가설’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선 완벽히 틀렸음이 확인됐다.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스포츠, 이른바 ‘운동부’는 폭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폭력 서클에 불과했다. 운동은 부수적인 거였다.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감사하게도 필자에게 농구심판 자격증 말고도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좋은 무기‘를 하나 더 손에 쥐여 주었다. ’좌절하지 말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통해, 한국스포츠의 썩은 곳을 하나씩 도려내는 역할을 나부터 하나씩 해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필자는 스포츠 법과 스포츠 인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수많은 스포츠 관련 소송을 진행한 것도 그 연구 결과물 덕분이었다. 필자는 이번 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마지막 카톡을 보고, 목에 무엇인가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박지훈 변호사
박지훈 변호사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그 마지막 바람마저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을, 필자는 그간의 소송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악인을 잡는 그물은 너무 성글다. 그리고 하필이면 ‘정의의 관점’에서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을 죄주려고 할 때만 유독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완벽하게 작동하여 ‘인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들의 방패가 돼준다.

고 최숙현 선수를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지목되는 감독, 트레이너, 주장 선수 등 몇몇은 기껏해야 형법상 상습폭행 정도로 기소될 게 자명하다.

상습폭행은 법정형이 고작해야 최대 3년이다. 검찰이 이들의 다른 죄를 캐내어 기어이 기소하더라도, 이들이 판사 앞에서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한마디만 하면 형량은 집행유예가 가능한 범위 안쪽으로 들어온다. 이들이 거물급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정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사의 판결문에는 반드시 아래의 문구가 들어갈 것이고, 이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유히 법정을 나올 것이다.

피고인들이 그동안 국위 선양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점,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높으신 법대에 앉아 계신 판사님들에게, 스포츠란 4년에 한 번씩 보는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스포츠계의 부패나 메커니즘에 일말의 관심이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스포츠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스포츠 자치권’이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스포츠계 내부의 문제는 스포츠인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괴상한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2017년, 대한민국의 한 판사는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승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아닌, 예선 1위를 차지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한 수영연맹의 조치가 정당하다며, 한 줌 웃음거리가 되기에도 민망한 판결을 선고하기도 했다. 누굴 국가대표로 뽑든 그건 수영연맹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그런 판결이 나왔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스포츠는 굳이 정의롭지 않아도 되는 분야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고위공직자가 임명되면 그 사람이 학창 시절에 어떠한 스포츠활동을 했는지를 꼭 빠뜨리지 않고 보여준다. 자료화면이 있으면 반드시 자료화면과 함께. CNN에서는 이런 류의 뉴스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번 신임 국방부차관보는 고등학교 시절 농구부 주장으로서 포워드로 활약하며 팀을 전미 고교선수권대회 4강에 올려놓은 바 있으며…

스포츠를 통해 사회의 작동원리를 체득하지 못하고 산림에 편히 앉아 글줄이나 읽던,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높은 법대에 앉아 저 스스로 높은 체하며 재판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사이 고 최숙현 선수는 다시 한번 철저히 능멸당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박지훈 변호사(법무법인 (유한) 현, '사람과 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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