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 사건 터지기 1년 전, 철인3종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신고 접수받고서 곧바로 '성추행 코치' 해임한 A고 “온정주의를 버렸다”

-대한체육회, 교육청에서 받은 징계 결과 철인3종협회에 전달하는 데만 12일 소비

-대한체육회 “추가 조사? 우린 교육청에서 받은 징계 내용만 협회에 전달할 뿐”

-철인3종협회 공정위원회 “사안 중대하다.” 그래놓고 5명 중 2명은 영구제명 대신 5년 자격정지에 손 들어

-최초 신고부터 학교 해임까지 단 3일. 철인3종계 퇴출되는데까지 91일 걸렸다

지난해 철인3종계에선 학교 지도자의 학생선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가해자였던 코치는 자신의 행동을 “상담과 격려 차원의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철인3종계에선 학교 지도자의 학생선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가해자였던 코치는 자신의 행동을 “상담과 격려 차원의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최)숙현이가 세상을 등진 건 팀 감독과 닥터, 선배들의 구타 때문만은 아니에요. 숙현이를 더 좌절하게 만든 건 세상의 무관심과 외면이었어요. 숙현이가 고통을 호소했을 때 소속팀,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경찰, 국가인권위에서 조금만 관심을 보였어도 숙현이는 삶의 끈을 놓치 않았을 거예요. 저는 그들 모두를 ‘가해자’라고 봅니다.

취재 중 만난 철인3종 선수는 고 최숙현의 절규를 외면했던 이들 모두를 ‘가해자’라고 칭했다. 특히나 이 선수는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협회가 1년 전 사건을 교훈으로만 삼았어도 숙현이가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한 단어가 있다. 바로 ‘1년 전 사건’이다. 이 관계자는 “철인3종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라며 “1년 전 철인3종계에서 선수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고 알렸다. 엠스플뉴스가 이 사건을 열흘간 취재했다.

2019년 발생했던 철인3종 학생선수 성추행 사건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트라이애슬론 경기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트라이애슬론 경기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철인3종 선수 성추행-성희롱’ 사건이 터진 건 지난해다. A고에서였다. 피해자는 A고 철인3종부 학생선수, 가해자는 이 학생선수를 지도하던 A고 전임 코치 K 씨다.

K 씨는 2019년 6월부터 8월까지 피해 학생선수를 지속해 성추행했다. 대회 기간 중에도 같은 학생선수를 성추행했다. 수차례에 걸쳐 지속해서 가해진 성추행과 성희롱에 피해 학생선수는 큰 충격과 함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학생선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피해 학생은 큰 혼란에 빠진다. 신고했다가 지칫 ‘자신을 지도하던 선생님을 고발한 의리 없는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까 두려워한다. 설령 신고해도 잘 해결되리란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A고 학생선수도 이런 우려와 걱정으로 심적 갈등이 컸을 거다.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 대표 박지훈 변호사의 얘기다.

피해 학생선수 측은 고민 끝에 같은 해 8월 말 철인3종부 감독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A고는 은폐 대신 매뉴얼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했다.

A고는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00교육청에 해당 사건을 알렸다. K 코치를 불러선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K 코치를 해고했다. 사건 신고 접수부터 해고까지 불과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K 코치가 학교에서 5년 정도 일했다.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학교 구성원들이 ‘정말?’ 하면서 깜짝 놀랄 만큼 평소 성실하고, 행실도 좋았던 사람”이라며 그러나 교장, 교감이 ‘선수를 살리려면 온정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빠르게 해임이 결정됐다고 회상했다.

최초 신고에서 학교 해임까지 단 3일. 대한체육회가 철인3종협회에 징계 결과 보내는데만 12일 걸렸다

지난해 A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결과. K 코치는 피해 학생선수가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린 뒤 3일 만에 해임됐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A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결과. K 코치는 피해 학생선수가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린 뒤 3일 만에 해임됐다(사진=엠스플뉴스)

A고는 3일 만에 K 코치를 해임했지만,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협회는 달랐다. 00교육청이 대한체육회에 K 코치 징계 결과를 통보한 건 2019년 9월 4일이었다. 교육계 관계자는 “A고에서 해임이 결정된지 4일만에 대한체육회에 징계 결과를 통보한 셈이다. 당시 징계 후 주말이 포함됐다는 걸 고려하면 추가 피해를 막으려고 장학사가 빨리 통보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따르면 정작 대한체육회가 철인3종협회에 K 코치 징계 결과를 알린 건 9월 16일이었다. 12일 동안 대한체육회가 뜸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체육회가 추가 조사를 벌이기라도 것일까?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협회에 보낸 건 00교육청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밖에 없었다. 대한체육회는 00교육청에서 징계 결과를 통보해줘서 철인3종협회에 ‘징계 사안이 있으니 처리하라’고 했을 뿐 우리가 추가 조사를 벌인 바는 없다고 답했다.

이 기간 K 코치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사람과 운동’ 박지훈 대표는 “학교에서 해임됐어도 K 코치가 철인3종계를 휘젖고 다니는 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피해 학생선수가 느꼈을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교육청 징계결과를 협회에 전달하는데 12일이나 질질 끈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00교육청으로부터 사건을 전달받은 뒤 철인3종협회에 12일이 흘러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는 00교육청으로부터 사건을 전달받은 뒤 철인3종협회에 12일이 흘러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사진=엠스플뉴스)

9월 16일 대한체육회로부터 징계 결과를 전달받은 철인3종협회는 9일이 지난 9월 25일 협회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열었다.

박정 의원실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원회에서 K 코치는 혐의 사실은 인정했지만, 상담과 격려 차원에서의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5명의 공정위원들은 하나같이 사안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영구제명에 손을 든 건 3명이었다. 2명은 5년 자격정지에 손을 들었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영구제명으로 징계가 결정’됐지만, 만약 5년 자격정지에 1명이 더 거들었다면 영구제명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체육회 “추가 조사? 우린 전달 역할만” 철인3종협회 “피해 선수 보호는 부모가…”. 성추행과 성희롱으로 학교에서 3일 만에 해임된 K 코치. 철인3종계 퇴출엔 91일 걸렸다

철인3종협회는 대한체육회로부터 사건을 접수받은 뒤 9일이 지난 뒤 공정위원회를 열었다(사진=엠스플뉴스)
철인3종협회는 대한체육회로부터 사건을 접수받은 뒤 9일이 지난 뒤 공정위원회를 열었다(사진=엠스플뉴스)

2019년 11월 26일 열린 재심에서도 K 코치 징계는 영구제명으로 결정됐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K 코치는 사법적 처벌을 전혀 받지 않았다.

취재 중 접촉한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시종일관 ‘우리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자체 교육청에서 해당 사건 내용을 전달받으면 해당 협회에 전달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협회에서 징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철인3종협회 역시 열악한 환경과 인원 부족 등을 내세우며 ‘한계’만을 언급했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 인원이 매우 적다. 하나하나 다 관리하기 어렵다. 피해 학생선수 보호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A고 학생선수가 코치로부터 수차례 성추행을 당하고 있을 때 고 최숙현 선수는 복숭아 1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소속팀 감독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최 선수는 자신을 폭행한 이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여기저기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무관심이었다.

철인3종협회는 최 선수의 호소를 외면하다가 최 선수가 세상을 떠나고, 사건이 불거지자 그제야 폭행 감독과 선수를 영구제명했다. 대한체육회는 사건이 커지자 지금에서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불과 1년 전 A고 학생선수가 경험했던 그 장면 그대로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협회가 1년 전 A고 학생선수에게 벌어진 성추행과 성희롱 사건을 정확하게 다루고, 유사한 문제로 고통받는 선수가 없는지 제대로 살펴봤다면 최 선수가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피맺힌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먼저 떠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대한체육회와 협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했다면 세상을 등지는 대신 그들을 방패 삼아 자신에게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이들과 결연히 맞서 싸웠을 것이다.

철인3종협회 공정위원회에 출석한 K 코치는 자신의 행동과 관련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생이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 “혐의된 내용은 상담과 격려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철인3종협회 공정위원회에 출석한 K 코치는 자신의 행동과 관련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생이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 “혐의된 내용은 상담과 격려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와 협회는 선수가 있어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찌 된 영문인지 체육회와 협회가 있어 선수가 존재하는 조직이 돼 버렸다. 선수 덕에 먹고사나 선수 위에 군림하는, 입만 열면 선수를 위한다고 외치나 정작 선수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그것이 현재의 대한체육회와 협회들이다.

스포츠계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가 전문가’라고 나서며 겉으론 ‘스포츠 인권’을 부르짖고, 뒤에선 각종 용역을 차지하고, 자릴 꿰차는 이들은 정작 대한체육회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그나마 박정 의원실처럼 집요하게 체육계 문제를 추적하는 이들이 있어서 다행일지 모른다.

A고에서 K 코치가 퇴출되는 덴 단 3일이 걸렸다. K 코치가 철인3종계에서 퇴출되는 덴 91일이 걸렸다. 이것이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실이다.

박동희, 이근승, 배지헌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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