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체육인’ 단국대 강신욱 교수, 제41대 대한체육회장 도전장

-“야구, 축구 등 학창 시절부터 운동에 푹 빠져 살았죠”

-“사랑의 매,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걸로 알았어요”

-“대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야 한다”

-“체육계 문제, 잘 알아야 바꿀 수 있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단국대학교 강신욱 교수(사진=엠스플뉴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단국대학교 강신욱 교수(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제 삶이 뼛속까지 체육인이란 걸 보여드릴 겁니다.” 단국대학교 국제스포츠학부 강신욱(64) 교수의 얘기다.

강 교수는 내년 1월 18일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체육계에 몸담은 지 45년. 열악한 지도자 처우 개선, 스포츠 폭력·성폭력 등 반복되는 문제를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어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는 강 교수.

강 교수가 자신을 ‘뼛속까지 체육인’이라고 언급한 덴 이유가 있다. 강 교수는 학창 시절 학교 대표로 축구 대회에 출전했다. 짧지만 중학교 야구부 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학(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 시절엔 하키 선수로 뛰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체육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강 교수는 체육교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전농여중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면서 하키부 감독을 맡았다. 198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학 강단에서 섰을 때도 변함없이 체육을 가르쳤다. 엠스플뉴스가 ‘뼛속까지 체육인’ 강 교수를 만났다.

- 강신욱 교수 “학창 시절부터 운동은 내 삶의 일부였다” -

서울대학교 하키부 시절 강신욱 교수(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서울대학교 하키부 시절 강신욱 교수(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11월 5일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정신이 없네요(웃음). 체육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체육계 현장에서 어떤 문제와 고민이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니까.

체육계에 몸담은 지 45년째입니다. 누구보다 체육 전문가 아닙니까.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합니다. 대학에서 보고 들은 것은 극히 일부일 수 있어요. 스포츠 종목만 해도 얼마나 많습니까. 야구, 축구, 농구 등 구기 종목부터 태권도, 레슬링, 유도 등 개인종목까지 아주 다양해요. 특히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제가 한참 학생선수들을 지도하던 시절과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요.

'한참'이라면 언제를 얘기하시는 겁니까.

옛날이야기 좋아해요(웃음)? 얘길 들으면 강신욱이란 사람은 뼛속까지 체육인이란 걸 알게 될 겁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운동을 아주 좋아했어요. 방과 후 친구들과 공차는 게 일상이었죠. 축구부 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학교 대표로 지역 대회에 출전하는 등 운동에 소질이 있었어요.

체육교사 시절 학생선수들에게 하키를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키는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했어요. 우리 어렸을 땐 축구, 야구, 복싱이 최고였습니다. 초등 4년 땐 '손야구'라는 것도 했어요. 서울시 대회에 출전해 우승도 했다니깐. 학창 시절부터 운동에 푹 빠져서 살았어요.

운동선수 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왜 없었겠어(웃음).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갔어요. 운동장에서 야구복 입고 운동하는 학생선수들이 아주 멋진 거야. ‘무조건 야구 해야겠다’고 다짐했지. 감독을 직접 찾아가서 ‘야구 하고 싶다’고 했어요(웃음). 흔쾌히 수락해주시더라고. 문제는 이후였습니다.

문제요?

첫날부터 엄청나게 맞았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왜 맞았는지 모르겠어. 처음 야구부에 들어온 중학교 1학년 애가 뭘 알겠어. 야구부 내에서의 폭력은 계속됐어요. 감독, 코치, 선배들에게 돌아가면서 맞았죠. 이유가 있긴 했어. 연습 때 분위기가 안 좋았다, 모이는 시간이 살짝 늦었다 등. 1주일 만에 야구부에서 나왔습니다. 웃긴 게 뭔지 알아요?

뭡니까.

야구부 감독이 하는 말이 “네가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을진 몰라도 나갈 땐 아니”라고 하는 거야. 동기들 포함해 야구부 전 인원한테 맞았어요. 야구부 떠올리면 맞은 기억뿐이야(웃음).

고교진학을 축구 특기자로 할 뻔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공을 잘 찼으니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체육 선생님이 불렀어요. 선생님이 “일정 금액을 주면 서울 모 고등학교 축구부에 넣어주겠다”고 했어요. 그 돈이 없어서 못 갔어(웃음). 우리 땐 고교 진학할 때 시험이 필수였습니다. 시험으로 평가한다면 최우수 성적으로 축구부가 있는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돈 내고 고교 진학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또 하나 있습니다.

어떤?

축구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공부와 운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어요. 선수도 학생인데 공부와 운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야. 학창 시절부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지.

학창 시절부터 체육계의 여러 문제를 경험한 셈이군요.

하키 선수, 지도자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요. 1981년 병역(ROTC)을 마치고 전농여중(전일중학교의 전신)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일 많았지. 학생들 가르치는 것부터 소통하는 것까지 쉬운 게 없었죠. 대학원 입시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공부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도 체육은 늘 좋더라고(웃음).

- 강신욱 교수의 고백 “사랑의 매,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다” -

전농여중 체육 교사이자 하키부 감독이었던 강신욱 교수(사진 맨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전농여중 체육 교사이자 하키부 감독이었던 강신욱 교수(사진 맨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전농여중 체육 교사로 생활하면서 하키부 감독을 맡았습니다.

선생님들이 자기 돈 써가면서 학생선수들 가르치던 시절이에요. 하키가 유망한 종목은 아니니까 학교 지원이 많지 않았어요. 전국대회에서 성과를 낼 때까진 아주 힘들었죠. 하키부엔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선수가 많았어요. 하키로 장학금 받고, 고교 진학해야 하는 친구들이었죠. 내 모든 걸 걸고 가르쳤습니다.

성적 부담이 컸을 듯싶습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1982년 겨울 처음 하키부 감독을 맡았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학생선수들을 많이 때렸어요. 그때만 해도 학생선수를 위해 때리는 건 줄 알았어요. 학생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치고 가르쳐야지만 그 아이들의 장래가 밝을 수 있다고 믿었죠. 실제로 창단 6개월 만에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바꾼 한 장면이 있어요.

한 장면이요?

전농여중이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하키계에서 유명해졌습니다. 많은 팀이 전농여중과 연습경기를 하려고 했어요. 우리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과 연습경기할 때였어요. 우리가 초반부터 크게 앞섰죠. 경기 중이었습니다. 상대 감독이 자기 팀 선수를 부르더니 뺨을 때리는 거야. 사랑의 매가 흔한 시절이지만, 보통 공개된 장소에서 매를 들진 않았거든. 그런데 그런 장면을 처음 본 거예요. 충격이었지.

음.

학생선수를 때리는 그 감독이 아주 추해 보였어요. 동시에 지난 시간을 돌아봤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와 저 감독의 다른 점이 뭔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어요. 당시엔 학생선수들의 장래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든다고 확신했습니다. 최소한 고교 진학 시 등록금 면제는 받아야 하니깐. 네, 제가 틀렸언 거예요.

틀렸다?

학생선수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든 게 아니야. 온전히 나를 위했던 거지. 다른 지도자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싫었던 겁니다. 수천 번 반성하고 다짐했어요. 다신 학생선수들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겠노라고. 그 이후 사랑의 매를 든 적이 없습니다. 용산고 하키부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죠. 교사시절 사랑의 매란 이름의 폭력을 행사한 걸 지금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어요.

교사에서 교수로 변신한 이유가 있습니까.

1980년대 전국대회에 출전해 성적을 내면 표창을 받았습니다. 하키부를 잘 지도하면 장학사가 되고 교장까지 꿈꿀 수 있었죠. 전농여중 하키부를 6개월 만에 전국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어요. 이후에도 꾸준히 성과를 냈습니다. 장학사 0순위였죠. 문제는 용산고 하키부 감독 시절에 생겼어요.

어떤 문제였습니까.

용산고 하키부는 동창회 지원으로 운영됐어요. 용산고 운동부 졸업생들이 지원금을 내는 겁니다. 전농여중과 운영 방식이 달랐죠. 용산고 동창회 한 분이 하키부 인원을 줄이라는 겁니다. 갈등이 생겼죠. 당시 용산고 하키부가 27명이었어요. 적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고민은 하키부 학생들이 하키를 관두면 무엇을 하느냔 거였어요.

고민이 컸겠군요.

1980년대엔 고등 교육이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학교를 못 다니는 거예요. 당시 하키부 학생들의 집안 사정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하키를 관두는 순간 체육 특기자가 받는 등록금 면제 혜택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은 다음 문제였어요.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어요. 지원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버티겠다고 했죠.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어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가 대학원 졸업 시기였어요. 학생들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순 없을까 고민하던 중이었죠. 결국 여러 고민 끝에 교사를 그만두고 강단에 서게 됐습니다.

- “대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어떤 사람인지 늘 생각해야 한다” -

단국대 강신욱 교수(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단국대 강신욱 교수(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1989년부터 단국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사 시절과 크게 바뀐 건 없었어요. 체육을 사랑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죠. 이전보다 좀 더 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죠(웃음). 대학 강단에 처음 선 날부터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항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지도자는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체육 지도자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인품에 깊이 관여해요. 우린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뭘 배웠는지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대신 그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확연히 기억해요. 과거 가르쳤던 선수에게 내가 좋은 지도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된다면 날 그렇게 기억하는 선수도 좋은 시민, 좋은 사람, 좋은 지도자로 성장했을 확률이 크다고 봐요.

평생 학생들과 호흡하면서 체육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체육계엔 제가 하키부 감독 시절 만난 제자들처럼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분이 아주 많아요. 우선 지도자들의 생계유지와 관련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지도자가 생계를 고민해요. 건강한 체육계를 만들기 위해선 체육 지도자의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좋은 체육인을 양성할 수 있어요.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네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첫 번째는 뭡니까.

국민을 위한 대한체육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대한체육회란 특수법인을 만들어준 이유는 명확해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란 겁니다. 그래서 법인 설립해주고, 돈도 주는 거예요. 운동이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는 것. 대한체육회가 많은 분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체육인을 양성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에요.

두 번째 공약에선 ‘100세 시대’ 체육인을 이야기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수들의 은퇴 후 고민을 덜어주겠다는 겁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선수들이 은퇴 후 생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교육이 그래서 정말 중요합니다.

- “체육계 문제 해결? 지도자 처우 개선이 시작이다” -

강신욱 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운동할 수 있는 환경 구축, 운동하는 사람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운동하는 게 자랑스러운 시대를 꿈꾼다(사진=엠스플뉴스)
강신욱 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운동할 수 있는 환경 구축, 운동하는 사람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운동하는 게 자랑스러운 시대를 꿈꾼다(사진=엠스플뉴스)

교육이 중요하다?

운동부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 아이 내 돈 내고 운동시키겠다는데 왜 자꾸 교육(공부)를 강요하느냐”는 거예요. 가슴이 아픕니다. 학생선수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게 아니에요. 기초 소양 교육을 통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자는 겁니다. 사회 어느 분야에 데려다 놓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거죠. 은퇴 후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선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어떤 말입니까.

“사회에선 소통이 안 된다”는 겁니다. 운동선수 생활하면서 쓰는 용어와 사회에서 쓰는 말이 다르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운동하면서 쓴 단어는 제한적인데 사회는 아니란 거죠.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교육하는 겁니다. 누구나 축구의 손흥민, 야구의 류현진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순 없어요. 성공하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제2의 삶을 항상 대비해야 하죠. 대한체육회가 할 일입니다.

세 번째 공약에서 “임기(4년) 내 폭력·성폭력 문제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체육계 폭력·성폭력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닙니다. 완전히 없앤다는 게 가능합니까.

내뱉은 말 지키지 못하면 책임져야죠. 더 많은 공약을 내걸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기로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 근절이에요. 자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군대나 대학 역시 폭력·성폭력 문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대학에선 학생들에게 막말하거나 성적 농담을 던지는 교수가 많았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확 줄었어요.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시스템이 갖춰진 거죠.

시스템이요?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되면 1년에 최소 두 번 전수조사를 할 겁니다. 대한체육회, 프로연맹 등에 등록된 초등선수부터 프로까지 전 선수를 조사할 거예요. 번거롭지 않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휴대전화로 조사를 할 거예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축할 겁니다. 조사 결과는 반드시 기관장에게 통보하도록 할 거고요.

문제를 일으킨 지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 예로 남자 스포츠에서 문제를 일으킨 지도자가 여자, 장애인 체육계로 넘어오는 사례가 있습니다.

문제를 기관장에게 통보만 하는 게 아니라 잘못한 이에게 확실한 처벌을 내려야죠.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가장 쉬운 건 잘못한 사람을 영원히 내쫓는 거예요. 다신 체육계에 발 디딜 수 없게 추방하는 거죠. 대중이 용서하지 못할 문제를 저질렀다면 그래야 합니다. 다만 모두를 그런 방식으로 내쫓을 순 없어요.

어찌해야 합니까.

잘못에 따른 처벌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면되는 체육인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해요. 전 원칙주의자입니다. 엄격해요. 다만 그 엄격을 가장해서 지도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건 막아야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대한체육회의 역할이라고 봐요.

교수님이 가장 강조하는 게 체육 지도자의 처우 개선입니다. 교수님이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다고 해서 대한체육회 예산이 갑자기 확 늘어날 순 없습니다. 예산은 한정적입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지막 공약이죠. 지도자들의 상황이 아주 열악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자 대부분이 1년 계약직이에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입과 20년 차 베테랑의 봉급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순 있어야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같은 일이어선 안 됩니다.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급료 체계를 갖춰야 해요.

2020년 대한체육회가 정부로부터 받은 예산은 4천억 원입니다. 예산 확충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디선가 예산을 줄이거나 다른 곳에서 돈을 가져와야 합니다.

쉽지 않죠.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담뱃세에 보면 건강증진목적기금이 있습니다. 많은 체육계 지도자가 건강증진에 앞장서고 있죠. 그런데 혜택은 없어요. 체육계의 정당한 몫을 가져와야 합니다. 자기만의 지도 철학을 펼칠 수 있고 학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환경 반드시 만들 거예요.

4년 후 교수님이 어떤 체육계를 꿈꾸고 있습니까.

선진형 스포츠 강국. 운동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거예요. 운동하는 사람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운동하는 게 자랑스러운 한국이 될 겁니다. 미국처럼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당연할 거예요. 주 종목 하나씩은 가지고 사회로 나가 평생 함께하는 시스템.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체육계에 45년 몸담았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평가하는 지도자로 살아왔습니다. 교수님이 평가하는 강신욱 교수는 어떤 체육인입니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산 체육인입니다(웃음). 학생선수들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체육계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감사한 분을 아주 많이 만났어요. 이젠 제가 보답해야 할 때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쭉 체육계와 함께했습니다.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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