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 9년간 팀 이끈 추일승 감독 물러나고 김병철 코치가 지휘봉 잡았다

-감독 데뷔전 승전고 울린 김병철 감독대행 “감독 뒤에서 조언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코치 때와 차이 컸다”

-“추일승 감독께 배운 것 한두 가지 아니다. 감독께선 내 지도자 스승”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추일승 감독께 전화를 드려 조언 구할 것”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전 감독(사진 맨 왼쪽부터), 김병철 감독대행, 김도수 코치(사진=KBL)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전 감독(사진 맨 왼쪽부터), 김병철 감독대행, 김도수 코치(사진=KBL)

[엠스플뉴스=고양]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긴 2011년부터 팀을 이끈 추일승 감독이 물러나고 김병철 코치가 지휘봉을 잡았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새 출발을 알린 것이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오리온의 살아있는 역사다. KBL(한국프로농구)이 출범한 1997년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한 김 감독대행은 2011년까지 선수로 뛰었다. 2013년 2월부턴 코치로 팀과 동행을 이어갔다.

2월 26일 김 감독대행이 7년 만에 지휘봉을 잡고 코트에 섰다. KBL이 ‘코로나 19’로 남은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기로 하면서 코트는 조용했다. 하지만, 김 감독대행의 데뷔전 승리와 5연패 탈출이란 확고한 목표를 갖고 뛴 오리온 선수들 덕분에 코트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경기는 68-64 오리온의 승리로 끝났다. 김 감독대행은 한 팀의 수장으로 경기에 나선다는 게 쉽지 않았다감독 뒤에서 조언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코치 때와 차이가 컸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에선 이겼지만 즐길 여유가 없었다. 바로 다음 경기가 생각났다. 4쿼터 점수 차를 벌리지 못한 것을 비롯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철 감독대행 “추일승 감독께선 내 지도자 스승”

김병철 감독대행은 코치 시절 추일승 전 감독의 배려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곤 했다(사진=KBL)
김병철 감독대행은 코치 시절 추일승 전 감독의 배려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곤 했다(사진=KBL)

김병철 감독대행은 지휘봉을 늦게 잡은 편이다. 2011년부터 서울 SK 나이츠 지휘봉을 잡은 문경은, 이상민(2014년), 신기성(2016), 현주엽(2017) 등은 일찌감치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김 감독대행과 함께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코트를 누빈 동료다.

하지만, 김 감독대행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언젠가 감독이 돼야겠다는 확고한 꿈이 있었지만, 추일승 전 감독 밑에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데 주력했다.

김 감독대행은 감독님에게 배운 것이 아주 많다감독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휘봉을 잡는 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께서 매일 쓰신 말이 ‘준비’와 ‘미리미리’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런 감독님을 보면서 성장했다. 감독님은 내 지도자 스승이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잘해야 한다고 했다.

추 전 감독은 풍부한 경험을 갖춘 지도자다. 1997년 상무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추 전 감독은 2003년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부산 KT 소닉붐의 전신) 지휘봉을 잡고 KBL에 데뷔했다. 2006-2007시즌엔 ‘만년 하위권’이란 평가를 받던 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의 전신)를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놨다.

KTF는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전신)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3승 4로 졌다. 그러나 농구계는 당시 챔피언 결정전을 KBL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기억한다. KT가 챔피언 결정전 무대를 밟은 건 2006-2007시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11년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를 바꾼 오리온의 지휘봉을 잡은 추 전 감독은 아홉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이 가운데 여섯 차례나 팀을 플레이오프 올려놓으며 오리온을 KBL 강호로 만들었다.

2015-2016시즌엔 KBL 챔피언 등극에 성공했다. 김동욱, 이승현, 장재석 등 내국인 포워드와 조 잭슨, 애런 헤인즈의 장·단신 외국인 선수 조합을 앞세워 KBL 최장신 센터 하승진(221cm), ‘득점 기계’ 고(故) 안드레 에밋이 버틴 전주 KCC 이지스를 4승 2패로 따돌렸다.

오리온이 고양으로 연고지 이전 후 KBL 챔피언에 오른 것 역시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18-2019시즌엔 KBL 최초 10연패에 빠진 팀이 6강 플레이오프 오르는 기록을 썼다. 이승현, 최진수 등 핵심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지며 다음 라운드 진출엔 실패했지만 농구계는 추 전 감독의 지도력에 큰 박수를 보냈다.

추 전 감독은 KBL 통산 797경기에서 379승 418패를 기록했다. KBL 역대 지도자 가운데 추 전 감독보다 많은 경기를 치른 건 유재학(1천 148경기), 전창진(773경기), 김 진(803경기)뿐이다.

그런 추 전 감독이 물러났다. 시즌 도중 사퇴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했다.

KBL 행사 때마다 추 전 감독을 챙긴 ‘절친’ 유재학 감독은 (추)일승이의 사퇴 소식을 접하고 종일 마음이 안 좋았다사퇴 당일엔 전화도 안 받더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날 일승이와 통화했다. 친구이기 전에 동료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추일승 감독께서 ‘네가 주인공’이란 말씀을 해주셨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김병철 감독대행(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김병철 감독대행(사진 왼쪽)(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전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김병철 감독대행에게 지휘봉을 물려줄 생각을 했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감독께선 지난 시즌부터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경기 중엔 작전 지시를 내게 맡겨주셨다. 많은 걸 보고 배웠을 뿐 아니라 코치란 직책이 얻기 힘든 경험까지 쌓았다. 감독님이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전 감독이 김 감독대행을 아낀다는 건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알 수 있었다. 추 전 감독은 김 감독대행의 지도자 데뷔 이틀 전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김 감독대행은 감독께선 ‘이래라저래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딱 한 말씀 하셨다. ‘네가 주인공이다. 팀을 잘 이끌라’고 했다.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며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거다. 그때마다 내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은 추 감독님뿐이다. 감독께서도 ‘언제든 전화하라’고 하셨다. 다만 ‘내 생각을 얘기해주는 거지 답은 네가 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오리온은 김 감독대행의 지도자 데뷔전에서 승전고를 울리며 5연패에서 탈출했다. 올 시즌 12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공동 5위 부산 KT 소닉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승차는 8.5경기다. 현실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건 어렵다.

오리온 주장 허일영은 추 전 감독께서 ‘주장으로 책임감이 클 거다.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나아간다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응원할 테니 마지막까지 잘하라’고 했다. 26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전에서 5연패를 끊은 게 어느 때보다 기쁘건 이 때문이다. 남은 경기에서도 이전과 다른 경기력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오리온은 29일 리그 3위 안양 KGC 인삼공사를 만난다. 3월 1일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사활을 건 전자랜드를 상대한다. 오리온이 추 전 감독의 바람대로 김 감독대행과 함께 유종의 미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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