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코트 위 불안감도 점점 커진다

-“외국인 선수들의 자진 퇴출로 동요 있을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합숙소 부활, 유부남 선수들도 가족 안전을 위해 합숙 동참

-“무관중 경기는 체육관 시설 점검하는 느낌. 팬이 있어야 100% 경기력 나온다”

2월 28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실내체육관(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월 28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실내체육관(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KBL(한국프로농구연맹)의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정상적인 경기 준비가 안 되는 건 사실입니다. 요즘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관한 말만 합니다.

KBL 각 구단 사령탑의 공통된 말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월 28일 기준 확진자 수는 2천337명이다. 28일 하루에만 571명이 늘었다. 같은 날 대구에서만 3명이 사망하면서 코로나19 사망자 또한 16명으로 늘어났다.

코트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KBL은 2월 A매치 휴식기를 마친 26일부터 무관중 경기를 실시 중이다. 농구는 신체접촉이 심한 스포츠다. 무관중 경기지만 양 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 및 KBL 관계자, 방송 중계 인력, 취재 기자 등을 합하면 경기당 150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인다.

코로나19가 농구 코트를 잠식했다

2월 27일 서울 SK 나이츠전을 앞두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을 풀고 있는 부산 KT 소닉붐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월 27일 서울 SK 나이츠전을 앞두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을 풀고 있는 부산 KT 소닉붐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부산 KT 소닉붐은 전력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외국인 선수들이 짐을 쌌다. 앨런 더햄이 무관중 경기 첫날 KBL 최초 ‘자진 퇴출’ 결정을 내린 데 이어 바이런 멀린스도 팀을 떠났다. 무관중 경기가 이어질 경우 KT는 남은 일정을 외국인 선수 없이 치러야 한다. 대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지만 현 시국에 KBL에서 뛸 외국인 선수를 구하는 건 매우 어렵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보리스 사보비치는 27일 출산을 앞둔 아내 곁으로 돌아가기를 결정했다. 무관중 경기 3일 만에 자진 퇴출을 결정한 외국인 선수가 세 명으로 늘었다. 농구계는 외국인 선수들의 ‘자진 퇴출’ 사례가 더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유재학 감독은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우리 외국인 선수들도 가족들과 상의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어 KBL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자기들만의 소통 공간이 있다. 한국을 떠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미국 대사관에서도 매일 문자를 받는 것으로 안다. 농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단이 할 수 있는 건 선수들의 건강관리에 온 힘을 다하는 것뿐이다. 현대모비스는 선수단의 안전을 고려해 원정 경기 일정 수정에 들어갔다. 3월 1일 부산에서 열리는 KT전은 경기 당일 울산 숙소에서 버스로 이동한다. 애초 현대모비스는 경기 전날 KTX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호텔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KBL은 2018-2019시즌 폐지한 합숙소 운영을 일시적으로 허용 중이다. 현 상황에선 대외활동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합숙소 생활이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강제성은 없다. 각 구단은 선수들의 선택에 맡긴다.

현재 대다수 선수가 합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가정이 있는 선수들도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합숙소 생활에 동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각 구단은 합숙소는 물론 체육관과 식당 등의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현재 구단 관계자를 제외한 인원은 숙소 및 체육관 출입이 금지되며 출입 시엔 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 손 소독 등을 꼭 해야 한다.

합숙소 생활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팀도 있다. 서울 삼성 썬더스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경기도 용인시 삼성 트레이닝 센터(STC)에서 훈련한다. 2018-2019시즌 KBL이 합숙소 폐지를 결정하면서 남자 농구단 합숙 시설을 다른 공간으로 바꿨다.

이상민 감독은 선수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위생 관리 등을 강조하는 방법뿐이라며 프로답게 몸 관리를 평소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은 합숙소 생활이 폐지되고 불편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그런데 코로나19 여파가 커지면서 합숙소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있다. 훈련장과 원정 경기를 오가면서 혹시나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다. 합숙 시설이 남아있었다면 잠시 합숙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무관중 경기에선 경기력의 100% 나올 수 없다”

서울 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사진 왼쪽), 이관희(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사진 왼쪽), 이관희(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KBL이 출범(1997년) 이후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KBL 10개 구단 감독, 선수 모두 무관중 경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KBL 통산 1천149(1위)경기를 치른 유재학 감독은 농구 인생에서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야유로 가득한 원정 경기가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덧붙여 감독과 코칭스태프부터 흥이 나지 않는다. 선수들은 오죽하겠나. 관중이 있어야 정상적인 경기력이 나온다고 했다.

서울 삼성 썬더스 이상민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이 감독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고교 시절까진 관중이 가득한 코트를 누비는 게 쉽지 않았다. 선수들의 부모님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관중이 없는 곳에서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세대학교 입학 후 처음 고려대와 정기전을 치렀을 때 함성으로 가득한 코트를 누볐다. 코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팬에 대한 소중함을 처음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선수는 팬이 있어야 한 발 더 뛰고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KBL 무관중 경기 3일 차가 지났다. 무관중 경기에 대한 감독, 선수들의 반응은 똑같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의 기본이지만, 쉽지가 않다. 2월 28일 생애 첫 무관중 경기를 마친 이상민 감독은 체육관 시설 점검하는 기분이란 소감을 전했다.

같은 날 외국인 선수가 자진 퇴출로 떠난 부산 KT 소닉붐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KBL에 리그 중단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KBL이 ‘리그 중단’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먼저 10개 구단 대표가 참석하는 이사회에서 리그 중단으로 뜻이 모여야 한다. 리그 중단으로 결정이 나면 재개 시기와 남은 일정 운영 방법 등을 정해야 한다. 중계 방송사와의 중계권 계약을 시작으로 각 구단의 체육관 대관, 다음 시즌 일정 등도 고려해야 한다.

KBL은 코로나19와 관한 사항을 지속해서 체크 중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자진 퇴출을 비롯한 무관중 경기의 문제점들도 파악하고 있다. KBL은 이르면 다음 주 중 다시 한번 이사회를 소집할 계획으로 알려진다.

KBL 무관중 경기 3일 차. 농구 코트 안팎에선 농구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코로나19와 건강이 최대 이슈이자 대화 주제다. KBL 10개 구단 모두 농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 지금 100% 경기력을 보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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