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최다출전 기록 보유자 김병지, 선수 시절처럼 제2의 삶 역시 쉴 틈 없다

-“은퇴 후 선수 시절 모은 돈으로 지은 집에서 고구마 구워 먹는 여유로운 삶 꿈꿨다”

-“제2의 삶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려고 한 건 유튜브 방송. 재미난 PD 구하지 못해 무산”

-“선수 경험과 사업가 행보, 구단주 꿈 이루는 데 큰 도움 될 것”

-“프로 데뷔부터 응원 아끼지 않는 팬 많아. 그분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축구인’ 될 것”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김병지 이사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김병지 이사장(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남양주]

1992년 프로에 데뷔해 2015년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 K리그 최다출전(706경기) 기록 보유자 김병지가 그 주인공이다.

김병지는 순탄하지 않은 축구선수의 길을 걸었다. 축구부 회비를 내기 힘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중학교 땐 학비가 면제된다는 이유로 골문을 지켰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키가 163cm였다. 이후 20cm가 크면서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갔지만 대학과 프로팀 입단에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고교 시절 따놓은 전기용접과 선반 자격증을 살려서 LG 오티스란 엘리베이터 회사에 입사했다. 직장인 팀에서 오전엔 일하고 오후엔 운동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하면서 프로축구선수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프로 입단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다. 당시 조별리그 3경기에서 56개의 유효슈팅 중 47개를 막아내며 32개국 골키퍼 가운데 선방률 2위를 기록했다.

선수로 뛴 24년 동안 김병지의 몸무게는 78kg으로 똑같았다. 저녁 8시 이후엔 약속을 잡지 않고, 술과 담배 등은 절대 하지 않는 등 철저한 몸 관리 덕분이다.

김병지는 2015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지만, 쉴 틈이 없다. 프로축구 구단주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까닭이다.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이사장, 꽁병지 tv와 꽁치킨, 꽁쇼핑, 김병지축구클럽 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병지 “은퇴 후 곧바로 유튜브 방송 계획했다”

K리그 최다출전 기록 보유자 김병지(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 최다출전 기록 보유자 김병지(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이사장 , 꽁병지 tv, 김병지축구클럽 대표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엔 서울시축구협회장 선거에 나갔습니다.

내 삶은 선수 시절 전·후로 나뉩니다. 프로축구 선수로 뛴 24년 동안은 그라운드 위에서 골문을 지켰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죠. 365일 축구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쉴 틈 없이 내달리며 K리그 최다출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 내게 휴식을 주고 싶었어요.

휴식이요?

유니폼을 벗은 뒤 2년 정도 푹 쉬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양평군 서종면에 선수 시절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지었어요. 은퇴 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여유롭게 살려고 했죠. 그러면서 선수 시절의 삶을 돌아보고 제2의 인생을 계획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었죠. 마음 편히 쉴 수 없었어요.

누구보다 오랜 시간 선수로 뛰었습니다. 유니폼을 벗은 뒤 마음 편히 쉬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까.

내 계획에 따라서 은퇴 후의 삶을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은퇴 전·후로 주변에서 연락이 끊이질 않았죠.

어떤 연락을 받았습니까.

해설위원, 코치 등 ‘축구에 관한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인생의 4분의 3을 축구와 함께했습니다. 유니폼을 벗었지만 축구계를 떠나긴 어려웠어요. 고민 끝 결심했죠.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다.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축구를 공부해보자’고.

해설위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같은 선진 축구를 공부할 기회였습니다. 정보만 전달하는 해설위원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각 팀의 축구 철학이 무엇인지, EPL에서 뛰는 각 선수의 성장 과정과 특징 등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더해주고 싶었죠. 방송이 무엇인지 알 기회였고요. 사실 해설위원의 길을 걷기 전에 유튜버를 먼저 고민했습니다.

꽁병지 tv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전이 아닌 좀 더 일찍 나올 수 있었던 겁니까.

제2의 삶을 고민하던 때 유튜브가 새로운 동영상 플랫폼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의 방송은 ‘방송국’만 가능했어요. 개인이 방송하고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죠. 처음 유튜브를 접했을 땐 신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어떤?

프로에서 뛴 24년의 경험을 살려 방송을 해볼까 고민했습니다. 내 경험은 다른 이에게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유튜브 방송을 준비했습니다. 가까운 축구 해설위원, 축구 기자와 함께 현장의 경험을 앞세운 콘텐츠를 기획했죠. 하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우리 방송을 책임질 PD를 못 구했거든요.

결국엔 유튜브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6월 4일 꽁병지 tv란 이름의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스포츠인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자(32만 9천 명)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중계했죠. 축구계 주요 이슈를 다루고, 경기 해설 및 분석을 합니다.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전·현직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런치어택’이란 코너에선 점심시간에 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운동을 하죠. 학생들은 입시 준비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요. 그들에게 잠시나마 운동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선수 시절처럼 꽁병지 tv 역시 개성이 뚜렷합니다.

경기 분석은 하루 이틀이면 가능하지만, 보통 콘텐츠 하나를 완성하는 데 1~2주가 걸립니다. 혼자서는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없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죠. 직원들과 시간 날 때마다 소통합니다.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머리를 맞대죠.

유튜브 시장이 커지면서 유튜버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꽁병지 tv의 매출이 연 10억 원 수준입니다. 파생되는 전체 비즈니스는 30억 원에 달하죠. 현실적으로 광고를 하지 않으면 유튜버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지금보다 큰 방송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광고가 필수예요. 대신 수익의 일부는 반드시 좋은 일에 씁니다.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꽁병지 tv는 수익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지 않아요. 지난해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기 위한 축구 자선행사처럼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런치어택’도 재미를 넘어선 공익적인 프로그램의 하나죠. 가정환경이 어려워 꿈을 이어가기 힘든 어린 친구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요. 선수 시절부터 해온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습니까.

1999년 아내와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했어요. 이후엔 장애청소년 축구 클리닉, 소방공무원 자녀 장학금 후원,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과 쌀, 자킷 등을 나눠주는 ‘사랑의 연탄 나르기’, 다문화가정과 군부대 지원 등을 이어갔죠. 선수 시절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 통장에 돈을 채워주는 건 팬들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건 당연하고 사회에 모범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게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다’고.

공익적인 활동을 이어가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축구로 큰 성공을 이뤘습니다.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죠. 팬들이 없었다면 축구선수 김병지도 없었을 거예요. 선수 시절부터 따뜻한 일에 앞장선 건 이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예.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자랐습니다. 꿈을 갖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했죠. 그때마다 누군지 모르는 분들이 축구화를 사주는 등의 지원을 해주셨어요. 그분들 덕분에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회공헌 활동은 내가 받은 걸 돌려주는 것뿐입니다.

“축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구단주”

'꽁병지 tv'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꽁병지 tv'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은퇴 후에 더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꽁병지 tv를 시작으로 유튜브에서 상품을 홍보하는 꽁쇼핑을 론칭했습니다. 지난해 8월 말부턴 여의도에 ‘스포츠 비어 펍’을 콘셉트로 치킨 사업(꽁치킨)을 시작했어요. 김병지축구클럽도 하나의 사업이죠. 한 번 잘못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걸 모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이 크죠(웃음).

사업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아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업들을 크게 성공시켜서 향후엔 좋은 구단을 만들고 싶어요, K3리그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아나가는 하나의 성공 모델을 제시하는 거죠.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을 때부터 내 인생의 최종 목표는 구단주였어요. 프로축구 선수, 국가대표 등은 구단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죠.

보통 프로에 입단한 축구선수의 꿈은 국가대표입니다. 이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본 계기가 있습니까.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어 존재합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단을 만들고 싶어요.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경기장을 찾은 팬들과 함께 뛰는 팀이죠.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는 팀.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서는 구단을 머릿속에 그렸어요. 축구인이 꿈꿀 수 있는 가장 높은 꿈이죠.

은퇴 후부터 구단주의 꿈을 키운 게 아니군요.

많은 분이 ‘김병지는 축구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24년 동안 프로축구 선수로 뛰었으니까 당연한 거죠. 하지만, 프로축구 선수는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남는 시간이 많습니다. 보통 프로축구 선수는 하루 약 4시간을 운동에 투자해요. 그럼 20시간이 남습니다. 보강 훈련을 진행해도 뉴스 보고 독서할 시간이 충분하죠. 그렇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한국은 프로선수의 운동 스케줄이 빡빡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거엔 새벽, 오전, 오후, 야간 등 하루 네 차례 훈련을 진행했죠. 운동선수들의 취미 가운데 낮잠이 많은 건 이 때문입니다.

낮잠을 즐기는 선수들이 정말 많습니다(웃음). 나도 잠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요. 하지만, 몸이 유달리 피곤한 날도 10시간 이상은 자기 어렵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버리는 시간을 줄이면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어요. 실제로 몸이 가장 힘들었던 상무 시절에 책을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웃음).

철저한 시간관리가 제2의 삶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거군요.

프로선수로 뛸 때 후배들의 운전면허 시험을 도와준 적이 있어요. 보통 운전면허 학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곳에 있거든요. 운전면허 따려는 후배들을 학원까지 데려다 준거죠. 그때 대형버스, 트럭 면허 등을 땄습니다. 후배들 교육받는 시간을 활용한 거죠. 35살 때부턴 한 달 남짓한 휴가를 활용해 지도자 자격증을 땄습니다. 마지막 P급만을 남겨두고 있죠.

선수로 뛸 때나 지금이나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잠자는 것 외엔 없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밤 8시 이후에 약속을 잡아 본 적이 없어요. 술이나 담배는 절대 안 하죠. ‘김병지와 술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100% 거짓말입니다. ‘나는 술 먹고 (김)병지는 술 안 마셨어’라고 말한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있고요(웃음). 선수 때나 지금이나 스트레스는 내가 해야 할 일로 푸는 것 같아요. 아. 생각해보니 하나 있네요.

어떤?

아내에게 힘든 일이나 고민을 얘기합니다. 미안하죠. 어떻게 보면 내가 짊어가야 할 짐을 나누는 거니까. 하지만, 얘기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웃음). 아내가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많고요. 경상도 남자라서 표현이 서툴지만, 아주 고맙죠.

‘선수 시절부터 밤 8시 이후엔 약속을 잡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스포츠계는 선·후배 관계가 철저하기로 유명해요. 김병지도 막내 시절이 있었을 텐데 8시 이후 약속을 잡지 않고 술을 한 잔도 안 한다는 게 가능한 겁니까.

축구선수를 꿈꾸기 시작한 이후 ‘선배는 하느님과 동격이다’ ‘선배의 말은 곧 법이다’란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팀 막내인 시절이 있었죠. 선배가 ‘병지야, 시즌도 끝났는데 한잔해’란 말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냈죠. 그래야 시즌에 돌입했을 때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선배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쟤 뭐야’였죠(웃음). 하지만, 내가 세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니 선배들이 먼저 얘기했어요. ‘병지는 술 안 마셔. 사이다 줘’라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몸 관리를 한 까닭에 24년을 프로에서 뛰었습니다. 노력의 열매가 아주 달콤했죠. 후배들에게 이 얘길 꼭 해주고 싶어요.

어떤?

한 경기를 이기면 웃습니다. 그리고 챔피언이 되면 눈물이 나요. 정상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나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환희의 눈물은 절대 흘릴 수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과정부터 달라야 합니다.

“내 꿈을 얘기할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김병지축구클럽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김병지축구클럽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철저한 자기 관리로 축구선수로 큰 성공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평생의 목표로 잡은 구단주 역시 이루기 쉬운 꿈이 아닙니다.

나를 믿어요. 20살 때 ‘키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축구단에 입단하지 못했습니다. 상무와 직장인 팀(LG 오티스)에서 힘겹게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갔죠. 직장인 팀에선 낮엔 용접공으로 일하고 저녁에 운동했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프로축구 선수와 국가대표의 꿈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당시 ‘난 국가대표가 될 거야’라고 하면 주변 반응은 하나였죠(웃음).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미친놈’이었습니다. ‘직장인 팀에서 운동하는 놈이 말도 안 되는 꿈을 꾼다’고 했죠.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프로축구 선수로 뛰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월드컵을 누볐습니다. 0.1%의 가능성을 현실로 일군 경험을 믿어요.

경험을 믿는다?

K리그에서 400게임을 뛰고 500게임을 목표로 잡았을 때가 37살이었습니다. 그때 역시 주변에선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했어요. 100경기에서 200경기로 나아가는 건 쉽습니다. 팀에서 주전 선수로 뛸 나이니까. 3년만 부상 없이 뛰면 이룰 수 있는 목표예요. 하지만, 당장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는 37살의 선수가 100경기를 더 뛴다고 하니 황당했겠죠(웃음).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600게임을 뛰고 700게임을 뛰겠다고 했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주변에서 ‘이번엔 진짜 어렵다’고 했어요. 결국엔 706경기를 뛰고 45살에 은퇴했습니다. 인간에게 한계는 없어요.

김병지는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레전드입니다. 코치부터 시작한다면 구단주의 꿈을 이루는 게 수월하지 않습니까.

은퇴 후에 제안이 많았죠(웃음). 사실 프로구단 단장 제안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어요. 지금 하는 일들이 성공한 구단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확신 때문이죠.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습니까.

구단주 김병지는 300억 원을 지원받아 팀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번 돈으로 구단을 운영하고 싶어요. 돈뿐만이 아닙니다. 꽁병지 tv와 김병지축구클럽 등을 운영하면서 투자와 서비스, 홍보, 마케팅 등을 배우고 있어요.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터득해 가는 거죠. 이 성장 스토리의 결말이 성공한 구단주일 것으로 확신해요.

구단주란 목표가 확고합니다. 성공한 구단주는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K리그의 몇 구단은 구단주의 의미가 크지 않아요. 축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구단주가 된 분들이 있죠. 한국의 대기업은 더 이상 국내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과거엔 수익과 관계없이 홍보가 필요해 축구단에 투자했어요. 지금은 아닌 거죠. 그러다 보니 투자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구단의 주인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주인이요?

축구계의 많은 분이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축구단의 주인이라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것. 쉽게 말해 내 돈이 아니니까 아쉬운 선택이 반복되는 거예요. 구단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투자는 내 것이 투입될 때 극대화될 수 있죠. 내 인생을 걸고 구단을 운영해보고 싶어요(웃음).

“서울시축구협회장 출마, 구단주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했다”

'꽁병지 tv'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꽁병지 tv' 김병지 대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지난해 3월 서울시축구협회장 출마를 선언하고 7개월 뒤 선거를 치렀습니다.

떨어졌죠(웃음). 서울시축구협회장이 계획에 들어있던 건 아니었어요. 주변에서 ‘서울시축구협회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데 도전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고민 끝 구단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결론을 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까.

서울시 유소년 축구 사업을 키워갈 수 있죠. 다양한 국내 대회를 유치하고, 각종 국제대회 참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재능 있는 선수들에겐 국외 경험도 쌓게 해 줄 수 있어요. 서울 25개 자치구에 있는 기업과 상생할 자신도 있었죠. 기업이 서울시축구협회에 투자하면,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 꽁병지 tv를 비롯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잖아요.

결과가 아쉽진 않습니까.

새로운 걸 배웠습니다. 솔직히 준비가 부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선거는 조직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죠.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나는 ‘출마하겠다’가 먼저였어요. 순서가 틀렸습니다. ‘내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축구협회장에 출마할 계획인데 도움을 주시고 지지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가 우선이었습니다.

‘서울시축구협회회장이 된다면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했습니다. 재출마를 염두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면 서울시축구협회에 50명의 대의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서른 명이 넘는 분이 김병지를 추천한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하겠습니다. 구단주란 꿈에 도움이 되고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축구선수뿐 아니라 이후의 삶에서도 남들이 하지 못한 걸 많이 이뤘습니다.

그렇다면 최종 목표인 구단주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단장 제안을 거절했을 때와 같습니다. 지금은 좋은 구단주가 되기 위한 수업 중이에요. 스스로 준비가 됐다는 판단이 섰을 때 제안이 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준비가 됐다는 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꽁병지 tv가 지금보다 훨씬 파급력 있는 동영상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는 거죠. 김병지축구클럽은 최소 50개 이상으로 늘어야 합니다. 꽁치킨과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도 최소 두 개 이상 필요하죠. 꽁쇼핑에선 스포츠 의류와 용품 등을 묶은 패키지 상품 판매가 성업을 이루고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웃음).

꿈을 이루려면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축구계엔 2017년 11월 19일 교통사고로 김병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사실 큰 사고는 아니었어요. 차량 파손이 크지 않았죠. 누구보다 몸 관리를 잘했던 운동선수다 보니 다친 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이 왔어요. 하반신이 마비됐죠. 병원에서 신경이 파열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가 은퇴 후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현재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오른쪽 다리가 여전히 불편합니다.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지만, 오른발 킥을 잘 못해요. 공을 들고 차는 건 괜찮은데 발목 활용이 힘듭니다. 이곳저곳에서 알아보니 ‘한 번 잃어버린 신경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해요. 다리만 괜찮았으면 지금보다 활발한 활동을 했겠죠(웃음). 가능한 선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어요.

아.

깊이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그 일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못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지도자 자격증을 준비하던 시기에 다리를 다치면서 계획이 틀어졌지만, 덕분에 유튜브로 큰 성공을 이루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걱정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들이 많습니다.

1992년 프로에 입단했을 때부터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지금도 몸에 좋은 음식을 보내주는 분이 많죠(웃음). 선수 시절처럼 그분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김병지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지금보다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늘릴 계획이고요. 평생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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