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출신 최근종, 2017년 은퇴 후 요식업으로 제2의 삶 개척 중

-“전북 현대는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매일같이 ‘전쟁’을 벌이는 곳”

-“두 번째 십자인대 파열 후 복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요식업 처음 시작 1년은 쉼 없이 일만 했다”

-“사회에서 은퇴할 즘엔 여유로운 삶 살고 싶어”

전북 현대 출신 요식업 대표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전북 현대 출신 요식업 대표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수원]

오늘(3월 27일)은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해요. 뒷정리를 마치면 1시간이 훌쩍 지나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게 아닌 까닭에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죠(웃음).

경기도 수원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전문점을 운영 중인 최근종(24)의 말이다.

최근종은 한때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 선수를 꿈꿨다. 2014년엔 전북 현대에 입단해 꿈에 한발 다가섰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전북은 지난해 K리그1 3연패를 달성했다. 통산 7번째 리그 우승으로 성남 일화(성남 FC의 전신)와 K리그 최다 우승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9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최근 6시즌 가운데 다섯 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축구계가 2010년대를 전북의 시대로 표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전북은 최근종이 프로에 입문한 2014시즌 리그 정상에 올랐다. 리그 우승에 실패한 2016시즌엔 10년 만에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정상에 올랐다. 전북은 2014시즌부터 매해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최근종은 전북에 몸담은 2014년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 (이)재성이 형과 입단 동기입니다. 형에게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할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형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뛴다‘고 짧고 굵게 답했습니다. 전북은 한국에서 최고로 불리는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려고 죽을힘을 다하는 곳이에요.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전쟁의 연속이었죠.

2014년 전북에 입단한 최근종 “‘대선배’들 앞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다”

2014년 전북 현대에 몸담았던 최근종(사진=전북)
2014년 전북 현대에 몸담았던 최근종(사진=전북)

최근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세대다. 한국이 아시아 최초 4강 진출에 성공하는 걸 보면서 프로축구 선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볼을 찼다. 축구부는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 때와 다른 게 많았지만 꾹 참았다.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과정으로 봤다.

최근종은 학창 시절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중앙 수비수로 축구를 시작해 측면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

광명공고 시절엔 축구 실력이 빠르게 느는 걸 느꼈다. 최근종은 그 시절을 축구가 가장 재밌던 때로 기억한다.

예고 없이 찾아든 부상이 최근종의 성장을 막았다. 최근종은 힘겨운 체력훈련이 재밌게 느껴지던고교 2학년 말 왼쪽 무릎을 다쳤다.

연습경기 중 십자인대가 끊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어요. 무릎을 다시 쓰기 위한 재활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죠. 움직일 때마다 아픈 게 느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후였어요. 오랜 재활 끝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이전처럼 몸이 올라오질 않았습니다. 고교 졸업을 앞둔 시기였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죠. 결국 잦은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최근종은 무릎 수술 이후 1년 유급을 고민했다. 완벽한 몸 상태로 고교 3학년을 보내는 게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최근종은 유급을 선택하지 않았다. 큰 부상을 처음 경험한 까닭에 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동기들이 앞서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로 경기를 뛰었다.

2014년 전북 현대에 몸담은 최근종(사진 맨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최근종 제공)
2014년 전북 현대에 몸담은 최근종(사진 맨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최근종 제공)

최근종은 2014년 K리그 드래프트(2016년부터 폐지)에서 전북의 번외지명을 받았다. 멀티 플레이어 능력과 큰 부상에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프로 입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북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상이 또다시 최근종을 괴롭혔다.

최근종은 대선배들 앞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다기본적인 패스부터 실수가 너무 잦았다고 전북에 몸담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시즌 말미엔 연습경기에서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1년간 온 힘을 다했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팀이 연장계약을 제안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했다.

최근종은 전북과 계약 만료 후 6개월 동안 재활에 집중했다. 이후엔 K3리그 춘천시민축구단에서 재도약을 노렸다. 전북과 비교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최근종은 춘천시민축구단에서 뛴 3년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K3리그에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가 정말 많았어요. K리그(1·2)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은 물론이고 고교 시절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다녀온 선수도 있었죠. 그곳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 것 같아요. 어떻게든 감독님 눈에 들어 주말 경기에 뛰는 게 목표였죠. 언젠가는 관중이 가득한 K리그1에서 뛰고 싶다는 꿈도 잃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십자인대 파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저녁 영업을 준비 중인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저녁 영업을 준비 중인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최근종은 2017년 축구화를 벗었다. 연속으로 찾아든 시련이 최근종의 꿈을 가로막았다.

첫 시련은 2016년 11월에 찾아왔다. 최근종은 ‘제3회 내셔널리그(2020년부터 K3리그로 통합) 공개 테스트’에 참여해 2016시즌 챔피언 강릉시청의 지명을 받았다. 테스트 지원자 301명 가운데 내셔널리그 구단(총 10개 팀)의 지명을 받은 건 최근종을 포함한 6명뿐이었다.

그러나 테스트 통과가 계약을 보장한 건 아니었다. 최근종은 강릉시청 합숙 훈련에 참여해 1주일간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실업팀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 강릉시청에서 도약할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그런데 계약을 맺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쉬웠어요. 춘천시민축구단으로 복귀해 운동하는 데 의욕이 안 생겼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중국 리그 진출을 타진했어요. 참 안 풀린 시기라고 생각되는 게 그때 왼쪽 무릎을 또 다쳤습니다. 생애 두 번째 십자인대 파열이었죠.

최근종은 고민했다. 고교 시절 십자인대 수술 기억이 떠올라 선뜻 선수 연장을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최근종은 은퇴를 결심했다.

평생 축구만 했습니다. 선택지는 두 개였어요. 수술 후 다시 도전하거나 축구를 그만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자를 택했습니다. 용기가 안 났어요. 수술을 고민할 때마다 옛 기억이 떠오르는 데 무서웠습니다. 같은 부위를 두 번이나 다친 까닭에 복귀 성공 가능성도 적었죠. 그렇게 축구화를 벗고 나서 축구 외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인생의 두 번째 꿈? 땀 흘린 만큼 보상받고 싶다”

지난해 12월 사업 확장에 나선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지난해 12월 사업 확장에 나선 최근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최근종은 고민의 시간을 오래 가져가지 않았다. 쉴 때마다 축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까닭이다.

최근종은 요식업을 운영 중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전문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요식업에 곧장 뛰어든 건 아니다. 치킨전문점 운영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 닭을 튀기는 법은 기본이고 식자재 관리, 홍보 방법 등을 배웠다. 축구 이외의 삶에 도전하는 건 처음인 까닭에 메뉴 암기부터 쉽지 않았지만 온 힘을 다했다.

축구를 잊기 위해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사업 준비에 몰입했죠(웃음). 일을 시작하고선 더 바쁘게 지냈습니다.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어요. 요식업을 시작한 1년은 쉰 날이 열흘도 안 될 겁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일만 했죠. 그렇게 요식업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최근종은 치킨전문점 운영 2년 만에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구에 한식 배달전문점을 오픈했다. 사업 초창기 자릴 잡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 오전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에 매달렸다. 주방 일을 시작으로 청소, 홍보, 배달 등 가리는 게 없었다. 코로나19로 배달 주문이 크게 늘면서 쉴 시간은 더 줄었다.

치킨전문점 매출이 20%가량 준 게 사실이에요. 배달 주문은 늘었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이 예전보다 줄었죠. 다행히 새로 시작한 사업이 빠르게 자릴 잡으면서 손실은 막고 있어요(웃음). 생계가 걸린 일인 만큼 온 신경을 쏟아야죠. 이 업에 도전하면서 목표로 잡은 게 있어요. 일한 만큼 보상받고 싶습니다. 사회에서 은퇴하면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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