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선수·코치로 전북과 함께한 김상식, 2021시즌 감독으로 새 출발 알렸다
-“(2003년 12월) 결혼식 이후 처음 명품 정장 샀다”
-“큰 변화보단 우리가 잘하는 축구 유지하면서 경기당 평균 2골 이상 넣고 싶다”
-“김상식 감독님은 공격만 할 줄 알던 내게 수비를 가르쳐준 지도자”
-“감독님이 된 이후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일부러 자릴 비켜준다”
[엠스플뉴스=전주]
“결혼식 이후 처음 명품 정장을 샀다. 아내가 기죽지 말라면서 내 돈으로 사줬다. 그런데 정장만 입으면 되는 게 아니었다. 멋진 정장에 맞는 구두를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전북 현대 김상식(44) 감독은 2003년 12월 결혼했다.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선 게 무려 18년 만이다. 그럴 만했다. 정장을 입을 일이 없었다. 김 감독은 2013년 11월 26일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휴식은 없었다. 곧바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2020시즌까지 운동복을 입고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2월 27일. 김 감독이 정장을 입고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감독 데뷔전이었다. 2021시즌 K리그1 개막전으로 상대는 FC 서울이었다. 전북은 2-0으로 이겼다. 김 감독은 ‘공격 앞으로’를 끊임없이 외쳤다. 구스타보, 김보경, 한교원 등이 선발로 출전한 가운데 김승대, 일류첸코, 모두 바로우 등을 교체 카드로 썼다.
김 감독은 “원톱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 투톱으로 간다. 그것도 안 되면 스리톱으로 가서 2골 이상 넣겠다”고 했다. 매 경기 2골 이상 넣겠단 약속을 2021시즌 첫판부터 지켰다.
김상식 감독은 전북 전설? 국가대표 미드필더 김상식은 성남의 역사부터 썼다
김상식 감독은 2020년 12월 22일 전북 현대 제6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전북에서 선수, 코치를 거쳐 지휘봉을 잡은 최초의 사례다.
김 감독이 전북에서 황금기를 보낸 선수는 아니었다. 김 감독은 1999년 천안 일화 천마(성남 FC의 전신)에서 프로 데뷔를 알렸다. 첫해부터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K리그 36경기에서 뛰며 1골 2도움을 올렸다. 당시 천안 일화는 K리그 최초 3연패를 달성한 최고의 팀이었다. 김 감독이 프로에 데뷔한 그해 천안 일화는 FA컵 우승컵을 추가하기도 했다.
천안 일화는 2000년 성남으로 연고지를 바꿨다. 성남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한 번 K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김 감독은 2001, 2002년 팀 우승에 앞장섰다. 2003년엔 입대로 팀과 함께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태극마크도 달았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축구 대표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두 차례 아시안컵(2000·2007) 등을 경험했다. A매치 통산 기록은 59경기 출전 2골.
그런 김 감독이 전북과 인연을 맺은 건 정점에 내려온 2009년이었다. 당시 성남은 전북과 2: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김 감독과 전북으로 향한 이는 이동국이었다.
김 감독은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적 첫 시즌인 2009년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전북의 K리그 첫 우승이었다. 2011시즌에도 두 번째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앞장섰다. 은퇴 후엔 코치로 전북의 K리그1 최다우승(8회) 달성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2016), FA컵 우승(2020) 등에 이바지했다.
김 감독은 “전북은 나의 팀”이라며 “2021시즌 감독이 아닌 전북이란 팀 일원으로 구단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전북 선수와 코치를 거쳐 감독직에 오른 첫 사례다.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두렵진 않다. 전북엔 K리그1 최고의 선수가 즐비하다. 언제 어디서나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도 있다. 그들이 전북에 우승 DNA를 만들어줬다. 큰 변화보다 우리가 잘하는 축구를 유지하겠다. 특히나 경기당 평균 2골 이상을 넣고 싶다. 화려한 공격 축구를 펼치겠단 의미로 ‘화공’이란 말을 지었다. 팬들에게 재미난 축구를 보여주겠다.” 김 감독의 얘기다.
‘유쾌한’ 김상식 감독, 훈련장에선 누구보다 섬세하다
김상식 감독은 유쾌하다. 코치 시절엔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지도자였다. 하루 2, 3번 사우나를 즐기면서 선수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김 감독은 꼼꼼한 가르침으로 선수들의 발전을 꾀하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2015년 전북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장윤호는 “고교 시절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며 “수비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최강희 감독(현 상하이 선화)님과 김상식 감독님이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최강희 감독님은 프로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줬다. 공격만 할 줄 알던 내게 수비가 필요한 이유를 이해시켜줬다. 김상식 감독님은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다. 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수비력을 세세하게 가르쳐줬다. 공격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막는 법,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 볼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법 등을 배웠다. 두 분이 없었다면 장윤호란 선수는 프로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 같다. 지금도 늘 감사하다.”
2021시즌 서울 이랜드 FC로 임대를 떠난 장윤호의 얘기다. 장윤호는 전북에서 수비력을 갖춘 미드필더로 성장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유쾌함과 섬세함을 두루 갖춘 김 감독. 그의 최대 강점은 전북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사실이다. 전북 생활 12년 차다. 선수, 코치를 거치면서 현재의 전북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2020시즌까지 코치님이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코치님이었을 땐 선수들과 가깝게 어울렸는데 감독님이 된 이후 거리가 생겼다. 감독님은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일부러 자릴 비켜준다. 감독님 체재에서 첫 주장을 맡게 됐다. 2020시즌 더블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전북 중앙 수비수 홍정호의 말이다.
전북은 2021시즌 기록 경신에 나선다. K리그 최다우승 횟수를 9번으로 늘리고자 한다. K리그 최초 5연패에도 도전한다. 전북은 2020시즌 K리그 최초 4연패 달성에 성공한 바 있다.
2009년 전북으로 이적한 뒤 처음 정장을 차려입고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출근한 김 감독. 출발이 좋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