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U-23 축구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 선임

-“황선홍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이겨내는 선수였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른 미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대표팀 감독은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

-“황선홍은 태극마크의 가치 누구보다 잘 아는 지도자”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황선홍(사진 맨 오른쪽)(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황선홍(사진 맨 오른쪽)(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은 포기를 모른다. 황 감독은 선수 시절 전방 십자인대가 두 번이나 파열됐다. 1991년 무작정 독일 무대에 도전해 적응해가던 때였다. 1992년 8월 황 감독은 십자인대가 끊어져 독일 도전을 허무하게 마무리했다.

1998년 6월 4일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또 한 번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치명적이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개막은 그해 6월 10일이었다. 세 번째 월드컵 출전이 사실상 좌절됐다.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컸던 29살 때의 일이다.

수많은 선수가 십자인대 파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재활에 성공한다고 해도 과거 기량을 회복하지 못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황 감독은 달랐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황 감독은 세 차례(1990·1994·2002) 월드컵에 출전해 한국의 전방을 책임졌다. 특히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한국의 4강 진출에 앞장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옥 훈련을 꿋꿋이 이겨내 일군 성과였다.

황 감독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황 감독보다 많은 골을 기록한 건 차범근(136경기 58골)이 유일하다. 1988년 황선홍을 처음 A대표팀에 발탁한 대한축구협회(KFA) 이회택 전 부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황선홍은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더한 선수였다. 한양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을 때 황선홍을 처음 봤다. 황선홍이 용문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다. 용문고 감독에게 ‘쟤 좀 스카우트하자’고 했더니 ‘이제 1학년’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황선홍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라운드에서 늘 눈에 띄었다. 1988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바로 뽑았다. 주변에서 연령별 대표 경력 없는 선수를 왜 뽑느냐고 난리가 났다. 황선홍은 땀과 기량으로 태극마크 달 자격을 증명했다.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부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이 역시 이겨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이겨내는 게 황선홍이다.”

황 감독은 2003년 2월 9일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휴식은 없었다.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꿈은 명확했다.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황선홍 감독, 성공과 실패를 두루 경험하며 더 단단해졌다

2002년 11월 20일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렀던 황선홍이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한축구협회는 9월 15일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신임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축구협회)
2002년 11월 20일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렀던 황선홍이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한축구협회는 9월 15일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신임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축구협회)

황선홍 감독은 스타 선수였다. 하지만, 황 감독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황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진 전남 1군 코치로 경험을 쌓았다.

감독 생활을 시작한 건 2008년이었다. 황 감독은 2007시즌(승강제 이전) K리그 14개 구단 가운데 13위를 기록한 부산 아이파크 지휘봉을 잡았다. 황 감독은 2010시즌 FA컵 준우승을 이끌며 지도자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성과를 냈다. 2011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은 뒤부터다. 황 감독은 2012시즌 포항의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듬해엔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더블(리그+FA컵 우승)을 일궜다. 1996년 FA컵을 시작한 이후 최초 더블이었다.

2013시즌은 데얀, 몰리나(당시 FC 서울), 레오나르도(전북 현대) 등 외국인 선수가 K리그를 주름잡던 시절이다. 포항엔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공격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 감독은 고무열, 김승대, 이명주 등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를 앞세워 큰 성과를 냈다.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더블을 일군 건 황 감독이 유일하다.

2013시즌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1 우승을 이끈 황선홍 감독(사진=포항 스틸러스)
2013시즌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1 우승을 이끈 황선홍 감독(사진=포항 스틸러스)

황 감독은 2016시즌 FC 서울의 K리그1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서울 지휘봉을 잡고 K리그1 최종전에서 일군 역전 우승이었다.

그해 서울의 최종전 상대는 전북 현대였다. 2016시즌 K리그1 최종전 이전까지 서울은 전북과의 리그 3차례 대결에서 모두 졌다. 201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결승에선 1승 1패를 기록했다. 서울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CL 준결승 1차전에서 전북에 1-4로 크게 졌다. 2차전(2-1)에서 이겼지만 1차전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다.

서울은 전북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하며 K리그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서울과 전북의 승점 차는 3점이었다.

황 감독이 쭉쭉 나아갔던 것만은 아니다. 시련도 있었다. 서울은 2017시즌 K리그1 5위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17시즌까지 확보해온 ACL 출전권을 놓쳤다. 2017시즌 ACL에선 처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듬해 4월 30일엔 지휘봉을 내려놨다. 2018시즌 K리그1 10라운드까지 2승 4무 4패(승점 10점)를 기록하며 9위에 머문 성적이 원인이었다.

황 감독은 2020년 K리그 최초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한 대전하나시티즌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대전과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황 감독은 2020년 9월 8일 대전과 이별했다. 당시 대전은 K리그2 3위였다. 1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승점 차는 5점이었다. 특히나 9월 13일엔 제주와의 세 번째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황 감독의 대전은 제주와의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바 있었다.

황 감독이 서울, 대전에서 잇달아 물러나자 여러 말이 나돌았다. 종합하면 이랬다. 황 감독은 자기 고집이 세고 소통 능력에 문제가 있으며 자기주장이 강한 국가대표 출신 선수, 외국인 선수를 하나로 묶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황 감독은 9월 16일 U-23 축구 대표팀 취임 비대면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누구든지 실패를 경험한다. 중요한 건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른 미래를 만드느냐다. 많은 분이 소통 능력 부재에 관해 이야기했다. U-23 대표팀에선 어린 선수와 소통해야 한다. 단점을 수용하고 개선하겠다. A대표팀은 아니지만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20여 년 걸렸다. 많은 경험을 했다. 그 안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다. 이 경험이 U-23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황 감독은 실패를 외면하지 않는다. 축구계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2020시즌 대전에서 황 감독의 지도를 받은 한 선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 감독님이 대전 지휘봉을 잡았을 땐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알고 있던 감독님과 경험한 감독님은 확실히 달랐다.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려고 했다. 무언가 바꾸려고 하는 게 보였다. 속으로 ‘그래도 황선홍인데’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감독님에겐 죄송한 마음뿐이다. 우리가 감독님이 배려해준 만큼 더 땀 흘렸어야 했다.”

‘황새’ 황선홍, 다시 날아오를 준비 마쳤다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한국 U-23 축구 대표팀 황선홍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황선홍 감독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2003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황 감독이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 경기에 나선 건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2-3)였다.

황 감독의 임기가 2024 파리 올림픽까지 보장된 건 아니다. KFA는 2022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친 뒤 중간평가를 거쳐 황 감독과의 계약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황 감독은 “대표팀 감독에게 계약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대표팀은 늘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K리그(1·2)에 기량이 우수하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가 많다. 코치진, 선수들과 힘을 합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친 뒤 생각하겠다.” 황 감독의 말이다.

황 감독은 2020년 9월 8일 대전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에도 축구를 멀리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단점을 개선하고자 힘썼다. 국내·외 축구도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2021년 1월엔 제주도에서 U-23 축구 대표팀과 K리그 구단들을 관찰했다. 대학 축구를 살펴보며 숨겨진 재능을 찾기도 했다.

김포 FC 고정운 감독은 “(황)선홍이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유럽에서 선진 축구를 공부했다”“2016년 FC 서울 감독 제안도 유럽 연수 중 받아 급히 귀국했었다”고 말했다.

“선홍이는 축구밖에 모른다. 더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고자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은 지도자다. 특히나 태극마크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K리그에선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데 특출 난 능력을 보여줬다. 선홍이가 한국 축구 발전에 또 한 번 이바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황 감독과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 감독의 얘기다.

감독 선임을 마친 U-23 대표팀은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2022 AFC U-23 아시안컵 예선을 준비한다. U-23 대표팀은 개최국 싱가포르, 필리핀, 동티모르와 한 조에 속해있다. 무난한 예선 통과가 예상된다. AFC U-23 아시안컵 본선은 2022년 6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치러진다.

황 감독은 선수 시절 부상을 비롯한 숱한 시련을 이겨내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도자로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환희의 순간을 지나 시련이 닥쳤지만 주저앉지 않는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단점을 개선하고자 힘쓴다. 뚜렷한 소신과 축구 철학은 경험이 쌓이며 더 단단해졌다.

‘황새’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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