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리그 외국인 투수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코치로, 이제는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올라선 미키 캘러웨이. 그를 현대 유니콘스 시절 팀원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메이저리그 감독이 된 미키 캘러웨이. 그도 한 때 KBO리그 외국인 선수였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 감독이 된 미키 캘러웨이. 그도 한 때 KBO리그 외국인 선수였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12승 3패 승률 8할.

2018 메이저리그 개막 첫 15경기에서 뉴욕 메츠가 거두고 있는 성적이다. 4월 18일 현재 내셔널리그 전체 승률 1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보스턴 레드삭스, LA 에인절스에 이은 3위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잘해야 중위권 전력이란 평가를 받던 메츠가 시즌 초반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KBO리그 외국인 선수 출신의 초보 감독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현대 유니콘스 외국인 에이스에서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코치를 거쳐 이제는 빅리그 감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캘러웨이. 그를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이 기획은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염경엽 SK 단장 “캘러웨이가 먼저 연락해 왔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캘러웨이의 모습(사진=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시절 캘러웨이의 모습(사진=현대 유니콘스)

미키 캘러웨이의 한국행은 당시 현대 유니콘스 외국인 스카우트를 담당한 염경엽 과장(현 SK 단장)과 엄홍 대리(현 두산 부장)이 주도했다. 두 사람은 2003년 외국인 선수 영입 준비차 미국을 찾았다가, LA 에인절스 산하 트리플 A팀인 ‘솔트레이크시티 비즈’ 소속으로 마운드에 선 캘러웨이를 처음 보게 됐다.

“당시엔 캘러웨이가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을 때였다. 서른에 가까운 나이라 1, 2년 정도 지나면 한국행을 고민할 시기가 올 거라고 봤다. 그래서 캘리에게 한구야구 특징과 외국인 선수가 지내는 숙소에 대해 설명을 해 뒀다. ’혹시 나중에 40인 로스터에서 빠지는 날이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염 단장의 기억이다.

당시 현대 외국인 스카우트 팀은 캘러웨이 소속팀과 같은 숙소를 사용했다. 염 단장은 “숙소가 같다 보니 오다가다 얘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얘기해 보니 생각도 좋고 괜찮은 선수인 것 같더라”며 “그래서 우리가 먼저 연락처를 주고 온 것”이라 했다.

현대 스카우트 팀이 뿌린 씨앗은 약 2년 뒤 싹을 틔웠다. 40인 로스터에서 빠진 캘러웨이는 한국 구단의 제안을 떠올렸고, 현대 유니콘스에 전화를 걸었다. “로스터에서 빠지자 마자 바로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먼저 동양야구를 경험해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래서 계약이 이뤄졌다.” 염 단장의 말이다.

여행과 사냥을 즐기는 활동적이고 모험심 강한 남자. 캘러웨이의 KBO리그 진출은 그렇게 성사됐다.

생태찌개 4인분 뚝딱, “선수단 메뉴도 캘러웨이 때문에 바꿨다”

캘러웨이가 보여주는 동네 아저씨 포스(사진=현대 유니콘스)
캘러웨이가 보여주는 동네 아저씨 포스(사진=현대 유니콘스)

캘러웨이 관련 국내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동태탕’,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태찌개다. 미국 태생 외국인 선수가 얼큰한 생태찌개를 공기밥과 함께 뚝딱 해치우던 모습은 국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캘러웨이는 ‘적응력 뛰어난 외국인 선수’의 대명사로 거론된다.

현대 시절 동료들도 캘러웨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생태찌개’부터 떠올렸다. 송지만 넥센 코치는 “캘러웨이요?”하고 반문한 뒤 “생태찌개 좋아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넥센 관계자는 “캘러웨이가 생태찌개를 워낙 좋아했다. 원정 경기를 가면 선수단 식단을 케이터링으로 제공하는데, 캘러웨이 때문에 사흘에 하루는 생태찌개를 반드시 메뉴에 포함하곤 했다”고 밝혔다.

염경엽 단장도 “캘러웨이는 생태찌개 왕이었다”며 “4인분을 혼자서 해치우곤 했다. 어쩌다 구장 근처에 생태찌개를 먹으러 가면, 꼭 캘러웨이 가족과 마주치곤 했다. 그 정도로 생태찌개를 좋아했던 선수”라고 떠올렸다.

생태찌개만이 아니다. 캘러웨이는 한식 초보자용 코스인 갈비, 불고기, 비빔밥부터 김치찌개, 된장찌개, 대구탕 등 각종 찌개와 탕류까지 섭렵했다. 휴일엔 서울 이태원을 자주 찾았고, 아예 자신의 한국 이름을 ‘이태원’으로 불러달라고 한 적도 있다.

넥센 관계자는 “한 여성 팬이 캘러웨이 부부에게 6개월 된 딸에게 입힐 아동용 한복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때 캘러웨이가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송지만 코치는 “캘러웨이는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선수였다”고 했다. 강병식 넥센 타격코치도 “한국에 빨리 적응하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밝혔다. 김수경 NC 투수코치도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냈다”고 했다.

김기영 넥센 홍보팀장은 “캘러웨이가 뛸 당시는 한국 야구장 시설이나 여건이 지금처럼 잘 갖춰지지 않았다. 처음엔 적응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캘러웨이는 성공적으로 적응한 편이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할 줄 아는 선수였다”고 말했다.

너클 커브, 커터... 8색조 투구 펼친 캘러웨이

캘러웨이는 현대 유니콘스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사진=현대 유니콘스)
캘러웨이는 현대 유니콘스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사진=현대 유니콘스)

한국과 한국 야구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캘러웨이는 2년 반 동안 현대 유니콘스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5시즌 32경기에 등판해 16승 9패 평균자책 3.97을 기록했다. 팀 내 투수 최다인 197.1이닝을 던졌고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도 팀 내 1위인 3.94승을 올렸다.

2년차엔 더 위력적인 투수로 올라섰다. 27경기에 등판해 14승 7패 2.87의 평균자책. 166.1이닝을 던졌고 WAR 4.56으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재계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전에 강했다. 삼성전 10경기에서 8승 무패 1.75의 평균자책을 남겼다. 3시즌 통산 성적 32승 22패 3.56의 평균자책. 올스타전에도 두 차례나 출전했다.

캘러웨이를 현대 시절 동료들은 하나같이 ‘영리한 투수였다’고 기억했다. 강병식 코치는 “영리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선수였다”고 했고 송지만 코치도 “스마트한 선수였다. 자기만의 확고한 루틴도 있고, 피칭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다. 프로다운 선수였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한국야구와 타자들의 성향에 맞춰 변화를 꾀할 줄 알았다. 강병식 코치는 “외국인 투수 중에 보통 자기가 원래 하던 스타일만 고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캘러웨이는 한국야구에 빠르게 적응했고 변화를 시도했다”고 했다.

넥센 관계자도 “한국타자들과 처음 상대할 때는 조금 곤혹스러워 하는 기색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타자들에게 적응했고, 계속해서 자기가 가진 것에 더해 변화를 주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굉장히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선수였다”고 했다.

주무기였던 너클 커브는 캘러웨이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미국 시절만 해도 캘러웨이는 너클 커브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구종이다.

넥센 관계자는 “어릴 적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면서 너클볼, 너클커브를 장난처럼 던지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익힌 공을 한국에 와선 실전 경기에서 구사했다. 변화구를 던지는 손의 감각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 마일영 코치가 현역 시절 너클볼을 던지게 된 데도 캘러웨이의 영향이 컸다고 알려졌다.

캘러웨이는 압도적인 강속구를 던지는 파워 피처는 아니었다. 140km/h 초중반대 패스트볼에 다양한 변화구를 섞어 타자의 배트를 끌어냈다. 삼진을 잡으려 하기보단 스트라이크 위주의 공격적인 투구로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수비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투수였다고 볼 수 있다.

강병식 코치는 “마운드에 올라가면, 팀원 입장에선 믿음이 가는 투수였다. 더그아웃에 있을 때도 믿고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송지만 코치도 “캘러웨이가 던지는 날은 야수들이 편했다. 빠르게 빠르게 승부하는 스타일이고, 제구가 워낙 좋았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투수코치로서 캘러웨이는 구속보다 무브먼트와 제구를 중요시하고, 초구 스트라이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코치로 알려졌다. 이런 캘러웨이의 코칭 철학은 한국 무대에서 보여준 그의 투구 스타일과 다르지 않다. 염경엽 단장은 “한국 무대에서 뛴 경험이 캘러웨이 야구에 어느 정도는 녹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밝혔다.

물론 상대 타자 입장에선 캘러웨이만큼 까다롭고 신경에 거슬리는 투수도 없었다. 심재학 넥센 수석코치도 “솔직히 캘러웨이에 대한 기억이 좋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당시 KIA 소속이던 심 코치는 “캘러웨이가 던진 몸쪽 커터를 치다가, 파울 타구에 무릎을 맞았다. 한 달 이상 무릎 통증으로 고생했다”고 밝혔다.

무브먼트가 큰 캘러웨이의 공을 보고 상대팀에선 ‘스핏볼을 던진다’ ‘공에 흠집을 낸다’는 의심을 할 정도였다. 넥센 관계자는 “한번은 상대팀 항의로 주심이 캘러웨이의 글러브 속과 유니폼을 검사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캘러웨이가 공략하기 힘든 투수였다는 의미도 된다.

“캘러웨이, 빅리그 감독 되더니 얼굴 보기 어렵네!”

캘러웨이와 래리 서튼. 둘은 현재 미 프로야구에서 지도자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사진=현대 유니콘스)
캘러웨이와 래리 서튼. 둘은 현재 미 프로야구에서 지도자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사진=현대 유니콘스)

사람의 앞 일은 아무도 모른다. 생태찌개를 좋아하고 너클 커브를 잘 던졌던 외국인 투수가 지금처럼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로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현대 시절 동료들은 하나같이 “메이저리그 감독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역 시절 캘러웨이의 기억에서 지도자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송지만 코치는 “스마트하고 프로다운 선수였다. 캘러웨이도 그렇고, 래리 서튼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캘러웨이는 메이저리그 감독이 됐고, 서튼 역시 마이너리그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염경엽 단장은 “스캇 쿨바도 코치 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 출신 선수들이 미국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염 단장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성실한 선수였다. 상대에 대한 분석도 열심히 했다. 그런 기본에 한국 야구 경험과 코칭스태프의 영향이 어느 정도 더해져, 지금의 캘러웨이 야구를 형성했다고 본다. 다양한 경험과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야구 스타일을 형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김수경 NC 코치는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선수였다. 선수 때부터 차근차근 지도자로서 미래를 잘 준비했기 때문에, 지금 빅리그 감독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미래를 보고 준비한 것”이라 말했다.

넥센 관계자는 “순간순간 돌발 상황이나 새로운 조건에 맞춰 변화를 추구하는 대응력이 뛰어났다. 그런 모습이 지금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대처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현대맨들은 빅리그 감독이 된 옛 동료의 캘러웨이의 성공을 기원했다. 염 단장은 “요새는 미국에 가도 캘러웨이 얼굴 보기가 쉽지 않더라”고 농담을 건넨 뒤 “우리 야구 출신들이 지도자로 많이 진출하는 건, 그만큼 우리 야구의 흔적이 많이 남는다는 것”이라며 ‘감독’ 캘러웨이가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지만 코치도 “캘러웨이가 감독 됐단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며 이렇게 당부했다.

“얼굴 본 지가 꽤 오래 됐는데, 한 번 보고 싶네요. 혹시라도 메이저리그 취재를 가게 되면, 꼭 현대 동료들의 안부를 전해 주세요. 우리가 보고 싶어 한다고.”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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