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록 이미 대한체육회에 전달” 주장

-회의록 입수하니 한 줄 요약이 회의내용 전부, 참석자 토론 내용 전무

-선동열 “통계 활용했다.” 주장. 회의자료와 회의록은 KBO 기록실 ‘복붙’ 수준

-부실한 회의자료, 회의내용 없는 회의록. 야구인들 "선동열 감독과 KBO 운영팀은 야구계와 야구팬을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건가"

10월 4일 기자회견에서 고갤 숙이는 선동열 대표팀 감독. 기자회견을 하는 타이밍도 너무 늦었지만, 의혹을 없애기보단 오히려 더 크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0월 4일 기자회견에서 고갤 숙이는 선동열 대표팀 감독. 기자회견을 하는 타이밍도 너무 늦었지만, 의혹을 없애기보단 오히려 더 크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서 그 어떠한 청탁도 불법행위도 전혀 없었습니다. 대표선수 선발 과정은 공정했습니다. 코칭스태프와 치열한 토론을 거쳤습니다. 통계, 출장기록, 포지션, 체력 등 여러 지표를 살폈습니다.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감독인 제가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당시 코칭스태프 회의록은 KBO 운영팀이 작성해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대표팀 선발은 대표팀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이뤄졌다. 그간 야구계는 "이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밝혀진다면 대표팀 선수 선발 의혹도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며 "왜 KBO가 회의록 공개를 미루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을 체크했는지 선 감독은 10월 4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코칭스태프 회의록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즉각 야구계에선 "회의록이 있었으면 진작 공개하지"하는 아쉬움이 새어나왔다.

KBO 박근찬 운영팀장도 회의록의 존재를 인정했다. 박 팀장은 회의록은 작성해서 대한체육회에 이미 제출했다. 문체부에도 자료를 보내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박 팀장은 "녹취록은 없다. 녹취록은 관례에 따라 작성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회의록도 일부만 공개하고, "더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버텼다.

회의록은 있지만, 녹취록은 없다는 주장. 일반적으로 회의록은 회의 내용을 받아 적은 것이다. 녹취록은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말을 녹음해 글로 푼 것이다. 회의 내용을 글로 남긴다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KBO 박 팀장은 이를 분리해 설명했다. 그것도 회의록의 일부만 언론에 공개했다.

그렇다면 당시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록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선 감독의 말대로 ‘코칭스태프와 치열한 토론’이 이뤄진 흔적이 회의록에 고스란히 나와 있을까. 엠스플뉴스가 대표팀 예비엔트리, 최종엔트리, 엔트리 교체 선발 당시 KBO가 작성한 6종의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단독 입수했다.

KBO ‘회의록’엔 회의 내용이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대표팀 예비 엔트리 회의록.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정보는 '한 줄'이 전부다(사진=엠스플뉴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대표팀 예비 엔트리 회의록.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정보는 '한 줄'이 전부다(사진=엠스플뉴스)

회의록의 사전적 의미는 회의의 진행 과정이나 내용, 결과 따위를 적은 기록이다. 중견기업의 부장급 인사는 회의록 작성 방법에 대해 회의에서 나온 안건과 발의자의 이름, 관련 정보를 가급적 전부 기록한다. 누가 어떤 발언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록에 남기는 게 중요하다. 회의에서 언급된 자료가 있다면 따로 요청해 복사본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KBO가 '작성해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는 아시아경기대회 선수 선발 회의록도 이런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을까. 반대였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록엔 회의록의 기본 구성요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먼저 '예비 명단 선발 회의록'을 살펴보면 회의 개요난에 회의 일시와 장소, 참석자를 나열하고 국가대표팀 예비 명단 제출 일정에 따라 총 109명 선발, 투수 52명, 포수 7명, 1루수 6명, 2루수 8명, 3루수 9명, 유격수 8명, 외야수 19명등의 기본적인 정보만 나열했을 뿐이다.

회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은 코칭스태프 전원이 참석하여 2018 KBO 리그 정규시즌 개막 후 성적 및 과거 성적, 국가대표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엔트리 선발 가능성이 있는 예비 선수 명단을 구성이 전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 선발 회의록. 일시 장소와 참석자, 한 줄 요약이 내용의 전부다(사진=엠스플뉴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 선발 회의록. 일시 장소와 참석자, 한 줄 요약이 내용의 전부다(사진=엠스플뉴스)

'최종 엔트리 선발 회의록'도 다르지 않다. 역시 회의 일시와 장소, 참석자를 나열한 뒤 4.9. (월) 예비 명단 선발 이후 2개월간 감독과 경기 현장에서 근무 중인 현역 코치(이강철, 유지현, 진갑용) 해설위원(이종범, 정민철, 김재현) 및 트레이너를 통해 각 구단 선수 몸 상태 확인’, ‘회의 전일까지의 KBO 리그 정규시즌 성적, 과거 국제대회 성적 및 경험 등을 바탕으로 평가하여 24인의 최종 엔트리를 선발함으로만 적었을 뿐이다.

3시간에 걸쳐 진행된 마라톤 회의에서 얼마만큼 치열한 토론이 오갔는지, 특정한 선수를 뽑자고(뽑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도 이 회의록에선 찾을 수 없었다. 선수별 평가 근거란에 ‘코칭스태프 코멘트’가 나와 있긴 하지만 ‘한 줄 평’ 수준이라 이날 논의 내용을 유추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회의록만 봐선 당시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선수 선발 자료, 스탯은 없고 기초적인 기록만 ‘복사하기-붙여놓기’ 했다.

회의록에 실린 두산 베어스 양의지 대표팀 선발 근거. 초보적인 기록 몇 가지와 복사-붙여놓기 수준의 통산기록이 선발 근거의 전부다. 더 코미디인 건 양의지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평가다. '4할 타율에 가까운 좋은 경기력' '리그 정상급 포수'. 이런 식의 두 줄 평가는 야구에 처음 입문한 초교생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사진=엠스플뉴스)
회의록에 실린 두산 베어스 양의지 대표팀 선발 근거. 초보적인 기록 몇 가지와 복사-붙여놓기 수준의 통산기록이 선발 근거의 전부다. 더 코미디인 건 양의지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평가다. '4할 타율에 가까운 좋은 경기력' '리그 정상급 포수'. 이런 식의 두 줄 평가는 야구에 처음 입문한 초교생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사진=엠스플뉴스)

선동열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에) 통계를 살폈다고 강조했다. 대표팀 선발을 앞두고는 역대 대표팀 가운데 통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란 공언도 했다. 4일 기자회견에서도 선 감독은 “통계, 출전기록, 포지션, 체력 등 여러 지표를 살폈다”며 “통계와 스탯 외 다른 부분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언뜻 들으면 대표팀 선발 당시 상세한 세이버메트릭스 자료를 활용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발이 이뤄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아시아경기대회 선수 선발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살펴보면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KBO가 작성한 회의 자료. 승리 10걸, 평균자책 10걸 등 초보적인 기록을 KBO 기록실에서 복사-붙여넣기해 만들었다(사진=엠스플뉴스)
KBO가 작성한 회의 자료. 승리 10걸, 평균자책 10걸 등 초보적인 기록을 KBO 기록실에서 복사-붙여넣기해 만들었다(사진=엠스플뉴스)

실제로 당시 선수 회의 때 사용한 각종 통계와 기록은 KBO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기록을 '단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수준이었다. 투수는 승리, 평균자책, 승률, 세이브, 홀드, 탈삼진 10걸을 나열한 뒤 10개 구단별 투수들의 기록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했다.

타자도 마찬가지다. 타율 30걸,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안타 10걸을 나열한 뒤 10개 구단별 개인타자 성적을 복사-붙여넣기 한 게 기록의 전부였다.

LG 오지환의 선수 선발 근거 자료와 코칭스태프 코멘트. 특이한 건 오지환에 대한 코칭스태프 코멘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소 분량이 많고, '왜 오지환을 뽑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길다는 점이다. 다른 선수들에 대한 코멘트는 대부분 '우수한 타격, 투구 성적' '뛰어난 성적' 등 극히 일반적인 평가들뿐이다(사진=엠스플뉴스)
LG 오지환의 선수 선발 근거 자료와 코칭스태프 코멘트. 특이한 건 오지환에 대한 코칭스태프 코멘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소 분량이 많고, '왜 오지환을 뽑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길다는 점이다. 다른 선수들에 대한 코멘트는 대부분 '우수한 타격, 투구 성적' '뛰어난 성적' 등 극히 일반적인 평가들뿐이다(사진=엠스플뉴스)

선수별 평가 근거가 담긴 회의록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수별 성적란에 6월 10일 기준 경기 수, 승패, 평균자책, 타율, 홈런, 타점 같은 기본 기록을 나열한 뒤 KBO 홈페이지의 ‘통산 기록’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기 했다.

선수 능력을 세밀하게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스탯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가령 투수라면 다승이나 평균자책보단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이나 헛스윙 비율, 스트라이크 비율, 좌/우타자 스플릿 성적, 그라운드볼 비율 같은 지표가 능력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회의자료와 회의록에선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승은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록이다. 그러나 당시 대표 선수 선발 회의록을 살펴보면 다승을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사진=엠스플뉴스)
다승은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록이다. 그러나 당시 대표 선수 선발 회의록을 살펴보면 다승을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사진=엠스플뉴스)

선 감독이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 언급한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도 회의자료와 회의록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선 감독은 심창민(삼성)이 아닌 박치국(두산)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며 박치국의 WAR이 더 좋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통계사이트 '스탯티즈' 기준으로 심창민의 WAR은 1.38승, 박치국은 1.09승으로 심창민의 WAR이 더 좋았다. KBO 공식 애플리케이션 기준으로 봐도 심창민의 WAR은 1.15승, 박치국은 1.04승으로 심창민이 조금 더 나았다. 대체 어떤 자료를 근거로 WAR을 참고했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4일 기자회견에서 KBO가 공개한 오지환 관련 회의록 발췌 부분을 확인한 한 구단 관계자는 이건 회의록이 아니라 야구입문자가 취미로 만든 스카우팅 리포트 수준이라며 실소했다. 일반 야구팬이 통계 사이트를 뒤져서 만들어도 이보다는 더 잘 만들 겁니다. 이런 자료를 뽑아놓고 통계를 살폈다? 선 감독과 KBO 운영팀장 모두 야구팬을 여전히 정말 개돼지로 아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추어 선수, 처음부터 안 뽑을 계획이었나

회의자료에 담긴 대학 선수 성적. 단순 기록만 복사-붙여넣기 했고 선수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전혀 담겨 있지 않다(사진=엠스플뉴스)
회의자료에 담긴 대학 선수 성적. 단순 기록만 복사-붙여넣기 했고 선수 평가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전혀 담겨 있지 않다(사진=엠스플뉴스)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자료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회의자료 맨 마지막에는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대학선수 4명의 기록이 실려 있었다. 역시 다승, 평균자책 등 기본적인 기록을 나열한 수준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홈페이지에서 복사-붙여넣기 한 자료를 회의자료 맨 마지막에 실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아마추어 야구 경기까지 일일이 챙겨봤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대학 선수 관련 코칭스태프에게 주어진 자료는 회의자료에 나온 단순 기록이 전부였다.

프로 스카우트들의 전문적인 평가나 대학 감독들의 평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선수의 신체조건조차 자료엔 나와 있지 않았다. 애초부터 아마추어 선수를 선발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선동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수차례에 걸쳐 “선발 과정은 공정했다” “잘 뽑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을 KBO 운영팀장은 "대한체육회, 문체부에 회의록을 보냈다"는 말로 선 감독을 엄호사격했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 선발 당시 작성된 회의 자료와 회의록을 살펴보면 오히려 의혹이 더 커질 뿐이다. 당시 회의에서 어떤 ‘치열한 토론’이 오갔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는 까닭이다. 부실한 회의 자료, 제대로 된 회의록조차 만들지 않은 회의에서 지금의 전국민적 논란과 분노가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선 감독이 국감 증언대에 서야할 이유만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취재팀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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