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노경은, 미국 샌디에이고 트라이아웃 도전 마무리
-“입단 실패 아쉬움? ‘트리플A’ 평가만으로도 만족한다.”
-“후배들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국 무대에 도전하길”
-“부산에 내려가 계속 운동할 계획, 미래는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

투수 노경은이 샌디에이고 트라이아웃을 치르고 최근 한국으로 귀국했다. 노경은은 애리조나에서 트라이아웃을 도와준 지인 마이크(오른쪽) 씨에게 큰 감사함을 전했다(사진=노경은)
투수 노경은이 샌디에이고 트라이아웃을 치르고 최근 한국으로 귀국했다. 노경은은 애리조나에서 트라이아웃을 도와준 지인 마이크(오른쪽) 씨에게 큰 감사함을 전했다(사진=노경은)

[엠스플뉴스]

누구는 손뼉을 쳤고, 누구는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도전은 도전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던 투수 노경은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비록 메이저리그 팀 입단은 무산됐지만, 노경은은 후련한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혹자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FA(자유계약선수)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노경은은 2월 중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기회는 극적으로 찾아왔다. 노경은은 현지 관계자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박찬호 고문의 도움으로 샌디에이고 트라이아웃에 도전했다.

트라이아웃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노경은은 두 차례 트라이아웃 등판에서 3이닝 1피안타 4탈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모든 힘을 쏟아부은 뒤 결과를 기다렸지만, 샌디에이고는 노경은에게 불합격을 통보했다. ‘트리플A’ 수준의 실력은 되지만, 메이저리그 전력에 오를 수 있는 ‘AAAA’ 수준은 안 된단 게 샌디에이고의 판단이었다.

그래도 노경은은 좌절보단 만족을 먼저 말했다. 노경은을 잘 아는 한 관계자도 “미국에서 노경은이 그저 고생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경은’이라는 사람에겐 야구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제 끝이 어딘지 모르는 기다림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엠스플뉴스는 한국으로 돌아온 노경은에게 미국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들어봤다.

“트라이아웃 도전, 긴장보다 설렘이 더 컸다.”

노경은 미국에서 두 차례 트라이아웃 등판을 소화하며 무실점 호투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트리플A 수준이라는 평가와 함께 불합격 통보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노경은 미국에서 두 차례 트라이아웃 등판을 소화하며 무실점 호투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트리플A 수준이라는 평가와 함께 불합격 통보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미국에서의 도전이 마무리됐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렀다. 후회는 없다. 좋은 경험이었다. 트라이아웃뿐만 아니라 미국 야구 자체를 볼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샌디에이고 트라이아웃 참가까지 많은 지인의 도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나를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특히 애리조나에서 나를 도와줬던 마이크 형에게 정말 감사하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애리조나에서 뒷바라지를 다 해주셨다. 이 은혜는 평생 못 잊을 거다. 트라이아웃 때 (홍)성흔이 형(샌디에이고 루키 팀 코치)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

첫 번째 트라이아웃 등판 때 긴장은 전혀 안 됐나.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한 외국인 선수가 나에게 ‘긴장 안 되는가’라고 물어보더라. 나는 그냥 웃었다. 프로 17년 차 투수라고 하니까 놀라더라. 내 얼굴을 동안으로 봤나 보다(웃음). 나이를 말해주니까 그 선수가 더 놀랐다. 큰 경기에서 공을 던져본 경험이 있어서 안 떨리고 그저 설렌다고 답했다. 진짜로 마운드에 올라가니 긴장이 하나도 안 됐다.

긴장을 안 한 만큼 첫 번째 등판 결과(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가 괜찮았다.

마이너리그 타자들의 단점이 금방 보였다. 상대 타자들이 속구 타이밍 위주로 방망이가 나오니까 변화구 승부가 잘 통하더라. 92~93마일(148km/h~149km/h) 속구까진 필요 없고, 90마일(145km/h) 정도 속구와 변화구로 타자들을 가지고 노는 공만 보여주면 됐었다.

변화구 위주의 투구가 확실히 통했다. 너클볼까지 구사한 두 번째 등판 결과(2이닝 3탈삼진 1볼넷 무실점)도 완벽했다.

두 번째 등판 때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오히려 한 번 던지고 나니까 마운드 적응도 됐다. 상대 타자 유형을 금방 파악했기에 오히려 더 편하게 대결했다. 트리플A 타자들의 변화구 대처 능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변화구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 듯싶다.

속구 구위는 변화구를 위해 그저 보여주는 것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속구로만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긴 힘들지 않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위닝샷은 대부분 변화구다. (류)현진이도 제구력과 변화구가 남달랐기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게 아닌가. (오)승환이 형도 얘기해준 게 있다.

어떤 얘기인가.

생각만큼 미국 타자들이 무섭지 않단 얘기였다. 변화구를 적절히 사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승환이 형도 변화구 구종 개발에 신경 쓰는 거다. 속구 구위만 좋다고 막 부딪히는 건 무의미한 일 아닐까.

“‘트리플A’ 수준 평가를 들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노경은은 트라이아웃을 경험했기에 미국 도전에서 전혀 후회가 없다고 강조했다(사진=롯데)
노경은은 트라이아웃을 경험했기에 미국 도전에서 전혀 후회가 없다고 강조했다(사진=롯데)

류현진과 오승환 선수도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에 있었는데 만나진 않았나.

아무래도 내가 있었을 때가 시범경기가 진행된 시기라 함부로 찾아가기가 그랬다. 시즌을 준비하고 컨디션을 올리고 있는데 괜히 민폐를 끼치기 싫었다. 나 혼자 조용히 운동하고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뒤 귀국했다.

트라이아웃 결과는 입단 실패였다.

두 번째 트라이아웃이 끝난 뒤 샌디에이고 스카우트 팀장이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 사이 수준인 ‘AAAA’ 수준까진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얘길 하더라. 나도 인정했다. 그래도 할 건 다하고 왔으니 후회는 없다.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트리플A 수준’이라고 인정받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음.

사실 샌디에이고의 사정도 이해 됐다. 알고 보니 샌디에이고가 지난해 마이너리그 트리플A(엘패소 치와와스) 1위 팀이었다. 좋은 유망주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진입 가능성을 고려하면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유망주 위주의 선수단 구성에서 내가 들어갈 틈이 없었던 듯싶다.

그래도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지 않았나.

(목소릴 높이며) 진짜로 아쉬움은 전혀 없다. 만약 트라이아웃을 못 했으면 아쉬움이 남았을 거다. 트라이아웃에서 내 계획대로 잘 던졌다. 선수들을 정리하는 시기에 트라이아웃을 했기에 마음을 비우고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했다. 또 ‘미국 야구 시스템은 이렇구나’, ‘어떤 선수들이 있구나’라는 걸 직접 느끼고 와 기분 좋다.

“우선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 미래는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

노경은은 롯데의 KBO리그 개막 시리즈의 결과를 확인했다. 비록 계약은 불발됐지만, 롯데를 향한 노경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노경은은 롯데의 KBO리그 개막 시리즈의 결과를 확인했다. 비록 계약은 불발됐지만, 롯데를 향한 노경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마이너리그에도 ‘괴물’들이 즐비하지 않나.

좋은 투수들이 정말 많다. 100마일(160km/h)을 던지는 투수들도 자주 봤다. 신장 170cm 정도의 투수가 평균 구속 99마일(159km/h) 공을 내 눈앞에서 던지더라. 그런 걸 보니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는 천지 차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미국에서 야구 보는 눈을 넓히고 왔다. 거기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느낀 점이 또 있었다.

어떤 점인가.

한국에 있는 어린 후배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국 무대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류현진이나 강정호처럼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고 가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인 듯싶다. 일본 선수들은 포스팅 기간이 짧아서 젊을 때 미국으로 가지 않나. 한국 야구에서도 조금 더 어릴 때 미국으로 가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 그래야 한국 야구의 수준도 더 발전하지 않을까.

(KBO리그에선 7시즌 이상 FA 자격 일수를 채워야 국외 구단으로 진출할 수 있는 포스팅 자격이 주어진다. 반면 일본프로야구에선 단 1시즌만 1군에서 뛰었어도 구단의 허락 아래 포스팅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도전 속에서 느낀 좋은 얘기다. ‘선수 노경은’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조만간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몸 상태는 정말 좋다.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계속 훈련할 계획이다. 아마 동의대학교에서 운동할 듯싶다.

KBO리그 개막전을 지켜봤나.

경기를 보진 않고 결과만 봤다. 롯데가 개막 연패 없이 이겨서 다행이다(웃음). 롯데에 있는 형들도 아직도 아쉬워하는데 나도 팀 동료들이 그립다. 롯데를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일단 부산에 내려가 대책을 세우고 기다려보겠다. 에이전트도 따로 없는 상황이다.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 우선 할 수 있을 때까진 야구를 해보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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