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조상우, 복귀 이후 보직은 마무리 아닌 중간계투

-지난해 마무리 중에 올해도 마무리인 투수는 한화 정우람 한 명뿐

-타고난 마무리 투수는 없다, 선택받고 만들어진다

-새 마무리 투수와 기존 마무리 투수 시너지 효과 내면 더 강한 불펜진 가능

조상우와 함덕주는 2019시즌을 마무리 투수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다(사진=엠스플뉴스)
조상우와 함덕주는 2019시즌을 마무리 투수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 전이 열린 7월 16일 고척스카이돔. 이날 키움 선수단엔 어깨 부상 재활을 마치고 전날 엔트리에 등록한 조상우가 합류했다. 시즌 초반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며 최고 159km/h 광속구를 던진 파이어볼러가 돌아왔다.

그러나 조상우의 보직은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가 될 전망이다. 키움 장정석 감독은 이날 경기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일단 마무리는 계속 오주원에게 맡길 생각이다. 조상우의 활용 방법은 유동적이다. 당분간은 조상우를 앞에서 활용할 계획이라 밝혔다.

조상우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한 6월 10일 이후 키움은 28경기에서 20승 8패로 해당 기간 최다승을 거뒀다. 오주원은 이 기간 14경기에 구원 등판해 1승 12세이브 평균자책 0.00을 기록하며 마무리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오주원의 완벽투가 6월 말까지만 해도 “부상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조상우가 마무리”라던 장 감독의 불펜 운용 구상까지 바꿨다.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온 건 조상우 혼자만이 아니다. 7월 16일 기준 세이브 부문 10위권 중에 지난해에도 10위 안에 들었던 투수는 두산 함덕주(15세이브)와 한화 정우람(11세이브) 둘 뿐이다. 둘 중에 함덕주는 6월 이후 이형범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준 상황. 사실상 정우람 한 명을 제외하면 모든 팀의 마무리가 교체된 셈이다.

마무리 투수는 타고나지 않는다…선택받아 만들어진다

SK 와이번스의 새 마무리 투수 하재훈. 23세이브로 리그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의 새 마무리 투수 하재훈. 23세이브로 리그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는 지난 시즌 좌완 신재웅(16세이브)이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올해는 시즌 초 집단 마무리 시기를 거쳐 국외파 신인 하재훈(23세이브)이 자릴 잡았다. 두산은 함덕주에서 이형범으로, 키움은 작년 김상수에서 올해 조상우를 거쳐 오주원으로 마무리가 바뀌었다.

LG 트윈스는 정찬헌의 부상 이탈 뒤 고우석이 마무리 자릴 물려받았다. NC 다이노스도 지난해 임창민이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이민호가 마무리를 맡다가, 올해는 원종현이 9회를 책임지고 있다.

김재윤이 작년까지 마무리였던 KT 위즈는 올해 정성곤을 거쳐 최근엔 이대은으로 마무리를 바꿨다. 삼성 라이온즈는 심창민의 군 입대로 현재는 장필준이 마무리 역할을 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마무리는 작년 윤석민에서 올해 문경찬으로 바뀌었고, 롯데 자이언츠는 손승락 대신 구승민-박진형이 마무리로 나선다.

오직 한화 정우람만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여전히 마무리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에 3개 팀만이 2년 전과 같은 마무리를 기용하고 있다”던 버스터 올니의 말은 KBO리그에서 “10개 구단 중에 1개 팀만이 1년 전과 같은 마무리를 기용하고 있다”로 새롭게 쓰였다.

2017년, 2018년, 2019년 KBO리그 세이브 10걸(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017년, 2018년, 2019년 KBO리그 세이브 10걸(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오랫동안 사람들은 ‘특급 마무리 투수’의 존재를 믿었다. 9회 요란한 메탈 음악과 함께 등장해 불같은 광속구로 타자를 때려눕히고 포효하는 마무리 투수는 블록버스터 영화 속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태어날 때부터 마무리로 타고난, 다른 평범한 불펜투수들과는 종이 다른, 실패와 두려움을 모르는 강력한 존재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마리아노 리베라, 한국의 오승환 같은 일부 극소수 엘리트에 한정된 얘기다. 대부분의 마무리 투수는 만들어진 것이지 타고난 것이 아니다. 여러 불펜 투수 가운데 9회 마지막에 던지는 역할로 ‘선택받은’ 한 명이 마무리 역할을 맡는다. 감독들은 팀 내 뛰어난 여러 타자들을 놓고 3, 4, 5번을 배치하듯 마무리와 8회 셋업맨, 7회 셋업맨을 배치한다.

“타고난 마무리 투수는 없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올 시즌 KBO리그 마무리 투수들의 수난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마무리 투수는 초인적인 존재가 아니다. 다른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시즌 중 컨디션이 떨어지기도 하고, 연속적인 부진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한 시즌 잘했다가 다음 시즌 부진할 수도, 부상으로 나가 떨어질 수도 있다.

마무리 투수라서 특별히 더 자릴 유지하기 어렵다기 보단, 모든 투수가 겪는 어려움을 마무리 투수도 똑같이 겪는다고 봐야 한다. KT 박승민 투수코치는 ‘왜 2년 연속 꾸준한 마무리 투수가 드문지’ 묻자 마무리 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2년 연속 꾸준하기 쉽지 않다. 2년, 3년 꾸준히 잘하면 그게 진짜 실력이라 했다.

새 마무리+기존 마무리=더 강력한 불펜진 구축

1년간의 팔꿈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 임창민(사진=엠스플뉴스)
1년간의 팔꿈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 임창민(사진=엠스플뉴스)

마무리 투수의 갑작스런 부진과 장기 이탈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대체자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가 따른다. 그러나 잘만 극복하면, 불펜투수진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마무리가 9회를 잘 막고, 기존 마무리가 복귀해 7, 8회를 잘 막아준다면 그만큼 팀의 불펜진은 더 강력해진다.

키움은 16일 삼성전에서 2대 0으로 앞선 6회 조상우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9회가 아닌 6회 올라온 조상우는 1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냈고, 키움은 6회말 4점을 추가해 6대 0으로 승기를 굳혔다.

NC도 재활을 잘 마친 원조 마무리 임창민이 돌아와 2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최고구속은 145km/h까지 기록했다. 임창민이 셋업맨 역할을 잘 해준다면, 팔꿈치 통증으로 빠진 셋업맨 장현식의 공백을 지울 수 있다.

두산 함덕주는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이동한 뒤 안정을 찾았다. 롯데 손승락도 6월 11경기 평균자책 2.70, 7월 3경기 1.80으로 페이스가 좋다. 김재윤이 돌아온 KT도 이대은을 계속 마무리로 쓰고, 김재윤을 중간계투로 활용할 예정이다.

9회는 팀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하고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상황은 9회가 아닌 8회, 7회에도 종종 찾아온다. 3점차로 앞선 9회 주자없는 상황보단 1점차에 주자가 둘인 7회를 막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상대 하위타순을 상대하는 9회보단 중심타선과 만나는 8회가 더 까다로운 상황도 종종 있다. 장정석 감독이 “개인적으로 6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유다.

일단 키움 장정석 감독은 제일 강력한 투수가 9회를 막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대신 실용주의를 택했다. 한번 상대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브리검, 요키시를 간신히 끌어내렸더니 바로 조상우가 올라와 159km/h 광속구를 뿌려댈 때 어떤 기분일지를. 그리고 9회엔 마무리 오주원과 만나야 한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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