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과 SK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시작 4시간 25분 만에 나온 첫 득점

-정규시즌 강타한 투고타저 흐름, 포스트시즌에도 여전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저득점 경기, 준플레이오프 1차전도 0의 행진

-에이스 투수 전력투구, 벌떼 마운드 운영…다득점 경기 쉽지 않다

브리검과 김광현. 1년 만에 다시 만난 둘의 투구내용은 지난해와 전혀 달랐다(사진=엠스플뉴스)
브리검과 김광현. 1년 만에 다시 만난 둘의 투구내용은 지난해와 전혀 달랐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10월 14일은 다이내믹한 하루였다.

경기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1회초 키움 공격에서 나온 이정후의 주루사는 이날 경기 양상을 미리 보여주는 일종의 전조였다. 잘하면 대량득점으로 갈 수도 있었던 찬스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후 키움과 SK는 경기 내내 0의 행진을 이어갔다. SK는 정규이닝 동안 안타 4개를 때리는 데 그쳤다. 연장 10회까지 양 팀이 때린 안타 중에 장타는 하나도 없었다. 이날 경기 첫 득점은 경기 시작한 뒤 4시간 25분이 지난 11회 초가 돼서야 나왔다. 투수가 지배한 경기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두 팀의 대결은 이렇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 SK는 1회말 공격에서 홈런으로 손쉽게 선취점을 뽑았다. 이날 양 팀이 주고받은 홈런만 7개.

큰 점수 차로 끌려가던 키움은 7회 공격에서 홈런 두 방으로 단숨에 8대 8 동점을 만들었다.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송성문이 김광현을 상대로 홈런 두 방을 날렸다. ‘에이스’ 제이크 브리검과 김광현은 각각 4이닝 5실점, 6이닝 5실점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타자들이 시리즈를 지배했다.

공인구 효과, 에이스 전력투구, 벌떼 불펜…타자들이 애먹는 이유

플레이오프 1차전, 힘든 하루를 보낸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플레이오프 1차전, 힘든 하루를 보낸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2019 정규시즌을 강타한 투고타저가 포스트시즌 들어 더욱 맹위를 떨치는 흐름이다.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뿐만이 아니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조짐이 보였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만난 키움과 LG는 9회초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타일러 윌슨과 브리검의 구위가 타자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9회말 터진 박병호의 끝내기 홈런 한 방이 아니었다면 연장으로 갈 뻔한 경기였다.

타선이 시원하게 터진 경기는 키움이 10대 5로 이긴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유일하다. 0의 행진 속에 연장 혈투를 펼친 14일 경기까지, 이번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 투수들이 기록 중인 평균자책은 2.85다.

올 시즌을 앞두고 바뀐 공인구 효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인구가 덜 날아가는 공으로 바뀌면서 2018시즌 경기당 1.22개였던 홈런이 올 시즌 0.70개로 뚝 떨어졌다. 특히 SK 같은 팀은 홈런 수가 반토막 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시즌 내내 지켜온 1위 자리를 뺏긴 데도 시즌 막판의 극심한 공격력 저하가 한몫했다. 2주간 휴식을 취하고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타자들의 타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1차전 공격으로 봐선 남은 시리즈에서도 대량득점 경기가 나오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A급 투수가 총출동하는 포스트시즌의 특성도 저득점 경기가 속출하는 이유다. 정규시즌에선 4, 5선발 투수와 패전처리 투수를 상대로 타격 성적을 끌어올릴 찬스가 종종 찾아온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선 가장 뛰어난 투수, 컨디션 좋은 투수만이 등판 기회를 얻는다. 많은 안타를 때리고 다득점을 올리기 쉽지 않다.

역대 정규시즌 리그 평균자책과 포스트시즌 평균자책 비교.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이 대체로 정규시즌보다 낮은 양상을 보인다(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역대 정규시즌 리그 평균자책과 포스트시즌 평균자책 비교.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이 대체로 정규시즌보다 낮은 양상을 보인다(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특히 최근 포스트시즌에서 감독들은 에이스 투수에게 긴 이닝을 맡기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7이닝 이상을 길게 던지는 대신, 상대 타순 2바퀴를 전력투구로 막아내는 게 에이스에게 주어진 임무다. 14일 경기에서도 SK는 5회까지 92구를 던진 김광현을 미련 없이 교체했다. 키움 역시 브리검을 6회 1아웃에서 바꿨다.

선발투수가 상대 타순을 세 바퀴째 상대할 차례가 되면, 싱싱한 구원투수들을 차례로 투입해 경기 후반을 틀어막는다. 타자들로선 같은 투수를 두 타석 연속으로 상대할 기회가 거의 없다. 공이 눈에 익을 만 하면 새로운 투수가 올라와 앞의 투수보다 더 강한 공을 뿌린다. 타자들에겐 최악의 조건이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키움은 총 9명의 투수를, SK는 8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보통 불펜 승리조는 상대 타자에 관계없이 정해진 상황(셋업맨은 8회, 마무리는 9회)에 올라와 1이닝을 막는다. 그러나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키움은 철저하게 상대 타자에 따른 맞춤형 투수 기용을 선보이는 중이다.

일반적 분류로는 추격조에 해당하는 투수도, 특정 타자 상대로 강점이 있다면 과감하게 투입한다. 고종욱 한 타자를 막기 위해 4차전 선발 이승호를 투입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장정석 감독은 작년에는 승리조가 6회, 7회, 8회에 나와야 한다는 틀을 깨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 못 나온 투수도 있었다. 올해 들어 전력분석팀에서 주는 데이터들이 확률적으로 맞는다는 걸 계속 느꼈다며 불펜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준 이유를 설명했다.

타자들에겐 가혹한 시간이다. 1차전 결승타의 주인공 김하성은 첫 다섯 타석 동안 무안타에 그쳤다. 찬스 때마다 SK 투수들은 몸쪽을 파고들며 김하성의 약점을 노렸고, 빗맞은 내야 플라이가 계속 나왔다. 이정후가 “하성이 형과 룸메이트인데, 경기 끝나고 숙소에서 둘이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할 정도로 경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연장 11회 6번째 타석에서 몸쪽 공을 염두에 두고, 배트를 짧게 잡고 휘두른 끝에 어렵게 첫 안타를 때릴 수 있었다.

김하성 정도 강타자가, 나쁘지 않은 컨디션에도 투수들의 공을 때리는 데 애를 먹는다. 그 정도로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투수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플레이오프 1차전 같은 경기가 앞으로도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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