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로 좌완 이승호 카드

-에이스 제이크 브리검 대신 스무 살 이승호 선택…과감한 승부수

-이승호, 정규시즌 두산 상대 강점 뚜렷…좌투수에 약한 두산 타선

-2004년 한국시리즈 호투로 팀 구했던 오주원…스무 살 이승호도 해낼까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로 등판하는 이승호(사진=엠스플뉴스)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로 등판하는 이승호(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묻고 더블로, 브리검 대신 이승호로 간다. 키움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이 한국시리즈 2차전에 ‘큰 승부’를 건다. 2차전 선발로 에이스 제이크 브리검이 아닌 좌완 이승호를 내세워 반전을 노린다.

예상을 깬 선택이다. 앞서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눈부신 역투를 펼친 브리검이다. 그러나 키움은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정규시즌 두산 상대 성적이 좋았던 좌완 에릭 요키시를 선택했다. 이에 브리검의 2차전 등판을 예상했지만, 키움의 선택은 또 한 번 예상을 빗나갔다.

15년전 팀 구한 오주원처럼…이승호도 해낼까

현대 유니콘스 시절인 200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등판해 팀을 구했던 오주원(사진=현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인 200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등판해 팀을 구했던 오주원(사진=현대)

데이터는 키움 벤치의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두산 타선의 올 시즌 우완 상대 팀 OPS는 0.776으로 리그 1위. 그러나 왼손투수 상대 팀 OPS는 0.664에 그쳤다.

박세혁(OPS 0.567), 정수빈(0.583), 최주환(0.689), 오재일(0.693), 김재환(0.706),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0.717) 등 주력 좌타자 전원이 좌완 오버핸드 투수 상대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좌투수의 커브, 슬라이더 등 브레이킹 볼에 어려움을 겪은 게 원인이다.

한편 이승호는 올 시즌 우타자 상대 피OPS 0.818을 기록한 반면, 좌타자 상대론 0.648을 기록해 좌타자 상대 강점이 뚜렷하다. 빠른볼 각이 좋고 커브, 슬라이더에 체인지업까지 구사해 좌타자에겐 악몽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투수다.

좌타자로 라인업이 도배된 두산 상대로는 네 번 선발 등판해 피안타율 0.253에 피OPS 0.608로 호투했다. 최근 2년간 두산 상대 5경기에서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 5.02만 기록한 브리검보다 나은 상대 기록이다.

하지만 10월 23일 잠실경기는 정규시즌이 아닌 한국시리즈 2차전 경기다. 전날 1차전을 아깝게 내준 키움은 만약 2차전까지 내줄 경우 시리즈 2패로 구석에 몰린다. 이처럼 압박이 큰 경기에 에이스 투수 대신 스무 살 어린 투수를 선발 기용하는 건, 꽤나 과감한 결정이다.

대신 이승호 선발 카드가 성공하면 키움은 많은 것을 얻는다. 1승 1패로 시리즈 동률을 만든 가운데 3차전부터 홈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에이스 브리검을 기용해 3차전을 잡으면 시리즈 분위기는 단숨에 키움 쪽으로 넘어온다. 5차전 이후엔 이승호를 불펜에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해진다.

키움의 이승호 선발 카드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베테랑 오주원이 오재영이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 오주원은 현대 유니콘스 소속으로 갓 프로에 데뷔한 19살 신인 투수였다.

당시 삼성과 상대한 한국시리즈에서 현대는 1차전을 먼저 잡은 뒤 2차전 무승부, 3차전 패배, 4차전에서 10회까지 노히트로 끌려가다 간신히 0대 0 무승부를 기록한 상황이었다. 자칫 시리즈 분위기가 삼성 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여기서 현대 벤치는 5차전 선발로 정민태 대신 신인 오주원을 택했다. 오주원은 외국인 투수 케빈 호지스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5회까지 삼성 타선 상대로 1피안타 무실점. 6회 조동찬에 홈런을 맞고, 5.2이닝 1실점으로 교체됐다. 4대 1로 승리한 현대는 시리즈 2승을 먼저 따내며 앞서 나갔다.

당시 우승 멤버였던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신인 시절 오주원은 전혀 신인처럼 보이지 않는 투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차분하고 대담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15년 전 일이다. 1차전을 앞두고 만난 오주원도 “그때 경험을 지금 적용하긴 어렵다. 당시엔 경기수도 달랐고, 분위기도 달랐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어렸다”며 손사래 쳤다.

다만 오주원은 “가을야구는 ‘경험’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야구선수는 결과를 내야 하는 직업이다. 경험만 하고 결과를 못 내는 선수도 많지 않나. 신인이라도 큰 경기 올라와서 잘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좋은 능력치를 갖고도 잘 못 하는 선수도 있다. 파이팅 넘치는 기질이 중요하다. 오주원의 말이다.

이승호는 지난해 19살 나이에 포스트시즌 큰 무대에 선발등판해 호투를 펼쳤다. 스무 살이 된 올해도 정규시즌에서 8승을 거뒀고, 포스트시즌 팀의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장정석 감독의 ‘큰 승부’가 완전히 무모한 시도는 아니란 얘기다.

우리 팀만 봐도, 어린 나이에 잘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큰 경기는 경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오주원의 말이다.

이승호의 ‘두산 킬러’ 데이터, 단기전에서도 통할까

이승호는 정규시즌 두산 상대로 아주 강했다. 이 데이터가 단기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사진=키움)
이승호는 정규시즌 두산 상대로 아주 강했다. 이 데이터가 단기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사진=키움)

키움 벤치의 큰 승부가 성공하려면, 이승호가 ‘데이터’대로 잘 던져줘야 한다. 단기전은 정규시즌 상대전적과 데이터가 잘 먹히지 않는 무대다. 1차전에서 두산 타자들은 정규시즌 애를 먹었던 요키시 상대로 소나기 안타를 때렸다. 요키시의 주무기 투심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요키시의 공이 평소보다 약간 가운데 몰린 것도 난타를 불렀다.

정규시즌 성적만 보면 자신감을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이승호는 시즌 첫 등판 두산전 7이닝 2실점 호투를 시작으로, 이후 홈에서 두산 상대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 등판인 9월 3일 잠실 대결에서도 6이닝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네 차례 등판에서 최주환, 김재환, 김재호, 허경민, 정수빈, 오재일 등 두산 주축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이승호다. 두산 상대 타석당 탈삼진율도 17.5%로 키움 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남겼다.

다만 페르난데스 상대론 10타수 5안타, 박건우 상대로도 12타수 4안타로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이승호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주로 컨디션 좋은 날에 두산을 상대했다두산 타자들이 절대 만만하지 않다. 특히 페르난데스는 어떤 공을 던져도 방망이에 걸리고, 파울도 잘 만든다며 경계심을 보였다.

이승호가 잘 던지려면 경기 초반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 전날 패배의 충격이 남아있는 키움으로선 초반 선취점을 내주면 분위기 싸움에서 완전히 밀린다. 이승호는 1회 피안타율 0.343에 OPS 0.933으로 마운드 낯가림이 심한 편. 대신 1회만 잘 넘기면 2회(0.244/0.703)와 3회(0.260/0.698)엔 투구내용이 한결 나아진다.

키움은 이승호를 시작으로 기용 가능한 불펜투수를 총동원할 전망이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이승호와 1+1 짝을 이뤘던 안우진이 두 번째 투수로 대기한다. 장정석 감독은 이번 시리즈에서 “2이닝 이상, 최대 3이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1차전에서 30구 이상 던진 조상우도 상황에 따라 기용할 수 있단 생각이다.

이승호와 상대할 두산 선발투수는 22세 우완 영건 이영하다. 정규시즌 키움전 성적은 4경기 평균자책 6.30으로 좋지 않았지만, 대신 잠실 홈에선 15경기 12승 무패 평균자책 1.59로 아주 강했다. 키움전도 잠실 홈에서 만났을 땐 6이닝 3실점, 6이닝 1실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2차전 선발로 기용한 뒤, 5차전 이후 불펜으로 기용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카드로 풀이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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