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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선수협에 필요한 건 마케팅이 아닌 ‘초심’이다

  • 기사입력 2019.12.03 12:52:47   |   최종수정 2019.12.03 13: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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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협회, 새 사무총장에 마케팅 전문가 영입

-마케팅과 홍보 강화로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구상

-선수협은 선수 권익 보호가 우선...문제는 잃어버린 초심이다

-자문변호사 역할 커지고 이대호 친정체제 강화될 것이란 우려도

 

12월 2일 열린 선수협 총회. 300명이 넘는 선수가 참석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사진=엠스플뉴스) 12월 2일 열린 선수협 총회. 300명이 넘는 선수가 참석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위기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기용한 구원투수는 ‘마케팅 전문가’였다.

 

선수협은 12월 2일 서울 임페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전체 총회에서 임기가 끝난 김선웅 사무총장(변호사)의 후임으로 김태현 제이시스메디칼 코리아 마케팅 총괄 실장을 선임했다. 또 자문변호사로 오동현 법무법인 린 파트너 변호사를 영입해 역할을 나눴다.

 

신임 김태현 사무총장은 1975년생으로 BR 코리아 마케팅팀과 LG전자 HE 사업본부 글로벌마케팅전략팀, 오므론 헬스케어 코리아 국내마케팅 총괄 부장을 거쳐 현재 제이시스 메디컬 코리아 국내·해외 마케팅실 총괄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 마케팅과 홍보 분야에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왔고, 소비자와 시장의 관점에서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인사”란 평가다.

 

최근 선수협은 야구계 각종 현안이 생길 때마다 일방적인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스타 선수들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선수협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일부 선수들의 불친절한 팬서비스가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전국민적 지지 속에 출범한 초기와는 달리 갈수록 팬들로부터 멀어지고 고립됐다.

 

마케팅 전문가의 사무총장 임명은 취약했던 홍보·마케팅 강화로 선수협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다 ‘팬 친화적’ 단체로 변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선수협은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새 사무총장을 소개하며 프로야구 팬들과의 소통을 통해 팬 친화적인 선수협으로 거듭나고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선수협을 만들어주시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임 김 총장 영입을 주도한 이대호 선수협 회장도 팬들 입장에서 생각하실 분을 모셨다. 새 사무총장은 야구 쪽에 계시지 않았던 분을 모셨다. 야구계 인사를 선임하면 특정 의견에 휘말릴 수도 있다. 팬들의 생각과 (야구계) 밖의 생각을 좀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는 분을 택했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선수협, 문제는 홍보 부족이 아닌 ‘초심 회복’이다

 

2일 열린 선수협 총회에 참석한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2일 열린 선수협 총회에 참석한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그러나 선수협 새 집행부를 바라보는 야구계 시선에 마냥 기대감만 가득한 건 아니다. 일각에선 ‘선수협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지금 선수협에 필요한 건 마케팅이나 홍보가 아니다. 선수협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근 선수협이 팬들의 질타를 받고 여론으로부터 고립된 건 홍보와 마케팅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 원인은 선수협이 설립 당시의 초심을 잃었다는 데 있다. 선수협은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저연봉 선수들과 후배들을 위해 고연봉 스타 선수들이 희생을 감수해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선수협 설립 당시 2,000만 원이었던 최저 연봉은 2,700만 원으로 일반 노동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반면 최고 연봉자 몸값은 4년 총액 150억 원까지 치솟았다. 선수협 출범 이후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해진 것이다. 올해 노경은 사태, 이용규 사태 등 선수 권익을 침해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선수협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FA 등급제 실시, 최저연봉 인상’ 등의 내용이 담긴 KBO 실행위원회의 제도 개선안은 이대호 회장이 주도한 대의원회의에서 거부했다. 반면 거의 동일한 안을 놓고 선수 전체가 정기총회에서 투표한 결과는 195명 찬성·151명 반대로 뒤집어졌다. 일반적인 조합에선 이런 결과가 나오면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해 동반 사퇴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대호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남고, 투표에서 통과한 안을 주도한 김선웅 전 사무총장이 선수협을 나가게 됐다.

 

물론 선수협 입장에선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구단과 KBO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것도 사실이다. 몇몇 논란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설명과 홍보가 부족해 오해를 키운 면도 있다.

 

하지만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선수협이 ‘선수 권익 보호’라는 제 구실을 못한 데서 비롯한 문제다. 전체 선수의 권익보다는 고액연봉자와 FA 선수의 기득권 지키기에 치중하는 모습이 팬들의 신뢰를 저버렸고, 선수협의 위기를 불렀다. 이는 대기업 출신 홍보 전문가의 매끈한 PR 기술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야구인은 수익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선수협이 수익 내고 사업하려고 만든 조직은 아니지 않나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야구계 현안 해결, 이해관계 조정’ 사무총장 역할 다할 수 있나

 

이대호 회장과 대의원들은 KBO 제안을 거부했지만, 선수 전체가 참여한 총회 투표에선 결과가 뒤집혔다(사진=엠스플뉴스) 이대호 회장과 대의원들은 KBO 제안을 거부했지만, 선수 전체가 참여한 총회 투표에선 결과가 뒤집혔다(사진=엠스플뉴스)

 

새 사무총장의 경력이 선수협 집행부 중책을 맡기엔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선수협에선 신임 사무총장에 대해 ‘마케팅 부분에서 화려한 경력을 보유했다’고 소개했지만, 실제 경력을 살펴보면 대기업 시절인 10년 전 이후로는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 누구의 추천으로 어떤 경로로 임명됐는지 궁금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 야구 관계자도 “비록 ‘선수협회’란 명칭을 달고 있긴 하지만, 선수협의 활동은 일종의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많다. 야구계 경력이 전무한 마케터 출신 인사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 지적했다.

 

선수협 사무총장은 KBO와 대기업 산하 야구단에 맞서 선수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주 업무다. 야구계 현안에 대한 이해는 물론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량도 필요하다. 당장 샐러리캡 도입을 놓고 KBO 및 구단들과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정돼 있다,

 

이 때문에 새 집행부에선 사무총장의 역할이 축소되고 회장과 자문변호사의 비중이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선수협 사정에 밝은 야구인은 오동현 자문변호사는 야구를 포함한 체육계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잘 알려진 인사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설이 나올 정도로 정계에도 발이 넓다. 향후 선수협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부산 출신인 오 변호사는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법조인이다. 대한레슬링협회 이사와 고문변호사, 아시아배드민턴 연맹 고문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야구계와는 전혀 교류가 없는 사무총장과 달리, 오 변호사는 야구계와도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모 구단 관계자는 이대호를 비롯한 롯데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승부조작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 이성민의 변호를 맡은 것도 오 변호사였다. 선수협이 주최한 에이전트 회의에도 ‘에이전트’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에선 이대호와 가까운 오 변호사 선임으로 ‘이대호 친정체제’가 더 강화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한 구단 관계자는 우리 구단 선수에게 신임 사무총장과 고문 변호사가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묻자 '저도 몰라요. 이대호 선배가 다 알아서 한 것으로 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수협이 이대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수협 탄생 당시 전 국민적 지지는 선수협이 ‘약자’인 선수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이란 기대에서 나왔다. 마케팅과 팬 친화도 좋지만, 선수협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수 권익 보호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선수협에 필요한 건 그럴싸한 포장이 아닌 ‘초심’이고, 잃어버린 팬들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마케팅에 초점을 맞춘 선수협 새 집행부는 선수협이 처한 위기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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