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미국 진출, 키움증권 손에 달렸다?

-계약서상 키움은 단순 메인스폰서 이상…“키움이 구단과 선수단 운영, 재무까지 협의. 회계 및 법률 실사권까지 손에 쥐고 있다”

-매월 정례회의 열어 선수단 운영-재무 ‘협의’ 명문화…구단 사장이 키움 찾아가 보고

-구단 이사회 안건, 선수 연봉, 재무제표, 손익 월별자료까지 키움 요구 시 제출 의무

-키움보다 높은 재계약액 제시했던 넥센타이어의 이전 계약서엔 ‘선수단 운영 관련 협의 사항 전무’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메인스폰서 키움증권이 실질적 키를 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12월 9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은 김하성은 “구단과 시간을 들여 충분히 상의했고, 구단에서도 허락했다. 2020시즌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무대에 진출하겠다”며 선언했다.

하지만, 스포츠 법률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박지훈(법무법인 태웅) 변호사는 “김하성의 미국 진출은 서울 히어로즈 구단뿐만 아니라 메인스폰서인 키움증권과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그 이유로 키움증권과 히어로즈가 맺은 메인스폰서 계약이 일반적인 메인스폰서 계약과는 다른 ‘매우 특이한 계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키움증권(이하 키움)과 서울 히어로즈(이하 히어로즈)가 체결한 메인스폰서 계약에 따르면 키움은 히어로즈 선수 계약을 비롯한 전체적인 선수단 운영에 메인스폰서 역할을 뛰어넘는 막강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 키움은 계약서에 각종 손해 배상 장치도 명문화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키움이 요구하면 15일 이내 히어로즈는 이사회 안건, 구단 운영에 관한 중요사항 등을 반드시 제출해야…구단의 대외비 성격인 선수단 운영 관련 사항, 주요 재무 사항은 아예 협의 대상

키움증권 이현 대표이사(사진 왼쪽부터)와 서울 히어로즈 박준상 전 대표이사(사진=히어로즈)
키움증권 이현 대표이사(사진 왼쪽부터)와 서울 히어로즈 박준상 전 대표이사(사진=히어로즈)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는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키움은 이현 대표이사가, 히어로즈는 박준상 전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계약 기간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총액은 연간 100억 원씩 500억 원 규모였다. 당시 키움 이 대표이사는 “2루수와 유격수가 혼연일체가 돼 호흡을 맞추는 키스톤 콤비처럼, 키움증권과 히어로즈가 키스톤 콤비를 이뤄 좋은 경기를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계약 발표 이후 ‘새로운 파트너십’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키움-히어로즈 메인스폰서 계약서’를 분석하면 ‘키스톤 콤비’ ‘새로운 파트너십’이란 표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되레 엄격한 갑·을 관계에 더 가깝다.

양측이 작성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본 여러 법조인은 키움은 단순히 돈을 주고 구단 이름을 산 메인스폰서가 아니다. 히어로즈 야구단 재정과 각종 계약은 물론 선수단 운영까지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갑 중의 갑이라며 일반적인 메인스폰서와 야구단 관계보단 재벌기업 모그룹과 산하 야구단의 관계와 닮았다고 평했다.

그 가운데 한 예가 스타선수 계약의 의무 통보조항이다. 계약에 따르면 ‘을’인 히어로즈는 구단과 스타플레이어 사이에 체결된 계약 내용을 발생 즉시 ‘갑’인 키움에 통보해야 한다.

여기서 ‘스타플레이어’는 “구단에 소속된 선수 가운데 갑(키움)이 지정하는 15인 이내의 자”를 뜻한다. 스타플레이어 15인을 지목하는 게 키움인 것이다. 골든글러브 유격수이자 국가대표인 김하성은 키움이 지정한 15인의 스타플레이어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김하성이 미국 진출을 구체화한다면 히어로즈는 즉시 키움에 진행 상황과 결과를 알려야만 한다.

계약서에 따르면 단순 ‘통보’로 그치는 수준도 아니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취재 결과 계약서엔 구단 운영의 주요 사안을 (양자가) 협의한다는 조항이 적시돼 있다.

박 변호사는 “결정된 내용을 전달하는 ‘통보’와 달리 협의는 말 그대로 특정사안에 대해 양자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아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라며 “구단 운영의 주요 사안과 관련해 메인스폰서가 자신들의 의견을 구단에 제시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가 맺은 메인스폰서 계약 내용 가운데 일부. 키움은 히어로즈 구단과 선수단 운영 관련 사항, 주요 재무 사항 등을 협의했다. 히어로즈 핵심 관계자들이 키움증권에 찾아가 주요 사항을 설명하고, 협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키움은 구단에 대한 회계 및 법률 실사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 모그룹이 야구단을 지배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그래픽=엠스플뉴스)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가 맺은 메인스폰서 계약 내용 가운데 일부. 키움은 히어로즈 구단과 선수단 운영 관련 사항, 주요 재무 사항 등을 협의했다. 히어로즈 핵심 관계자들이 키움증권에 찾아가 주요 사항을 설명하고, 협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키움은 구단에 대한 회계 및 법률 실사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 모그룹이 야구단을 지배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그래픽=엠스플뉴스)

더 특이한 건 구단(히어로즈)은 구단의 선수단 운영 관련 사항, 주요 재무 사항 등을 갑(키움)에게 설명하고, 갑과 협의하기 위해 매월 1회 정례회의를 개최하기로 한다는 조항이다. 단순히 선수단 운영뿐만 아니라 구단의 주요 재무 사항 역시 ‘협의’의 대상인 것이다. 메인스폰서와 구단이 이 문제로 정례회의를 갖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란 평이다.

한 구단 단장은 모기업 구단주가 야구단 사장에게 선수단 운영과 재무 관련 보고를 받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선수단 운영과 재무사항은 구단의 대외비 성격이 강하다. 어째서 이런 대외비가 메인스폰서와 ‘협의’할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계약서대로라면 김하성의 미국 진출은 ‘구단 운영의 주요 사안’인 동시에 ‘선수단 운영의 핵심 사안’이다.

그렇다면 과연 ‘매월 1회 정례회의’는 실제로 이뤄졌을까. 키움과 히어로즈는 “계약서에 비밀유지 준수 조항이 있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취재 결과 ‘정례회의’가 실제로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에 대한 회계 및 법률 실사 권한도 있어…법조계 “키움이 메인스폰서 넘어 야구단 모기업 노릇 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아. 실제로 계약서상 키움은 야구단 모그룹과 큰 차이 없어”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가 맺은 메인스폰서 계약 내용 가운데 일부. 메인스폰서가 구단 대외비 자료를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열어둔 계약서라는 평이 많다(그래픽=엠스플뉴스)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가 맺은 메인스폰서 계약 내용 가운데 일부. 메인스폰서가 구단 대외비 자료를 언제든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열어둔 계약서라는 평이 많다(그래픽=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키움증권은 계약서에 서울 히어로즈가 키움증권의 정보 요구(이사회 안건, 구단 운영 중요사항, 전체 선수 연봉 및 트레이드 현황 등)에 응하지 않을 경우 메인스폰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서에 따르면 이 조항이 적용돼 계약이 해지될 경우 히어로즈는 키움에 2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박지훈 변호사는 선수단 운영 주요 사항과 재무 정보에 이어 이사회 안건까지 키움이 정보를 요구할 때 모든 정보를 줘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시 거액의 배상을 해야 한다는 건 일반적인 메인스폰서 계약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모기업 없이 스폰서십으로 운영비 상당액을 충당하는 히어로즈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메인스폰서 이탈은 치명적이다. 메인스폰서가 구단 운영에 부당한 개입을 해도 거부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와 관련 A 구단 관계자는 “히어로즈 야구단의 특수성이 고려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밝혔다. 과거 히어로즈가 선수 장사, 뒷돈 트레이드로 큰 물의를 빚었던 만큼 새 메인스폰서 키움으로선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메인스폰서 계약서엔 이미 비정상적인 선수 거래를 막기 위한 충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구단이 KBO가 승인하지 않은 선수 계약을 체결・이전하는 경우 광고료 지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이를 추가로 살펴본 A 구단 관계자는 “이 정도 안전장치면 비정상적인 선수 장사는 할 수 없다. 솔직히 구단이 왜 이런 계약서를 썼는지 잘 모르겠다”며 고갤 갸웃했다.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의무 통보와 정보 요구 및 실사권, 협의권, 그에 따른 페널티 조항이 있다면 이를 통해 구단과 선수단 운영, 재무 사항 등에 대해 충분히 경영간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위반할 경우엔 계약해지나 위약벌 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인 출신의 야구 관계자도 메인스폰서는 야구단 모기업과는 다르다. 구단 이름을 쓰는 조건으로 메인스폰서료를 지급할 뿐, 구단 운영이나 선수단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계약 내용으로 볼 때 키움이 메인스폰서를 넘어 야구단 모기업,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평했다.

재계약 협상 시 키움보다 높은 계약액 제시했던 넥센타이어의 이전 계약서엔 구단·선수단 운영, 재무 등에 개입할 수 있는 조항 일절 없어

넥센타이어는 키움증권보다 더 높은 계약액을 제시하고도 재계약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센타이어는 히어로즈가 가장 어렵던 시절 유일하게 손을 뻗었던 메인스폰서다. 넥센타이어는 메인스폰서 시절 히어로즈의 구단 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그래픽=엠스플뉴스)
넥센타이어는 키움증권보다 더 높은 계약액을 제시하고도 재계약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센타이어는 히어로즈가 가장 어렵던 시절 유일하게 손을 뻗었던 메인스폰서다. 넥센타이어는 메인스폰서 시절 히어로즈의 구단 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그래픽=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전 메인스폰서인 넥센타이어와의 계약 내용엔 구단 운영, 선수단 운영, 재무 등에 개입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던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이전 넥센타이어와 현재 키움의 연간 계약액은 100억 원으로 동일하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재계약 우선협상 당시 키움보다 높은 재계약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야구계 관계자는 대기업 지배 아래 있는 다른 구단과 달리 히어로즈는 야구를 잘 모르는 그룹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야구 전문기업’이란 게 최대 강점이었다. 덕분에 빠른 의사결정과 창의적 발상을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약을 통해 메인스폰서가 야구단 운영에 개입한다면, 히어로즈의 최대 장점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며 대체 누가 왜 어떤 의도로 이런 계약을 했는지, 이 계약을 통해 계약주체들이 어떤 이익을 취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히어로즈는 왜 이런 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키움과 히어로즈는 엠스플뉴스의 거듭된 질의에 계약서상 비밀 유지 조항이 있어, 계약과 관련된 어떤 확인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엠스플뉴스는 키움증권과 서울 히어로즈의 메인스폰서 계약에 대해 장기간 탐사취재를 진행했다.

배지헌, 김근한, 이근승, 박동희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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