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KBO리그 위기…800만 관중 무너지고 700만 관중 마지노선도 위태

-김경민 전 롯데 팀장 “야구장 광고 판매 동향 보고 위기 감지…최근 수년간 하향세”

-“기술 발전하고, 사회 변화하는데 프로야구는 그대로…새로운 세대 고객 니즈 충족해야”

-“입만 열면 '프로는 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고객인 팬들 어떻게 대했나”

-“프로야구 위기 해결책은 프로야구의 ‘플랫폼’화…지역사회, 젊은 세대와 연결하는 역할 해야”

지속 가능한 프로야구를 꿈꾸는 마케터, 김경민 전 롯데 팀장(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지속 가능한 프로야구를 꿈꾸는 마케터, 김경민 전 롯데 팀장(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지금 KBO리그는 전례 없는 위기다.

‘800만 관중’과 ‘최다 관중’ 샴페인을 터뜨린 게 엊그제지만, 이젠 관중 목표를 세우기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미 하향세는 감지됐다. 2019시즌 KBO리그 전체 관중 수는 728만 6,008명으로 2015시즌(736만 530명)보다도 적었다.

구단 수익도 내림세다. 지난해 야구장 광고 완판에 실패한 야구단이 나왔다. 산업으로서의 프로야구가 더는 전처럼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불길한 신호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프로야구는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야구계가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허둥대는 것과 달리, 800만 관중 축제가 한창일 때부터 일찌감치 ‘위기’를 예고한 이가 있다. KBO구단 역대 프런트 가운데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로 이름을 날렸던 김경민 전 롯데 자이언츠 사업2담당 팀장이다.

김 전 팀장의 어두운 예언은 당시만 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800만 관중이 깨진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의 목소리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늘고 있다.

김 전 팀장은 과거 롯데 재직 시절 LED 광고판을 최초로 도입했고, 그라운드 페인팅 광고와 익사이팅 존, 유니세프 유니폼 등 새롭고 참신한 시도로 KBO리그 마케팅 분야를 선도한 인물이다. 이후 프로배구단과 한국프로스포츠협회를 거쳐 2016년부터 KAIST 경영대학원에서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다.

엠스플뉴스와 만난 김 전 팀장은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밖에서 본 야구판은 여전히 과거에만 머물고 있다. 프로야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며 KBO와 구단들의 변화를 촉구했다. 프로야구의 존속을 위해선 야구장 밖으로 시야를 넓혀 새로운 세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야구를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김 전 팀장의 생각이다.

김 전 팀장은 비관론 속에서도 그래도 야구는 계속돼야 한다며 야구에 대한 사랑과 낙관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 힘을 보태고 싶은 의지도 강하다. 김 전 팀장이 생각하는 프로야구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LED 광고판, 그라운드 페인팅 광고, 익사이팅 존 창시…프로야구 마케팅 ‘마이더스의 손’

야구팬들의 큰 호응을 받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세프 유니폼(사진=롯데)
야구팬들의 큰 호응을 받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세프 유니폼(사진=롯데)

프로야구 관계자라면 누구나 아는 ‘스포츠 전문가’지만, 일반 스포츠팬들에겐 다소 생경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롯데 자이언츠 사업2담당 팀장으로 일했고, OK저축은행 프로배구단과 한국프로스포츠협회를 거쳐 지금은 KAIS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 MBA를 공부하고 있는 김경민입니다(웃음).

야구단이 첫 직장은 아니었지요?

대학(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서 졸업 뒤 롯데쇼핑시네마본부에서 근무했어요. 그러다 그룹 내 전환배치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자릴 옮겼죠. 어릴 때부터 워낙 야구를 좋아해 야구단에 오기 위해 나름 대단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웃음). 부산 국제영화제 업무 차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롯데 구단에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학창 시절 스포츠 의류 벤처사업 경력이 있다고 자기 PR도 열심히 했죠(웃음). 그게 통했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 2008년 중순 그룹에서 저를 롯데 자이언츠로 배치해주셨어요. 덕분에 약 6년 동안 제가 원하던 분야에서 일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첫 출근한 날 야구단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충격이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충격이었습니까.

그 반대였어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롯데쇼핑은 롯데 그룹 계열사 가운데 정점에 있는 조직이었어요. 다소 관료적인 면도 있었지만, 회장님과 직접 대면해 보고를 올리는 곳이다 보니 체계도 잡혀있고,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지는 않았죠. 그런데 자이언츠는 뭔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보고서나 기획서 등 각종 서류를 롯데쇼핑 기준으로 본다면 솔직히 수준 이하였어요. 또 하나 충격받은 건 몇몇 구성원들이 들려준 얘기였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2008년 전까지만 해도 한창 롯데가 ‘비밀번호’를 찍던 시절이었거든요. 야구장에 가도 사람 하나 없고, 관중 휴대폰이 울리면 벨소리가 야구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구성원들은 그 시절이 편했다, 재밌었다고 회상하는 게 놀라웠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꿀보직’이었군요. 드라마 ‘스토브리그’ 인물 중에 만사가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오는 마케팅 팀장의 표정이 연상됩니다.

그렇게 하고도 월급은 나오니까, 어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편안했겠죠. 하지만 정말로 꿈이 있고, 프로야구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일하기 괴로운 환경이었을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롯데쇼핑 시절 회장님 보고자료를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서, 제가 일하는 마케팅 파트의 보고자료 문서부터 싹 바꿨습니다. 그러다 2008시즌이 끝난 뒤, 제가 좀 더 주도권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어떤 계기입니까.

롯데 그룹에서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컨설팅을 통해 조직을 새로 구성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 위의 과장이 팀장으로 승진했고, 졸지에 저도 마케팅 파트에서 2인자가 됐습니다. 특히 'B2B(Business-to-Business)' 업무는 거의 제가 도맡아서 하게 됐어요.

고기가 물 만난 셈이었군요.

맞아요. 당시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특수로 야구장에 구름 관중이 몰려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직야구장에 2만 8천 관중이 꽉꽉 들어차곤 했죠. 그런데 야구장은 관중석 숫자가 정해져 있고, 객단가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잖아요. 'B2C(Business to Consumer')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매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맡은 광고, 프로모션 등 B2B엔 소비자 가격이란 게 없어요. 파는 쪽과 사는 쪽이 합의를 이루면 그게 정가가 됩니다.

그렇지요.

협상 과정에서 우리 쪽이 상품의 가치를 더 잘 어필해서 사는 쪽이 수긍하면, 5천만 원짜리 광고가 1억이 되고 3억짜리 광고를 5억에 팔 수도 있거든요. 또 저는 일을 대행사에 안 맡기고 직접 진행했어요. 같은 금액이면 좀 더 매출액이 높고 사회적으로 인지도 높은 기업, 큰 기업과 계약하려 했고요. 그래야 롯데 야구단의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결과,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롯데가 B2B 쪽에서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백네트 LED 광고판, 익사이팅 존, 유니세프 유니폼 등 각종 스포츠 마케팅 히트작이 쏟아져 나온 것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한창 물이 들어오는 시기였으니까요(웃음). 약간의 아이디어만 더해도 얼마든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겸손한 답변으로 들립니다. 백네트 LED 광고판은 어떻게 해서 도입하게 된 건가요.

그 전까지는 백네트 광고를 ‘롤링’ 방식으로 운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광고가 제대로 노출되고 있는지 TV 중계로 체크하고 있는데, 광고판에 뭐가 걸렸는지 두 번째 광고와 세 번째 광고 사이에서 멈춰 버렸지 뭐에요. 그때는 사직 홈경기가 60경기도 안 되는 시절이었는데, 한번 광고가 그렇게 돼버리면 광고주 입장에선 타격이 엄청나요.

아.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LED 광고판을 도입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죠. 그랬더니 나오는 얘기가 LED의 빛 때문에 경기 방해가 돼서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인천에 있는 한 전자업체에 찾아가 문의한 결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을 받았어요. 결과적으로는 LED 광고판 도입이 대박을 쳤죠. 요즘처럼 광고 따내기 어려운 시기면 몰라도, 그 당시는 한창 물 들어오고 노 저을 때였으니까요(웃음).

그라운드 페인팅 광고, 익사이팅 존을 도입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그라운드 페인팅 광고도 항상 갖고 있던 의문에서 출발했죠. 인플레이 구역 안에야 광고를 넣으면 안되지만, 라인 밖 파울지역에는 왜 광고를 안 할까? 안 될 것 없다. 거기서 출발해 페인팅 광고를 하게 됐어요. 익사이팅 존도 출발은 어릴 적부터 품었던 의문이었어요. 메이저리그 박찬호 선발경기 보면 관중들이 구장과 가까운 곳에 앉아서 선수와 말도 주고받고, 사인도 받고 하는데 왜 우리는 그물망으로 막아놨을까. 높은 그물망이 팬과 선수의 거리를 만들고, 팬들로 하여금 소외되는 기분을 갖게 한다고 봤어요. 이걸 없애자, 해서 2009년부터 도입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야구장 대부분이 익사이팅 존과 비슷한 형태의 관중석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팬들에게 ‘익사이팅’한 경험을 주고 싶단 생각에서 '익사이팅 존'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이제는 종류가 다양하죠. 프렌들리 존, 다이나믹 존, 익스트림 존 등이 생겼는데 그래도 많은 분이 '익사이팅 존'이란 이름으로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저로선 감사한 일이죠.


김 전 팀장님이 일했던 시기 롯데는 ‘잘 나가는’ 구단이었습니다. 성적도 좋았고, 마케팅도 잘하는 앞서 가는 구단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특수로 생긴 야구 붐의 혜택을 봤죠.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롯데는 프로야구를 ‘시장’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몇 안 되는 구단이었고,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으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국외 축구단을 비롯해 다른 분야 벤치마킹도 열심히 했어요.

“한국야구 위기? 시장에선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신호가 나왔다”

김경민 팀장은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연구하고 있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김경민 팀장은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연구하고 있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지난해부터 각종 강연과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꾸준히 ‘한국야구 위기론’을 주장했습니다.

사실 저는 롯데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수시로 구단 윗분들께 ‘지금 성공에 안주해선 안 된다. 위기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건의하곤 했어요. 당시엔 한국야구가 치고 올라가는 사이클이었지만, 곧 내리막을 탄다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였거든요. 그래서 마치 10만 양병을 주장하는 율곡 이이 같은 마음으로 ‘이대로는 위험하다’ ‘앞으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매달렸죠.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한창 KBO리그가 역대 최다관중 신기록, 8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던 시기였는데 어디에서 ‘위기’의 징후를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콘텐츠가 가진 시장 가치를 제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뭔지 아세요?

글쎄요.

광고판매 동향입니다(웃음). '프로야구'라는 콘텐츠의 산업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돈을 쓰는 광고주들, 이른바 ‘갑’들이 제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하거든요. 그래서 매년 시즌 개막할 때면 제일 먼저 야구장 광고 판매 동향부터 알아보곤 했어요. 그런데 800만 관중을 돌파한 2016, 2017년 지표를 살펴보니 상황이 지속해서 안 좋았어요. 광고주 수준도 갈수록 떨어졌고요. 그때부터 프로야구에 조만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KBO나 구단들이 800만 관중이란 숫자에 지나치게 도취했던 게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2015년이었나, 아산시 호서대학교에 스포츠 관련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나갔습니다. 제 딴에는 스포츠로 밥벌이를 할 분들이니까 당연히 프로야구를 좋아하겠거니, 생각했죠. 그래서 ‘롯데 팬 손들어보세요’ 하니까 아무도 들지 않더군요. 여기가 충청도라 그런가 싶어 ‘프로야구 좋아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했더니 손든 사람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음.

제가 야구를 좋아하고, 주위에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야구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면 큰 착각인 거죠. 800만 관중을 수시로 강조하는데, 그건 일 년에 야구장을 수시로 찾는 분들도 다 포함된 숫자잖아요. 실제 프로야구 팬의 수는 800만이 아닌 200만, 300만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오래전 ‘프로야구의 경쟁자는 프로축구가 아닌 영화관’이라고 설명한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최근에는 멀티플렉스 외에도 쇼핑센터, 콘서트장, 게임, 스마트폰 등 프로야구의 경쟁자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바꾼 것은 물론, 학자들이 연구했던 마케팅 이론까지 다 바꿔 놓았습니다. 제가 학부생 때 배웠던 것들을 요즘 다시 공부하는데, 맥락은 비슷할지 몰라도 달라진 점이 너무 많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과거엔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고,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식이었죠. 지금은 시장을 기업이 리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객이 시장을 주도하죠.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먼저 고객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고객을 등한시하는 프로 구단과 선수들의 태도는 옛날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잊을만하면 ‘팬서비스 논란’이 터지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물론 선수로선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입만 열면 ‘프로는 돈’이란 말들을 하잖아요. 프로가 비즈니스란 걸 알고 있단 얘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팬들에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까. 우승한 뒤 사인해달라는 팬들을 무시하고, 사인용지 쌓아 놓고 가져가라고 하고.

최근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한 예를 들어 볼게요. 통신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안경처럼 가벼운 형태의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장비가 반드시 나올 겁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도 마치 야구장 관중석에 있는 것과 똑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열립니다. 예전 ‘무한도전’에 보면, 유재석씨 눈을 가리고 봉고차에 태운 뒤 헬기 소리만 들려줬는데도 진짜로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줄 알고 벌벌 떨잖아요. 그 정도로 속이기 쉬운 게 인간의 감각입니다.

기억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는 야구장에 가지 않아도 메이저리그, 일본야구, 프리미어리그처럼 수준 높은 경기장에서 제일 비싼 관중석에 앉아 보는 것처럼 즐길 수가 있어요. 물론 다른 관중들과 함께 노래하고 응원하는 게 좋은 사람이야 경기장을 가겠죠. 하지만 경기만 보기 원하는 사람은 굳이 안 가도 그만이거든요. 앞으로는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경기장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중에도, KBO와 구단들은 여전히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습입니다. 일례로 KBO가 유튜브(Youtube)에서 영상 저작권 단속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데 대해서도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있더군요.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 때문이겠죠. 개인적 생각으로 팬들이 영상이나 ‘짤방’을 사용 못 하게 막는 건 장기적으로 독이 될 거라고 봅니다. 메이저리그도 원래는 홈페이지로만 보게 하다가 결국엔 풀어버렸잖아요. 그 이후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서 MLB 영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KBO도 생각이 있다면 확대 재생산할 수 있게 해줘야죠.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한 명이라도 더 보게 될 텐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제는 시장의 주권이 고객에게 주어진 시대입니다. 고객 위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건 미련한 생각이고, 실제로 통제할 수도 없어요.

“프로야구 위기 탈출, 경기력만이 해법 아니다…고객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롯데 시절 방송과 인터뷰하는 김경민 전 팀장. 지속가능한 프로야구를 위한 김 팀장의 연구와 노력은 계속된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롯데 시절 방송과 인터뷰하는 김경민 전 팀장. 지속가능한 프로야구를 위한 김 팀장의 연구와 노력은 계속된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여겼던 ‘위기’가 지난 시즌 마침내 현실이 됐습니다. 800만 관중이 무너지고, 2015년(736만)보다 적은 728만 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데 그쳤습니다. 2020년 KBO리그는 어떻게 될까요.

더 안 좋겠죠. 불경기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외식비, 문화생활비 아니겠어요. 야구장 자체를 안 가거나, 야구장에 오더라도 예전처럼 먹고 마시는 데 많은 돈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지난해 수도권 모 구단은 광고 대행사가 야구장 광고를 맡았는데, 3억 원 이상 적자를 본 것으로 합니다. 지방 모 구단은 아예 시즌 중반까지 야구장 광고를 다 팔지 못했단 얘기도 있어요. 나중에 가격을 깎아서 간신히 완판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위기는 기업들이 제일 먼저 압니다. 어디가 핫한지 제일 먼저 아는 것도 기업이죠. 회사들이 요즘 어디에 광고를 집중합니까. 유튜브 같은 온라인에 몰아줍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야구가 위기란 건 KBO와 구단을 비롯한 모두가 아는 현실이 됐습니다.

과거 야구 붐이 한창인 시절엔 팬들을 야구장이란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야구장 관중석 절반이 빈자리인 시대죠. 과거처럼 이미 야구장 안에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마케팅은 의미가 없을지 몰라요. 앞으로는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 위해, 야구장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KBO나 구단들은 ‘좋은 경기력’이 흥행의 해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좋은 경기력이요? 팬들은 이미 좋은 경기력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클릭 한 번이면 메이저리그와 프리미어리그, NBA에서 펼쳐지는 좋은 경기력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경기를 보면서 눈이 높아진 팬들에게 KBO리그가 ‘경기력’만 강조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꾸 다른 분야의 예를 들게 되는데, 영화도 꼭 블록버스터나 웰메이드 영화만 히트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예산 영화나 B급 영화도 히트작이 있죠.

마찬가지입니다. 야구 역시 경기력은 메이저리그만 못하더라도, 국외리그가 갖지 못한 다른 효용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거거든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나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이 미국, 야구보다 월등히 야구를 잘해서 국민들이 열광한 게 아니잖아요. 전력은 좀 떨어져도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고, 약자가 강자를 꺾고 올라가는 스토리텔링이 감동을 주고 야구 인기로 이어진 것 아닐까요.

결국은 프로야구의 고객인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하겠군요.

맞습니다. 고객에 대한 이해가 먼저입니다. 그들이 왜 야구장에 오지 않는지, 야구장에 그들이 원하는 니즈와 연결될 수 있는 게 있을지 알려면 먼저 고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과거 프로야구가 호황일 때와는 시장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해 전에는 프로야구가 수풀이었다면, 지금은 자갈밭이 됐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수풀로 생각하고 자갈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 효과가 없는 거죠. 바뀌어야 합니다. 비어있는 야구장을 채워야 하고, 기존에 야구장에서 주지 못했던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고객에서 출발해 계속 연구하고 하나하나 답을 찾아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프로야구 위기 해법…지역사회, 새로운 세대와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 해야”

김경민 전 팀장은 끊임없는 연구와 함께 강연 활동으로 자신이 쌓은 스포츠 마케팅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김경민 전 팀장은 끊임없는 연구와 함께 강연 활동으로 자신이 쌓은 스포츠 마케팅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다(사진=김경민 전 팀장 SNS)


최근 대학원에서 프로야구 위기 탈출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야구장과 프로야구단을 ‘플랫폼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플랫폼이라. IT 업계에서 사용하는 개념인데, 야구와는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최근 프로야구단이 제일 골치를 앓는 문제 중 하나가 ‘야구장’입니다. 세금으로 지은 야구장을 프로야구단이 적은 비용으로 독점 사용하는 데 대해 지방자치단체, 시의회, 시민단체의 거부감이 워낙 큽니다.

최근에만 해도 창원NC파크 건립 과정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엔 정반대에요. 지역사회, 커뮤니티 전체가 연고지 프로 스포츠단을 애정을 갖고 바라봅니다. 뉴욕 양키스만 해도 양키스타디움을 상징적 액수인 1달러만 내고 거의 무상으로 사용하잖아요. 야구단을 지역사회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거죠. 프로스포츠단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연고지 이전이라도 한다 치면 지역 전체에서 난리가 납니다. 그만큼 프로스포츠단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역사회에 ‘왜 프로야구 팀이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한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되겠네요.

한번은 부산에서 공청회가 열려 참석했는데, ‘세금으로 지은 야구장을 왜 시민이 이용하지 못하나’ ‘롯데가 부산을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나’ ‘왜 세금으로 지은 야구장에서 롯데가 수익사업을 하느냐’는 십자포화가 쏟아졌습니다. 야구팬이 아닌 사람들 입장에선, 야구장에서 롯데가 경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민들이 잔디 위에서 공차고 놀고 캠핑하게 개방하는 게 ‘삶의 질’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거죠.

프로야구를 비롯해 모든 한국 프로스포츠단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구단과 야구장의 플랫폼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구단 입장에서 지역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가장 쉽고 짧은 시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교육’ 아닐까요. 부모들이 야구는 싫어해도 교육엔 관심이 있고, 아이들 역시 자기 미래가 달렸으니 교육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학생을 모집해서 프로스포츠 비즈니스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어떨까요. 100명을 교육해서 그 100명이 야구단의 ‘마케팅 전사’로 키우는 겁니다. 그들과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다 보면 기존의 ‘복지부동’ 구성원들은 생각도 못 할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과 가족들이 야구단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고, 지역사회에서 채용도 이뤄질 수 있을 겁니다.

구글이 검색만 제공하는 회사가 아닌 것처럼, 야구단도 야구만 하는 회사를 벗어나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겠군요.

야구라는 콘텐츠에서 다양한 사업을 파생할 수 있다는 거죠. 마케팅, 경영지원, 홍보, 세이버메트릭스 등 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잖아요. 만약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다면 벤처로 독립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지역 사회에서 야구단을 보는 시각도 바뀔 겁니다. 시민단체의 입장도 우호적으로 바뀔 수 있고요. 야구장 짓는 문제 같은 것도 훨씬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단순히 야구장에서 먹고 즐기고 만세 부르는 데서 끝나면 미래가 없어요. 야구를 다른 가치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역사회와, 기업과, 학교와, 팬과,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야구단을 플랫폼 삼아 하나로 연결될 방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한국 프로스포츠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왜냐. 밀레니얼 이후 세대들이 야구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주위만 봐도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 40대입니다. 야구 기사 포털 댓글 분포를 봐도 30세 이상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야구단은 우리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유지되다가, 그 이후엔 사라질 가능성도 있어요. 말로만 위기라고 할 게 아니라 정말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야구만 보지 말고 리테일 같은 야구 외 분야를, 실질적인 마케팅을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야구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야구장 안이 아닌 야구장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군요.

야구단, 축구단, 농구단만 우리의 경쟁자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고객의 제한된 시간을 누가 많이 차지하느냐, 그 싸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앉아있는 이 카페도 야구의 경쟁자고, 온라인 게임도 야구의 경쟁자가 될 수 있어요. 과연 우리 프로야구가 고객들이 정말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걸 제공하고 있는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이게 제가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대학원 연구 과제로만 남겨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프로야구 현장에 돌아와 야구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탤 생각은 없으신가요.

조만간 MBA 과정이 모두 끝납니다. 갈수록 고민이 많아져요. 최근 프로스포츠의 상황이나 앞으로의 전망을 생각하면, 다시 프로스포츠로 돌아가는 건 제 장래에 별로 좋지 않을 선택일 것 같거든요. 차라리 그간의 경험을 살려 절대 안 망하는 사업 쪽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야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제가 사랑하고 몸담았던 프로야구가 이대로 몰락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만약 프로야구가 위기에서 벗어나 산업으로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탤 기회가 제게 주어진다면, 거절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야구는 계속돼야 하니까요.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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