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 “장타 욕심에나도 모르는 새 ‘나다운 야구’ 잊고 있었다”

-“투수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 상대를 질리게 하는 타자로 돌아갈 것”

-“올바른 방향 설정이 중요해…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

-“지난해 팬들께 실망 드렸지만, 다시 ‘손아섭다운’ 야구 보여드릴 것”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시즌 준비에 한창인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시즌 준비에 한창인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호주 애들레이드]

‘다시 손아섭다워지겠다’.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의 2020시즌 목표는 ‘손아섭다움’의 회복이다. 특유의 열정과 강한 근성, 끈질기게 투수를 괴롭히는 집요함, 상대를 숨 막히게 만드는 손아섭만의 야구를 올 시즌 다시 한 번 보여주겠단 각오다.

지난해 손아섭은 풀타임 1군 선수가 된 이래 가장 힘든 시즌을 보냈다. 2009시즌 이후 10년 만에 처음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고, 꾸준히 4할대를 유지했던 출루율도 3할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리그 전체를 강타한 공인구 여파도 있지만, 장타 욕심을 부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아섭다움을 잠시 잊었었던 게 원인이란 진단이다.

냉철한 자기객관화를 통해 손아섭은 지난 시즌 실패를 딛고, 앞으로 남은 야구 인생의 절반 동안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았다. 엠스플뉴스는 호주 애들레이드 스프링캠프에서 2020시즌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손아섭과 만나 그의 진심에 귀를 기울였다.

“2013, 2014년의 가장 손아섭다운 모습 되찾겠다”

손아섭의 2013시즌 모습. 그가 가장 손아섭다웠다고 기억하는 시절이다(사진=롯데)
손아섭의 2013시즌 모습. 그가 가장 손아섭다웠다고 기억하는 시절이다(사진=롯데)

호주에서 하는 스프링캠프는 이번이 처음이죠. 보름 동안 호주에서 지내보니 어떻던가요.

좋습니다. 뭔가 평화롭고, 사람들도 여유롭고요. 날씨가 좋아 운동하기에도 환경이 괜찮습니다. 처음 와봤지만 지금까지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이번 캠프엔 어떤 목표를 갖고 왔는지 궁금합니다.

타격 메커니즘에 변화를 주려 합니다.

타격 메커니즘이요?

2013년, 2014년 이때쯤으로 돌아가는 변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안 해본 타격을 새롭게 시도하는 변화가 아니라, 가장 저다운 원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가장 손아섭다운 모습’이라.

지난 1월 외국에서 개인 훈련을 하면서 쭉 돌이켜 봤어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제가 한 야구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가장 나다웠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생각해 봤는데, 2013년과 2014년이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멘탈적인 부분이나 스윙 메카닉이나 모든 면에서 제일 자신감이 넘칠 때가 그때였던 것 같아요.

2014시즌은 손아섭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기도 합니다.

물론 100% 완벽하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 몰라요. 그래도 그때의 느낌을 살려서, 다시 싸울 준비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캠프에 왔고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가 중요하겠지만, 현재까지 연습 과정은 만족스러워요.


사실 2014시즌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리그 최상위권 타격 성적을 유지했잖아요. 특별히 2013, 2014시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장타 욕심을 내기 시작한 뒤로 얻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홈런이 두 배로 증가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어차피 제가 홈런타자는 아니잖아요. 투수 입장에선 2013, 2014년 때의 제가 더 승부하기 까다로운 타자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제 느낌이지만.

실제 당시 손아섭 선수를 상대한 투수들의 느낌도 그랬을 겁니다.

좀 더 제 자신이 타석에서 만족도가 높은 스윙을 하고 싶고, 약점이 없다고 느껴지는 타자, 상대 투수 입장에서 더 까다로운 타자가 돼야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눈에 보이는 홈런 수보단 실제로 상대가 받는 까다로운 느낌, 상대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중요할 것 같아요. 원래 제 목표가 뭐였는지 아세요?

들어볼까요.

골고루 다 잘하는 선수가 목표였어요. 출루면 출루, 타율이면 타율, 득점이면 득점, 도루면 도루, 홈런도 15개 이상 기본은 때리는 타자. 어느 하나가 S급으로 특출하진 않아도 골고루 A급의 능력을 보여주는 타자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홈런은 20개 이상씩 때려내지만, 출루나 타율이나 득점 같은 나머지 부분이 조금씩 줄어드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까 얘기한 ‘손아섭다운 야구’가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계속 출루하고, 커트하고 커트하면서 안타 치고, 그러다 실투가 들어오면 홈런도 때리고. 투수가 봤을 때 던질 공간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야구였어요. 투수와 타석에서 싸울 때도 예전엔 공을 7, 8개씩 던지면서 힘들게 하는 상황이 많았다면 지금은 3구 안에 쉽게 끝나는 승부가 많아졌습니다. 뭔가 저 손아섭이 상대하기 쉬운 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장타 욕심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있던 부분이 뭔지, 제가 제일 까다로운 타자였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돌아보게 된 거죠. 그때 느낌을 다시 찾는 게 제가 가야 할 길일 것 같아요.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올바른 방향의 중요성 깨달아”

손아섭은 이대호와 함께 롯데 팀 내에서 최고의 동체시력, 협응력을 자랑한다. 사진은 비전 트레이닝 테스트를 받는 손아섭(사진=롯데)
손아섭은 이대호와 함께 롯데 팀 내에서 최고의 동체시력, 협응력을 자랑한다. 사진은 비전 트레이닝 테스트를 받는 손아섭(사진=롯데)

지난 시즌엔 덜 날아가는 공인구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타자들이 많았습니다. 달라진 환경에선 과거 ‘손아섭 스타일’ 야구가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시즌을 보내면서 더 크게 느낀 게 사실입니다. 잘못된 길이란 게 사실 가보기 전에는 모르거든요. 슬픈 일이지만, 내가 똑바로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는 직접 가봐야 알게 된단 말이에요. 저도 그랬고 2, 3년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안 좋은 길인지도 모른 채 갔었던 거죠. 그런데 지난 시즌을 계기로 ‘내가 길을 잘못 가고 있구나’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제 원래 목적지는 거기가 아닌데 말이죠.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는 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요. 열심히 하다보면 잘 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야구가 그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지는 않는다는 걸 정말 작년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노력으로 치면 지난 시즌만큼 열심히 한 시즌도 없었거든요. 경기 마치고서도 매일 실내 훈련장에서 운동하고 또 운동했는데 그게 정답은 아니었던 거죠.

방향 설정이 정말 중요하군요.

안 좋은 길로 가고 있는데,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 한들 원하는 목적지가 나오겠냐는 거죠. 물론 프로 선수라면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보단 좀 더 나은 방향과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시즌은 제게 의미 있는 시즌이었습니다. 제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지난 시즌을 통해서 많이 느끼고 깨달았으니까요.

지난 시즌 부진이 오히려 앞으로 롱런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네요.

아직 야구할 날이 한참 남았잖아요. 제 야구인생은 이제 절반 정도 왔을 뿐입니다. 앞으로 남은 절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물론 또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다시 올바른 길로 가야죠. 저는 계속해서 최종 목적지까지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할 겁니다.

설마 작년만큼 힘든 시즌이 앞으로 또 있을까요.

앞으로도 또 위기는 올 거에요. 안 올 수가 없죠. 그래도 다시 위기가 온다면, 이번 경험을 토대로 그때는 좀 더 빠르게 바른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한 건 저는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고 실패하고 고비를 이겨내면서 나아갈 거라는 점입니다.

“올 시즌 가을야구가 목표…손아섭다운 야구 보여드릴게요”

새로운 희망으로 2020시즌을 준비하는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새로운 희망으로 2020시즌을 준비하는 손아섭(사진=엠스플뉴스)

2013, 2014년 당시의 손아섭과 지금의 손아섭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야구를 보는 시야나 144경기 풀타임을 치를 수 있는 컨디션 조절 능력, 몸 관리하는 방법, 타석에서 투수와 수 싸움 같은 부분은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럼 그때보다 부족한 부분은요.

그때는 정말 멋모르고 자신감 하나로 야구했습니다. 두려움 없이 야구했던 시절이죠. 지금은 그때에 비해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나. 스윙 메커니즘도 그 시절보다 못한 것 같고요.

2013, 2014년 손아섭의 장점과 지금 손아섭의 장점을 합하면 정말 무서운 타자가 되겠네요.

지금의 야구를 보는 시야와 컨디션 조절하는 노하우에 좋았을 때의 저다운 스윙을 찾는다면,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가 도입한 첨단 장비, 외국인 코치, 새로운 훈련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낍니다.

손아섭 같은 선수도 더 배울 게 남아 있었나요.

이번 캠프에서 새 감독님, 새 코치님들과 운동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아,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나는 왜 여태껏 20년 넘게 야구하면서 이걸 몰랐지 하고 새삼 깨달아요. 결과는 10월이 돼야 알 수 있겠지만, 제겐 또 다른 공부가 되는 거죠.


올 시즌 롯데를 향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정말 달라진 롯데를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해 저희가 팬들께 큰 실망을 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가을야구를 목표로 정말 잘 준비하고 있어요.


가을야구요.

지금 이 시기엔 당연히 모든 팀이 포스트시즌, 우승을 목표로 준비하는 시기잖아요. 10개 구단이 다 마찬가지고 저와 롯데도 마찬가지에요. 작년에 꼴찌를 했다고 포스트시즌,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팬들이 야구장에 오셨을 때 결과와 별개로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 ‘재미있게 보고 간다’ ‘수고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경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승패는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대신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건 컨트롤할 수 있어요.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은 하늘에 맡기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올 시즌 목표대로 ‘손아섭다운 야구’를 다시 보여준다면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저다운 모습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상대 입장에서 까다롭고, 뭘 던져야 할지 모르겠는 타자가, 상대를 정말 질리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웃음).

가장 손아섭다운 손아섭의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연습 과정은 좋아요. 중요한 건 실제 경기 때 변화한 타격 메카닉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지입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이 경기 때도 잘 이뤄진다면, 올 시즌엔 팬들께 정말 손아섭다운 야구를 다시 한 번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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