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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이광환 감독 “서울대 야구부에 야구 기술 아닌 인생을 가르쳤다”

  • 기사입력 2020.02.28 13:25:03   |   최종수정 2020.02.28 13: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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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10년 감독 생활 마치고 퇴임

-‘베이스볼 아카데미’로 시작한 서울대와 인연…“야구 통해 멤버십, 인성 가르쳐”

-“야구부 연 예산 150만 원…물심양면 도움 준 고마운 분들 덕분에 유지”

-“1등이 익숙한 서울대 학생들, 야구 통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배웠을 것”

 

10년간 서울대 야구부를 지도한 이광환 감독(사진=서울대 야구부) 10년간 서울대 야구부를 지도한 이광환 감독(사진=서울대 야구부)

 

[엠스플뉴스]

 

이광환 전 서울대 감독은 KBO리그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이긴 감독도, 가장 많이 우승한 감독도 아니다. 이기는 게 전문인 감독은 따로 있다. 통산 24시즌 동안 1,567승(최다)을 따낸 김응용 전 감독도 있고, 통산 1,384승을 거둔 김성근 전 감독도 있다. 이 전 감독의 통산 승수는 608승으로 역대 10위다. 단지 많이 이기는 게 최고의 감독을 가리는 조건이라면, 이 전 감독은 최고의 명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야구에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지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이 전 감독을 첫손에 꼽는다. 이 전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주역이다. 

 

강압적인 지옥훈련과 마구잡이식 투수기용이 주를 이뤘던 한국야구에 자율야구와 투수 분업화를 도입했고, ‘마사지해주는 사람’으로 여겼던 트레이너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1・2군 분리 운영과 육성 시스템이 자리 잡은 것도 이 전 감독의 공이다. 언제나 한발 앞섰던 이 전 감독의 시도는 1994년 LG의 우승으로 꽃을 피웠고, 이제는 한국야구에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돌아보면 이 전 감독은 언제나 야구를 통해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는 야구계의 후진적 시스템을 개혁했다. 여성과 어린이 팬이 늘어나야 야구가 산다는 일념으로 여자야구와 티볼에 헌신했다. 야구 지도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리고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10년간 맡아, 앞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들에게 야구 사랑을 심었다.

 

이 전 감독은 건강 문제로 지난해를 끝으로 서울대 감독에서 물러났다. 아내와 함께 제주도 서귀포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다. 지난 2월 22일 서울대에선 야구부원과 졸업생 80여 명이 모여 이 전 감독의 퇴임식을 열었다. 10년간 야구보다 중요한 ‘인생’을 가르쳐준 이 전 감독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자리였다. 

 

“물 뿌리고, 돌 줍고…야구 통해 ‘멤버십’ 가르쳤다”

 

서울대 야구부에 막 부임했을 당시 이광환 감독의 모습(사진=엠스플뉴스) 서울대 야구부에 막 부임했을 당시 이광환 감독의 모습(사진=엠스플뉴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작년 겨울 통화했을 때보다 목소리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산에 매일 다니다 보니 좋아졌나 보네(웃음). 여기 내가 사는 동네에 좋은 숲길이 있어서, 맨날 올라갔다 내려오곤 해요. 지인들도 만나고 하며 지냈는데, 요새는 여기도 유행병 때문에 사람을 잘 만나질 못해. 제주에도 확진 환자가 나와서 난리다. 내는 기관지가 안 좋아서 걸리면 안 된다.


10년 동안 몸담았던 서울대 야구부를 그만두셨습니다.

 

내가 몸이 건강하고 했으면, 학생들 계속 돌봐줬을 텐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내가 폐가 안 좋아서, 공기가 나쁜 곳에선 지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야구부 감독도 내려놓고 여기 공기 좋은 제주도 서귀포로 내려왔지. KBO 육성위원장 자리도 내려놨어요.


22일에 야구부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독님 퇴임식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 어느새 10년이 후딱 지나갔네. 졸업생들도 많이 오고, 교수님들도 오시고 해서 다들 얼굴 보고 왔다. 실은 그런 자리인 줄은 생각도 못 하고, 그냥 ‘한번 다녀가시라’ 하길래 졸업생들 얼굴이나 볼라고 갔더니 많이 준비해 놨더라고(웃음). 선물도 많이 준비해 놓고. 우리 애들과 사진도 찍고, 잘 보내고 왔다. 


오랜만에 제자들과 만나서 반가우셨겠습니다. 

 

애들이 비록 야구는 못했어도, 다들 졸업해서 잘살고 있다. 제자 중에 판검사도 있고 행정고시, 외무고시 패스한 친구들도 나오고 했으니 그게 기쁨이고 보람이지. 야구 한 사람들도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사실 10년 전 처음 서울대와 인연을 맺은 건 야구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베이스볼 아카데미’ 때문이었지. KBO에서 야구 지도자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기관을 만들라 해서 원장으로 파견 나가 있었다. 그래 있으면서 야구부 학생들 하는 걸 보는데 장비도 빈약하고, 운동장도 열악했었어. 그래 안 되겠다. 내가 학교에 있는 김에 좀 도와야겠다 싶어 야구부 감독을 하게 됐지. 어디 가면 감독이라고 안 하고 ‘도우미’라고 했다(웃음).


처음 야구부를 맡으셨을 때 선수들 실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요.

 

서울대 안에 야구 동아리가 많아. 총 35개 정도 동아리가 있다. 그런데 야구부가 동아리보다도 약했어. 동아리에 들어갈 실력이 안 되니까 야구부에서 배우려고 들어오고 하기도 했다. 여기서 야구하다가 졸업해서 대학원에 가면, 거기서 다시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하고 그런다.


처음 야구부 감독 맡으셨을 때, 혼자 운동장에서 호스로 물 뿌리고 돌멩이를 주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운동장이 하도 나빠가 지고. 거기 옆에 관악산이 돌산이라 그런가 밑에 돌이 많아. 근데 야구장은 돌이 많으면 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다치지 않나. 야구장 땅이 나쁘면 선수들이 겁나서 야구를 못한다. 안 되겠다 해서 돌도 줍고 흙도 고르고 먼지 안 나게 물도 뿌리고 했다.  학생들 수업 마치고 나오면 5시부터 연습을 하는데, 나는 베이스볼 아카데미 일 끝나고 서너 시부터 운동장에 나와서 땅 고르고 흙 고르고 했지.


사실 야구부 활동을 하려면 땅 고르고 물 뿌리는 게 기본 아닙니까.

 

이 친구들은 일반 학생들이라 땅 고르는 법을 잘 몰라. 그래 내가 하면 애들도 따라 배우고, 가르치기도 하고 했지. 또 보면 학교 길바닥에 쓰레기도 많다. 버리는 사람은 많은데 줍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 내가 주우면 학생들도 따라서 줍고 했지. 나는 우리 야구부 애들이 사회에 나가도 그런 걸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체생활하려면 궂은일도 할 줄 알아야지. 다들 학교 다닐 때 공부만 했지, 그런 것까지 배우진 못한 것 같애. 


나중엔 변화가 있던가요.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항상 강조하고 하니까 우리 야구부 학생들은 이제 몸에 배어서 잘해요. 다들 사회에 나가면 리더가 될 친구들이잖아. 그런데 다들 리더십만 말하지 멤버십은 모른다 이거야. 협동하고 조직에 적응하는 걸 못하니까 자꾸 문제가 발생하잖아. 야구를 통해서 협동도 배우고, 희생과 인내도 배우고, 체력도 단련하고. 야구 기술보다는 인성을 배워야 한다. 내 생각은 그래요.


“서울대 야구부 승리? 한국시리즈 10번 우승보다 힘들다”

 

이광환 감독은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사진=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은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사진=서울대 야구부)


모든 아마추어 야구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승리’입니다. 하지만 서울대 야구부는 이기는 걸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내가 학생들한테 그래요. 너가 서울대 들어올 때 공부하러 왔지 야구하러 왔느냐고.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건 좋은데, 야구보다는 학업이 일 순위라고 항상 강조해요. 그래서 학점이 3.5 이하면 야구부 활동도 못 하게 했다. 성적 떨어지면서 할 필요 없다. 성적이 어느 정도 돼야 야구를 할 수 있게 했어요.


그럼 야구가 두 번째인가요.

 

아니지. 애들 보면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더라고. 그것도 자기 생활이잖아. 그래서 알바도 시간 되면 내가 보내줬지. 그다음에 세 번째가 야구다. 첫째는 학업, 둘째는 알바, 셋째가 야구니까 그 순위대로 해도 된다. 그리고 데이트는 네 번째다(웃음).

 

하하. 

 

내가 그렇게 허가를 해줬으니까 학생들이 다들 알바 가야 되면 가고, 수업 있으면 가고, 공대생들은 밤에 실험하러 간다고. 출석일지에 각자 나올 수 있는 날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게끔 했어요. 대신 화요일과 토요일은 가급적 전원이 다 나오도록. 그날은 전원이 나와서 홍백전도 하고 외부 사회인 팀과 경기할 수 있게 하고, 그 외에는 시간 되는 대로 와도 된다 했지.


훈련 스케쥴 짜는 게 쉽지 않으셨겠네요.

 

출석일지를 살펴보고 ‘오늘은 내야 쪽이 많이 나오는 날이구나’하면 내야 중심으로 연습하고, 그렇게 출석 학생에 맞춰서 스케쥴을 만들었지. 보통 일주일에 많이 나오면 5번 정도, 대개는 서너 번씩 나오곤 했다. 그런 룰을 만들어 놓고 10년을 해왔으니까, 이제는 다들 잘 적응한 것 같아요.


다른 대학 야구부 상대로 이기는 게 쉽지 않았겠습니다.

 

이긴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바둑 9단과 1급이 게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는 일단 학교 수업 따라가는 것만도 힘들어요. 야구만 할 수가 없다. 엘리트 선수들은 훈련량도 많고 합숙훈련도 하지만 서울대는 그게 안 돼요. 그러다 보니 고교 때 야구 좀 했던 친구들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지는 걸 목표로 경기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도전은 하지. 이기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게 목표가 돼서 애들을 죽어라 훈련시키고, 수업도 안 시키고 내 욕심을 위해 하다 보면 부원들이 다 고장 나요. 다른 학교는 밥 먹고 야구만 하는 애들이고, 우리는 대학에 들어와서 야구를 배운 애들인데 되겠나. 1학년 때 입부해서 야구 배우다 보면 군대 가고, 군대 다녀와서 할 만하면 졸업이고. 그런데 야구 2, 3년 해서 10년 이상 한 애들을 이길 수 있나. 


공부로는 1등만 하던 학생들로선 진다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 부원들이 모든 면에서 엘리트 선수들한테 안 되지만 해보려는 의지들은 좋다. 다들 지는 거 싫어하고, 지면 억울해하고 한다. 그래서 다들 공부를 잘하는구나 생각도 들어요. 경기에서 지면 엄청 분하게 여겨요. ‘할 수 있었는데’ 이 소리 하고. 내가 볼 때는 턱도 없는데(웃음). 그런 정신은 좋다. 그렇게 지면서 세상 살면서 질 때도 있구나 느끼는 거지.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배우는 거다.

 

그렇군요.

 

우리 수학과에 천재 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은 예일대학교에 박사 코스 밟아서 간 친구가 있는데, 성적표가 항상 올 A+이야. 근데 야구부에 들어왔는데, 야구는 처음인 기라. 6개월쯤 됐나, 방망이가 자기 맘대로 안 맞거든. 항상 고민을 하는 거야. 내 물어봤어요. 너는 다 A 받고 과에서 탑인데 뭐가 고민이냐. 그랬더니 ‘방망이가 안 맞아요’ 그러더라고. 그래 내가 웃었는데, 다들 나름대로 야구하면서 ‘내 뜻대로는 안 되는구나’ 많이 느꼈을 거다.

 

이길 뻔한 경기는 없었습니까.

 

2, 3년 전에 한번은 9회초까지 이긴 적이 있었어. 근데 애들 체력이 부족하고, 투수가 안 되니까 9회말에 역전을 당했어요. 어쩌다 한 번 있는 경기고, 상대가 신생팀이라서 가능했던 경기지. 이긴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한국시리즈 10번 우승보다 힘들다(웃음).

 

선수들만 아니라 감독님에게도 진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잖아요. 역대 프로야구 감독 다승 10위, 개인 통산 608승을 거둔 명장이 매번 지는 야구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물론 지면 나도 열 받을 때가 있지. 잘하다가 에러 나오고, 엉뚱한 플레이나 납득 안 되는 플레이가 있어요. 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때 잠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웃어야지. 마음 수양 많이 했지(웃음).

 

10년간 총 전적이 어떻게 됩니까.

 

그거는 따질 필요 없다(웃음). 한 번도 못 이겼으니 0승이지. 그런 야구판의 기준을 자꾸 이쪽에 비교하면 안 돼. 우리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는데, 서울대 학생들은 그게 목적이 아니다. 야구라는 단체운동을 통해 멤버십을 배우고, 그 경험이 사회에서 각자의 길로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게 내 마음이다.

 

“야구부 연 예산 150만 원, 도와준 분들 없었으면 운영 못 했죠”

 

2월 22일 열린 이광환 감독 퇴임식. 졸업생들과 정운찬 KBO 총재 등 많은 인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사진=서울대 야구부) 2월 22일 열린 이광환 감독 퇴임식. 졸업생들과 정운찬 KBO 총재 등 많은 인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사진=서울대 야구부)

 

서울대 야구부 감독 1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누군가요.

 

다 자식 같고 손자 같고 이쁘지. 매니저 여학생들도 많이 있었어요. 다들 딸 같기도 하고. 지난해엔 야구부 졸업생 셋이 하나는 검사, 하나는 외무고시, 하나는 행정고시를 패스했어요. 그런 게 제일 기뻐. 사실 요새는 서울대 학생들이라도 다들 취직하기가 힘들어요. 근데 어디 회사 면접에 가면 이력서에 ‘서울대 야구부’ ‘야구부 매니저’를 적는다고. 그러면 면접관이 제일 먼저 그거부터 보고 물어본대요. 

 

야구부 경험이 ‘스펙’이네요.

 

그렇지. 면접관이 ‘야구부에서 어떤 활동을 했냐’ ‘이광환 감독에게 뭘 배웠냐’ 물어본다더라고. 사회에서 야구부 경력을 높게 평가해주는 거지. 그런 얘길 들으면 흐뭇하고. 서울대 학생들이 다들 머리는 좋은데, 공부만 해서 협동심이나 팀플레이가 없다는 소리를 듣잖아.  그런데 개인적으로 아는 기업인들과 만나면 다들 야구부원들이 단체생활 경험 있다는 점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고. 큰 스펙이지. 

 

야구부를 도와준 고마운 분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많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야구부에 나오는 예산이 연 150만 원이야. 1학기에 75만 원, 2학기 75만 원인데 야구는 돈이 많이 들어가잖아.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주변 친구들,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이름을 말씀하시면 빠뜨리지 않고 적겠습니다(웃음).

 

어디 보자. 여자야구연맹 회장 하셨던 정진구 회장. 그리고 제약회사인 CMS 운영하는 김부근 대표이사가 많이 도와줬고. 또 야구용품 업체를 운영하는 유부근 사장(빅라인 스포츠)도 우리 장비가 부족할 때마다 도와줬다. 공도 주고 배트도 주고. 배트가 모자라면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얻어다 쓰기도 했지. 졸업생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도와주기도 하고. 유니폼 맞출 돈이 없을 때도 누가 한 벌씩 해주고. 우리는 졸업하면 유니폼 반납해서 새로 온 학생들이 물려 입고 했어. 말하자면 끝이 없다.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맡기 전까지 감독님 이름 뒤엔 항상 ‘LG 트윈스 우승 감독’이 따라다녔습니다. 기사 쓸 때 보통은 가장 최근에 맡았던 직함으로 부르게 마련인데, 감독님은 우리 히어로즈 감독을 그만두신 뒤에도 다들 ‘전 LG 감독’으로 표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전 LG 감독’과 ‘전 서울대 야구부 감독’ 중에 어느 쪽을 선호하십니까. 

 

하하하. 그 뭐 편한 대로 하면 되는데, 그래도 서울대에 제일 오래 있었잖아. 10년 있었으니까 제일 오래 몸담은 팀이지. 사인할 때도 죄다 서울대학교로 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문을 닫은 게 아쉽습니다. 처음 학교에 오신 것도 야구부가 아닌 그 때문이었는 데요.

 

그래, 나도 안타깝지. 우리 야구계에 꼭 필요한 기관인데, 계속 못 하게 된 게 제일 가슴 아프다.

 

운영하는 동안 워낙 야구계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한 500명의 지도자를 배출했어요. KBO가 그걸 다시 만들어야 해. 나도 계속 얘기는 해요. 지도자 교육은 꼭 필요하다. 학교 교사들도 다 연수하고 교육을 받잖아요. 선생이 공부 안 하고 가르치면 무슨 선생입니까. 야구 감독, 코치도 다 선생이나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옛날에 야구한 경험만 갖고 가르쳐선 안 된다. 새로운 걸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걸 KBO에서 앞장서서 해줘야 하는데, 끝까지 못 한 게 아쉽지.

 

베이스볼 아카데미 출신 지도자 중에 학구파가 많습니다. 새로운 훈련법을 시도하고, 첨단 장비를 활용해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당연하지. 공부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야구에도 이런 게 있구나, 이런 공부가 있구나. 그것만 터득해 나가도 큰 수확이에요.

 

‘선구자’ 이광환의 당부 “팀마다 철학과 개성이 있었으면”

 

영광의 1994년,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사진=KBO) 영광의 1994년,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사진=KBO)

 

요새 야구는 좀 보시나요.

 

TV로 보지.

 

이제는 감독님께서 LG 시절 선보였던 야구가 프로야구에서 표준이 됐습니다. 마무리와 셋업맨 등 불펜이 분업화됐고, 트레이너도 코치 자격으로 코칭스태프 회의에 참석합니다. 과거처럼 선수를 혹사하는 일도 드물어졌고, 많은 구단이 ‘자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는 장기 레이스잖아요. 100m 달리기 식으로 하면 안 돼요. 마라톤 주법으로 뛰어야지. 마라톤의 핵심이 뭐야. 페이스 조절 아니가. 그걸 100m 식으로 했으니 다들 고장 나고, 힘들어한 거지. 그때는 내가 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미국과 일본 야구를 보면서 다들 알게 된 거지.

 

한국야구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욕 많이 먹었지. 그래도 지금은 많이들 하니까. 그게 정상이지. 그거 아나. 옛날엔 잠실야구장에 라커룸도 없었다. 그걸 만들자고 2년 넘게 공무원과 싸우고 해서, 제일 먼저 만든 게 잠실이야. 잠실에 만드니까 다른 지방 야구장에도 생기기 시작했지. 라커룸이 왜 있어야 되는지 아나.

 

왜일까요.

 

그게 있어야 선수들이 일찍 와서 준비한다. 프로야구는 선수는 경기 4시간 전에 와서 준비돼야 한다. 선수보다 한 시간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게 코치고, 그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오는 게 감독이고, 트레이너는 그보다 더 빨리 와야 한다. 그런데 아마추어는 선수부터 오고, 코치 오고, 마지막에 경기 전에 감독이 나타나잖아. 그걸 바꾸려고 하니 처음에 얼마나 반발이 많았겠나. 내가 데리고 있는 코치들도 입이 이만큼 나오고, 자기 감독을 씹고 했지. 밖에서 욕하는 사람보다 안에가 더 많았어. 지금은 틀이 잡혔을지 몰라도, 처음 할 때는 안 그랬다. 

 

후배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팀마다 저마다의 철학과 팀 컬러가 있으면 좋겠어. 전부 다 대동소이해 버리니까. 이 팀 저 팀 컬러풀하지가 않아. 가게도 집집마다 디자인이 다르고 개성이 있어야 고객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 아닌가. 그런데 너무 똑같으니까 좀 그렇더라고. 지향하는 방향이 있었으면 하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계획입니까.

 

내 건강이 좋지 않아서, 더는 서울에는 못 있어. 이제는 후배들한테 물려줘야지. 서귀포에 야구 박물관도 내가 가끔 가서 손을 봐줘야 해. 여기 어린이들 티볼 하는 것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내 건강을 챙기는 수밖에 없다.

 

서울대 야구부와의 인연은 이대로 영영 끝인가요.

 

매년 2월마다 서울대 야구부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와요. 말이 전지훈련이지 실은 MT나 마찬가지인데, 아무튼 7박 8일 동안 서귀포에 있으면서 훈련도 하고 합니다. 그때마다 애들이랑 볼 수 있겠지. 공식적으로는 ‘명예감독’이니까(웃음).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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