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여성 경영혁신팀장과 데이터 분석가 영입

-홍보, 마케팅에 머물렀던 여성 프런트 업무 영역 넓어진다

-롯데 R&D팀엔 여성 프런트만 2명…“성별 아닌 능력을 봤다”

-롯데 외에도 운영팀 여성 직원 증가 추세…이세영 운영팀장 현실 될까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최초의 여성 운영팀장으로 등장한 이세영 운영팀장(사진=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최초의 여성 운영팀장으로 등장한 이세영 운영팀장(사진=SBS)

[엠스플뉴스]

롯데 자이언츠는 4월 6일 두 명의 새 식구를 맞이했다. 신설 부서인 경영혁신팀에 김정화 팀장을 영입했고, R&D팀에는 세이버메트리션 출신인 박주현 매니저가 합류했다. 변호사 출신인 김 팀장은 그간 롯데가 취약했던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맡는다. 박 매니저는 데이터 분석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프로야구단에서 그간 여성 프런트의 업무 영역은 주로 홍보와 마케팅, 재무 분야로 국한돼 있었다. KBO 사무국과 NC, 키움에서 드물게 여성 팀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역할은 홍보 내지는 마케팅으로 제한적이었다.

올해 초 ‘스토브리그’ 방영 당시 많은 야구인이 드라마 속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여성 운영팀장’을 꼽았을 정도로, 여전히 야구단 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한 전직 단장은 “선수단과 가장 밀접하게 움직이며 선수단을 지원하는 운영팀장은 가급적 선수 출신이 맡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여성 운영팀장은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대표이사 직속 경영혁신팀에 여성 팀장을 영입하고, 여성 데이터 분석가를 영입한 롯데의 행보는 눈길을 끈다. 지난해부터 롯데는 나이, 국적, 인종, 언어를 불문한 인재 채용을 해왔다.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단장 나이가 이대호와 동갑이라도, 배터리 코치가 외국인이라도, 야구를 해 본 적 없는 코치라도 롯데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고려사항이 아니다.

‘여자라서 안 될 건 뭐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아니라 해당 파트에서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까 마침 뽑힌 분의 성별이 여성이었을 뿐입니다. 박두산 롯데 R&D 팀장의 말은 편견 없이 능력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롯데의 기조를 잘 보여준다.

여성 경영혁신팀장, 여성 바이오메카닉 전문가, 여성 세이버메트리션…롯데의 파격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에서 부단장을 지낸 킴 응 MLB 수석 부사장.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에서 부단장을 지낸 킴 응 MLB 수석 부사장.

신임 김정화 경영혁신팀장은 상법 전문 변호사 출신이다. 최근까지 NC 다이노스 법무 파트를 담당하다, 경영혁신팀 신설과 함께 롯데로 이직했다. NC 관계자는 “구단에서 법률 검토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인재다. 사업기획 능력이 뛰어나,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가 정부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바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야구단 운영에서 법무 파트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한 야구 관계자는 “선수 계약, KBO 규약은 물론 최근엔 저작권료 소송, 시즌티켓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시정조치 등 법률적인 이슈가 굉장히 많았다. 야구단 의사결정 과정에 법률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롯데는 그간 법무파트에서 몇 차례 허점을 노출했다. 2017년엔 외국인 투수 스캇 리치몬드와 계약 문제로 소송 끝에 패소해 27만 5천 달러를 배상했고, 같은해 조시 린드블럼과도 재계약 무산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사전에 충분한 법적 검토가 이뤄졌다면, 생기지 않았을 분쟁이다.

박현우 롯데 부단장은 신임 이석환 대표이사는 평소 인재 영입과 준법경영을 강조한다구단 혁신을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해선 ‘법적 안정성’이 토대가 돼야 한다는 게 대표님의 소신이다. 각종 법률 검토는 물론 혁신 작업에서 대표님께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재라는 판단에서 영입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야구란 콘텐츠를 운영하는 주식회사로서 롯데를 경쟁력 있고 내실 있는 회사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컴플라이언스는 물론 업무 체계 정립과 중장기 계획 수립으로 구단의 모든 파트가 편안하게 각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혜리 박사는 롯데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 코칭스태프와 소통했다. 사진 오른쪽이 김혜리 박사(사진=엠스플뉴스)
김혜리 박사는 롯데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 코칭스태프와 소통했다. 사진 오른쪽이 김혜리 박사(사진=엠스플뉴스)

한편 박주현 매니저 합류로 롯데는 R&D팀에만 2명의 여성 인력을 보유하게 됐다. 롯데는 지난해 R&D팀 신설 당시 바이오메카닉 전문가로 김혜리 박사를 영입한 바 있다.

김 박사는 국민대학교 체육대학 이기광 교수의 제자로 ‘스미스 머신을 이용한 스쿼트 동작의 근전도 데이터와 근골격 해석 시스템의 시뮬레이션 결과 데이터 비교’, ‘여자 사이클 타임 트라이얼 경기 시 스탠딩 스타트 분석 연구’ 등 여러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프로구단에서 데이터 파트에 여성 직원을 발탁한 건 김 박사가 최초다.

박두산 롯데 R&D 팀장은 김 박사는 선수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근육의 움직임, 관절의 각도를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부상 예방과 퍼포먼스 향상 방법을 연구한다. 국외에선 ‘머니볼’ 이후 가장 각광받는 분야로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된 분야 중에 하나다. 해당 분야 스페셜리스트로 영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올해 초 롯데 호주 스프링캠프에도 동행했다. 초고속 카메라로 선수 개개인의 동작을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코칭스태프, 선수와 의견을 나눴다. 박두산 팀장은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퀄리티 컨트롤 코치가 현장 코치 혹은 선수들과 R&D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줘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새로 가세한 박주현 매니저는 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다. 박두산 팀장은 “이공계 출신으로 이전 직장에서는 머신러닝 관련 일을 했다. 야구 칼럼도 쓰고 다양한 활동을 해온 애널리스트”라고 설명했다. 역시 데이터 분석 파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여성 팀원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성 데이터 분석가는 30개 구단 가운데 3명(2016년 기준)으로 극소수다.

성별이 아닌 능력만을 보고 영입했다는 롯데의 설명이다. 박현우 부단장은 이석환 대표이사는 ‘스포츠단은 남자가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능력 제일주의로 평가하기 때문에, 성별이 벽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두산 팀장도 “여자라서 더 우대해서 뽑거나 하지 않았다. 야구팀에서 R&D 직무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 했다. 실제 업무도 남녀라는 구분 없이 똑같이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화 팀장은 “이석환 대표이사와 얘길 나눠보니 ‘조직 내 여성 간부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계셨다. 스포츠계 여성 리더에 대한 자료를 보내주기도 했다. 성민규 단장도 메이저리그에선 여성의 능력에 부서 구분이 없다는 이야길 해줬다. 대표이사와 단장 두 분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고 했다.

영역 넓혀가는 여성 프런트…’이세영 운영팀장’은 현실이 된다

메이저리그에선 여성들이 현장 코치 영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보조 타격코치로 임명한 소프트볼선수 출신 알리사 나켄(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에선 여성들이 현장 코치 영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보조 타격코치로 임명한 소프트볼선수 출신 알리사 나켄(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롯데 외 다른 구단에서도 최근 여성 프런트가 홍보・마케팅 외 업무를 맡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 야구 관계자는 한화 이글스, 키움 히어로즈 등이 올해 운영 지원팀에 여성 직원을 발령했다고 전했다.

김정화 팀장은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영향인지 최근 운영팀에도 여성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야구계에서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많은 야구인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드라마 속 ‘이세영 운영팀장’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흐름은 야구가 좋아 야구단 일에 뛰어든 10개 구단 여성 프런트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다. 박두산 팀장은 “이제는 ‘여자가 그 일을 할 수 있어?’라고 누군가 물으면 ‘롯데에서 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NC 홍보팀 이윤빈 매니저는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야구계에 여성의 참여 비율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며 “롯데에서 데이터 팀에 여성을 뽑았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여직원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점점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서 반갑다”고 했다.

여자농구선수 출신 베키 해먼이 2014년 NBA 최초의 풀타임 여성 코치가 됐을 때, 스타 플레이어 출신 파우 가솔은 “나는 해먼이 코치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주 좋은 코치가 될 수 있다거나 남자 코치와 동급일 거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가 NBA에서 코치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뿐”이라 했다.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닌 능력이다. 박두산 팀장은 김혜리 박사가 처음 왔을 때 농담으로 ‘육사에 처음 들어온 여성 생도가 된 기분일 것’이라 했었다며 웃었다. 어색함은 잠시. 여성 생도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여성의 존재는 당연한 일이 된다. 롯데의 혁신이 야구계 전체에 신선한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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