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동원 선수 어머니 김정자 여사, 거액 사기 피해로 2년 넘게 홀로 가슴앓이

-사건 알려진 뒤 각계에서 응원과 위로 전해와…사건 해결도 속도 낸다

-22일엔 최동원 생일 기념행사…국회의원, 야구인 방문해 김 여사 위로

-미소 찾은 김정자 여사 “다시 용기가 난다…힘내서 살아야겠다”

아들 최동원의 동상을 닦는 김정자 여사(사진=엠스플뉴스)
아들 최동원의 동상을 닦는 김정자 여사(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부산]

많은 분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다시 용기를 내고, 건강을 돌보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 김정자(86) 여사는 2년 넘게 혼자 끙끙 앓았다. ‘대학교수’를 사칭한 이의 치밀한 사기행각에 거액을 잃고도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혹시나 아들인 최 선수의 명예에 흠이 갈까 싶어 홀로 성벽을 높이고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여러 언론을 통해 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 김 여사는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우선 고 최동원을 기억하는 수많은 야구팬이 전국에서 응원과 위로를 보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김 여사를 돕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김 여사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저를 걱정해주고 위로해 준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다”며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고 연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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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국회의원, 야구인들 위로 방문에 미소 찾은 최동원 모친

5월 22일 부산 사직야구장. 이날 야구장 광장에선 최동원 기념사업회(사무총장 강진수) 주최로 고 최동원의 63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무쇠팔 최동원’ 동상 앞에서 열렸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최 선수의 생일인 24일이 일요일이라, 금요일인 오늘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알렸다.

이 자리엔 최근 김정자 여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많은 이가 찾아와 자릴 함께했다. 최동원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물론 ‘최동원 팬클럽’ 회원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리고 김 여사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팬클럽 회원들은 이날 준비와 진행에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탰다.

김정자 여사를 만나러 부산을 찾은 송영길 의원이 허릴 굽혀 김 여사에 인사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김정자 여사를 만나러 부산을 찾은 송영길 의원이 허릴 굽혀 김 여사에 인사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인천 계양을) 의원은 의원 이전에 인권변호사로서 김 여사를 돕겠다며 부산까지 내려왔다. 자신을 “열렬한 야구팬”으로 소개한 송 의원은 김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얼마나 마음고생이 크셨냐”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직접 어머니를 뵈니 최동원 선배의 선한 모습을 그대로 닮으신 것 같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서 상심이 크셨을 것이다. 직접 만나 뵙고 위로가 돼야겠다 해서 내려왔다. 꼭 억울함이 해소됐으면 한다. 저도 많이 챙기겠다. 우리 어머니, 힘내십시오. 송 의원의 말이다. 송 의원과 함께 20대 국회 윤준호 의원(부산 해운대을)도 참석해 자릴 지켰다.

야구인 동료들도 행사를 찾았다. 이날 프로야구 중계방송차 부산을 찾은 허구연 해설위원은 고 최동원은 물론 김 여사와도 오랜 인연이 있다. 허 위원은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며 김 여사의 사연을 안타까워했다.

프로야구 1년 선배이자 롯데 동료였던 김용철 전 경찰야구단 감독도 보였다. 김 여사는 “이게 누구야”라며 김 전 감독의 방문을 반겼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사기 피해 이후 한동안 어머님 표정이 어두웠는데,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서 그런지 웃으시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에 2, 3번씩 아들 최동원의 동상을 찾았던 김 여사는 사기 피해 이후 한동안 아들을 찾지 못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진 데다, “아들 볼 낯이 없다”며 자신을 자책한 탓이다.

김정자 여사가 아들 동상 앞에 올려둔 편지. 교장 선생님 출신의 김 여사는 지난해까지 사회복지관에서 지적 장애인의 식사를 돕고, 노인들의 한글공부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해왔다. 이런 김 여사를 상대로 거액 사기를 친 이는 김 여사를 '정신이 이상한 노인'으로 부르고 다녔다(사진=엠스플뉴스)
김정자 여사가 아들 동상 앞에 올려둔 편지. 교장 선생님 출신의 김 여사는 지난해까지 사회복지관에서 지적 장애인의 식사를 돕고, 노인들의 한글공부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해왔다. 이런 김 여사를 상대로 거액 사기를 친 이는 김 여사를 '정신이 이상한 노인'으로 부르고 다녔다(사진=엠스플뉴스)

그러나 이날 많은 이의 격려 방문에 다시 용기를 냈다. 행사를 앞두고 김 여사는 손수 아들의 동상을 닦았다. 강진수 총장이 “어머니, 그만 닦으소”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열심히 닦았다.

내가 젊을 적에는 열심히 살고 남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먹고 이런 실수를 하다 보니까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아들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이 오셔서 아들 생일을 축하해 주시고, 저를 걱정해 주시니까 힘도 나고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김 여사가 전한 감사의 말이다.

김정자 여사 “다시 용기를 내야겠다…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인사말을 전하는 김정자 여사(사진=엠스플뉴스)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인사말을 전하는 김정자 여사(사진=엠스플뉴스)

여론의 관심이 커지고 도움의 손길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김정자 여사의 사기 피해 사건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22일 김 여사는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히는 강윤경 법무법인 정산 대표변호사, 최동원기념회 강진수 사무총장과 함께 부산지검 동부지청을 방문했다. 이날 방문은 언론 보도가 나간 뒤 검찰이 김 여사에게 “사건에 관해 설명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이뤄졌다.

강 변호사는 “다행히 담당 검사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관련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본 상태였다. 검찰 쪽에서 김 여사에게 사건 처분이 지체된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드렸다”고 전했다. 김 여사는 “검사님을 만나보고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부산을 찾은 송영길 의원도 김 여사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송 의원은 “최동원 선배는 우리 세대에 신화 같은 존재였다”며 “앞으로 한국야구 불멸의 영웅 최동원 선수를 기리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동원 63회 생일 기념 행사(사진=엠스플뉴스)
최동원 63회 생일 기념 행사(사진=엠스플뉴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소식이 알려진 뒤 롯데 구단에서도 연락이 왔다”며 “사건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김 여사가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구단 대표이사, 단장이 바뀌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까지 챙기는구나 싶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동안 김 여사는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고 느꼈다. “피해 사실을 알리면 아들의 이름에 누가 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는 말도 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김 여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고 최동원을 기억하고, 김 여사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 다시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걱정해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도 제 건강을 돌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더는 외롭지 않다는 김 여사의 말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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