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 KIA 타이거즈, 올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선전
-매트 윌리엄스 감독 데뷔 시즌, 야수진 ‘리빌딩’ 방향 관심
-‘좌익수’ 나지완·‘2번’ 김선빈 선택, 장타력 부족 고민 담겼다
-인위적인 리빌딩보단 승리 위한 효율적 배치가 먼저

답답하면 내가 뛴다? 메이저리그 명 내야수 출신인 KIA 윌리엄스 감독의 올 시즌 야수진 운영 방향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KIA)
답답하면 내가 뛴다? 메이저리그 명 내야수 출신인 KIA 윌리엄스 감독의 올 시즌 야수진 운영 방향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KIA)

[엠스플뉴스]

개인적으로 ‘리빌딩’이란 단어를 안 좋아한다. 리빌딩을 한다는 건 곧 상대를 못 이긴단 뜻이다. 내 머릿속에 리빌딩은 없다. 우리 팀은 오로지 매일 이기는 것에 집중하겠다. 개인적으로 그라운드에 이기려는 마음으로 나가 팬들에게 박수받을 수 있는 경기를 보여주는 게 목표다.

KIA 타이거즈 매트 윌리엄스 감독은 지난해 가을 부임 뒤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리빌딩이 아닌 승리에만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KIA는 올 시즌 초반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 5연승을 맛봤던 KIA는 5월 25일 기준 올 시즌 10승 8패로 키움 히어로즈와 공동 4위 자리에 올라 있다.

더디게 흘러간 KIA 야수진 리빌딩, 이번엔 피할 수 없다

윌리엄스 감독이 5월 24일 문학 SK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윌리엄스 감독이 5월 24일 문학 SK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사실 올 시즌 전 KIA 전력을 향한 평가는 하위권이라는 게 대다수 의견이었다. 지난해 젊은 투수들이 잠재력을 보여준 마운드 전력은 괜찮지만, 세대교체가 필요한 야수진의 활약상에 물음표가 항상 따라왔다.

2017년 통합 우승을 이끌었던 KIA 야수진을 돌이키면 리빌딩의 중요성이 더 와 닿는다. 당시 KIA 주전 야수진은 최형우(좌익수)-로저 버나디나(중견수)-이명기(우익수)-이범호(3루수)-김선빈(유격수)-안치홍(2루수)-김주찬(1루수)-김민식(포수)-나지완(지명타자)이었다. 불과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승 멤버들 가운데 남은 1군 야수진은 최형우와 김선빈, 그리고 나지완뿐이다.

당시에도 야수진 막내였던 김선빈(1989년생)과 안치홍(1990년생) 다음 세대 야수를 육성해야 할 때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젊은 야수 육성 및 성장은 이제 진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미국 메이저리그 명 내야수 출신인 윌리엄스 감독에게 주어진 임무 가운데 하나도 야수진 리빌딩이다. 하지만, 윌리엄스 감독은 인위적인 리빌딩보단 당장 눈앞에 있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팀 승리 속에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리빌딩에 더 주안점을 둔 셈이다.

지난해 1군을 잠시 맡아 보니 현재 우리 팀 전체 야수 자원들을 살펴보면 1군 상위 레벨의 젊은 장타자들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팀 장타력을 어떻게 메울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본다. 득점권 상황에서 집중력과 뛰는 야구로 득점 생산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윌리엄스 감독과도 그런 부분에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해 시즌 초반 감독대행을 맡아 1군을 이끌었던 KIA 박흥식 2군 감독의 얘기다.

‘좌익수’ 나지완·‘2번’ 김선빈, 윌리엄스 감독이 고른 첫 선택지

윌리엄스 감독(오른쪽)에게 리그 첫 승 기념구를 전해주는 내야수 김선빈(왼쪽). 김선빈은 2루수 2번 타자로 야수진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사진=KIA)
윌리엄스 감독(오른쪽)에게 올 시즌 첫 승 기념구를 전해주는 내야수 김선빈(왼쪽). 김선빈은 2루수 2번 타자로 야수진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사진=KIA)

윌리엄스 감독은 2018시즌부터 2019시즌까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3루·작전 코치를 맡았다. 코치 재임 과정에서 데이터 분석에 대한 능력도 인정받았다. KIA 관계자는 “오클랜드는 비교적 적은 선수단 예산으로 데이터 중심의 효율적인 야구를 펼친 팀이다. 윌리엄스 감독이 작전·주루 부문 데이터 분석 및 코치 업무를 맡았는데 구단으로부터 연장 계약을 제시받을 정도로 그 공을 인정받았다”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데이터 분석에 능통한 윌리엄스 감독도 올 시즌 KIA 야수진 운영을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팀 전력을 직접 관찰하며 파악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가을 마무리 캠프부터 올 시즌 스프링캠프까지 윌리엄스 감독은 선수단을 꼼꼼히 지켜봤다. 특히 스프링캠프에서 KBO리그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연습경기(20차례)를 소화했다. 귀국 뒤에도 팀 홍백전과 교류전 데이터를 통해 막판 옥석 가리기 작업에 나섰다.

윌리엄스 감독이 고민 끝에 구상한 야수진 기용 기본 틀은 시즌 개막 뒤 공개됐다. 크게 살펴보면 박찬호(유격수)-김선빈(2루수)-프레스턴 터커(우익수)-최형우(지명타자)-나지완(좌익수) 순의 상위 타순과 수비 배치가 기본적인 그림이다. 1루수와 3루수, 그리고 중견수 자리는 상황에 따라 기용 방향을 정한다. 포수진에선 백용환과 한승택이 번갈아 가며 포수 마스크를 쓴다.

부족한 팀 장타력은 터커-최형우-나지완을 중심 타선에 연속 배치해 보완했다. 좌익수로 출전하는 나지완의 수비력이 변수였지만, 시즌 초반 나지완이 보여준 외야 수비 실력은 기대 이상이다. 향후 나지완이 시즌 동안 꾸준히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중심 타선에 장타자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기에 2번 타순엔 김선빈이 들어간다. ‘강한 2번’ 경향을 고려하면 터커를 전진 배치할 수 있지만, 윌리엄스 감독은 클린업 트리오가 자신의 자리에서 강한 스윙에만 집중하길 원한다. 김선빈이 2번 타순으로 들어가며 득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단 뜻도 담겼다.

선발 타순은 개막 뒤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일 경기 상대 투수에 따라 하위 타순에서 조금씩 변화를 준다. 2번 타순에 김선빈을 넣는 이유는 그가 그라운드 전체로 자유롭게 타구를 만들 수 있는 타자인 까닭이다. 터커나 최형우를 2번 타순에 넣는다면 경기 운영이나 타석에서 제한적인 상황이 생긴다. 두 타자가 좋은 타격을 위해 자기 스윙에 집중하길 원한다. 윌리엄스 감독의 말이다.

1루수·3루수·중견수는 여전히 물음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윌리엄스 감독(왼쪽)에게 여전히 고민인 지점이 몇 군데 있다. 3루수와 1루수, 그리고 중견수가 바로 그 자리들이다(사진=KIA)
윌리엄스 감독(왼쪽)에게 여전히 고민인 지점이 몇 군데 있다. 3루수와 1루수, 그리고 중견수가 바로 그 자리들이다(사진=KIA)

KIA 1루수와 3루수 자리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최근 1루수 자리에선 황대인이 좋은 타격으로 경쟁력을 보여줬다. 5월 16일 1군 엔트리에 시즌 처음 등록된 황대인은 25일 기준으로 7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0/ 7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긴 시즌 동안 다양한 선수가 자기 역할을 해줘야 팀이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최근 황대인이 1루수 자리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팀에 큰 도움이 됐다. 예전부터 좋은 타격 능력이 눈에 들어왔다. 1군에서 1루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거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결국, 황대인이 1군에서 자리 잡아야 젊은 장타자 육성이라는 KIA의 리빌딩 숙원이 이뤄진다. 상대 투수에 따라 좌타자인 유민상과 함께 황대인의 출전 빈도가 늘어날 거로 예상된다.

3루수 자리에선 베테랑 내야수 나주환이 안정적인 수비로 힘을 보태고 있다. 멀티 내야수 황윤호와 2군에서 재정비 중인 장영석도 잠재적인 3루수 경쟁자들이다.

한 현장 관계자는 “윌리엄스 감독이 현 상황에선 3루수 자리에 누구를 무조건 박고 키운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베테랑 나주환이 최근 중용 받는 것도 그만큼 공·수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눈도장을 찍은 젊은 야수가 없다는 뜻이다. 경기마다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선택을 내리는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중견수 자리에선 최원준이 불안한 외야 수비 속에서도 계속 기회를 받는 분위기다. 최원준의 올 시즌 타율도 0.217로 아쉬운 기록이다. 허리 부상에서 회복 중인 김호령과 이창진의 1군 복귀 시점에 따라 경쟁 구도가 새롭게 형성될 전망이다.

박흥식 감독은 트레이너 파트에서 출전 ‘OK 사인’을 받은 김호령은 26일부터 퓨처스리그 경기 엔트리에 포함될 계획이다. 이창진은 간단한 티 배팅 정도를 소화하는 상태다. 두 선수 모두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으면 1군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당분간 1군으로 올라갈 2군 야수진이 제한적일 거라고 바라봤다. 박 감독은 현재 상황에선 1군 야수 엔트리에 있는 선수들이 최선의 선택지라고 본다. 홍종표나 박 민 등 어린 야수들은 2군에서 성장할 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당분간 2군에서 경기 출전 중인 선수들 가운데 베테랑 김주찬과 외야수 오선우 정도만 콜업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리빌딩은 ‘승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는다?

윌리엄스 감독은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선 큰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무심한 표정으로 경기 내내 상황을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KIA 베테랑 야수 나주환은 “SK 소속 시절 함께했던 트레이 힐만 감독님은 야구 경기 도중에도 흥이 많으셨다면  윌리엄스 감독님은 경기 시작 뒤엔 그라운드에만 집중하시는 편“이라고 말했다(사진=KIA)
윌리엄스 감독은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선 큰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무심한 표정으로 경기 내내 상황을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KIA 베테랑 야수 나주환도 “SK 소속 시절 함께했던 트레이 힐만 감독님은 야구 경기 도중에도 선수들과 흥이 많으셨다면 윌리엄스 감독님은 경기 시작 뒤엔 그라운드 상황에만 집중하시는 편“이라고 전했다(사진=KIA)

어쩌면 윌리엄스 감독은 시즌 초반 빨간 펜을 들고 실전 경기에서 상황을 풀어가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에 있을 수 있다. 눈앞에 다가온 경기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 최적의 선택지를 고르는 과정이다. 선발 출전 야수들이 웬만하면 9이닝을 모두 소화하는 윌리엄스 감독의 스타일도 선수 자신이 구상한 게임 플랜을 능동적으로 소화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경기 시작 뒤엔 전광판에 나오는 기록과 숫자를 보고 상황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주로 점수 차가 많이 나는 경우에 맞춰 벤치 선수들을 기용한다. 선발 출전하는 선수들은 매일 경기에서 끝까지 뛰고 싶어 한다.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느끼며 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윌리엄스 감독의 말이다.

그렇다고 단기간 타격 부진에 빠진 타자를 향해 빨간 펜을 들어 선을 긋는 상황이 나오진 않을 전망이다. 경기에 출전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얼마나 자신의 계획대로 자신감 있는 스윙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타격 부진에 빠진 타자를 기다리는 기준에 대한 질문에 윌리엄스 감독은 좋은 타자는 경기 전 철저한 계획으로 상대 투수의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이 있다. 내가 항상 타자들에게 주문하는 건 타석에서 자기 스윙을 자신 있게 보여주는 거다. 그 외에 다른 요소로 타자들을 평가하거나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윌리엄스 감독이 올 시즌 초반 내놓은 야수진 윤곽과 9이닝 동안 온전히 선수를 믿고 맡기는 경기 운영 스타일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분위기다. 5월 25일 기준 KIA의 팀 wRC+(조정 득점 생산력-평균 수치 ‘100’을 기준으로 구장 특성을 고려한 타자의 타격 생산성) 수치는 100.2로 평균 수치인 ‘100’을 넘겨 리그 5위에 올랐다. 시즌 개막 전 리그 하위권 팀 타선으로 평가받은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윌리엄스 감독은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거쳐 향후 더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올 시즌 KIA 타선은 기존 평가를 뛰어넘는 활약상을 더 보여줄 수 있다. 극악의 난이도인 KIA 리빌딩 난제를 ‘승리’로 풀어가려는 윌리엄스 감독의 방향성에 눈길이 쏠린다. 윌리엄스 감독이 든 보이지 않는 빨간 펜의 움직임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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