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마무리 투수 조상우, 5월 중순 이후 ‘1세이브’…사실상 개점휴업

-9회는 확실한데 6회부터 8회까지가 불안해

-강속구 투수 없는 불펜, 2년 차 징크스도 작용…손혁 감독은 예상했다

-안우진 복귀 임박…키움 불펜, 확실한 8회 카드 생긴다

초보 감독이지만 멀리 보고 시즌을 운영하는 손혁 감독(사진=키움)
초보 감독이지만 멀리 보고 시즌을 운영하는 손혁 감독(사진=키움)

[엠스플뉴스]

개점휴업(開店休業).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용하기 껄끄러운 말이 됐지만, 이 단어 외엔 달리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 키움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조상우는 지난 20일 동안 거의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5월 13일부터 5월 31일 사이 팀이 17경기를 치를 동안 조상우가 거둔 세이브는 딱 하나뿐. 등판은 세 차례 했지만 한 번은 세이브와 무관한 상황에, 다른 한 번은 1점 차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2이닝 무실점 구원승).

22일 롯데전부터 31일 KT 전까지 열흘 사이엔 등판 기회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 1번은 8회 1사 만루에서 등판해 5아웃 세이브를 챙긴 29일 KT 전이다. 22일부터 28일까지는 일주일 내내 불펜에만 대기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마무리투수를 보유했지만, 정작 제대로 써볼 기회가 없었다.

소포모어 징크스-강속구 투수 부재, 현실이 된 손혁 감독의 예감

이영준과 조상우. 올 시즌 키움의 승리조 구성원이다(사진=키움)
이영준과 조상우. 올 시즌 키움의 승리조 구성원이다(사진=키움)

조상우는 문제가 없다. 조상우의 올 시즌 성적은 7경기 8이닝 평균자책 0.00에 5세이브. 세이브 성공률은 100%다. 속구 평균구속 149.6km/h로 라울 알칸타라, 애런 브룩스에 이은 평균구속 3위에 이름을 올렸다(규정이닝 30% 이상 기준). 조상우가 마운드에 오르면, 중계방송사와 취재진은 키움 쪽 수훈선수로 누굴 인터뷰할지 생각한다.

문제는 조상우까지 가는 과정이다. 조상우의 4세이브 경기(12일)부터 5세이브 경기(29일) 사이 16일간 키움이 리드한 채로 9회를 맞이한 경기는 3차례뿐. 전부 큰 점수 차로 앞선 경기라 세이브 상황과는 무관했다.

같은 기간 리드한 채 맞이한 8회가 5차례, 7회가 6차례, 6회가 8차례(최다 1위) 있었지만 이 리드 상황이 마무리 조상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키움은 이 기간 5회까지 앞선 경기 8번 중에 4경기에서 졌다. 선발투수가 잘 차려놓은 밥상이 마무리까지 가기 전에 엎어진 게 수차례다.

올 시즌 키움의 8회 실점은 27실점으로 두산(30실점)에 이은 최다 2위다. 9회 실점은 최소 3위(7실점)인데 6~8회 3이닝 실점이 54실점으로 두산(55실점) 다음으로 많은 점수를 경기 후반에 내줬다. 불펜 평균자책은 5.11로 전체 4위지만 불펜투수 WPA(추가한 승리확률)은 -1.89로 꼴찌에서 세 번째다.

지난 시즌 불펜 평균자책 1위(3.39) 키움 뒷문이 1년 사이 왜 이렇게 됐을까. 손혁 감독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준비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손 감독은 우리 불펜투수 중에 상당수가 지난해 처음 성공을 거둔 선수들이다. 좋은 성적을 처음 낸 불펜투수들의 다음 시즌을 보면 절반 정도는 더 위로 올라서지만, 절반 정도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키움 불펜 멤버 중에 이영준, 양현, 윤영삼, 김성민은 이전까지 1군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투수였다.

손 감독은 “불펜에 빠른 공을 가진 투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걱정했다”고 밝혔다. 올 시즌 키움 불펜에서 평균 145km/h 이상 속구 구속을 기록한 투수는 조상우 하나뿐. 140km/h 이상을 던진 투수도 김동준(143.5km/h), 김상수(143.4km/h), 이영준(143.2km/h) 셋뿐이다.

타자들이 저반발 공인구 여파에 집단 ‘멘붕’에 빠졌던 지난 시즌엔 130km/h 느린볼 투수들도 제구와 무브먼트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자들이 집단 반격을 시작한 올 시즌엔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타석당 1.82%꼴로 나왔던 홈런이 올해는 2.48%로 늘었다. 0.385였던 리그 장타율도 올해는 0.417로 올랐다.

손 감독은 “올해는 타자들이 준비를 잘 해왔다. 데이터상으로 지난해보다 비거리가 7m 정도 더 나가고, 타구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작년엔 잡혔던 공들이 안타가 되고 있다”며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구위가 있는 투수들은 유지가 되지만, 제구 위주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손 감독이 강속구 투수 위주로 승리조를 새로 구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손 감독은 좌완 이영준을 승리조로 밀어붙이는 이유를 설명하며 “나중에 포스트시즌에 가서 성적을 내려면 145km/h 이상 던지는 좌완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영준은 지난 시즌 초반엔 140km/h 초반대 구속에 머물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볼에 스피드가 붙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선 김현수, 김재환 등 리그 대표 강타자들을 상대로 150km/h 강속구를 던져 아웃으로 잡아내는 인상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손 감독은 비록 승리조가 처음이라 어려움도 있고,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불펜이 자리 잡으려면 이영준이 계속 던지면서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시즌 전 양기현, 박주성 등 영건들을 집중적으로 테스트하고 기회를 준 것도 새로운 강속구 불펜투수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손 감독은 “작년 우리 불펜진들이 다 원래 필승조를 했던 투수들이 아니다. 공이 생각보다 멀리 나가고 안타가 되다 보니 어렵게 던지고 볼넷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초반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팀 내에서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들을 믿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우진, 라이브 피칭에서 ‘148km/h’ 기록…확실한 8회 카드 생긴다

김성민, 이영준, 양현, 윤영삼. 지난해 키움 불펜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김성민, 이영준, 양현, 윤영삼. 지난해 키움 불펜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키움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물론 미국의 ESPN도 파워랭킹 1위로 키움을 꼽았다. 24경기 치른 시점에서 리그 4위와 5할 승률은 선수단 이름값에 비춰볼 때 아쉬운 성적이다. 당장 ‘촌놈 마라톤’을 해서라도 성적을 내려는 욕심이 생길 만 하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당장 1승보단 시즌 전체를 길게 내다보며 장기적인 관점의 선수단 운영을 하고 있다. 마무리 조상우 기용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9회 등판’ 원칙을 고수한다. 8회, 7회에 마운드에 올려 긴 이닝을 맡기는 쉬운 길이 있지만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올 시즌 조상우가 8회에 마운드에 오른 건 29일 KT 전이 유일하다. 당시 조상우는 22일부터 7일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손 감독은 “급할 때도 가능하면 4아웃 이상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일주일을 쉬었고 에이스 등판 경기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투구내용도 그렇게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며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조상우 외에 다른 불펜투수 기용도 될 수 있으면 1이닝 이내로, 연투를 최소화하는 원칙에 충실하다. 연투한 투수에겐 반드시 다음날 경기에 휴식을 준다. 그 때문에 놓친 경기도 있지만 한 경기가 아닌 시즌 전체를 본다. 키움 관계자는 “시즌 초반 치고 올라가지 못한 건 불펜 때문만이 아니다. 선발진도 그렇고 타선도 아직 완전히 톱니바퀴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태”라며 “선발과 타선이 자리 잡히면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조상우의 앞을 책임질 히든카드도 있다. 어깨 부상에서 회복 중인 안우진이 최근 라이브 피칭을 시작해 1군 복귀를 앞두고 있다. 손 감독은 5월 30일 오늘 안우진이 라이브 피칭에서 최고 148km/h를 던졌다. 상태가 괜찮았다안우진이 돌아오면 김태훈(김동준)까지 145km/h 이상 던지는 투수 4명으로 불펜을 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안우진이 복귀하면 키움은 9회 조상우-8회 안우진이란 확실한 카드가 생긴다. 7회를 이영준과 김상수가 나눠 막고 6회를 김태훈이 책임지는 형태의 불펜 운영이 가능하다. 여기에 6월 이후 복귀할 강속구-커터 투수 양기현도 승리조 운영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손 감독은 “시즌을 치르다 보면 어느 팀이나 어느 순간 어려움이 오게 마련”이라며 “선수들과 잠깐 미팅하면서 ‘너희는 좋은 선수인데, 내가 조급했던 같다. 연습경기, 청백전 할 때처럼 다시 즐겁고 재미있게 야구하자’고 말했다. 투수들이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유를 갖고 길게 보고 운영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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