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100명 중 100명 모두가 좋아지는 수술은 없다”

-“토미 존 수술의 속구 구속이 오른다? 수술에 대한 과도한 믿음”

-“강한 자극받거나 피로 누적되면 유소년 선수들은 뼈가 변형된다”

-“팔이 안 풀려 불펜투구? 그건 몸이 안 좋다는 신호”

-“스포츠 의사는 선생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람”

한국 최고의 어깨-팔꿈치 전문의로 꼽히는 CM병원 이상훈 원장(사진=엠스플뉴스)
한국 최고의 어깨-팔꿈치 전문의로 꼽히는 CM병원 이상훈 원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 인터뷰]

그는 ‘명의(名醫)’로 불린다. 한해 수많은 스포츠 선수를 진료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진료받으려면 반년 넘게 걸려서도 아니다. 정평 난 의술 때문만은 더욱 아니다.

신뢰감과 확신이죠. 제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에요. 저분께 치료받으면 더 건강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의 말이다.

많은 프로야구 선수가 그를 ‘명의’로 부르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명의의 이름은 이상훈(47). CM병원 원장이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 원장은 한해 4천 명 이상의 스포츠 선수를 진료한다. 그 가운데 3천 명가량이 야구선수다. 따지고 보면 이 원장은 국내보단 국제 스포츠 의학계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이 원장은 꽉 찬 수술 스케줄에도 해마다 유명 스포츠 저널에 스포츠 의학 관련 논문을 발표한다. 여기다 각종 국제대회마다 한국 대표팀 의무위원장으로 활약한다. 이 원장이 2017년 한국 의사론 처음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공식 인정하는 ‘IOC 공인 스포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국내외 스포츠의학계는 ‘당연한 결과’란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이 원장에게 주목하는 건 그의 화려한 이력보단 그의 ‘스포츠 의학관’ 때문이다. 이 원장은 “스포츠 의사는 선수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하는지 엠스플뉴스가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100명 중 100명 모두가 좋아지는 수술은 없다”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 등 유명 프로야구 선수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선수가 이상훈 원장을 찾아온다. 이 원장은 “양현종은 자기 몸 관리가 철저한 투수“라며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겐 교과서와도 같은 선수“라고 칭찬했다(사진=엠스플뉴스)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 등 유명 프로야구 선수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선수가 이상훈 원장을 찾아온다. 이 원장은 “양현종은 자기 몸 관리가 철저한 투수“라며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겐 교과서와도 같은 선수“라고 칭찬했다(사진=엠스플뉴스)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 선수가 꽤 많더군요. 해마다 1천 명 이상의 야구선수들을 진료한다고 들었습니다.

더 많아요. 야구선수만 한해 3천 명 정도 진료합니다.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합치면 4천 명 정도 돼요. 수술 환자는 야구만 따지면 200명 정도 되고.

야구선수만 한해 200명 수술하면 휴일 빼고 매일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뜻이군요.

하루에 두 번 이상 수술할 때도 많아요.

개인 시간이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의사는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제게 수술받겠다고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분도 많고.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이유가 없죠.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불평도 그래서 제겐 사치일 뿐이에요.

야구선수들만 국한한다면 주로 어딜 다쳐서 옵니까.

메이저리그 선수들 부상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압도적으로 투수들 부상이 많아요. 한국은 야수들도 꽤 됩니다. 투수는 대부분이 어깨, 팔꿈치 부상이에요.

과거엔 부상이 곧 은퇴를 의미했습니다. 수술을 기피하는 선수도 많았고요. 그러나 지금은 ‘부상=은퇴’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수술을 성형수술처럼 생각해 부담 없이 받으려는 선수도 적지 않고요.

수술을 간단한 성형수술처럼 생각하는 선수, 학부모님들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게 다 ‘토미 존 서저리(수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자 미신 때문입니다.

과도한 믿음이자 미신?

토미 존 수술 후 속구 구속이 빨라지는 선수들이 있어요. 간혹 학부모님들 중에서 “쟤처럼 우리 아들도 수술시켜 주세요. 그럼 속구가 빨라질 거 아니에요”하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세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수술했다고 공이 빨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속구 구속이 빨라지는 겁니까.

학생선수는 ‘성장 곡선’에 따라 학년이 높아질수록 속구 구속이 자연스럽게 올라가요. 그런데도 속구 구속이 안 올라갔다면 그건 아이가 중간에 아팠기 때문이에요.

중간에 아팠기 때문이다?

그렇죠. 토미 존 수술 후 속구 구속이 올라가는 건 팔꿈치 통증이 사라지면서 성장 곡선에 따라 원래 올라가야 했던 속구 구속이 올라가는 것뿐이에요.

음.

세상에 100명 중 100명 모두가 좋아지는 수술은 없어요. 100전 100승 하는 프로야구팀이 세상에 없듯. 수술은 만능이 아닙니다.

병원장이 그런 얘기 하셔도 됩니까.

물론 영리, 중요하죠. 돈 벌어야죠. 그래야 병원도 커지니. 하지만, 전 병원장에 앞서 의사예요. 수술이 필요한 사람과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골라내는 역할, 전 그게 의사의 역할이라고 봐요.

그렇군요.

여러 논문과 제 임상 경험에 근거해 말씀드리면 수술보다 재활을 통해 부상을 이겨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게 얘기했을 때 수긍하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꽤 많은 학부모가 아이를 다른 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요구합니다.

의사로서 안타깝죠.


“강한 자극받거나 피로 누적되면 유소년 선수들은 뼈가 변형된다”

진료실에서 이상훈 원장이 자신의 스포츠 의학관을 설명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진료실에서 이상훈 원장이 자신의 스포츠 의학관을 설명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야구 논란 가운데 여전히 지속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바로 혹사입니다.

1,0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라면 부상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어요. 왜냐? 몸은 정직하니까요. 혹사를 경험했다면 부상이 더 빨리 찾아올 수 있습니다.

몸은 정직합니다만, 야구계 일각에선 여전히 “팔은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고 주장합니다.

팔을 많이 쓰면 쓸수록 팔 근육이 커지고, 신경근 조절능력이 좋아질 순 있어요.

신경근 조절능력이요?

(A-4 용지를 책상 위로 올려놓은 뒤) 자, 제가 종이 위에 점을 찍어보겠습니다. 손끝으로 점을 정확히 눌러보세요. (기자가 누르자) 잘하시네요. 점을 정확하게 누르려면 신경을 그만큼 정확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투구훈련을 많이 하면 할수록 신경근 조절능력이 향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스트라이크 존에 더 정확한 공을 보낼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다음이에요. 팔은 분필과 같아 쓰면 쓸수록 닳는다는 겁니다.

네.

많이 던지면 팔 근육이 커지고, 신경근 조절능력이 좋아질 순 있겠지만, 동시에 인대와 근육의 손상 정도도 커집니다. 차도 그렇잖아요. 차 사서 초반에 가속 페달 밟으면 차가 ‘쌩쌩’ 달리잖아요. 하지만, 과속이 누적되면 차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죠. 그걸 막으려고 엔진오일도 갈고, 부품도 교체하잖아요. 인간의 몸도 예외일 수 없어요.

얼마 전, 한 대학야구 감독을 만났더니 “많이 던져서 다치는 게 아니라 나쁜 폼으로 던져 다치는 것”이라면서 투구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더군요.

아무리 좋은 투구폼이라도 어느 이상 공을 던지면 부상 확률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좋은 폼’에 대한 정의가 없어요. 사람마다 키, 몸무게, 어깨 길이, 팔 길이가 다 다른데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좋은 폼’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분필론’에 기반해 선수들 부상을 막고자 여러 방안이 시행 중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인 게 투구수 조절입니다.

투구수, 정말 중요하죠. 전 이닝수를 유심히 봐요. 우리가 계산하는 투구수는 투수가 마운드에서 공식적으로 던진 공만 포함하거든요. 하지만, 보통 투수들은 우리 팀이 공격할 때 공을 던지면서 몸을 풀고, 마운드에서도 연습 투구를 합니다. 그 공들은 계산하지 않아요. 반면 이닝은 공식 투구수와 비공식 투구수를 모두 합친 결과치에요. 저는 이닝수를 보는 게 투수의 피로 정도를 파악하는데 더 유용한 자료라고 봐요.

지난해 7월 자신이 수석 팀닥터로 있는 키움 히어로즈 홈 경기에서 시구하는 이상훈 원장. 그는 누구보다 야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7월 자신이 수석 팀닥터로 있는 키움 히어로즈 홈 경기에서 시구하는 이상훈 원장. 그는 누구보다 야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아마추어 투수들의 투구이닝, 몇 이닝이 적당하다고 봅니까.

고교 3학년 에이스는 한해 70이닝 이상 던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45이닝 이하로 보호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네.

투구이닝수를 가장 엄격하게 지켜줘야 할 시기는 초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사이에요.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연구자료에도 그 시기를 매우 중요하게 봐요. 이유가 뭐냐? 그땐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기 때문이에요. 뼈가 무르죠. 그때 아이들은 강한 자극이나 피로가 누적되면 성인처럼 뼈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뼈가 휘어요. 그만큼 뼈가 약할 때에요.

아.

투구 자체가 팔에 어마어마한 로딩이 걸리는 행위에요. 로딩이 걸리면 그 나이 땐 뼈가 변형됩니다. 고교생만 해도 뼈가 변형되진 않아요. 인대가 끊어지는 일은 있어도. 확실히 초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사이 아이들을 진단해보면 뼈 변형 사례가 많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게 있어요.

뭡니까.

같은 초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사이인데도 뼈 변형이 덜한 학생선수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요?

리틀야구 출신들이에요. 리틀야구에선 투구수와 함께 등판일에도 제한을 두거든요. 리틀야구가 유소년 야구의 중심이 되면서 어린 학생선수들의 뼈 변형 사례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제가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건.

네.

팔이 안 풀린다고 마냥 불펜투구만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나라 투수들은 유소년, 성인할 거 없이 불펜투구를 너무 많이 해요. 물어보면 선수 대부분이 그래요. “팔이 잘 안 풀려서 불펜투구를 한다”고. 불펜투구로 웜업하면 통증이 줄고, 근육도 풀리는 느낌을 받긴 할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

팔이 안 풀린다는 건 엄밀하게 말해 팔이 좋지 않다는 일종의 신호에요. 팔이 자꾸 안 풀릴 땐 무작정 불펜투구를 할 게 아니라 메디컬 체크를 하고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스포츠 의사는 선생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람”

CM병원 재활센터에서 재활 중인 선수들과 대화 중인 이상훈 원장(사진 맨 오른쪽). 이 원장은 재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CM병원 재활센터에서 재활 중인 선수들과 대화 중인 이상훈 원장(사진 맨 오른쪽). 이 원장은 재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환자 가운데 어린 학생선수가 꽤 되지 않습니까.

초교나 중학교 학생선수들이죠. 그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통증 치료를 위해 찾아와요. 전 통증 치료를 바로 하지 않아요.

왜지요?

통증을 느낀다는 건 몸이 ‘위험 신호’을 보내는 거예요. 통증만 잡아서 될 일이 아니란 뜻이죠. 그 또래 아이들의 통증 이유는 대부분, 너무 많이 던졌거나 아이한테 맞지 않은 훈련을 했거나 잘못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을 때 발생해요.

네.

만약 제가 통증만 잡는다면 아이는 ‘아, 이제 아프지 않네’하고 여전히 많이 던지거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훈련을 하거나 잘못된 웨이트를 계속할 거예요. 그럼 나중엔 몸이 더 나빠져요.

그럼 통증을 느끼는 어린 학생선수는 어떻게 치료합니까.

아이들은 치유력이 있어요. 대부분 쉬면 좋아져요. 물론 마냥 쉴 순 없죠. 쉬기만 하면 뇌에서 근육이나 신체 밸런스 같은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 그런 상태에서 다시 야구하면 굉장히 아플 수 있어요. 그 가교 역할을 하는 게 재활이에요.

재활?

재활을 단순히 ‘통증을 없애는 과정’으로 아는 분이 꽤 돼요. 제가 생각하는 재활은 운동능력을 꾸준히 기억하게 하면서도 이후 운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밸런스를 키우는 과정이에요. 예외가 있다면 고3 수험생이죠.

고3?

학생선수도 고3이면 수험생이에요. 프로에 가야 하고, 대학 입학도 해야 합니다. 인생의 승부처이기 때문에 이땐 저도 통증 치료를 해줍니다.

환자 가운데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습니까.

기억에 남는 선수, 많죠. 음, 보자. (잠시 생각한 뒤) 제 환자 가운데 고교 1학년 투수가 있었어요. 제게 오기 전 이미 다른 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두 번 했더군요. 진찰 해보니까 어깨가 심각했어요. 어쩌다 어깨가 감염까지 된 상태였죠.

이런.

시쳇말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어요. 그 선수 치료하려고 해외 자료 보면서 죽어라 연구했죠. 제가 수술을 다시 두 번 집도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선수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줬고. 덕분에 수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하루는 진료 보고 있는데.

네.

그 친구가 찾아왔더라고요. “고맙습니다”하는데…. (활짝 웃으며) 정말 행복했어요. 환자 중에 유명 프로야구 선수도 많지만, 전 아직도 그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평소 그런 말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스포츠 의사는 선수 인생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어디서 들으셨어요?(웃음). 지금 말씀드린 고교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 친구는 프로보단 대학 야구부에서 뛰고 싶어 했어요. 그게 그 친구가 설정한 인생 목표였죠. 그 인생 목표를 이루려면 망가진 몸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건 의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죠. 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어떻게 선수를 치료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선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고요. [2편에서 계속]

이근승,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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