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다승, 평균자책, 탈삼진 1위 휩쓰는 구창모

-지난해 1차 진화 거쳐 올 시즌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발돋움

-국내는 물론 국외 매체에서도 화제…코빈과 비교, ‘사악한 슬라이더’ 평가

-경기운영과 완급조절 능력까지 장착…풀시즌 이닝 소화가 과제

리그 특급 에이스로 진화한 구창모(사진=NC)
리그 특급 에이스로 진화한 구창모(사진=NC)

[엠스플뉴스]

‘제2의 양현종’에서 이제는 류현진까지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NC 다이노스 좌완 영건 구창모가 올 시즌 NC 에이스를 넘어 리그 최고 에이스 자리까지 넘볼 만큼 성장했다.

6월 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구창모는 6이닝 1실점 호투로 시즌 5승째를 거뒀다. 8이닝 1실점 호투에도 승리를 못 챙긴 1경기를 제외한 5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챙겼다. 여기에 한화전 3연승과 최근 6연승 행진도 이어갔다.

이날 승리로 구창모는 다승 공동 1위, 평균자책 0.66으로 1위, 탈삼진 44개로 단독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승-평균자책-탈삼진 1위는 리그를 지배하는 괴물 투수들에게만 허락되는 기록이다. 2006년 한화 류현진 이후 14년 만의 좌완투수 트리플 크라운에 구창모가 도전장을 던졌다.

미디어하이프? 구창모의 진화는 이미 지난 시즌부터 시작됐다

구창모는 6번의 등판에서 5승을 거뒀다(사진=NC)
구창모는 6번의 등판에서 5승을 거뒀다(사진=NC)

요즘 제 기사가 많이 나오던데…그게 예전과 달라진 점 같습니다.

최근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구창모가 들려준 대답이다. 실제 구창모를 향한 미디어와 야구팬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ESPN 중계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여러 매체와 전문가가 구창모를 주목하고 있다.

ESPN는 2일 구창모의 5월 성적(4승 무패 평균자책 0.60)을 언급하며 “2015년 제이크 아리에타와 1986년 마이크 위트”를 비교 대상으로 거론했다. ‘팬그래프닷컴’에선 구창모의 슬라이더가 “패트릭 코빈을 연상케 한다”고 극찬했다. 투구 분석가 롭 프리드먼은 구창모의 투구를 “예술”이라 평했고, MLB.com의 데이비드 애들러는 “좌완이 던지는 스플리터라니, 멋지다”라고 감탄했다.

구창모는 이런 관심에 부담을 느끼기보단 즐기는 모습이다. 그는 등판일이 다가오면 조금 부담도 되지만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라며좋으니까 기사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오는 기사들을 계속 챙겨보고 있다. 같은 기사를 또 보고 계속 보기도 한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롭 프리드먼의 SNS를 인용한 기사를 언급했다. “미국에서 누가 ‘슬라이더는 사악하고 포크볼은 지저분하다’고 했다는 기사가 있던데, 제목이 웃겨서 기억이 납니다.” 앞서 프리드먼은 자신의 트위터에 구창모의 투구 영상과 함께 “구창모의 스플리터는 지저분하다. 슬라이더는 사악하고 검과 같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미국 매체와 전문가들은 구창모가 나온 경기 중의 6경기, 그것도 가장 잘 던진 경기만을 봤을 뿐이다. 혹시 미디어 특유의 과도한 띄워주기, 이른바 ‘미디어 하이프(media-hype)’는 아닐까. 사실 구창모가 특급 에이스로 진화한 건 올 시즌 갑자기 벌어진 예상 밖의 일이 아니다. 구창모의 진화는 이미 지난 시즌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창모는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전반기를 7승 3패 평균자책 2.02의 특급 기록으로 마감했다. 외국인 에이스 드류 루친스키(5승 7패)를 제치고 팀 내 최다승을 거뒀고 탈삼진 개수도 77개로 루친스키(78개)와는 1개 차,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는 2.83승으로 루친스키(3.98승)에 이은 팀 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구창모의 연도별 구종 구사율 변화(통계=스탯티즈)
구창모의 연도별 구종 구사율 변화(통계=스탯티즈)

2018시즌까지 구창모는 속구 구사율이 60% 이상으로 속구 의존도가 높은 투수였다. 속구 구위가 떨어지거나, 제구가 맘대로 안 되는 날은 볼넷을 남발하다 조기 강판당하는 날이 많았다.

지난해부터 구창모는 속구 의존도를 낮추고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등 변화구 구사율을 끌어올렸다. 슬라이더(25.1%), 커브(9.4%), 스플리터(11.5%) 등 3가지 변화구를 모두 10% 안팎의 비율로 구사했다. 올해는 변화구 비율이 더 높아져 슬라이더는 27.2%, 스플리터는 15.5%를 구사하고 있다. 속구 구사율은 47.6%로 데뷔 후 처음 50% 이하로 줄었다.

구창모는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양의지 선배와 호흡을 맞추면서 변화구 구사에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지면서 경기마다 널뛰던 기복도 사라졌다. 슬라이더가 안 좋은 날엔 스플리터로, 스플리터가 안 듣는 날엔 커브 구사율을 높여 타자를 잡아내는 요령이 생겼다.

수년간 1군 마운드에서 얻어맞으며 다진 맷집도 구창모를 강하게 만들었다. NC 이전 코칭스태프(김경문 감독, 최일언 투수코치)는 ‘제2의 양현종’을 기대하며 구창모를 꾸준히 1군 마운드에 올렸다. 아예 ‘10경기는 무조건 지켜본다’는 공약까지 걸어가며 구창모에게 기회를 줬다.

2000년대 이후 23세 이전까지 구창모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리그에서 단 14명뿐이다. 류현진, 장원준, 김진우, 배영수, 김광현, 윤석민, 양현종 등 대부분 입단과 함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에이스로 활약한 투수들이다. 구창모처럼 특별한 실적이 없는데도 1군에서 계속 기회를 받은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쌓은 경험치가 지난해를 거쳐 올 시즌 성과로 나오고 있다.

KBO리그 역대 9이닝당 탈삼진 10걸(규정이닝 70% 이상 기준). 구창모가 9위에 올라 있다(통계=스탯티즈)
KBO리그 역대 9이닝당 탈삼진 10걸(규정이닝 70% 이상 기준). 구창모가 9위에 올라 있다(통계=스탯티즈)

에이스 투수로 진화하기 전부터 구창모는 리그 최고 수준의 탈삼진 능력을 자랑하는 투수였다. 지난 시즌까지 구창모의 통산 9이닝당 탈삼진은 8.82개. KBO리그 역사상 규정이닝 70% 이상을 던지면서 이보다 높은 탈삼진율을 기록한 투수는 딱 8명(오승환, 심창민, 구대성, 신철인, 함덕주, 선동열, 김진성, 고효준) 뿐이다. 선동열을 제외하면 대부분 커리어 내내 구원투수로 활약한 투수들.

올 시즌도 구창모는 9이닝당 9.66개 탈삼진으로 KIA 드류 가뇽(10.69개)에 이은 2위에 올라 있다. 지금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하면 구창모는 삼진 226개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역대 KBO리그 한시즌 최다 탈삼진은 1984년 고 최동원이 기록한 223탈삼진이다. 미디어와 팬들이 구창모의 투구에 흥분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위기관리, 완급조절 능력까지…에이스로 진화한 구창모

MLB.com 데이비드 애들러가 구창모의 좌완 스플리터를 SNS에서 언급했다.
MLB.com 데이비드 애들러가 구창모의 좌완 스플리터를 SNS에서 언급했다.

6일 한화전은 투구내용만 보면 올해 구창모의 경기 중에 가장 ‘부진’한 경기였다. 이날 구창모는 총 8개의 안타를 맞았다. 2회부터 4회까진 이닝당 2개씩 안타를 허용했고, 6회엔 2루타와 적시타로 16이닝만의 실점도 허용했다. 볼넷 없이 삼진 6개를 잡아냈지만, 이전 등판만큼 날카로운 제구를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구창모는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낼 때마다 삼진 혹은 범타로 위기를 잘 넘겼다. 2회 무사 1, 2루에선 김회성 상대로 몸쪽에 슬라이더를 던져 3루수쪽 병살타로 잡아냈다. 3회 1사 1, 2루에선 정은원 상대로 계속 슬라이더를 던져 범타 처리한 뒤, 송광민 상대로는 강속구를 뿌려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4회 2사 1, 3루에선 이해창을 스플리터로 내야 땅볼 처리하고 위기를 넘겼다.

완급조절 능력도 돋보였다. 과거 구창모는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졌다. 대부분의 속구가 140km/h 중반 비슷한 구속으로 형성됐다. 그만큼 타자로서는 타이밍을 맞추기 쉬웠고, 에너지도 빨리 소모됐다.

6일 경기에서 구창모는 최저 138km/h에서 최고 149km/h까지 속구 스피드를 조절해 가며 던졌다. 하위타선과 주자 없는 상황에선 140km/h 초반대를 던지다 주자가 나가면 140km/h 중후반대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구창모는 위기 상황 때 힘을 쓰려고 한다. 긴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맞혀 잡는 피칭을 하다가 위기가 오면 구속을 올려서 피칭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구 구속을 이용한 체인지 오브 페이스, 위기관리 능력,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버티는 능력은 특급 에이스 투수의 자질이다. 여기에 “정신적 지주 박민우 형이 없어서 힘들었다” “6회 실점 상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해 점수가 들어가는 걸 거의 못 봐서”라고 농담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남은 시즌 구창모의 과제는 부상 없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초반 페이스를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지난 시즌 구창모는 전반기를 특급 성적으로 마감했지만, 기세를 후반기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후반기엔 9경기 평균자책 4.84로 부진했고, 허리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부상으로 국가대표팀 승선도 불발됐다. 2018년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기록한 133이닝이 구창모의 한 시즌 최다 이닝이다.

구창모도 이를 잘 안다. 그는 최대한 긴 이닝을 던지면서 최소한의 실점으로 팀 승리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던진다. 실점은 경기 일부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선발로 나가면 무너지는 일 없이 5이닝 이상은 던진다는 생각으로, 긴 이닝 던지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했다.

시즌 목표도 평균자책, 탈삼진왕이 아닌 ‘규정이닝 소화’로 정했다. 구창모는 “규정이닝을 넘어보고 싶다”며 ”규정이닝을 던지고 ERA를 낮추다 보면 승수는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긴 이닝을 소화해서 규정이닝을 달성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근 KBO리그에선 외국인 원투펀치에 더해 확실한 국내 에이스를 보유한 팀이 우승까지 차지했다. 지난 2년간 두산엔 이영하가 있었고, 2018년 SK엔 김광현이, 2017년 KIA엔 양현종이 버티고 있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 왕조엔 윤성환, 장원삼, 차우찬 등 국내 투수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올 시즌 단독 선두를 질주하며 ‘큰 꿈’에 도전하는 NC로선 에이스로 도약한 구창모의 활약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대투수 양현종, 괴물 류현진과 비교되고 특급 에이스라는 찬사를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구창모는 살짝 웃으며 “선배님들과 비교해주시니까 너무 좋다”고 했다.

여기까진 23살 어린 선수다운 반응. 그러나 이어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제 피칭만 하려고 하고 있다”는 말에선 에이스 투수다운 의젓함이 묻어났다. 구창모는 “5월과 똑같이, 하던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했다”는 말도 했다. 쏟아지는 찬사와 스포트라이트, 갈수록 커지는 부담 속에서도 구창모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