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애런 알테어, 외국인 타자로는 드물게 7, 8번 하위타선 출전 많았다

-7, 8번 타순에서 도합 10홈런 맹타 휘둘러…타순이 타격 능력에 영향 줄까

-이동욱 감독 “평균의 함정이다”…타격감 올라온 7월엔 중심타선에서도 맹타

-대부분 타자 “타순 신경 안 쓴다”…타순, 숫자에 불과하다

강타자는 타순을 가리지 않는다. 키움 상위타선을 구성하는 서건창, 박병호,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강타자는 타순을 가리지 않는다. 키움 상위타선을 구성하는 서건창, 박병호,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가 센터를 보고, 프로배구 외국인 선수가 공격수를 맡듯이 프로야구 외국인 타자에겐 으레 중심타자 역할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초창기 타이론 우즈부터 최근의 에릭 테임즈까지, 성공한 외국인 타자들은 하나같이 팀의 3, 4번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그런 면에서 NC 다이노스 애런 알테어는 독특한 존재다. 개인 성적만 놓고 보면 알테어도 4번타자로 손색이 없다. 7월 15일 현재 16홈런(공동 2위) 55타점(공동 1위)에 OPS도 0.975로 리그 7위와 팀 내 1위다. NC뿐만 아니라 어느 팀에 가도 3, 4번을 꿰찰 수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알테어는 중심타자로 나온 경기보다 하위타선으로 나온 경기가 훨씬 많았다. 2번타자로 6경기, 4번타자로 10경기, 5번타자로 7경기에 나올 동안 6번타자로 3경기, 7번타자로 13경기, 8번타자로는 가장 많은 15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1번과 3번, 9번을 제외한 모든 타순을 최소 3번 이상 경험한 알테어다.

타순별 기록도 하위타선일 때가 상위타선일 때보다 훨씬 좋았다. 7번타자로 타율 0.383에 6홈런, 8번타자로 0.364에 4홈런을 기록했다. 보통 하위타선에서 큰 것 한 방이 터지면 경기가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알테어 홈런=NC 승리 공식이 만들어진 이유다(13승 1무 2패). 반면 4번 자리에선 타율 0.231에 1홈런에 그쳤고 5번에서도 0.233에 2홈런으로 아쉬운 기록을 남겼다.


공포의 8번타자 알테어? 이동욱 감독 “평균의 함정”

NC 외국인 타자 애런 알테어(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NC 외국인 타자 애런 알테어(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혹시 타순이 알테어의 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러나 NC 이동욱 감독은 이를 ‘평균의 함정’으로 바라봤다. 이 감독은 14일 고척 키움 전을 앞두고 “시즌 초반 알테어가 상위 타순으로 나오다 결과가 안 좋았고, 하위타순으로 내린 뒤에 타격감이 좋아졌다. 그 뒤로 다시 상위타선으로 올라와서도 잘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순보단 리그 적응력과 타격 사이클의 문제란 분석이다.

이전에 안 좋았을 때 기록과 최근 기록을 합해 놓으면, 지금 잘해도 평균적으로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감독의 말이다. 실제 알테어는 4-5번 타순으로 복귀한 7월 들어 타율 0.311에 3홈런 장타율 0.556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감독은 “4번은 우리가 처음 알테어를 영입할 때 기대했던 역할”이라 덧붙였다. 비록 4번타자로 나선 이날 경기에선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하긴 했지만.

알테어 외에도 올 시즌 상·하위 타자 간 자리 이동이 유독 잦은 NC다. 고정 타순으로 나오는 선수는 1번 박민우(48경기)와 3번 나성범(52경기), 4번 양의지(37경기) 정도. 그 외 타자들은 수시로 상위타순과 하위타순을 오르내린다. 어제는 9번이었다가 다음날은 2번으로 나오고, 전날 7번에서 다음날 5번으로 나오는 변화가 수시로 벌어진다.

권희동은 2번(14경기)부터 9번(9경기)까지 온갖 타선을 경험했고 강진성도 3번(4경기)부터 8번(5경기)까지 변화가 심했다. 박석민도 4번(4경기), 5번(26경기), 6번(10경기), 7번(5경기)을 두루 오갔고 이명기는 2번(36경기)과 9번(4경기) 사이를 왕래했다.

NC는 심층 데이터를 근거로 라인업을 짠다. 일단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셋(박민우, 나성범, 양의지)를 1, 3, 4번 상수로 두고 그 외 타순은 당일 컨디션과 상대전적, 수비 포지션 등을 고려해 배치한다. 이 감독은 “선수가 좋아하는 타순이나 잘 치는 타순에 따라 라인업을 정하지 않는다. 그날그날 경기 상황에 따라서 라인업을 짠다”고 했다.

대부분 타자 “타순 신경 안 쓴다”…타순은 숫자일 뿐

이정후는 올 시즌 3번 타순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이정후는 올 시즌 3번 타순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다른 구단 데이터 분석팀 관계자는 타순과 타격 성적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고 전했다.

어떤 타자가 7번타자일 때 성적이 더 좋다고 해서, 7번 타순에 배치했기 때문에 좋은 타격을 했다고 여기는 건 비약이다. 이는 무사 2루시 타율, 1사 1, 3루시 타율 같은 상황별 타율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무사 2루라고 1사 1루 상황일 때 없던 타격 능력이 솟아나지 않듯이, 타순이 바뀐다고 타자의 타격 능력이 달라지지 않는다. 타순은 어디까지나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 대부분의 타자는 “타순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키움 이정후는 “몇 번 타순으로 나가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냥 똑같이 치던 대로 칠 생각이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정후의 통산 1번타자 타율은 0.331, 2번은 0.333, 3번은 0.361로 타순과 관계없이 고루 잘 쳤다.

커리어 내내 하위타순으로 나왔고 올해도 7, 8, 9번 하위타순 출전이 많았던 NC 권희동은 2번 자리에서도 14경기 4홈런 10타점 OPS 0.995로 변함없이 좋은 타격을 선보였다. 하위타순일 땐 부담이 덜해서 잘 치고, 상위타순에 갖다 놓으면 부담감을 느껴서 못 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타자에 따라 좀 더 편안하게 느끼는 타순은 있을 수 있다. 키움 박병호는 지난 시즌 초반 3번타자로 자릴 옮겼다가 결과가 좋지 않았고 다시 4번으로 원위치했다. 당시 키움 코칭스태프에선 “바빠 보였다. 루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주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타격이 좋아도 포수를 가급적 1, 2, 3번 타순에 배치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하나의 예외는 선수가 하위타순 배치를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커리어 내내 중심타선으로 나왔던 선수나 외국인 타자를 충분한 교감 없이 하위타순에 배치했다가 멘탈에 금이 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타순과 타격 성적 간에 비로소 인과관계가 발생하는 상황.

물론 NC 알테어처럼 선수가 하위타순 배치를 쿨하게 받아들인다면 문제될 게 없다. 이동욱 감독은 알테어가 타순은 전혀 상관없다고 하더라. 본인에게 물어봐도 감독이 타순을 짜주는 대로 나가겠다, 어떤 타순이든 문제없다고 한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량은 물론 팀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흠잡을 게 없는 알테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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