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루율은 원래 홈런타자의 훈장, 선구안 만으로 높은 출루율 기록하긴 쉽지 않아

-박준태와 홍창기, 조용호…장타율 낮아도 선구안으로 높은 출루율 기록중

-눈야구 새 강자 박준태 활약에…키움, 주전 중견수 임병욱 복귀 서두르지 않는다

-LG 새 리드오프로 떠오른 홍창기, KT 리드오프로 자리 굳힌 조용호

조용호와 박준태, 그리고 홍창기(사진=엠스플뉴스)
조용호와 박준태, 그리고 홍창기(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높은 출루율은 원래 강타자의 훈장이다. KBO리그 역대 개인 통산 출루율 순위표를 보면 에릭 테임즈, 펠릭스 호세, 김태균, 양준혁, 클리프 브룸바, 김기태, 최형우, 김동주, 박석민 등 이름난 장거리 타자가 즐비하다.

투수 입장에서 타석에 홈런타자가 있으면 신중한 승부를 하게 된다. 자칫 스트라이크존 복판에 몰리는 실투를 했다간 큰 것을 맞을 수 있다. 어떻게든 존 바깥으로, 치기 힘들게 던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자연히 볼넷이 많아지고, 출루율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장타력 없는 타자에겐 가운데 던져도 피해가 크지 않다. 기껏해야 단타, 운이 없으면 2루타 정도다. 투수 입장에선 존 안에다 공격적인 투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다. 만약 홈런과는 거리가 먼 타자가 높은 출루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그 타자의 선구안이 정말로 뛰어나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올 시즌 ‘눈야구’의 새 강자로 떠오른 키움 박준태, LG 홍창기, KT 조용호가 바로 그런 선수다. 이들 셋은 다른 것 없이 그야말로 순수한 ‘선구안’으로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박준태와 조용호는 올 시즌 홈런이 한 개도 없다. 박준태의 시즌 장타율은 0.287이다. 조용호는 2017년 데뷔 후 4시즌 홈런이 0개다. 홍창기의 홈런 수도 2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셋 다 4할 안팎의 높은 출루율을 무기로 자신만의 가치를 인정받고, 팀 승리에 이바지하고 있다.

겸손한 박준태 “배운 대로 타석에서 집중하다 보니 출루율이 쌓였다”

박준태는 뛰어난 출루율과 수비 능력으로 팀에 기여한다(사진=키움)
박준태는 뛰어난 출루율과 수비 능력으로 팀에 기여한다(사진=키움)

키움 박준태는 이적 첫해인 올 시즌 주전 중견수로 자릴 잡았다. 임병욱의 부상 공백을 틈타 주전으로 도약했다. 8월 7일 현재까지 234타석에 나와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타석을 기록했고, 데뷔 후 가장 많은 42개 안타를 날렸다.

‘키벤져스’라 불릴 정도로 쟁쟁한 강타자가 많은 키움 타선이다. 박병호를 비롯해 김하성, 박동원 등 두 자릿수 홈런 타자가 넘쳐난다. 최근엔 이정후까지 홈런 군단에 가세했다. 이런 라인업에서 장타율 3할도 안 되는 박준태가 살아남은 비결은 선구안이다.

비록 타율은 0.236으로 높지 않지만, 대신 출루율이 0.397로 4할에 가깝다. 안타를 쳐서 출루하나 몸에 맞아서 출루하나 1루 베이스를 밟는 건 똑같다. 박준태의 출루율과 타율의 차이는 0.161에 달한다. 20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 가운데 박석민, 박병호, 최정을 다 제치고 ‘절대출루율’ 1위다.

박준태는 데뷔 때부터 출루엔 일가견이 있었던 선수다. 첫 시즌인 2014년에도 타율은 0.262인데 출루율은 0.436을 기록했다. 타율 0.167에 그친 2015년에도 출루율은 0.353에 달했다. 통산타율은 0.220인데 통산출루율은 0.367이다. 박준태는 “아마추어 때는 그런 선구안 기록에 큰 생각이 없었는데, 프로에 온 뒤 코치님들로부터 ‘너는 타율보다 출루율이 높다’는 말씀을 듣고 인지하게 됐다”고 했다.

꾸준히 높은 출루율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박준태는 하다가 보니 그렇게 됐다. 주변에서 가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나가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배운 대로 타석에서 집중하다 보니 출루율이 쌓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전 인터뷰에선 “몸에 맞는 볼 때문이지 내 선구안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선수들과 구별되는 박준태만의 능력이 있다. 박준태는 올 시즌 존 밖으로 벗어난 볼에 스윙률 21.8%로 팀 내에서 서건창(19.6%) 다음으로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이는 이정후보다도 좋은 수치다. 2스트라이크 이후 선구율도 46.2%로 팀 내 1위다.

이에 대해 박준태는 타석에 서면 우선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놓고, 투수가 던지는 공이 나오는 걸 끝까지 본다. 구종이나 스트라이크/볼을 구분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공이 나오는 포인트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박준태는 “제가 전광판은 잘 안 보는 편이다. 출루율이 높은 것도 주위에서 하도 높다고 하길래 ‘높구나’ 하고 알았다”면서도 “시즌 초반엔 타율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시즌 초 1할대 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하지만, 조금만 더 타율을 올렸으면 한다. 시즌 끝까지 2할 5푼 이상만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목표를 말했다.

높은 출루율과 안정적인 외야 수비력을 갖춘 박준태의 활약에 손혁 감독도 흐뭇함을 감추지 않는다. 손 감독은 “박준태가 타석에 서면 왠지 출루할 것 같다. 타석에서 공을 많이 보는 것도 장점”이라며 “박준태가 잘해주고 있어서 임병욱의 부상 복귀를 서두르지 않는다. 현재 기술 훈련을 시작한 단계인데, 완벽하게 회복해서 돌아오도록 주문했다”고 했다.

퓨처스 4할 타자 출신 홍창기, 1군에서 눈야구로 주전 도약

리드오프로 자리를 잡아가는 홍창기(사진=엠스플뉴스)
리드오프로 자리를 잡아가는 홍창기(사진=엠스플뉴스)

박준태와 마찬가지로 높지 않은 타율, 장타율에도 출루 능력 하나로 주전 자리를 꿰찬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LG 트윈스 새 리드오프 홍창기다. 홍창기는 원래 퓨처스리그에선 알아주는 강타자였다. 경찰야구단 시절인 2017년 타율 0.401을 기록하며 퓨처스 북부리그 타율왕을 수상한 경력자다.

2018년 팀에 복귀했지만 좀처럼 1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잠깐 올라와서 대수비로만 나오다 다시 내려가길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 7월 18일 리드오프 이천웅의 부상을 계기로 기회가 왔다. 류중일 감독은 출루율이 좋은 홍창기에게 바로 1번타자 중견수 기회를 줬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1번타자로 나선 7월 18일 이후 홍창기는 출루율 0.388에 장타율 0.436을 기록하며 이천웅의 부상 공백을 완벽히 지웠다. 이 기간 홍창기가 올린 15득점은 같은 기간 팀 내 1위 기록. LG도 이 기간 10개 팀 중에 가장 많은 109득점을 올리며, 10승 4패로 해당 기간 1위 성적을 냈다. 5강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 4위로 올라선 것도 이 기간이다.

홍창기의 강점은 출루 능력이다. 절대 출루율 0.141로 100타석 이상 선수 가운데 키움 박준태에 이은 2위다.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율은 80.9%에 달하고, 2스트라이크 이후 선구율도 42.1%로 2스트라이크 이후에 끈질긴 승부를 펼친다. 존에서 벗어난 공에 스윙한 비율도 21.4%로 팀 내 1위. 나쁜 공에는 스윙하지 않는 타자다.

홍창기는 이에 대해 “이병규 코치님이 속구 타이밍부터 잡으라고 조언해 주신다. 내 타격 타이밍이 늦으니까 투수의 공이 잔디에 있는 동안 친다는 느낌으로 휘두르라고 주문하신다. 부담 갖지 말라고 치라는 말씀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리드오프 자리가 출루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재미를 느낀다최대한 내가 정한 네모의 스트라이크 존에서 밖으로 공이 나가면 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높은 출루율의 비결을 소개했다. “타율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우선 내가 출루해야 팀에 도움이 된다”는 게 홍창기의 생각이다.

류중일 감독도 홍창기의 활약이 흐뭇하다. 류 감독은 “홍창기가 잘해주고 있다”며 “용규 놀이라고 하나? 그걸 홍창기가 한다. 커트하면서 볼넷도 얻어낸다”고 껄껄 웃었다.

KT의 굳건한 1번타자 조용호(사진=KT)
KT의 굳건한 1번타자 조용호(사진=KT)

박준태, 홍창기 외에 KT 조용호도 빠뜨려선 안 될 눈야구의 강자다. SK 시절부터 트레이 힐만 감독에게 인정받은 출루능력이 KT에 와서 꽃을 피웠다. 애초 심우준-김민혁 테이블 세터를 구상했던 이강철 감독도 득점력 극대화를 위해 1번타자를 조용호로 바꿨다. 조용호는 7일 현재 0.417(팀 내 2위)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타석당 투구수도 4.62개로 압도적 리그 1위다(2위 권희동 4.42개).

조용호는 난 장타자가 아니라, 공을 맞히는 데 집중한다. 멀리 치려는 생각은 없다. 뒤에 좋은 타자가 많으니까 살아나가는 데만 집중한다”며 “팀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출루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타든 선발이든 관계없이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게 하고 출루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모든 타자가 멜 로하스처럼 홈런을 펑펑 날릴 순 없다. 모두가 호세 페르난데스처럼 배트를 거꾸로 잡고도 안타를 날릴 순 없다. 박준태와 홍창기, 조용호는 선구안이란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으로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점점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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