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마운드, 시즌 초반 극심한 불운에 시달려…팀 성적도 제자리걸음

-수비시프트 사용 시작한 뒤 확 달라진 투수진 성적, BABIP 9위에서 1위로 점프

-시프트 사용 이후 해당 기간 팀 평균자책 1위, 팀 승률도 1위

-행운은 준비된 자의 것…수비시프트, KT의 불운을 행운으로 바꿨다

수비시프트를 과감하게 도입해 마운드 성적 반전을 이룬 KT(사진=KT)
수비시프트를 과감하게 도입해 마운드 성적 반전을 이룬 KT(사진=KT)

[엠스플뉴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가만히 앉아서 행운이 오길 기다리기만 해선 다가오지 않는다.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행운이 미소를 보내는 법. 올 시즌 KT 위즈가 경험한 극적인 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KT의 올 시즌은 7월 3일 수원 키움 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경기 이전까지 KT는 수비시프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만 해도 데이터 팀과 협력해 수비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KT지만 올해는 유독 시프트 사용에 소극적이었다. 롯데나 NC 같은 팀이 3루수를 유격수 위치로, 유격수를 2루수 자리에 놓는 과감한 시프트를 시도할 때 KT 야수들은 정상 수비위치를 지켰다.

시프트를 사용하지 않은 기간 KT의 성적은 지지부진했다. 팀 타율 2위(0.294), 팀 홈런 2위(60개)의 화끈한 공격에도 투수진의 부진 탓에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시프트 미사용 기간 KT는 50경기 23승 27패 승률 0.460으로 리그 8위에 머물렀다. 팀 평균자책은 5.48로 최하위 팀 한화(5.86) 다음으로 나빴다.

이강철 감독은 이 기간 경기에 대해 희한하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상대 타자의 땅볼 타구가 치는 족족 수비수 사이로 빠져나갔다. 수비수가 없는 3유간, 1-2루간 코스로 빠져나가는 땅볼 안타가 유난히 많았다. 잘 맞은 타구도 빠른 타구도 아닌, 수비수 정면으로 갔다면 충분히 아웃을 만들 수 있는 타구가 안타로 이어지곤 했다.

운이 나빠서라고, 때가 되면 운이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6월 말이 되도록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전이 절정이었다. 이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한화와 경기하는데 땅볼 타구가 계속 안타가 되니까 답답해 미치겠더라. 아마 투수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라 했다.

때마침 박승민 투수코치가 “수비 시프트를 다시 사용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박 코치는 올해 우리 팀 투수 중에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가 나쁜 투수가 너무 많았다. 특히 땅볼 비율이 높은 투수들의 BABIP가 대체로 좋지 않았고 피안타율이 높은 걸 발견했다고 했다. 실제 시프트 미사용 기간 KT 투수진의 BABIP는 0.310으로 지난 시즌(0.302)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박 코치의 제안을 이 감독이 수용해 KT는 6월 말부터 수비시프트를 준비했다. 이 감독은 레전드 투수 출신이지만 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시도에 열린 마인드를 갖춘 지도자다.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제안에도 항상 귀를 열고 받아들인다. 신념을 고집하기보단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유연한 사고가 강점이다.

순위싸움에서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원인이 투수 쪽에 있다는 데 코칭스태프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투수를 살리기 위해선 시프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뤘다. KT 코칭스태프는 데이터 팀의 도움을 받아 타자별 타구 방향과 타구 속도, 발사각 등의 데이터를 추렸고 시프트를 조정했다. 타자에 따라 3루수가 유격수 위치로 이동하거나, 2루수가 우익수와 1루수 사이로 이동하는 위치 조정을 시도했다.

시프트 사용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투수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도 거쳤다. KT 관계자는 “아웃이라고 생각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경우도 나오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코칭스태프가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수비시프트 사용했더니…KT 투수진이 달라졌어요

KT 유격수 심우준(사진=KT)
KT 유격수 심우준(사진=KT)

KT가 본격적으로 시프트를 적용하기 시작한 건 7월 3일 수원 키움 전부터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전에는 내야를 통과해 땅볼 안타가 되던 타구가 내야수 수비 범위에 걸려드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KT 관계자는 굳이 데이터를 찾아보지 않아도 투수들과 팀 전체가 느끼기에 엄청난 체감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시프트 적용 이후 8월 8일까지 KT 투수진의 BABIP는 0.300으로 적용 이전보다 1푼가량이 낮아졌다. 이는 해당 기간 10개 구단 중에 가장 낮은 수치다. 피안타율도 0.261로 10개 구단 중에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같은 기간 팀 평균자책도 4.25(1위)를 기록하며 마운드 안정을 이뤘다. 9이닝당 볼넷, 9이닝당 탈삼진 등 투구 지표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은 걸 감안하면, 수비시프트가 가져온 변화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시프트 사용 전 0.392였던 김민수의 BABIP는 사용 이후 0.338로 뚝 떨어졌다. 소형준도 0.329에서 0.232로 BABIP를 낮췄고 김민은 0.293에서 0.267로, 윌 쿠에바스는 0.288을 0.261로 떨어뜨렸다. KT 관계자는 “이제는 팀 전체가 시프트를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안타가 되던 타구가 아웃이 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투수진 전체가 자신감을 얻는 효과도 있다.

시프트 사용 이전과 이후 KT 마운드 성적 변화(통계=스탯티즈)
시프트 사용 이전과 이후 KT 마운드 성적 변화(통계=스탯티즈)

마운드가 안정되자 제자리걸음이던 KT의 팀 성적도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프트 사용 이후 KT는 24경기에서 15승 1무 8패 승률 0.652를 기록했다. 해당 기간 리그 전체 1위 성적. 해당 기간 팀 득점은 134점으로 시즌 초반만큼 많은 점수를 올리지 못했지만, 실점이 같은 기간 리그 최소(107점)로 뚝 떨어지면서 지는 날보다 이기는 날이 훨씬 많아졌다. 8위였던 팀 순위도 8일 기준 공동 6위로 올라섰다. 5위 KIA와 경기차는 1경기 차로 5강이 눈앞이다.

이강철 감독은 “그냥 보고만 있어선 안 되겠더라. 조금이라도 투수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시프트를 하게 됐다”고 했다. KT는 운이 언젠가 돌아오길 마냥 기다리는 대신,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자꾸만 멀어지는 행운을 붙잡고, 결과를 바꾸기 위해 행동했다. 그 결과 계속 하위권에 머물 수도 있었던 팀의 운명을 바꿨다.

기본적으로 그라운드볼 비율이 높은 투수는 좋은 투수라고 봐야 한다. 우리 팀 땅볼 투수들이 시즌 초반엔 실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엔 지나고 보면 제 자리를 찾아가더라.KT 투수진을 향한 강한 자부심과 믿음이 드러나는 이 감독의 말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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