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재 캐스터, 19일 최초의 해설위원 없는 단독 중계 시도

-색다른 시도에 호평 쏟아져…듣기 좋다’ ‘내공이 있다’

-“초반엔 나도 모르게 말 많아져…3회 이후 멘트 줄였다”

-20일엔 MLB 전문가와 함께 중계방송…제작진만 믿고 묻어갑니다”

사상 첫 단독 중계에 나선 한명재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사상 첫 단독 중계에 나선 한명재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인천]

“‘이제 다저스 야구를 함께하실 시간입니다.’ LA 다저스의 전설적 캐스터 빈 스컬리는 항상 오프닝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하는 이야기 또 하나. ‘어디 계시든 오늘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야구장에 오면서 이런 멘트가 떠올랐습니다.”

9월 19일 KT 위즈-SK 와이번스의 시즌 12차전 경기. 캐스터와 해설자가 나란히 서서 오프닝 멘트를 주고받는 익숙한 그림을 예상하고 TV를 켠 시청자라면, 캐스터 혼자서 오프닝을 진행하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장면에 순간 당황했을지 모른다.

이날 중계방송은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해설위원 없이 한명재 캐스터 단독 중계로 진행됐다. ‘딱 한 번만이라도 온전히 야구에 집중해보고 싶다’는 시청자 의견을 반영해,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준비한 색다른 시도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빈 스컬리 같은 레전드 캐스터들이 혼자 중계를 하기도 하지만, 국내 야구 중계에선 캐스터 단독 중계는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중책을 맡은 한명재 캐스터의 오프닝 멘트에서도 책임감과 긴장감이 묻어났다. 한 캐스터는 “단독중계를 제안받고 굉장히 떨렸고 걱정이 많이 됐다”며 “제 옆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며 이날 중계방송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초반엔 저도 모르게 멘트 많아져, 3회 이후 말 줄였다…이렇게 말 적게 해도 되나? 싶기도”

한명재 캐스터의 단독 오프닝.
한명재 캐스터의 단독 오프닝.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한명재 캐스터는 어느 때보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평소에도 한 캐스터는 중계방송을 맡은 날엔 경기전 미디어 인터뷰에 반드시 참석한다. 기자들과 감독이 주고받는 문답을 잘 듣고 메모했다가 그날 중계방송 내용에 반영한다. 시청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고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다.

이날도 한 캐스터는 인터뷰장 뒤쪽 자리에 앉아 평소보다 더 진지하게 감독의 답변을 경청했다. 중간중간 질문이 비는 타이밍엔 궁금했던 점에 관해 직접 질문도 건넸다. 공식 인터뷰 시간이 끝난 뒤에도 감독에게 찾아가 추가 질문을 했다.

철저한 예습은 이날 중계방송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 캐스터는 KT 선발 배제성의 내려간 팔 높이에 대해, SK 선발 리카르도 핀토의 늘어난 포크볼 구사율에 대해, KT의 경기 중반 희생번트 시도에 대해 경기전 감독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해설위원이 빠지면서 생긴 ‘전문성’의 빈자리를 취재를 통해 채웠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캐스터에게도 단독 중계라는 새로운 시도는 낯설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경기 후 한명재 캐스터는 “저도 처음 해보는 거라 낯설었다. 제작진이 ‘경기에 집중하게 해보자’고 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여백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초반에 멘트가 다소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한 캐스터는 “제작진에서 ‘멘트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서 2회 지나고 3회부터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원래 해설위원과 함께하면 말을 많이 하게 되지 않나. 말을 적게 하려니까 이것도 만만치가 않다. 오늘 좋은 공부를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혼자서 방송을 진행하면 말을 줄이기도 어렵지만, 필요할 때 적절한 말을 바로바로 꺼내기도 어렵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해설위원이 대신 멘트를 하기도 하고, 그 말에 자극받아 적확한 멘트가 떠오르기도 하는 게 일반적인 중계방송의 진행 방식이다.

한 캐스터는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면서 서로 ‘크로스 토킹’하는 방송을 20년 가까이 했는데, 단독 중계를 하니 질문할 상대도 없고 혼자서 상황에 대해 판단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러다 보니 뭔가 말을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고, 나중엔 ‘이렇게 멘트를 적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제작진에게선 ‘그게 원래 의도니까 멘트를 적게 하는 게 맞다”고 얘기하더라. 시청자들이 어떻게 느끼셨을지가 궁금하다. 본의 아니게 이런 중계를 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성의 없다’고 느끼시진 않았을지도 걱정이 됐다.” 한명재 캐스터의 말이다.

한 캐스터의 걱정과 달리, 다행히 시청자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날 중계방송이 끝난 뒤 SNS엔 “시청자가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해서 해설 없는 중계를 기획했다는데.. 상당히 괜찮은듯” “중계 깔끔하네. 차분히 게임만 보게 돼서 좋네”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실만 전달해주니 상당히 듣기 좋아” 등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한명재 단독 중계 보는데 문득 예전에도 든 생각이 다시 떠오르는 게, 굳이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오디오를 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질 필요가 있나 싶다” “모든 건 최초에 의미가 있는 것임. 역시 한명재 내공이 있음” “다저스 빈 스컬리 중계처럼 조용히 야구 집중해서 보고 싶은 사람한테는 딱 좋은 느낌이더군요. 몇 번 더 시도해봤으면”등의 반응도 눈에 띄었다.

샤우팅 기대했는데 투수전…한명재 캐스터 “오히려 내겐 다행이었다”

방송 경력 20년차 베테랑 한명재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방송 경력 20년차 베테랑 한명재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이날 경기는 홈런과 득점이 쏟아지는 난타전도, 역전과 재역전을 주고받는 대첩과도 거리가 멀었다. 시청자에게 전문적이고 자세한 해설을 제공해야 할 만큼 복잡한 상황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7회까지 KT의 1대 0 리드로 진행되다가 8회와 9회 추가득점에 성공한 KT의 5대 0 승리로 끝났다.

이 때문에 일부 시청자 중에선 “한명재 캐스터의 특기인 샤우팅을 원 없이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양 팀 투수 보고 빵빵 터지는 타격전을 기대했는데 의문의 투수전이 펼쳐졌다” “경기 내용이 잔잔해서 한명재 캐스터 멘트가 마치 ASMR처럼 들렸다”고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나왔다.

한명재 캐스터는 웃으며 “오히려 그게 저에겐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치고받는 상황이 많이 나오질 않았다. 사실 저도 중계방송 준비를 이래저래 하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했는데, 다행히 특별한 상황 없는 경기가 펼쳐졌다. 제 입장에선 다행스럽게 잘 끝난 것 같다”며 ‘심플’했던 이날 경기 내용에 안도했다.

단독 중계라는 색다른 시도에 야구팬뿐만 아니라 후배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한명재 캐스터는 “방송 끝난 뒤 휴대폰을 보니 방송 중에도 후배들 문자와 전화가 많이 왔더라. ‘재밌게 봤다’ ‘많은 걸 느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더 민망했다”고 멋쩍어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나이도 경력도 많지 않은데,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선배가 별로 없고 후배들만 남았다. 내가 자칫 실수를 하고 잘못된 일을 하면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은 본보기가 된다.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쓰게 된다”며 베테랑 캐스터로서 갖는 사명감을 이야기했다.

끝으로 한명재 캐스터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방송 제작진에게 감사를 전했다. 한 캐스터는 “그냥 평범한 야구 중계일 수 있지만, 우리 제작진은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려고 한다”며 “젊은 후배들과 선배들이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훌륭한 제작진이 있어서 저는 그냥 묻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는 20일 중계방송에서도 계속된다. 이날 경기 중계방송엔 기존 KBO리그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아닌,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이 해설을 맡는다. 한명재 캐스터는 “단독 중계보다 송재우 위원과 함께 하는 중계가 더 기대된다. 기존 중계에선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한명재 캐스터와 송재우 해설위원이 진행하는 KT-SK의 시즌 13차전 중계방송은 20일 오후 1시 50분부터 MBC 스포츠플러스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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