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마이크 라이트(사진=NC)
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마이크 라이트(사진=NC)

[엠스플뉴스=대전]

상상 속 친구와 함께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마이크 라이트에겐 최근 새 루틴이 생겼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그리고, 웃는 얼굴을 그려 넣는다. 어린이들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린 뒤 연습 투구를 시작한다.

NC 관계자에 따르면 이 그림은 가상의 마음속 친구다. 친구를 그려놓고 마운드에서 함께 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감정 컨트롤을 위해 라이트가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법이다.

공교롭게도 친구와 함께하기 시작한 뒤 좋은 투구를 하고 있다. 친구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20일 롯데전에서 라이트는 6이닝 동안 한 점도 내주지 않는 호투를 펼쳤다. 6피안타 3볼넷 무실점에 삼진은 7개나 잡았고, 시즌 10승째를 달성했다. 이전 등판 롯데전 6이닝 4실점, 두산전 6이닝 7실점 부진을 말끔히 씻어낸 투구였다.

마운드에 나타난 라이트의 새 친구(사진=MBC 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마운드에 나타난 라이트의 새 친구(사진=MBC 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26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라이트는 새 친구와 함께했다. 2점 리드를 업고 1회말 마운드에 올라간 라이트는 바로 친구 그림을 그린 뒤 피칭을 시작했다. 공 2개로 노수광 아웃, 공 1개로 임종찬 아웃. 송광민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최근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린 브랜든 반즈를 외야 뜬공으로 잡고 실점 없이 1회를 마쳤다.

2회초 공격에선 NC의 ‘타자 친구들’이 홈런과 연속 안타를 터뜨려 4득점, 6대 0의 넉넉한 리드를 안겨줬다. 큰 점수 차에 마음을 놓은 탓인지 2회말 잠시 흔들렸다. 노시환에게 솔로포를 맞고 1실점, 최재훈에게 안타를 허용해 무사 1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발밑에 그린 친구를 보고 안정을 찾았다. 경기 초반 생각만큼 구속이 나오지 않는 패스트볼 대신 변화구 위주로 패턴을 바꿨다. 최인호를 내야 땅볼로 잡은 뒤 정기훈과 오선진을 외야 뜬공으로 처리해 추가 실점 없이 2회를 마쳤다.

안정을 찾은 라이트는 상위타선과 만난 3회에도 볼넷 하나만 내주고 무실점, 4회엔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호투를 이어갔다.

이날 경기 최대 위기는 5회에 찾아왔다. 1사 후 오선진에게 안타를 맞았고, 노수광의 빗맞은 투수 땅볼을 제대로 처리 못 해 내야안타를 내줬다. 라이트는 잠시 격한 감정을 표출하며 동요했지만, 이번에도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임종찬을 3루 쪽 파울플라이로 잡고 2아웃, 송광민까지 3루 땅볼로 잡아내 실점하지 않았다.

6회를 삼자범퇴로 막은 라이트는 7회에도 올라와 공 10개만 던지며 무실점. 올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이인 7이닝을 책임지고 8회부터 마운드를 소이현에게 넘겼다. 최종 기록은 7이닝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 총 투구 수는 93구를 던졌다. NC는 13대 1로 한화를 대파하고 파죽의 7연승, 라이트는 시즌 11승째와 한화전 4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이날 라이트는 경기 초반 패스트볼 구속이 140km/h 초반대로 평소보다 스피드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초반엔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를 집중적으로 던져 한화 타자들을 잡아냈다. 투구 수가 늘어난 6회와 7회엔 거꾸로 빠른 볼 비율을 높였다. 최고 152km/h에 달하는 위력적인 속구를 던지는 패턴 변화로 최근 타격감이 상승세인 한화 타선을 압도했다.

그간 라이트의 피칭은 위력적인 구위에 비해 어딘가 2% 아쉬움이 있었다. 좀처럼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고, 겨우 5이닝을 채우는 경기가 많았다. 잘 던지다가도 한순간에 흔들리며 대량실점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나 마음속 친구와 함께한 덕분일까. 지난 등판부터는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긴 이닝을 적은 투구 수로 효과적으로 막아내며 외국인 투수답게 상대를 압도하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마운드 위에 그린 친구, NC 동료 친구들의 도움 속에 더 좋은 투수로 거듭난 라이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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