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 10월 25일 별세…향년 78세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구팬…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 지내

-야구단에 적극적 지원과 투자…최초 미국 스프링캠프로 선진야구 초석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포수” 기업, 사회에서 포수 정신 강조

이건희 회장과 이만수 포수가 대화하는 장면. 이건희 회장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포수라고 강조했다(사진=삼성)
이건희 회장과 이만수 포수가 대화하는 장면. 이건희 회장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포수라고 강조했다(사진=삼성)

[엠스플뉴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5일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만이다.

격동의 시기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의 얼굴은 입체적이다. 공이 있으면 과가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이건희 회장을 향한 평가도 서 있는 위치와 풍경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하지만 스포츠 영역, 특히 야구에 한해서는 이 회장이 남긴 여러 업적을 부인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열렬한 야구팬이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 라이온즈가 대구 경북지역 연고로 창단하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당시 그룹 부회장으로 야구단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에이스 투수 김시진과 대화하는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에이스 투수 김시진과 대화하는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창단 초기부터 삼성은 야구단에 그 어느 구단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첫해 구단 운영비로 13억 원을 투자했고 1985시즌을 앞두고는 25억 원의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연고지 정착을 위해 팬서비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선진야구’ 도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를 위해 1985 시즌을 앞두고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우물안에 갇혀 있던 국내 코치, 선수들은 LA 다저스의 앞선 야구 기술과 인프라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선진야구를 경험한 삼성 선수들은 다른 팀과는 차원이 다른 번트 수비, 수비 시프트, 주루플레이를 선보였고 그해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선진야구를 위해선 재계 라이벌에게 배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종준 전 LG 트윈스 단장은 개인 SNS에 “삼성은 언제나 (LG의) 빅라이벌이자 동반자였다. 그들이 딱 한 번 고개를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LG를 벤치마킹하러 찾아온 적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LG트윈스가 최고 인기구단의 반열에 올랐을 때 삼성 구조본부에서 LG way를 배우고 싶다고 구단에 요청했었다”고 전했다.

야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프로 원년부터 대구 경북 지역 아마야구팀에 거액을 지원했고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해 지역 야구 유망주를 발굴했다. 2군 운영 활성화, 2군 연습장 마련도 다른 구단보다 앞서 나갔다. 삼성 퓨처스 팀이 쓰는 경산 라이온즈 볼파크는 이 회장 주도로 1987년에 세운 시설이다.

이 회장의 야구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14년 대구 넥센전에서 이승엽이 3점 홈런을 터뜨리며 11연승을 확정한 순간, 병상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이 순간적으로 번쩍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김인 당시 구단 사장이 삼성 선수단을 격려하러 방문한 자리에서 전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통합 우승을 차지한 1985년 시즌 뒤 삼성 선수단과 만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통합 우승을 차지한 1985년 시즌 뒤 삼성 선수단과 만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이 회장은 삼성 직원들에게 사내 스포츠로 골프, 럭비와 함께 야구를 권장했다. 이 회장이 생각한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포수였다. 그룹 임원들이 ‘투수’ ‘유격수’ ‘4번타자’를 거론할 때 이 회장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팀의 승패를 실제로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자리가 포수”라는 야구관을 강조했다.

한 언론 기고문에서도 이 회장은 “보통은 투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만,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 하나하나를 리드하고 투수의 감정을 조절해가며 수비진 전체를 이끌어가는 포수가 없는 야구를 상상할 수 있을까”라며 “빛나는 성공 뒤에는 항상 주목받지 못하는 그늘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포수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포수 정신을 강조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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