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선수협 판공비는 회장 보수 성격. 월급처럼 받은 건 관행”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선수협 정관. 임원 보수는 ‘무보수 원칙’ 명시

-정관엔 판공비 규정은 고사하고, ‘판공비’란 단어조차 없어. 협회 위해 쓴 돈은 실비 보상한다는 내용만 있어

-이대호 고발한 변호사 “계약상·법률상 근거없이 선수협으로부터 거액 지급받은 건 명백한 업무상 배임죄. 고액 보수 지급하기로 결의한 선수협 이사들도 업무상 배임죄 성립”

기자회견에서 고액 판공비를 논란을 해명 중인 이대호(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기자회견에서 고액 판공비를 논란을 해명 중인 이대호(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관행인가, 업무상 배임인가.

한국프로야구선수협 회장 이대호는 “판공비는 실제론 회장 보수였으며 월급처럼 현금으로 받은 건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 은퇴 선수는 “내 기억에 선수협 정관엔 회장 보수 규정이 없다. 판공비 규정도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판공비를 월급처럼 받았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엠스플뉴스는 이 은퇴선수의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정관을 입수했다. 선수협 정관엔 ‘(임원 보수는) 무보수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판공비와 관련해서도 정관엔 규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선수협 정관 ‘임원 보수는 무보수 원칙’. 정관에 판공비 규정은 고사하고, 판공비란 단어 자체도 없어. 협회 위해 쓴 돈에 대해서만 실비 보상한다는 내용 나와 있어 -

이대호는 ‘고액 판공비’ 논란에 휩싸이자 2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대호는 “판공비를 회장 보수로 받아왔다”며 이를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선수협 역대 회장 및 이사진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판공비’로 명명하기는 하였으나. 회장 및 이사진의 보수 및 급여로 분류하여 세금 공제 후 지급하고 있으며, 위 판공비 이외에 별도로 지급되는 수당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 관행이 문제가 된다면 조속히 바로잡겠다.” 이대호의 해명이다.

기자회견장에 이대호와 동석했던 모 변호사도 “관행상 이대호가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내내 이대호와 모 변호사는 ‘관행’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과연 ‘관행’의 근거는 무엇일까. 관행이 성립하려면 최소한의 법적 근거는 있어야 한다. 엠스플뉴스는 선수협 정관을 입수해 법률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세세하게 살펴봤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선수협 정관(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선수협 정관(사진=엠스플뉴스)

먼저 보수와 판공비 관련 내용이다. 선수협 정관 18조(보수)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① 임원의 보수는 무보수를 원칙으로 하되, 이사회가 정한 규정에 따라 임원이 본회와 관련된 업무를 위해 사용한 비용에 대해서 실비보상을 할 수 있으며,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

선수협은 정관에서 임원을 회장, 사무총장, 10개 구단 선수 대표로 구성된 10인의 선수 이사, 1인 이내의 감사로 규정했다. 정관에서 눈에 띈 건 사무총장을 제외한 임원들의 보수는 '무보수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판공비에 대해서도 찾아봤다. 이대호는 ‘선수협 역대 회장 및 이사진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판공비로 명명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관 어디서도 판공비 규정은 고사하고, 이대호가 명명했다고 설명한 ‘판공비’란 단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선수협 정관을 살펴본 A 변호사는 ‘이사회가 정한 규정에 따라 임원이 본회와 관련된 업무를 위해 사용한 비용에 대해서 실비 보상을 할 수 있다는 정관 내용은 말 그대로 선수협 일을 하다 쓴 돈을 실비(실제로 든 비용)로 보상주겠다는 것이다. 업무추진비 성격의 판공비와는 개념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대호 판공비와 관련해 ‘회장으로서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실비 보상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봤다. 하지만, 선수협 정관에서 적시한 ‘실비 보상'은 그 글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행할 업무와 관련해 미래에 발생할 비용을 선지급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 ‘업무를 위해 사용한 비용에 대해서 쓴 만큼의 돈을 보존해주겠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선수협은 정관에 임원 보수를 ‘무보수로 하겠다’고 명시했다. 선수협 정관을 제대로 읽어봤다면 이대호가 가져간 돈을 ‘회장 수행 업무에 대한 실비 보상 개념’이란 식으로 변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A 변호사의 얘기다.

- 변호사 “관행이라 정관 고치면 그만? 업무상 배임죄 해당" 주장 -

기자회견에서 이대호가 내포한 유인물. 이대호는 이 유인물에서 회장 판공비가 인상된 배경을 설명했다(사진=엠스플뉴스)
기자회견에서 이대호가 내포한 유인물. 이대호는 이 유인물에서 회장 판공비가 인상된 배경을 설명했다(사진=엠스플뉴스)

B 변호사는 “이대호 고액 판공비 논란이 벌어졌을 때 ‘그럼 선수협 회장은 자기 돈 써가면서 협회를 이끌어 가야 하느냐’는 이대호 형의 반론을 봤다. 처음엔 법률가인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선수협 정관에서 협회를 위해 쓴 돈은 그만큼 협회로부터 실비 보상받는다는 내용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7일 이대호 회장과 김태현 사무총장, 선수협 이사들(10개 구단 선수 대표)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법무법인 (유한)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선수협 정관이 임원 보수를 무보수로 원칙으로 한다는 점, 판공비 규정 자체가 없다는 점, 실비 보상은 ‘협회를 위해 쓴 돈에 대해서만’이란 점 등을 들어 다음과 같이 고발 이유를 밝혔다.

이대호 회장은 ‘위임관계’(민법 제680조 이하)의 법리에 따라 ‘선수협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계약상-법률상 근거 없이 위법하게 선수협으로부터 거액의 금원을 지급받아온 것은 명백히 ‘업무상 배임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에 해당한다. 설령 이 회장이 선수협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해당 금원을 지급받았다 하더라도, 이 회장은 업무상 배임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

덧붙여 박 변호사는 차기 선수협 회장에게 연 6천만 원의 보수를 지급하기로 결의한 선수협 이사진(10개 구단 선수 대표)도 민법상 ‘위임관계’의 법리에 따라 선수협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이대호 회장과 동일한 법리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선수협 정관 내용(사진=엠스플뉴스)
선수협 정관 내용(사진=엠스플뉴스)

박 변호사는 애초 고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호 회장의 측근이 ‘판공비를 합법적으로 받았다.’ ‘회장 활동비가 판공비를 매달 초과했다’는 식의 다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구 관련 서적을 낸 변호사이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프로축구선수협 자문 변호사를 맡아온 사람으로서 선수협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래선지 이대호 회장 측근의 이야기가 더 납득되지 않았다. ‘사단법인 지출에 문제가 있다면 이사회나 총회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내부 규정에 맞게 고발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측근의 자신감 넘치는 얘길 듣고서 문제를 살펴본 결과 다수의 문제가 발견돼 선수협 정상화를 바라는 차원에서 선수협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박 변호사의 얘기다.

선수협은 정관 34조(재정)에 ‘본회(선수협)의 재정은 다음의 수익금을 충당하며, 수익을 회원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하여 사용하고, 사업의 직접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가 되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참고로 ‘다음의 수익금’ 가운데 1번은 선수들의 회비다.

선수들의 회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야구장 밖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이근승, 배지헌,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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