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회, 두산 유니폼 끝으로 18년 현역 생활 은퇴

-“허무하게 현역 마지막 시즌 끝나, 몸 상태와 여러 가지 사정 겹쳐”

-“속구밖에 못 던지는 나를 믿고 써주셨던 김경문 감독님께 감사”

-“충격적인 두 차례 보상 선수 이적과 방출, 은퇴 고민 때 ‘첫사랑’ 두산이 손 내밀어”

-“2년 연속 KS 준우승으로 좌절, 오히려 포기했던 2019년에 우승 숙원 풀어”

-“‘땀승회’ 과분한 별명에 감사해, 18년 동안 흘린 수많은 땀에 후회 없다.”

현역 은퇴를 결정한 김승회는 두산 팬들이 보내준 사랑을 언급하면서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현역 은퇴를 결정한 김승회는 두산 팬들이 보내준 사랑을 언급하면서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잠실]

땀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말로만 외치는 노력이 아닌 땀으로 직접 보여준 노력은 그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8년간 프로 마운드를 지킨 투수 김승회에게도 ‘땀’의 의미는 특별하다. 땀이 많은 체질인 김승회는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수많은 땀방울로 마운드를 적셨다. 그렇게 단 공 하나에도 전력을 다하는 김승회의 투구에 야구팬들은 ‘땀승회’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아쉽게도 야구팬들은 마운드 위에서 거칠게 떨어지는 김승회의 땀을 더는 볼 수 없다.

김승회는 2003년 신인 2차 드래프트 5라운드 40순위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2013~2015년)와 SK 와이번스(2016년)를 거친 김승회는 2017년 두산으로 복귀한 뒤 2020년 겨울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김승회의 1군 통산 성적은 565경기 등판, 860이닝, 44승 50패 30세이브 73홀드, 평균자책 4.42, 576탈삼진이다.

프로 무대 18년 동안 김승회는 묵묵하게 흘린 정직한 땀으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김승회는 “현역 시절 후회 없이 땀을 흘렸다. 우리 딸이 더 아쉬워한다”라며 야구공을 내려놓는 심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엠스플뉴스가 18년 프로 생활과 그 세월 동안 흘린 땀을 돌아본 김승회의 은퇴 소회를 잠실구장에서 만나 직접 들어봤다.

- "몸 상태 등 문제로 마지막 시즌 허망하게 끝내, 두산 첫 스프링캠프 기억 먼저 떠올라" -

마운드 위에서 1구 1구 최선을 다해 던지며 흘리는 땀방울은 김승회의 트레이드마크다(사진=엠스플뉴스)
마운드 위에서 1구 1구 최선을 다해 던지며 흘리는 땀방울은 김승회의 트레이드마크다(사진=엠스플뉴스)

잠실구장 방문은 오랜만이겠습니다.

(잠실구장 마운드를 응시하며) 1군 마운드에 선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은퇴 결정 뒤 처음 잠실구장에 왔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다시는 오르지 못할 잠실구장 마운드니까요.

2020년 단 한 차례의 1군 등판 없이 은퇴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겠습니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몸 상태와 함께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현역 마지막 시즌이 끝났습니다. 허무한 느낌도 들어요. 그래도 1년 전 생애 첫 우승 반지를 꼈던 좋은 추억으로 공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은퇴 결정 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입니까.

2003년 두산 입단 뒤 떠난 첫 스프링캠프가 많이 생각납니다. 당시 일본 캠프였는데 처음 낫토라는 일본 음식을 접했어요. 처음 경험한 맛이라 먹기가 힘들었는데 당시 단장님이 몸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으라고 말씀하셔서 해마다 꾸역꾸역 낫토를 먹었던 게 떠오르네요(웃음). 그렇게 야구 인생을 시작한 두산에서 야구 인생 마지막 순간을 보낸 것도 의미가 있고요.

2003년과 2005년 잠시 1군 무대 맛을 봤다면 2006년(61G 79.2이닝 6승 5패 10홀드 평균자책 3.95)과 2007년(42G 83.1이닝 2승 6패 8홀드 평균자책 4.54) 본격적으로 1군에서 자리 잡게 됩니다.

저는 프로 인생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큰 기대를 받으면서 입단한 게 아니었거든요. 처음에도 프로 무대에서 5년 정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죠. 정말 고마운 스승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어떤 스승입니까.

김경문 감독님입니다. 어릴 때 저는 속구밖에 못 던지는 투수였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2006년부터 많은 등판 기회를 주셨죠. 당시 입대한 선배 투수들도 꽤 많았고요.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1군 마운드가 익숙해졌어요. 보직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때부터 어떤 자리에서든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뒤 2011년(24G 11선발 3승 3패 평균자책 4.68)과 2012년(24G 19선발 6승 7패 평균자책 4.04)엔 불펜이 아닌 선발 투수로 주로 등판했습니다.

그전에도 간간이 선발 등판을 했었는데 2012년은 정말 선발 투수로 제대로 도전한 해였습니다. 그해는 야구에서 투수라는 직업에 대해 많이 배운 시기였어요. 특히 (김)선우 형이 옆에서 선발 투수로서 던져야 할 변화구와 심리 싸움 요령을 많이 가르쳐주셨죠.

김승회라는 투수가 한 단계 발전한 계기였겠습니다.

2012년 이전까지 저는 속구 힘으로만 공을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선발 등판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상대 타자들을 맞춰 잡는 방법을 깨달았죠. 속구와 커브 투 피치에서 벗어나 슬라이더와 포크볼도 배웠고요.


- 충격이었던 두 차례 보상 선수 이적과 방출, 그리고 첫사랑 두산의 구원 -

김승회는 2014년 롯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야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냈다(사진=롯데)
김승회는 2014년 롯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야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냈다(사진=롯데)

새로운 재능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유니폼이 김승회 선수를 찾아옵니다. 2012년 겨울 두산으로 복귀한 홍성흔 선수의 FA 보상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두산을 떠난다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만 살다가 부산이라는 생소한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이적 초반 팀 적응도 쉽지 않았죠. 그래도 결혼하자마자 생긴 일이라 아내 내조가 새 팀 적응에 큰 힘이 됐습니다.

아내 내조 덕분인지 2014년은 김승회 선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남긴 한해였습니다. 롯데 마무리 투수로서 2014시즌 54G 등판 1승 2패 20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 3.05라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김시진 감독님과 정민태 코치님과 함께 재밌게 야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공으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시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을 맡아서 제 야구 인생에서 가장 재밌게 보낸 시간이었죠.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했다는 의미도 있었어요. 마무리 투수라는 자리에서 등판마다 큰 긴장감을 느꼈지만, 묘하게 막는 재미도 느꼈거든요(웃음).

부산에 적응하나 싶을 때 또 다른 항구 도시인 인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2015년 겨울 투수 윤길현의 FA 보상 선수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보상 선수로만 두 번째 이적이었습니다.

설마 저에게 또 그런 일이 있을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필 왜 또 나일까’라는 생각에 더 당황스러웠어요. 롯데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잘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보호 선수 20인 명단 밖으로 풀렸으니까요. SK라는 새로운 팀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점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 제가 당시 SK 투수조 최고 선참으로서 후배들을 끌고 가는 위치라 더 어려웠죠.

SK에선 2016년(23G 1승 1패 4홀드 평균자책 5.92) 한해만 뛰었습니다. 시즌 종료 뒤 FA 자격 신청을 보류했지만, 인생 첫 방출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제가 결국 못 던졌으니까 등판 기회가 안 온 겁니다. 실패한 시즌을 인정하고 FA 자격 신청을 보류했어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아 정말 힘들었죠. 그때 야구를 포기해야겠단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절망의 순간 첫사랑이 찾아왔습니다. 방출당한 김승회 선수에게 두산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방출 소식이 나온 뒤 김태형 감독님과 권명철 코치님께서 다시 두산에 와서 야구해보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두산을 떠나고 나니까 제가 두산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때가 정말 행복했으니까요. 어떤 역할이든 좋으니 두산을 위해서라면 팔이 빠지라 던질 준비가 됐었죠.


- "2년 연속 KS 준우승에 좌절, 포기했던 2019년에 오히려 우승 한 풀어" -

김승회의 첫사랑이었던 두산은 절망에 빠진 그를 구원했다. 2016년 겨울 SK 방출 통보 뒤 두산에 재입단한 김승회(사진=두산)
김승회의 첫사랑이었던 두산은 절망에 빠진 그를 구원했다. 2016년 겨울 SK 방출 통보 뒤 두산에 재입단한 김승회(사진=두산)

두산으로 돌아온 뒤 2017년(69G 69이닝 7승 4패 11홀드 평균자책 4.96)과 2018년(55G 54.2이닝 3승 4패 3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 3.46) 말 그대로 팔이 빠질 정도로 마당쇠 역할을 맡아 공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치면서 가장 중요한 생애 첫 우승 반지를 못 얻었습니다.

희한하게 제가 떠나 있을 때 팀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더니 제가 다시 오니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습니다(웃음). 정말 제가 와서 팀이 우승을 못 하는가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특히 2018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때는 하늘이 저를 외면하는구나 싶었죠. 이대로 제 야구 인생에선 우승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김승회 선수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극적인 통합 우승으로 우승의 한을 풀었습니다.

두산 복귀 뒤 모든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2019년 우승이 더 기뻤던 건 우승을 향한 응어리를 내려놨을 때 기적이 일어난 거였죠. 우승한다고 정말 예상 못 했는데 후배들 덕분에 마지막에 우승 반지를 얻게 됐어요. 정말 우승해서 행복한 감정이 이런 거구나 느꼈죠.

‘친구’인 정재훈 투수코치와 함께한 우승이라 더 뜻깊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재훈 코치와 같이 야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정재훈 코치와 같이 우승해본 적이 없었어요. 선수로 같이 우승했으면 좋았겠지만, 같이 나이 먹고 아저씨가 돼서 우승해보니까 느낌이 또 묘하더군요(웃음). 우승이라는 경험을 처음 하니까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한 느낌도 들어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우승의 한을 푼 덕분에 오히려 홀가분하게 공을 내려놓을 수 있는 듯싶습니다.

비록 현역 마지막 해를 허무하게 마무리했지만, 2019년 우승의 기억이 있기에 큰 미련 없이 은퇴를 택했습니다.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두산에서 시작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결국 우승으로 마무리했으니까요. 제 야구 인생을 돌이키면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네요.

- "뒷바라지해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팬들 덕분에 후회 없이 땀 흘렸다." -

김승회(첫 번째 줄 가장 왼쪽)는 2019년 오랜 친구인 정재훈 코치(네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함께 우승의 한을 풀었다(사진=두산)
김승회(첫 번째 줄 가장 왼쪽)는 2019년 오랜 친구인 정재훈 코치(네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함께 우승의 한을 풀었다(사진=두산)

‘땀’이라는 단어도 김승회 선수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도 마운드 위에서 쉼 없이 땀을 흘리면서 공을 던지는 ‘땀승회’입니다.

프로 선수로서 정말 감사하고 저에게 과분한 별명입니다. 프로 인생 18년 동안 제가 스타 선수도 아니었고 잘난 선수도 아니었으니까요. ‘땀승회’라는 별명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운드 위에 서고 싶은 열정이 솟아오릅니다. 오랜만에 잠실구장 마운드를 보니까 뛰어나가고 싶고요(웃음). 그래도 18년 동안 제가 흘렸던 수많은 땀에 후회는 없습니다. 팬들께서 좋게 봐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김승회 선수 야구 인생을 뒷받침해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도 전해야겠습니다.

먼저 저를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선 어릴 때부터 프로 무대에서 제가 공을 던지는 걸 보는 게 꿈이라고 하셨어요. 조금 더 제 야구 인생을 길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끝나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숫기가 없어서 제대로 말씀 못 드렸는데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결혼한 뒤 제 야구 인생이 잘 풀렸습니다. 결혼 생활 8년 동안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승회는 없을 겁니다.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딸 서아에겐 미안한 마음을 더 크게 느껴요. 최근에 딸이 아빠가 TV에서 안 나온다고 저보다 더 아쉬워하더라고요. 현역 때 딸을 못 챙겨준 미안함이 있는데 앞으로 1년 동안은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머리를 식히면서 다음 야구 인생을 구상해보겠습니다.


홀연히 떠난 김승회 선수를 목 빠지게 기다린 두산 팬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제가 정말 특별한 선수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꼭 우승 반지를 꼈으면 좋겠다는 두산 팬들의 간절한 바람에 저도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팬들에게 보답하는 활약을 마운드 위에서 펼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고 안타까워요.

그동안 힘들 때마다 두산 팬들의 응원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 정말 팬들의 응원 덕분에 후회 없이 땀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됐지만, 두산 베어스와 팬들을 정말 사랑하는 선수였다고 기억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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