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와 주권, 10년 만에 KBO 연봉조정위원회 열린다

-20차례 위원회 결과 선수는 1승 19패…구단 측에 치우친 조정위원 구성 문제제기

-조정위원 구성, 제출 자료, 조정 근거 없어…MLB는 노사협약에 명문화

-변화 가능성 시사한 KBO…“위원 선정·조정 기준 만들 것”

주권 효과가 KBO 연봉조정신청 제도에 변화를 가져올까(사진=KT)
주권 효과가 KBO 연봉조정신청 제도에 변화를 가져올까(사진=KT)

[엠스플뉴스]

‘주권 효과’가 39년 동안 유명무실했던 연봉조정신청 제도에 변화를 가져올까. 10년 만에 열리는 연봉조정위원회를 앞두고 KBO(한국야구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KBO 내부적으로 조정위원 선정 기준을 만들었고,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할 예정”이라며 ‘공정성’을 강조했다. 명확한 규정없이 KBO 총재가 임의로 조정위원 선정 기준과 판단 기준을 마련해서 제도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월 11일 연봉조정을 신청한 주권 선수와 소속팀 KT 위즈가 18일 각각 ‘연봉 산출 근거자료’를 KBO에 제출하면서, 역대 21번째 연봉조정위원회가 열리게 됐다. 그간 KBO 연봉조정신청 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KBO 규약 제75조에 명시된 선수의 권리지만 실제로 행사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2012년 LG 이대형 이후로는 8년간 아예 신청자조차 나오지 않았다. 실제 조정위원회까지 간 사례도 2011년 롯데 이대호가 마지막이었다.

역대 20번의 조정위원회에서 선수가 이긴 사례는 2002년 LG 류지현 딱 하나뿐이다. 선수 측 승률 5%. 2010년 타격 7관왕을 차지한 이대호마저 연봉조정신청에서 패한 뒤로는 선수들 사이에 ‘어떤 선수가 신청해도 이길 수 없다’ ‘신청해봐야 불이익만 받는다’는 패배 의식이 팽배했다.

미국은 노동법 전문 중재인으로 조정위원 구성, 한국은 명확한 기준 없어

미 프로야구 노사협약에 규정된 조정위원 선정 기준.
미 프로야구 노사협약에 규정된 조정위원 선정 기준.

KBO 공인에이전트 A 씨는 “이번 주권의 연봉조정신청은 신청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대호 이후 벌써 10년이 지나지 않았나. 이번 일을 KBO의 연봉조정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KBO 총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연봉조정위원 구성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거 열린 연봉조정위원회는 선수보다 구단 측에 유리한 인사 위주로 구성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장 최근인 2011년 이대호 때만 해도 조정위원 5명 중에 KBO 내부 인사가 2명, 구단 프런트 출신 인사가 2명으로 선수에게 불리한 구도였다.

프로야구선수협회도 이를 지적하며 KBO에 “조정위원회를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해 달라”고 촉구했다. 선수협은 1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KBO에서 구성하는 조정위원회가 그 어느 때보다 중립적이고, 선수와 구단 측 모두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되길 바라며, 조정위원회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조정위원 구성도 구성이지만, 위원회 구성에 아무런 기준이나 근거가 없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KBO 규약엔 ‘총재는 조정신청이 있는 경우 조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제76조)고만 돼 있다. 총재가 임의로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보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란 생각을 밝혔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경우 연봉조정위원회 구성 기준과 절차를 노사단체협약(CBA)를 통해 명문화했다. 우선 해마다 MLB 선수협과 MLB 노동 사무국이 공동으로 연봉 조정 위원회 패널을 선정해 선수와 구단 사이 힘의 균형을 맞춘다.

만약 1월 1일까지 패널을 선정하지 못하면, 미국 중재 협회에 요청해 노동법 전문 중재인 리스트를 추천받는다. 이 리스트를 토대로 MLB 선수협과 MLB 노동 사무국이 번갈아 가며 원하지 않는 후보를 제거해, 마지막 남은 3명의 패널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장도 선수협과 노동사무국이 합의해 정한다. 에이전시 대표 B 씨는 “미국 법원이 배심원을 선정하는 절차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중재 협회가 추천하는 노동법 전문 중재인은 미국 중재인 전문 아카데미 명예 멤버로 저명하고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KBO는 조정이나 중재 경험과는 무관한 야구 관계자, 야구인, 해설위원으로 패널을 구성해 전문성이 떨어진다. 에이전트 B 씨는 “중재 경험이 없는 분들이 조정위원을 맡다 보니, 본인들도 어떤 근거로 조정해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했다.

구단 고과가 연봉조정위원회 판단 기준? 선수-구단 공정하게 접근 가능한 자료 사용해야

KBO리그 10개 구단 엠블럼(사진=엠스플뉴스)
KBO리그 10개 구단 엠블럼(사진=엠스플뉴스)

연봉조정위원회에 제출하는 자료와 조정위원회 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에이전트 C 씨는 “KBO 규약 어디를 찾아봐도 연봉조정위원회가 어떤 자료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지, 어떤 판단 기준으로 조정하는지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선수와 구단이 연봉조정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는 자료와 불가능한 자료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에이전시 대표 B 씨는 “MLB는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통계자료, 수상기록 등은 가능하지만 퍼포먼스 기기, 스탯캐스트 자료, 웨어러블 기기 같은 것들은 제출할 수 없다. 스탯캐스트 같은 경우 구단만 사용할 수 있는 자료 아닌가. 선수와 구단 모두 공평하게 접근 가능한 데이터만 제출하게 해 놓은 게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연봉조정위원회 제출 가능 자료]

KBO: 관련 기준 없음

MLB: 통계 자료, 구독 시스템으로 접근 가능한 자료, 수상 기록은 제출 가능 / 언론 보도, 연봉 조정비용, 타스포츠와 비교, 퍼포먼스 기기, 웨어러블 기기, 스탯캐스트 자료, 선수와 구단의 재정적 상황 등은 제출 불가능

반면 그간 열린 KBO 조정위원회는 구단에서 제출하는 고과를 기준으로 삼아 판정했다. 10년 전 이대호 청문회 때도 “다른 팀 선수 연봉은 판단 근거로 삼지 않겠다”며 롯데 구단 고과를 근거로 삼았다. 이와 관련해 여러 선수 대리인은 “구단 고과는 대부분 대외비로 선수와 에이전트는 사용할 수 없는 자료”라며 “선수가 얻을 수 없는 자료를 기준으로 조정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에이전트 C 씨는 “연봉조정신청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일반 직장인과 달리 야구선수들은 직업 선택 자유는 있어도 직장 선택의 자유는 없다. 보류권으로 묶여있는 동안에는 선수가 팀을 고를 수 없는 구조다. 사실 선수들도 다 성적 좋은 팀에서 뛰고 싶어한다. 또 투수 중에 잠실야구장에서 던지고 싶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팀을 선택할 수가 없기에, 연봉조정 신청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에이전시 대표 B 씨는 “구단 고과는 구단에서 자체 개발한 시스템이고 구단마다 제각각이다. 10개 구단이 각기 다른 고과 기준을 사용하기에, 선수들은 똑같은 퍼포먼스를 발휘하고도 소속팀에 따라 받는 연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구단 고과가 아닌, 타 구단의 비슷한 연차 선수의 연봉을 판단 기준으로 연봉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KBO “조정위원회 선정 기준 내부적으로 정했다…추후 더 구체적인 규정 마련할 것”

주권 청문회는 역사적인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주권 청문회는 역사적인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이번 주권의 연봉조정신청은 변화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선수협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번 주권의 조정위원회를 계기로 선수협에서 연봉조정신청 제도 개선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과거 선수협 집행부에선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주력하느라 연봉조정신청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못했다. 양의지 신임 회장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KBO도 연봉조정신청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어느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KBO 고위 관계자는 “정지택 총재님도 공정한 조정위원회 구성을 강조하셨다. 조정위원 선정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많아서, 이번에 내부적으로 그 기준도 마련했다. 조정위원 선정 절차와 선정 방법 등은 청문회 결과 발표와 함께 공개할 예정”이라 했다. 다만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25일 전까지는 조정위원 구성과 구체적인 선정 기준은 공개하지 않는다.

KBO 관계자는 “아직 (제도가) 여러 가지로 미비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일단 이번 조정위원회는 기존 규정대로 진행하지만, 추후에는 좀 더 구체적인 조정위원회 선정과 판단 기준을 마련해서 제도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주권-KT 연봉조정위원회는 21일까지 위원 구성을 마친 뒤 25일 이전에 열린다. 여기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연봉조정신청 제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여러모로 역사적인 조정위원회가 될 전망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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