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지금은 고인이 된 구단주의 이루지 못한 약속 “더 야구단을 운영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젠가 꼭 야구단을 다시 찾아와 여러분과 함께 못다 한 꿈을 이뤄보겠습니다.”

청보 선수들이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벗어 박스에 넣는 장면(사진=MBC)
청보 선수들이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벗어 박스에 넣는 장면(사진=MBC)

[엠스플뉴스]

비룡(飛龍)이 승천했다.

모든 승천이 그러하듯 SK 와이번스의 승천도 ‘눈 깜짝할 사이’ 이뤄졌다. 원체 ‘일사천리’로 진행한 구단 매각이기에 야구계는 지금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첫 번째 인천 연고지 팀이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매각도 ‘눈 깜짝할 사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때는 1985년 4월 30일.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은 다른 팀 구단주들로부터 “18연패에서 탈출해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날 삼미는 최계훈의 호투로 MBC 청룡을 4대 0으로 꺾고 연패 행진을 ‘18’에서 마감했다.

하지만, 기뻐할 여력이 없었다. 같은 날 김 회장은 야구단을 풍한그룹의 청보식품에 넘긴 터였다. 매각금 70억 원.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구단 매각이었다.

다음날인 5월 1일 김 회장은 서종철 KBO 총재를 찾고서 “회사 경영상 불가피하게 매각할 수밖에 없다. 매각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저녁 서 총재가 긴급 구단주 회의를 소집했다. 6개 구단 구단주가 모였다. 이들 가운덴 삼미 매각 사실을 모른 채 참석한 구단주도 있었다. 한 구단주가 재계 막내격이던 김 회장을 보자마자 “현철아, 연패 탈출 축하한다”며 환한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는 후문이다.

삼미 야구단을 기습적으로 인수한 청보는 “3년 내 강팀으로 거듭나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강팀은 고사하고, 인수한지 2년 만에 매물로 나왔다. 1987년 들어 자금압박에 시달린 청보는 기습적으로 삼미 인수를 발표했던 2년 전과는 달리 공개적으로 인수기업을 찾아 나섰다.

결국 6개월간 동분서주한 끝에 1987년 10월 6일 야구단을 태평양화학에 매각했다. 매각을 끝마친 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우(청보식품 사장) 구단주는 구단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자리에 있었던 청보 기록원 강대진 씨는 “태평양으로 팀을 넘긴 뒤 구단주가 ‘야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구단 직원들에겐 눈물을 글썽이면서 ‘더 야구단을 운영하지 못해 죄송하다. 언젠가 꼭 야구단을 다시 찾아와 여러분과 함께 못다 한 꿈을 이뤄보겠다’고 말씀하셨다”며 “평소 시간 날 때마다 구단 말단직원들과도 맥주잔을 기울이던 소탈한 분이었다”고 김 구단주를 추억했다.

김 회장은 청보 구단 매각 5개월 전 그룹이 보유하던 서울 을지로 내외빌딩을 삼성그룹 계열사인 동방생명에 매각했다. 삼성은 한 백화점의 분점을 내외빌딩에 개설하려고 했다. 그 백화점이 바로 당시 삼성 계열사였던 신세계다.

박동희 대표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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