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구단들 팀명엔 죄다 호랑이, 사자, 청룡, 거인이 붙었단 말이야. 얼마나 위압감이 느껴져. 이런 상황에서 청보만 판다로 하면 어딘지 약해 보이잖아. 상대팀에 우습게 보이는 건 당연하고.

인천 연고지 2번째 팀이던 청보 핀토스(사진=엠스플뉴스)
인천 연고지 2번째 팀이던 청보 핀토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했다.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욕 먹지 않고, 오해 사지 않고 있다. 다행이다.

지금 팬들의 관심은 팀명에 쏠렸다. 팬들은 ‘신세계 와이번스’와 ‘SSG 와이번스’로 시작해 ‘이마트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와이번스’, ‘이마트 트레이더스’까지 위트 넘치는 다양한 팀명을 제시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국내 소비자들에겐 익숙한 신세계, 이마트보단 자사 온라인 쇼핑 통합 브랜드인 ‘SSG’를 팀명에 넣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0년 3월.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한 SK는 공모로 팀명을 결정했다. 9백 편의 응모작 가운데 최종 후보는 두 편이었다. 비룡을 뜻하는 ‘와이번스(Wyverns)’와 스피드광(狂)을 의미하는 ‘스피더스(Speeders)’였다.

SK는 인천에 유독 용(龍)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는 걸 고려해 와이번스로 팀명을 확정했다. 스피더스가 ‘속도위반자’라는 다소 범법적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는 얘기도 있다.

작명이 좋아선지 SK는 21시즌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4회 우승했다. 한국시리즈 진출도 8회, 포스트시즌 진출은 12회나 됐다. 이 기간 SK는 ‘SK 왕조’ 소릴 들을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작명대로 2021년 1월 26일 한국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뒤 비룡이 돼 ‘승천’했다.

SK의 먼 전신(前身)인 청보 핀토스도 두 가지 팀명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었다. 1985년 4월 삼미 슈퍼스타스를 인수한 청보식품은 애초 팀명으로 ‘청보 팬더스(Pandas)’를 고려했다. 모기업인 청보식품의 마스코트가 ‘판다’인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미 OB가 베어스(곰)를 팀명으로 쓰는데 굳이 또 곰(판다)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사내 이견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청보 팬더스’안은 폐기됐다.

삼미 구단의 마지막 사장이었던 허천구 씨는 OB 영향보단 ‘주눅 들지 마라’는 의미가 더 컸다고 회상했다. “다른 구단들 팀명엔 죄다 호랑이, 사자, 청룡, 거인이 붙었단 말이야. 얼마나 위압감이 느껴져. 이런 상황에서 청보만 판다로 하면 어딘지 약해 보이잖아. 상대팀에 우습게 보이는 건 당연하고. 주눅도 들지 않겠냐고. 그런 얘길 누가 김정우 구단주한테 한 모양이야. 얼마 안 가 바꾸더라고.”

청보는 아메리카 들판을 달리는 투지와 끈기 좋은 얼룩말의 일종인 ‘핀토’를 판다 대신 선택했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에 당시 아시아승마협회장을 맡았던 김정우 구단주의 말(馬) 사랑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프로야구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며 야심 차게 프로야구판에 도전한 청보 핀토스는 그러나 불과 2년만인 1987년 태평양 돌핀스에 매각되고서 역사의 들판으로 사라졌다.

박동희 대표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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