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청백전 자체 중계, ‘샤론 박’ 박지영 아나운서 캐스터 데뷔전

-윤규진 전력분석원, 김희준 대리와 찰떡 호흡…오디오 빌 틈 없는 입담

-“다른 종목은 해봤지만 야구 중계는 처음…단거리만 뛰다 마라톤 한 느낌”

중계석에 앉은 윤규진 전력분석원, 박지영 아나운서, 김희준 대리(사진=한화)
중계석에 앉은 윤규진 전력분석원, 박지영 아나운서, 김희준 대리(사진=한화)

[엠스플뉴스=대전]

“2시간 반 내내 중계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마치 마라톤을 처음 해본 듯한 느낌이에요.”

헤드셋을 내려놓고 중계실에서 나온 ‘샤론 박’ 박지영 아나운서(MBC스포츠플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한명재 선배, 정병문 선배는 물론이고 정용검 선배까지도 존경하게 됐어요.”

3월 3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자체 청백전. 이날은 이번 스프링캠프 한화의 첫 자체 청백전이자 박지영 아나운서의 중계방송 캐스터 데뷔전이었다. 한화는 이날 경기를 공식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를 통해 자체 중계했다. 박 아나운서에게 캐스터를 맡기고 윤규진 전력분석원과 외국인 스카우트 담당 김희준 대리를 해설자로 초대했다.

‘초보’ 캐스터-해설자, 막상 방송 들어가니 오디오 빌 틈 없는 입담

중계방송 화면(사진=한화)
중계방송 화면(사진=한화)

기나긴 겨울 야구에 목마른 한화 팬들에게 수준 높은 중계방송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구단 디지털마케팅팀 서우리 파트장은 “코로나19로 국내에서 캠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팬들과는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팬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좋은 환경에서 경기를 보실 수 있도록 자체 중계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화는 총 5개의 중계 카메라를 동원하고, 실제 TV 중계방송과 거의 동일한 카메라 뷰를 도입했다. 연출과 각종 효과, 오버레이도 방송사 중계를 최대한 본떠 제작했다. 중계를 맡은 박지영 아나운서도 “생각보다 중계 퀄리티가 좋아서 놀랐다. 한화에서 자체 방송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다”며 깜짝 놀랄 정도였다.

중계진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 첫 방송인 3일 윤규진 전력분석원-김희준 대리를 시작으로 이상우 전력분석원, 홍창화 응원단장, 김승리 전력분석원에 레전드 출신 정민철 단장까지 해설로 나설 예정이다. 또 익숙한 남성 캐스터 대신 여성 아나운서에게 플레이-바이-플레이 캐스터를 맡기는 참신한 시도도 눈에 띄었다. 박지영 아나운서가 방송 커리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프로야구 중계석 마이크를 잡았다.

서우리 파트장은 “정규시즌보다 좀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의 특성을 살려, 여성 아나운서에게 캐스터를 맡겨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정규시즌 TV 중계에선 여성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데, 이 기회를 살려 시도해 본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봤다”고 전했다.

박지영 아나운서 섭외는 정민철 단장의 추천으로 이뤄졌다고. 정 단장은 과거 해설위원 시절 박 아나운서에게 ‘나중에 꼭 야구 중계 캐스터를 해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방송하면서 여자 캐스터를 추천할 기회가 생기면 추천하겠다고 하셨는데 농담인 줄 알았어요.” 박지영 아나운서의 말이다. “정말로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과거 다른 종목의 중계석 마이크를 잡은 경험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탁구 등 몇몇 종목을 중계해 봤지만, 그야말로 일회성으로 짧게 해본 정도였습니다.” 중계를 앞두고는 “캐스터라기보다는 진행자 개념으로 생각해 달라”며 “너무 떨린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막상 ‘온 에어’가 되자, 프로 방송인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안정된 톤과 발음으로 경기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했다. 역시 중계석이 처음인 두 해설자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끌어냈고,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도 잘 살려내며 오디오가 빌 틈을 주지 않았다. “두 해설위원 덕분이죠. 오디오가 빌만 하면 두 분이 알아서 거들어주셨어요.” 박 아나운서의 말이다.

“윤규진 분석원, 김희준 대리도 저처럼 중계방송 데뷔였잖아요. 셋 다 떨리는 건 마찬가지라 서로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중계석에 앉았어요. 그런데 두 분이 중계 준비를 거의 논문 수준으로 해오셨더군요. 워낙 선수들과 한화에 대해 잘 알고 준비를 많이 한두 분 덕분에 무사히 중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윤규진 전력분석원은 경기 후 “준비한 내용의 10분의 1도 말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 얘길 들은 정민철 단장은 “해설자 중에 준비한 말을 다 하는 분은 허구연 해설위원 밖에 없다”며 윤규진 분석원을 치켜세웠다. 이날 윤규진 분석원과 김희준 대리는 한화 선수들의 특징과 성격, 팬들이 모르는 뒷이야기부터 경기 흐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잘 전달했다. 또 올 시즌 한화 야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팬들에게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잘 해냈다. 방송을 시청한 한화 팬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의 호평에도 박지영 아나운서는 “더 잘하고 싶었는데 준비한 만큼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프로야구는 욕심도 나고, 오랫동안 해왔던 종목이라 그런지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처음이고 퓨처스 선수들을 잘 몰라서 실수도 했는데, 윤규진 분석원이 바로잡아주셔서 바로 정정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경기 전체를 중계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하던 사이드 리포팅은 비유하자면 단거리 레이스잖아요. 물론 취재는 열심히 하지만, 실제 방송으로 나가는 시간은 짧아요. 그런데 중계 캐스터는 뭐랄까, 마라톤을 처음 해본 느낌이 이럴까 싶어요.”

‘여성 아나운서도 야구 중계 잘할 수 있다’ 한화의 의미 있는 첫걸음

3일 한화의 청백전 장면(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3일 한화의 청백전 장면(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국내 야구 중계역사에서 여성이 캐스터를 맡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과거 메이저리그 중계를 맡은 안진희-이정민 아나운서, 일본프로야구 이대호 선발경기 공동 캐스터를 맡은 김수한 아나운서, 리틀야구 중계를 한 김선신 아나운서가 있지만 프로야구 중계석 마이크를 잡은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는 ‘유리천장 깨기’가 한창인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도 다르지 않았다. 중계석에서 캐스터나 해설을 맡는 여성 방송인은 제시카 멘도사(ESPN), 수진 왈드먼(WFAN), 제니 캡나르(AT&T SportsNet), 멜라니 뉴먼(WJZ) 등 4명뿐. 대부분은 사이드 리포터나 스튜디오 진행을 맡는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세상이 재현되는 방식은 세상 자체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작품”이라고 꼬집었다. ‘야구 중계는 남성 캐스터가 해야 느낌이 산다’ ‘여성은 야구 중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은 어쩌면 아직 여성 캐스터가 하는 야구 중계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남성을 인간의 디폴트값으로 간주하는 사회가 만든 선입견에서 야구 중계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점에서 3일 한화의 청백전 중계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서우리 파트장은 “박지영 아나운서가 캐스터를 맡은 덕분에 기획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다음 중계는 조금 더 잘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긴 했는데, 준비하면 할수록 끝이 없더라고요. 100을 준비해도 10만큼밖에 말하지 못하는 게 방송이잖아요.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이 나올지 모르니까, 100을 준비하려고 노력해야죠.”

박지영 아나운서는 4일에도 이글스파크 중계석에 앉는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열리는 1군과 퓨처스팀의 청백전에서 이상우 전력분석원과 함께 중계방송을 맡는다. 한화는 6일과 9일, 10일 연습 경기도 자체 중계를 통해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팬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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