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랜더스의 시즌 초반 타격 부진, 9경기에서 팀타율-득점 꼴찌

-SK 시절인 2019시즌부터 3년 연속 초반 부진, 이제는 연례행사 됐다

-테이블 세터 부진과 추신수-로맥 쌍포 침묵에 득점력 저하 길어져

-쫓기지 않고 타자들 살아나기 기다리는 김원형 감독…타격 점화 실마리 언제 나올까

추신수와 이진영 타격코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추신수와 이진영 타격코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엠스플뉴스=인천]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이 겪는 일이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듯하다.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SK 와이번스에서 SSG 랜더스로 팀 이름을 바꾸고, 추신수와 최주환을 데려왔는데도 상황은 그대로다. 눈뜨고 일어나 야구장에 나오고 경기가 시작되면…이상하게 방망이가 맞지를 않는다.

SSG는 4월 14일 인천 홈에서 NC 다이노스에 0대 3으로 졌다. NC 상대 10연패로 뼈아프지만, 이날 패배로 벌써 시즌 3번째 무득점 패배를 당했다는 게 더 아프다. 팀이 치른 9경기 중에 1/3에 해당하는 3경기에서 한 점도 내지 못했다. 나머지 6경기 중의 2경기는 2득점에 그쳤다. 경기당 평균 2.67득점으로 1993시즌 태평양급 득점력이다.

원래 시즌 개막 전에 그린 그림은 이런 형상이 아니었다. SSG는 FA(프리에이전트) 2루수 최주환을 영입했다. 잠실구장만 벗어나면 30홈런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다. 미국에서 커리어를 마친 추신수도 데려왔다. 메이저리그 통산 218홈런을 때려낸 강타자다.

2018시즌 233홈런을 날린 타선에 최주환-추신수까지 가세했으니 가공할 파괴력으로 투수를 딱딱하게 만들 거라 기대했다. ‘최신맥주(최정-추신수-로맥-최주환)’란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SSG 상위타순을 향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9경기를 치른 현재까지 상황은 원래 써둔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펼쳐지고 있다.

3년 연속 초반 침체 SSG 타선, 테이블 세터 부진에 팀 득점력 저하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SSG(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SSG(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돌아보면 SSG 랜더스의 시즌 초반 타격 침체는 올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에도, 지지난 시즌에도 SSG 타선은 개막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누군가 타격 슬럼프를 묘사하며 사용한 표현: 모든 것이 형편없게 느껴지는 감정, 늦은 밤 위험한 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보다도 두려운 일을 타선 전체가 3년 연속 경험하고 있다.

시작은 2019시즌부터. 그해 부임한 염경엽 감독은 SK 타선의 컬러를 바꾸려 시도했다. 홈런에만 의존한 단순한 야구로는 지속 가능한 강팀이 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1군 타격 코치를 교체하고, 작전과 주루 등 세밀한 플레이를 강조했다. 타격 접근법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며, 직렬로 세팅한 SK 타자들의 타격 회로를 병렬로 바꿔보려 했다.

방향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었지만, 문과생들을 하루아침에 이과생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회로가 엉킨 SK 타선은 초반 수렁에 빠졌다. 처음 한 달 동안 거이 매 경기 3득점 이하에 머물렀다. 심지어 양상문 감독 시절 롯데 1+1 마운드 상대로도 한 점도 못 냈다. 19이닝 연속 무득점 퍼레이드까지 했다.

경기전 빙 둘러앉아 단체 미팅도 해보고, ‘망설임과 두려움을 떨치라’는 조언도 했지만 코끼리를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코끼리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후 경기를 치르면서 타격 성적은 시즌 초반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2018시즌의 가공할 화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도 초반 집단 슬럼프는 그대로였다. SK는 첫 30경기에서 팀 타율 9위, 팀 OPS 9위로 부진했다. 팀 득점도 전년도 같은 기간과 똑같은 125득점으로 9위. 그나마 10위를 면한 건 더 상태 나쁜 팀, 한화 이글스의 존재 덕분이었다.

타격 코치를 팀 레전드 출신 이진영 코치로 바꾸고, 벌크업을 시도하고, 히팅포인트를 앞으로 옮겨 장타 양산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여기에 2019년엔 그나마 버텨줬던 마운드까지 함께 무너지면서 SK는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일시적 슬럼프인줄 알았던 초반 팀 타격 부진은 시즌 마지막 날까지 계속됐다.

2019시즌과 2020시즌 첫 30경기, 2021시즌 첫 9경기 SSG 타선 성적(통계=스탯티즈)
2019시즌과 2020시즌 첫 30경기, 2021시즌 첫 9경기 SSG 타선 성적(통계=스탯티즈)

그리고 팀 이름부터 마스코트, 로고, 감독, 코칭스태프까지 모든 것이 바뀐 올 시즌에도 SSG 랜더스 타선은 시즌 초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9경기 치른 15일 현재 팀 타율은 0.196으로 꼴찌, 팀 OPS는 0.615로 9위, 팀 득점도 24점으로 최하위다. 이제는 연례행사가 된 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을까?

14일 경기를 중계한 심재학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현재 SSG는 출루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테이블 세터 역할을 하는 타자들의 침체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원형 감독의 진단도 비슷하다. 김 감독은 “출루가 필요하다. 볼넷도 필요하고 안타 등 공격 쪽에서 찬스가 있어야 하는데, 찬스가 부족하다보니 득점력과 연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SSG가 개막전 이래 줄곧 리드오프로 기용한 최지훈은 9경기 타율 0.143에 출루율 0.286에 그쳤다. 2번타자로 자주 나온 추신수와 제이미 로맥도 각각 타율 0.167과 0.160으로 타율이 1할대다. 테이블세터에서 출루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SSG는 9경기 중에 단 1경기에서만 1회 득점에 성공했고, 선취득점에 성공한 경기도 2경기에 그쳤다. 빅이닝은 9경기 동안 단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최주환은 3홈런 타율 0.371로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그 외 주축 타자들은 전체적으로 타석에서 반응이 늦다는 인상을 준다. 14일 경기에서도 평소였다면 좀 더 멀리 뻗어갔을 플라이 타구가 빗맞거나 평범한 타구에 그치는 대목이 많았다. SSG의 내야뜬공 비율은 38.6%로 KT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타자 카운트에서 스윙한 확률은 6.0%로 10개 팀 중에 제일 낮았다. 신중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 있고 과감한 스윙이 나오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외국인 타자 2명을 쓰는 효과’를 기대했던 추신수와 로맥의 초반 부진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올해 39세 시즌을 맞는 추신수는 시즌 4번째 경기 만에 첫 안타와 홈런을 신고했지만, 3경기 연속 안타 이후로는 다시 안타 소식이 없다. 시즌 타율 0.167에 출루율 0.286 장타율 0.267로 아직 기대했던 ‘추추트레인’의 활약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심재학 위원은 “국내 투수들 공과 존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14일 경기에선 공을 따라가며 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자신만이 아는 돌파구를 찾아내서 반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원형 감독은 “추신수가 짧은 기간 급하게 달려오느라 몸에 쌓인 피로가 있을 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자기 기량이 나오지 않는다”며 적절한 휴식을 부여해 제 컨디션을 찾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추신수의 부진이 시간이 해결할 문제라면, 로맥의 초반 부진은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올해 KBO리그 5번째 시즌을 맞는 로맥은 어느새 36세 노장이 됐다. 이에 구단 외부에선 ‘교체할 타이밍이 됐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로맥의 리더십과 리그 적응력을 높게 평가한 구단에선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코로나19로 초토화된 외국인 선수 시장 상황에서 로맥보다 나은 선수를 찾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였다.

14일 경기까지 로맥의 시즌 성적은 타율 0.160에 출루율 0.364와 장타율 0.280으로 장타 생산력이 뚝 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시즌 극 초반이라 생기는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의 두 배에 가까운 헛스윙률(16.8%→28.2%)과 낮아진 인플레이 타구 비율, 외야 방향 타구 비율 등은 좋지 않은 신호다. 첫 한 달간 타율 0.253에 2홈런 장타율 0.386으로 부진했던 지난 시즌보다도 더 기록이 좋지 않다.

선수들 믿고 기다리는 김원형 감독...최신맥주 타선 점화 실마리 찾아야

SSG 랜더스 선봉장 역할이 기대되는 추신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SSG 랜더스 선봉장 역할이 기대되는 추신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내리 3년 연속 초반 타격 부진을 겪는 SSG 랜더스에서 예년과 다른 게 있다면, 팀 수장인 김원형 감독의 마음가짐이다.

김 감독은 타선 침체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있다. 첫 8경기에서 고정에 가까운 라인업을 사용했고, 희생번트 등 작전도 최소화했다(2시도/1성공). 직접 나서서 최정의 스윙을 교정하거나, 많은 조언으로 머릿속 회로를 헝클어 놓는 대신 한발 물러서서 참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김 감독은 “기존 우리 팀은 높은 타율로 많은 득점을 올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주자를 쌓아놓고 큰 것 한 방으로 득점하고, 잠시 잔잔하게 가다가 큰 것 한방이 나오는 패턴이었다” “계속 경기에 나가고 자기 타이밍에서 타격하다 보면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SG 타자들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감독이다.

김 감독은 “타자들 대신, 우리 투수들이 잘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SSG 마운드는 13일 경기에서 NC 강타선 상대로 4실점, 14일 경기에서도 3실점만 내주고 잘 막았다. 한화전 17실점 경기로 인해 왜곡된 팀 평균자책도 4.56(7위)으로 나쁘지 않다. 타선이 3~4점 정도만 뽑아줘도 충분히 승리를 노려볼 만하다.

심재학 해설위원은 “SSG의 타격 침체가 지금보다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타선을 점화시킬 어떤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 실마리가 언제 어떤 경기에서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 안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형 감독은 “워낙에 우리 타선이 기대를 갖게 하는 라인업이다. 타순의 변화나 타격코치와 의논을 통해 선수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최신맥주’ 라인업의 부진이 이대로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추신수도, 최정도 다들 제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슬럼프에서 벗어났을 때, SSG 타선은 상대의 숨이 멎고 온몸이 딱딱해지는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그날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다음 달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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