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의 프로 생활 마친 정근우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웃음 끊이질 않는 정근우 “남다른 ‘촉’ 발휘하며 ‘맨이져’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갈 때 동메달 이상 딸 것이란 느낌 왔었다”

-“김성근 감독님은 프로야구 선수 정근우를 만들어준 은인”

-“당분간 아무런 꿈 없이 많은 걸 경험하고 싶다”

정근우(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정근우(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일산]

정근우(38). 한국 프로야구(KBO리그)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정근우는 KBO리그 최초 11년 연속 2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KBO리그 통산 기록은 1천 745경기 출전 1천 873안타, 121홈런, 722타점, 371도루, 타율 0.301. 2005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16년간 쌓은 업적이다.

정근우의 기량은 KBO리그에서만 빛나지 않았다. 태극마크를 달고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 등에 앞장섰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테이블세터로 활약했다.

정근우는 2020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정근우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엠스플뉴스가 은퇴 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정근우를 만났다.

정근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촉’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죠”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5년 SK 와이번스에서 KBO리그에 데뷔해 2020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1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야구장으로 출근하지 않는 삶이 낯설진 않습니까.

비시즌 땐 선수 때나 은퇴 후나 생활이 비슷해요. 은퇴한 걸 못 느꼈죠. 4월 3일 2021시즌 개막 이후엔 달랐습니다.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경기에 나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동료들은 열심히 땀 흘리고 경기에 나서는 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은퇴 후 근황을 궁금해하는 팬이 많습니다.

은퇴하면 여유가 많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웃음). 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MBC스포츠플러스 유튜브 채널 ‘맨이져’에 출연하고 있어요. 아주 재밌습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어떤 프로입니까.

프로야구 승부를 재밌게 예측하는 프로예요. 제가 촉이 남다른 사람입니다. 처음엔 어느 팀이 승리할지 승부 예측만 하자고 했어요. PD님과 작가분들이 저의 남다른 촉을 확인하시곤 다른 종목의 승패까지 맞춰달라고 하네요(웃음). MBC 스포츠플러스 간판인 정용검 캐스터가 잘 이끌어줘서 아주 재밌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촉’은 언제부터 남달랐습니까.

대표적인 일화가 있어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서 선수촌에 입촌한 날이었죠. 한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형, 느낌이 좋아. 동메달보다 좋은 메달을 목에 걸 것 같아. 눈에 보여”라고 했죠. 선배가 씩 웃더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동메달만 목에 걸어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열심히 해보자”고 했어요. 속으로 “얘가 뭐라는 거야”라고 했을 겁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 야구 역사에서 최고의 순간 아닙니까.

한국 야구를 세계에 알린 대회였죠. KBO리그를 다시 한 번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만들어준 대회이기도 했고요. 저 역시 이 대회를 통해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습니까.

2007년 SK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흔히 ‘우승의 맛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고 해요. 올림픽 금메달은 KBO리그 우승과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온 국민의 성원에 보답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험이었죠. 계속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고요.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면서 태극마크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위치에 섰을 땐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쿠바전 9회 말이 지금도 생생해요. 3-2로 앞선 9회 말 정대현 선배가 마운드에 올랐죠. 2사 만루 상황에서 공을 던지는 데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승리가 확정되고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했습니다(웃음). 하지만, 딱 한 순간은 잊지 못해요.

어떤?

시상대 가장 높은 위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부를 때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까진 금메달 딴 선수들이 왜 우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 느낌을 알겠더라고. 애국가가 마음을 울려요. 온몸에 소름이 끼쳤죠.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게 지금도 감사해요. 2008년 대회를 계기로 한국 야구의 위상이 확실히 올라갔습니다.

“주장으로 출전한 2015년 프리미어 12 잊지 못합니다”

정근우는 한국 야구 대표팀 주장으로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을 이끌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근우는 한국 야구 대표팀 주장으로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을 이끌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야구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걸 느낀 적이 있습니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2009년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등의 성과를 냈습니다. 어떤 대회를 나가든 자신감이 넘쳤어요. 일본이나 쿠바 등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일본이나 쿠바를 만나면 ‘쉽지 않은 상대’란 인식이 강했어요.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후엔 ‘우리가 준비한 대로만 하면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도 그랬습니다.

2015년 프리미어 12요?

주장으로 참가한 첫 국제대회였습니다. 개최국인 일본이 참 얄미웠어요. 한 예로 대회 개막전을 삿포로 돔에서 치렀습니다. 상대는 일본이었죠. 대회 개막 전날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의 경기가 있어서 구장 적응 훈련을 못했어요. 개막전 일본 선발은 오타니 쇼헤이였습니다. 이 선수는 당시 삿포로 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니혼햄 파이터스였죠.

아.

준결승에서 일본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땐 경기 일정을 일방적으로 하루 앞당겼어요. 누가 봐도 결승전을 앞두고 하루 더 쉬기 위한 변화였죠. 그래놓고선 ‘계획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얘기하면 끝이 없을 겁니다(웃음).

한국은 일본과의 개막전에선 0-5로 졌지만, 준결승에선 4-3으로 이겼습니다.

개막전에서 0-5로 졌지만 일본전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어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나 2009년 WBC에서 이긴 경험이 있으니깐. 준결승 선발투수도 오타니였습니다. 진짜로 공이 좋아요. 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이 오타니의 호투에 고전하면서 8회까지 점수를 뽑지 못한 이유였죠.

9회 초 한국의 마지막 공격. 점수는 0-3이었습니다.

제가 한 ‘촉’ 한다고 말씀드렸죠? 경기 전부터 오타니만 내려가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봤어요. 9회 초에 기회가 온 겁니다. 오재원, 손아섭이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타석에 들어섰죠. 2루타를 쳤습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을 누가 막겠습니까(웃음). 무사 만루에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주장으로 동료들에게 아주 고마웠어요.

고마웠다?

일본을 극적으로 이긴 뒤 결승에서 미국을 8-0으로 잡았습니다. 당시엔 2015년 프리미어 12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대회일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국가대표로 참가한 마지막 대회였습니다. 2020시즌을 마치고 지난 순간을 돌아보는데 고맙더라고요. 동료들이 주장을 믿고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서 우승을 일군 겁니다. 큰 선물을 받은 거죠(웃음).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김성근 감독님은 평생의 은인입니다”

SK 와이번스 김성근 전 감독(사진 왼쪽), SK에서 정근우와 한솥밥을 먹었던 김광현(사진=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 김성근 전 감독(사진 왼쪽), SK에서 정근우와 한솥밥을 먹었던 김광현(사진=엠스플뉴스)

2021시즌 부산고 동기인 SSG 랜더스 추신수가 야구계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동기지만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아주 멋진 선수예요. (추)신수는 코로나19로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후엔 자가격리를 거쳤죠. 다른 선수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하지만, 추신수는 추신수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홈런이 벌써 5개에요(웃음).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발언도 앞장서 하고 있죠. 더 잘할 겁니다.

많은 팬이 추신수가 공을 치고 정근우가 잡아내는 장면을 기대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은퇴를 결정한 게 아닙니다. 선수의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아요. 2루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면 조금 더 했을 겁니다. 2020시즌 최선을 다했지만 몸이 안 따라줬어요.

몸이 안 따라줬다?

날아오는 공의 속도나 바운드를 읽지 못했습니다. 야구 하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그만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은 안 했어요. 혼자서 마음 정리를 하고 2020시즌 중반 결심했습니다. 올 시즌이 프로야구 선수로 뛰는 마지막이라고. 참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2020시즌이요?

프로에 데뷔한 2005년(52경기 출전) 이후 가장 적은 경기(70경기)에 나섰습니다. 더그아웃에서 머문 시간이 많았죠. 한 타석이 소중한 선수들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남몰래 땀 흘리는 선수들도 봤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한 기회가 누군가에겐 평생의 꿈이란 걸 느꼈어요. 후배들과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정근우는 KBO리그 전설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만원 관중 앞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2020년은 LG 트윈스에서 뛴 유일한 시즌이에요. LG는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입니다. 팬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미디어를 통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전할 방법이 없었죠.

프로야구 선수로 뛴 마지막 경기를 기억합니까.

2020년 11월 2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었어요. 선발로 출전한 건 아니었습니다. 대주자로 출전해 도루와 득점을 기록했죠(웃음). 마지막 경기일 수 있어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은퇴는 언제 알린 겁니까.

LG는 2020년 11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7-9)을 끝으로 한 해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경기가 끝나고 코칭스태프에 은퇴 의사를 전달했어요. 후배들에게도 인사를 건넸죠. ‘프로야구 선수로 야구장에서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다’고.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들 “무슨 말이냐”고 했어요(웃음). 오지환, 정주현, 이천웅, 이형종 등 후배가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저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선배로 남은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 있습니까.

첫 우승을 경험한 2007년입니다. 그해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결혼했어요. 아내에게 “우승 반지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이었죠(웃음).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은퇴하고 보니 김성근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나요.

김성근 감독이요?

2007년 SK에서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건 김성근 감독님 덕분이었어요.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SK는 시간이 갈수록 끈끈한 팀으로 바뀌었죠.

김성근 감독은 훈련 강도가 아주 강하기로 유명한 지도자입니다.

말로 표현 못하죠(웃음). 보통 선수들은 프로나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시절이 가장 힘들었을 겁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지금도 고교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그렇게 운동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고교 시절보다 운동을 많이 했어요.

도대체 어느 정도였던 겁니까.

아침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동만 했습니다(웃음). 프로선수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 모든 선수가 군말 없이 땀 흘렸어요. 무엇보다 감독님이 가장 먼저 훈련장에 나와 제일 늦게 퇴근했습니다. 팀 수장이 14시간 동안 같이 호흡하고 땀 흘리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

김성근 감독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야구 선수이기 전에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 분이에요. 소속팀에서뿐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서도 승승장구할 땐 야구 잘하는 선수이기 전에 인간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준 분이죠. 김성근 감독에겐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김성근 감독은 정근우에게 우승의 맛을 알게 해준 지도자입니다. 프로야구 우승은 어떤 의미입니까.

KBO리그 10개 구단 지도자, 선수, 프런트 모두 온 힘을 다해 시즌을 치릅니다. 나 혼자 잘해선 우승이란 결과물을 만들 수 없어요. 감독, 코치, 선수, 프런트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나아가고 운까지 따라야 우승의 맛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누군가 “네가 손해를 보더라도 우승을 경험하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고민하지 않을 겁니다. 무조건 우승을 택할 거에요.

“팬이 있어서 후회 없이 선수 생활했습니다”

정근우는 프로에 데뷔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매 순간 온 힘을 다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근우는 프로에 데뷔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매 순간 온 힘을 다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근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도루입니다. 프로 데뷔 2년 차 시즌(2006)부터 11년 연속 20 도루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로 뛴 마지막 경기에서도 대주자로 출전해 도루에 성공했습니다.

어릴 땐 내가 생각해도 빨랐어요(웃음).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죠. 사실 고교 시절까진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어요. 노력으로 만든 겁니다. 대학교 때 항상 초시계를 들고 다녔어요.

초시계요?

매일 저녁 달빛 아래서 뛰고 또 뛰었어요. 초시계로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땀을 아끼지 않았죠. 항상 전력으로 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빨라졌어요. 자신감이 확 붙었죠. 프로 데뷔 초엔 다리만 들면 무조건 뛰었습니다(웃음).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바뀌었어요.

바뀌었다?

30대 중반부턴 어릴 때랑 다르더라고(웃음). 발이 느려졌다는 걸 몸으로 느꼈어요. 2루 베이스가 멀게 보였죠. 방법을 바꿨습니다. 출루하면 항상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 생각했어요. 그 타자의 컨디션과 습관 등을 고려해서 뛸 타이밍을 잡았죠. 상대 투수의 투구 폼도 철저히 분석했고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스피드는 타고나는 것 아닙니까.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게 있긴 해요. 하지만, 노력이 더해져야 도루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대학교 땐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뛰어다녔어요. 무조건 전력 질주였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훈련한 덕분에 KBO리그에서 11시즌 연속 20도루 이상을 기록한 게 아닌가 싶어요.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습니다.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은퇴한 정근우가 선수 정근우를 평가해줄 수 있습니까.

야구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 선수. 팬들이 2루수 하면 정근우를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 살면서 내가 기대한 것보다 많은 걸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후회 없이 은퇴할 수 있었고요.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을 겁니다.

제2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꾸고 있는 꿈이 있습니까.

38년간 온 힘을 다하면서 달려왔습니다. 당분간은 아무런 꿈도 꾸고 싶지 않아요(웃음). 가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로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고 싶고요. 많은 걸 꿈꿀 수 있는 시간을 보낼 겁니다.

정근우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자녀가 셋이에요. 다둥이 아빠죠. 은퇴하고 보니 아이들이 많이 큰 거예요. 첫째는 벌써 사춘기야.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싶어요. 선수 땐 월요일이 아니면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쉬는 날인 만큼 가족에 소홀한 날이 많았고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해야 합니다(웃음).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웃음). 잔소리가 늘어서...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써야죠.

프로야구 해설,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좋은 활약을 기대하는 팬이 많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아요(웃음). 불러만 주시면 선수 시절처럼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할 거고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네.

정근우란 선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팬이 있어서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겠습니다.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정근우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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