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3월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지침 논란

-의심 환자 발생 시 몰수패 규정, 문제 되자 확진자 발생 시 몰수패로 수정

-전문가 “확진자, 밀접접촉자 격리로 충분해…몰수패는 과잉 대응”

-확진자 발생 시 지도자 공정위 회부해 징계 조항도 논란…항의 나오자 삭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사진=엠스플뉴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2021 고교야구 주말리그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팀과 지도자에 대한 ‘페널티’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을 빚었다. KBSA는 3월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전국대회 대응 지침’을 발표했다. 고교야구 전국대회 개최 시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마련한 이 매뉴얼은 경기장 출입 시 직원, 선수단, 방문객 관리 방안부터 경기전 연습, 경기 준비와 진행 과정까지 세세하게 규정을 나열했다.

문제가 된 대목은 6장 ‘의심 환자 발견 시 조치’ 조항이다. 애초 KBSA가 발표한 규정엔 “토너먼트 대회에서 의심 환자 발생(코로나19 검사 대상자) 시, 해당 팀 경기는 몰수경기(패) 처리하고, 동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고열이나 기침 등 의심 증상을 보이는 선수만 있어도 소속팀 전체가 몰수패를 당하게 된다는 황당한 조항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코로나19 대응 지침 6차 수정본에 나온 조항.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코로나19 대응 지침 6차 수정본에 나온 조항.

KBSA는 “코로나19의 철저한 예방을 강조하려다 들어간 조항”이라 설명했다. KBSA 관계자는 “지난해 말 지금은 해체된 모 고교 일반 학생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야구부원까지 확진자가 되는 사태가 있었다. 당시 전국대회 기간이라 해당 학교는 경기에서 몰수패 처리했다. 그 조치의 연장 선상”이라며 “주말리그 경기는 추후 일정 재편성이 가능하지만, 토너먼트 대회는 일정을 다시 짜기가 어렵다. 부득이하게 몰수패 조항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 감독 사이에서 ‘의심 환자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몰수패 처리하는 건 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부랴부랴 규정을 고쳤다. KBSA는 ‘의심 환자’를 ‘확진 환자’로 수정해 “확진 환자 발생(코로나19 검사 대상자) 시, 해당 팀 경기는 몰수경기(패) 처리하고, 동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시했다.

의심 환자를 확진 환자로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한국야구학회 학술이사)는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한 최근 정부의 방역 지침과도 맞지 않는 과도한 제재이고, 같은 야구인 KBO리그의 코로나19 매뉴얼과 비교해도 정도가 과하다”고 지적했다.

KBO리그의 경우 지난해엔 1군 선수단 확진자 발생시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리그 중단을 결정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자가격리 대상자를 제외한 대체 선수로 중단 없이 리그가 운영된다. 엔트리 등록 미달 등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긴급 실행위원회 및 이사회 요청을 통해 리그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고교야구 역시 비슷한 수준의 규정을 적용하면 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황 교수는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를 격리 조치하고, 해당하지 않는 선수들은 검사를 받은 뒤 경기에 참여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팀 전체를 몰수패 처리하는 건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해당 팀 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도 있다”고 밝혔다.

한 명문 고교팀 감독은 “확진자가 나왔다고 몰수패 처리하는 건 코로나 19를 범죄화하고 확진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잘못된 규정이다. 걸린 선수가 팀원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나. 처음에 규정을 만들어 놓고 고교 감독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항의가 나오자 슬그머니 규정을 고친 것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 신생팀 감독은 “우리 같은 신생 고교나 약체팀의 경우 전국대회 토너먼트는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없는 기회다. 3학년 학생들에겐 사실상 전국 무대에서 스카우트들 앞에 실력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라며 “확진자가 나온 팀이 몰수패당하는 건 회복할 수 없는 큰 피해를 주는 일”이라 비판했다.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자 KBSA는 관련 규정을 또 한 번 바꿨다. 3일 오전 확인한 결과 해당 규정은 “확진 환자 발생, 방역 당국 또는 학교 자체 자가격리 조치에 따라 경기에 참가할 수 없는 경우, 해당 팀 경기는 몰수경기(패) 처리하고, 동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수정됐다. ‘방역 지침 위반’의 경우만 방역 당국에서 조치 가능하다는 단서도 붙었다.

선수 중에 확진자 나오면 감독 징계? 문제 제기되자 재빨리 삭제

경기를 지켜보는 고교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경기를 지켜보는 고교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또 하나 문제가 된 규정은 ‘확진자 발생 시 지도자 징계’ 조항이다. KBSA가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지침에는 “확진자 발생 시 선수단 관리의 책임을 물어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소속 지도자(감독)의 징계를 회부할 수 있다”는 항목이 있어 논란이 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팀 감독을 징계 대상으로 지목한 셈이다.

지도자들 사이에선 ‘말도 안 되는 규정’이란 반발이 거셌다. 충청권 고교 감독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도 받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운 나쁘면 얼마든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코로나19 걸린 것까지 지도자에게 책임지라는 건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수도권 고교 감독 역시 “우리 야구부 학생들은 전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집과 학교, 야구장을 오가는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코로나19에 걸렸다고 지도자를 징벌한다면, 감독 중에선 징계를 피하기 위해 선수들을 무리하게 통제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도 은폐하는 사례가 나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돼 곤욕을 치른 KBSA 임원 출신 야구인은 “코로나19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걸려 보니 누구라도 운 나쁘면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코로나19 확진자를 탓하거나 징계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했다. 이 야구인은 확진자가 탑승했던 택시를 이용하다 감염돼 2주간 고초를 겪었다.

이와 관련해 KBSA 관계자는 2일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담당자가 감독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만든 조항인 것 같다”며 “수정해서 다시 공지하겠다”고 했다. 3일 오전 확인한 결과 ‘개정 7판 매뉴얼’에는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KBSA는 감독자협의회 밴드를 통해 해당 규정에 대해 해명하고 삭제 사실을 알렸다.

KBSA는 3월 25일 처음 코로나19 지침을 발표한 뒤 불과 한 달 사이에 7번이나 수정을 거쳤다. 취재 결과 해당 지침은 전문가와의 협의나 내부 회의 없이 운영팀 직원이 외부 자문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감독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거치지 않아, 일부 감독 중에는 감독자협의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전까지 해당 규정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학생선수의 미래와 지도자의 경력이 달린 중요한 규정을 직원 개인이 졸속으로 만들고, 항의받을 때마다 고치는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선 확진자를 죄인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하고, 정부와 사회 및 단체가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이 점에서 확진자를 죄인 취급하고, 수시로 규정을 고쳐 신뢰를 떨어뜨린 KBSA의 방역 지침은 명백한 실패”라고 꼬집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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