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까지 한화 이글스의 수비시프트는 대성공이다. 수비진의 타구처리율, DER, 투수의 인플레이 타구 피안타율 등이 모두 지난해와 비교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 더 기대되는 건 수베로표 시프트가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란 점이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대전]

“투수가 수비시프트에 맞춰 투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 팀은 시프트가 투수에게 맞춘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비시프트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가 새로운 수비시프트 ‘맛집’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일부 타자 상대로만 선택적 시프트를 거는 기존 구단과 달리, 한화는 거의 모든 타자 상대로 매 구마다 시프트를 건다. 볼카운트마다 수비수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진풍경은 마치 엎어 놓은 컵 안에 구슬을 숨겨놓고 이리저리 섞는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여기에 착안해 대전 홈경기 때 관중들과 진행하는 전광판 게임도 있다.

2015년부터 올 시즌까지 한화의 각종 지표 비교(통계=스탯티즈)
2015년부터 올 시즌까지 한화의 각종 지표 비교(통계=스탯티즈)

데이터만 보면 한화의 수비시프트는 대성공이다. 한화 내야수들의 타구처리율은 지난해 89.84%에서 올해 90.13%로 향상됐다. 한화 내야진의 타구처리율이 90%를 넘긴 건 10구단 체제 출범한 2015시즌(91.19%)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투수진의 피 BABIP(인플레이타구 피안타율)도 지난해 0.324에서 올 시즌 0.273로 0.051이 감소했다. 올 시즌 한화 투수진의 BABIP는 1985년 프랜차이즈 창단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이전에는 1994년의 0.277가 최저치였다.

수비수들이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잡은 비율을 나타내는 DER도 0.722로 2015년 이후 처음 0.700을 넘기며 10개 구단 1위다. 리그 평균(0.688)보다 한화가 3.4% 더 많은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연결했다는 얘기다.

2016년 이후 줄곧 3할대였고 지난해에도 0.319였던 당겨친 타구 피안타율이 올해는 0.265로 뚝 떨어졌다. 내야타구 타율도 2015년 기록한 0.050 이후 제일 낮은 0.055를 기록 중이다. 땅볼 타구 피안타율, 강한 땅볼 타구 피안타율도 독보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수베로 시프트는 잘 통하고 있다.

수비가 좋아지면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투수들이다. 지난 2년간 한화는 투수 평균자책(ERA)이 수비무관 평균자책(FIP)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시즌엔 평균자책은 5.29인데 FIP는 5.15로 수비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평균자책이 높게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엔 평균자책 4.44에 FIP 4.85로 ‘수비 덕분에’ 좋은 평균자책을 기록 중이다.

한화 이글스 박찬혁 대표이사가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올린 글에는 수베로표 수비시프트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박 대표는 “우리 구단은 현재 인플레이 타구 피안타율 최소 1위”라며 “리그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비 시프트를 구사 중이므로, 시프트에 대한 의심은 no more!”라고 썼다.

볼넷 증가가 수비시프트 때문? 수베로 감독 생각은 다르다

배팅볼을 던지는 수베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배팅볼을 던지는 수베로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한편에선 수비시프트 사용의 명과 암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비시프트 분야에서 한국보다 훨씬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몇 해 전부터 ‘시프트 사용이 볼넷 증가를 부른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일례로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필자 러셀 A. 칼튼은 2017년 칼럼에서 “(2017년 데이터 기준) 시프트 상황에서 타석당 볼이 0.054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시프트가 타자에게 끼치는 영향만큼 투수에게 끼치는 영향도 크다는 게 칼튼의 분석이다. 투수들은 예민한 종족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야수를 왼쪽에 두 명, 오른쪽에 두 명 놓고 던지는 데 익숙하다. 몸에 익은 행동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 않고, 투구하는 데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는 게 칼튼이 제기한 가설이다.

칼튼은 “투수에 따라 시프트 때 좀 더 긴장할 수도 있다. 특정한 구종이나 로케이션에 불안감을 가질 수도 있고, 시프트를 걸었을 때 어떤 공을 던질지 들키기 쉬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니면 단순히 평소에 안 하던 사소한 뭔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투수가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게 칼튼의 생각이다.

올 시즌 한화는 9이닝당 볼넷 5.20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볼넷을 허용하고 있다. 리그 전체적으로 볼넷이 많아진(리그 평균 4.57개) 시즌이지만 한화는 그중에서도 유독 볼넷 허용이 많은 편에 속한다. 9이닝당 4.33개를 내준 지난해와 비교해도 1개 가까이 볼넷이 늘었다.

혹시 볼넷 증가가 잦은 수비시프트 때문은 아닐까. 수베로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수베로 감독은 “투수가 수비시프트에 맞춰서 피칭하려고 하면 (볼넷 허용)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팀 선수들에게 처음 수비시프트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 ‘투수가 수비시프트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야수들의 시프트가 투수에 맞춰진다’는 점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실제 한화의 시프트는 마운드에 선 투수가 누군지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보통은 타자에 따라 시프트가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한화는 투수에 맞춘 시프트를 선보인다. 가령 같은 로베르토 라모스 타석이라도 투수가 닉 킹험일 때와 김이환일 때 시프트가 다르다. 패스트볼 스피드와 구위, 그에 다른 타구속도가 다르게 형성되기 떄문이다. 같은 좌완인 김범수와 박주홍이 던질 때도 시프트가 달라진다.

수베로 감독은 “투수 쪽에서 시프트에 맞춰 볼 배합이나 로케이션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시프트가 투수에게 맞춰 가는 거라고 투수와 야수들에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투수 김민우는 5월 5일 어린이 기자단과 회견에서 ‘시프트 하면 편하신가요’라는 질문에 “시프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시프트가 좋다”고 말했다. 시프트와 볼넷의 상관관계는 앞으로 시즌을 치르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행복한 한화 더그아웃(사진=한화)
행복한 한화 더그아웃(사진=한화)

수베로 감독이 생각하는 현재 한화의 시프트 완성도는 어느 정도일까. 그는 “시즌 초반보다 수비시프트를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고 결과도 잘 나오고 있다”며 “시프트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 선수들 모두가 잘 정립된 상태”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아직은 경기전 미리 타자에 따른 포메이션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시프트를 하는 단계다. 앞으로는 경기 상황과 투수의 구종, 구질에 따라 선수 스스로 게임 안에서 순간순간 위치를 옮기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수베로 감독은 “투수의 공이나 카운트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건 감각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지금은 선수들이 감을 쌓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선수들의 경험이 더 쌓이면, 지금보다 훨씬 성공률을 높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대성공을 거둔 한화의 수비시프트는 지금도 계속 발전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중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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