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KBO리그 선발투수 수난시대

-평균 4.95이닝 소화에 그쳐…2015년 이후 최소

-선발 에이스 국외 진출, 외국인 에이스 부진에 평균 이닝 감소세 뚜렷

-선발 구인난에 오프너 전략 유행…선발투수의 가치와 의미가 변화한다

7일 경기에서 멋진 투수전을 펼친 박세웅과 원태인(사진=엠스플뉴스)
7일 경기에서 멋진 투수전을 펼친 박세웅과 원태인(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초미세먼지 공습으로 4개 구장 경기가 취소된 5월 7일. 온 야구팬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가 열린 대구에선 근래 보기 드문 명품 투수전이 펼쳐졌다. 롯데 안경 에이스 박세웅이 6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고, 이에 질세라 삼성의 황태자 원태인도 7이닝 동안 단 1점만 내주는 역투로 승리를 따냈다.

이날 경기는 경북고 에이스 출신 선후배 대결, 27세 이하 젊은 국내 선발 맞대결 외에도 양 팀 선발투수가 나란히 6이닝 이상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좋은 볼거리였다. 리그 선발투수 평균 투구이닝이 4.95이닝으로 채 5이닝이 되지 않는 올 시즌이다. 10개 구단이 출범한 2015년 이후는 물론 KBO리그 40년 역사상 선발 평균 이닝이 5회를 넘기지 못한 해는 올 시즌이 처음이다.

이닝이터 실종, 외국인 투수 부진, 신인 투수 대거 등장…선발 5이닝 쉽지 않네

올 시즌 최고의 이닝이터로 자리잡은 뷰캐넌(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올 시즌 최고의 이닝이터로 자리잡은 뷰캐넌(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선발이 5회도 못 버티는 리그에서 퀄리티스타트는 희귀한 기록이 됐다. 등판 수 대비 QS 비율이 37.2%로 2016년(34.4%) 이후 최저치다. 7이닝-3자책 이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는 상상의 동물 해태가 됐다. 존재한다는 전설은 들었는데 실제 봤다는 사람은 없다. 전체 등판 수 중에 QS+가 8.4%로 2015시즌 이후 처음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퀄리티스타트는 줄고 조기 강판은 늘었다. 2015~2020년까지 지난 6년간 선발 조기 강판율은 28.5%였다. 올해는 조기 강판 비율이 34.3%로 증가했다. 지난 6년간 24.6%였던 퀵후크도 올해는 31.8%로 크게 늘었다. 감독들이 인내심 테스트에서 너도 나도 기권을 외치는 중이다.

팀별로 보면 KT 위즈(5.58이닝), 삼성 라이온즈(5.40이닝), KIA 타이거즈(5.09이닝) 3개 팀만 선발투수 평균 이닝이 5회를 넘겼다. 나머지 7개 팀은 선발 평균 이닝이 5회에 못 미친다. 한화 이글스는 4.59이닝으로 리그 꼴찌고 SSG 랜더스도 4.65이닝에 그쳤다. 한화와 SSG 같은 팀은 선발과 불펜의 이닝 비중이 거의 5대 5에 가깝다는 얘기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을까. 지난 시즌 리그를 지배한 이닝이터들의 빈 자리가 커 보인다. 지난해 평균 6.77이닝을 책임졌던 NC 구창모는 5월 내 복귀를 목표로 아직 재활 중이다. 두산 라울 알칸타라(6.41이닝)는 일본으로 떠났고, KIA 양현종(5.56이닝)은 텍사스로 향했다. 투구내용은 별로여도 이닝 하나는 맛있게 잘 먹었던 워윅 서폴드(5.89이닝), 타일러 윌슨(5.82이닝), 드류 가뇽(5.70이닝)도 떠났다.

떠난 사람 대신 새로 합류한 외국인 투수들이 잘해주면 좋은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키움 조쉬 스미스는 4경기만 던지고 퇴출당했고(평균 5이닝), NC 웨스 파슨스(4.75이닝)와 두산 아리엘 미란다(4.72이닝), 롯데 엔더슨 프랑코(4.67이닝)는 좀처럼 클리닝타임 이후 얼굴 보기가 어렵다. SSG 아티 르위키(4.44이닝)와 윌머 폰트(3.60이닝)의 이닝소화 능력과 내구성은 차라리 전임자 리카르도 핀토(5.40)가 그리울 지경이다.

여기에 애런 브룩스(6.58이닝→6.11이닝), 댄 스트레일리(6.28이닝→5.22이닝), 드류 루친스키(6.10이닝→5.50이닝) 등 외국인 에이스 3대장마저 지난해보다 살짝 주춤한 모습이다. 사상 초유의 국내 캠프로 시즌 준비를 제대로 못 한 탓인지, 개막 초반 리그 투수들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

KT, 삼성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구단이 선발 구인난을 겪는 가운데, 20대 초반 어린 투수의 선발 등판이 점점 잦아지는 추세다. 2015년 182경기였던 23세 이하 투수 선발등판이 해마다 크게 증가해 지난해 327경기에 달했고, 올해는 144경기 기준 331경기가 될 추세다(현재 62경기).

원태인(6.33이닝) 같은 예외도 있지만 나이 어린 투수들 대부분은 제구 문제를 안고 있다. 올해 23세 이하 투수들의 9이닝당 볼넷은 5.53개로 리그 평균(4.55개)보다 1개가량 많은 볼넷을 내줬다. 긴 이닝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만한 경험과 레퍼토리도 갖추지 못했다. 올 시즌 23세 이하 투수들은 경기당 평균 4.29이닝(지난해 4.74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오프너 유행, 선발투수 보직의 의미가 바뀐다

장재영, 이의리, 김진욱. 올해 주목받은 신인 가운데 아직 선발로 안착한 선수는 이의리 하나 뿐이다(사진=엠스플뉴스)
장재영, 이의리, 김진욱. 올해 주목받은 신인 가운데 아직 선발로 안착한 선수는 이의리 하나 뿐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가뜩이나 좁아진 선발투수의 입지는 오프너, 탠덤 등 변칙 투수기용이 유행하며 더 쪼그라들었다. 2019시즌 키움 장정석 감독의 오프너 기용, 불펜데이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구멍난 선발 자리를 대체 선발 대신 불펜투수로 채우는 기용법이 새 트렌드가 됐다.

올해도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선발 두 자리를 ‘탠덤’으로 운영하고, 삼성과 키움 등이 오프너 운영을 시도하면서 기록상으로만 선발인 선발투수가 많아졌다. 일례로 3경기에 선발 등판한 한화 김이환은 평균 2.22이닝만 던졌고 2경기 나온 LG 이상영도 평균 2.83이닝만 던졌다. 키움 장재영처럼 오프너로 나와서 시구자만큼 적은 이닝(0.1이닝)만 던지고 내려간 예도 있다.

선발투수가 일찍 내려간 뒤처리는 불펜투수의 몫이 된다. 키움 김동혁은 올 시즌 무려 7차례나 2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4월 29일 두산전에선 4이닝을 던져 사실상의 선발 역할을 했다. LG 김윤식도 두 차례 4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벌크 가이’ 역할을 수행했다. 삼성 양창섭은 4월 20일 경기 3이닝, 25일 3이닝, 5월 1일 4.1이닝을 던졌다. 등판 간격이 거의 선발투수와 비슷하다.

투수들이 5이닝 던지는 법을 잊어버린 시대, 5회만 버티고 내려와도 박수를 받는 리그 환경에서 감독들은 투수 2명에게 5이닝을 맡기는 방법으로 경기 초중반을 버티는 중이다. 외국인 에이스들이 정신을 차리고, 부상 투수들이 돌아오고, 신인 투수들이 프로 세계에 적응할 때까지…선발투수들의, 그리고 감독들의 수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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