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사태와 리그 중단으로 인한 야구팬들의 분노에 결국 KBO 총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는 정 총재의 사과문에 ‘KBO리그 개혁 방안’이란 핵심이 빠졌다고 비판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정지택 KBO 총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정지택 KBO 총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


“제대로 된 총재라면 이번에 드러난 KBO의 문제점을 개혁하겠다고 해야 한다. 40년 된 KBO의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 짧은 기간 내에 개혁방안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에 대한 인식과 방향은 이번 사과문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일부 선수의 호텔 술판에서 시작된 리그 중단 사태 후폭풍이 좀처럼 잠잠해질 줄을 모른다. 방역당국의 선수 고발과 KBO 상벌위원회 징계, 구단의 사과문과 수뇌부 사퇴가 줄을 이었고 올스타전마저 취소됐다.

야구팬들의 분노가 KBO를 향하자 결국 23일 정지택 총재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총재는 공식 사과문에서 선수들의 방역지침 위반과 일탈 행위를 지적한 뒤 “해당 선수들의 일탈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일부 구단도 선수 관리가 부족했다. 리그의 가치는 크게 훼손됐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KBO 총재로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 총재는 “KBO는 앞으로 각 구단과 함께 전력을 기울여 방역수칙을 철저히 관리하겠다. 선수들에 대해서도 본분을 잊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겠다. 팬 여러분의 질책을 깊이 새기며 낮은 자세로 다시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리그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올림픽 휴식 기간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와 보완책을 더해 후반기에 인사드리겠다”고 사과문을 맺었다.

야구계 원로와 야구인 사이에서는 총재의 사과문 발표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원로는 24일 오전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총재가 공개사과까지 한 만큼 이제는 KBO가 사태를 잘 수습하고 김경문 감독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지택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10개 구단 사장단(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정지택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10개 구단 사장단(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반면 ‘알맹이가 빠진 사과문’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팬들이 왜 분노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는 외면한 채 방역수칙 위반과 일탈이란 지엽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고, 구단과 KBO의 ‘관리’ 책임만 거론했다는 지적이다.

프로야구 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김 변호사는 24일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재한 글에서 “이번 사태에서 가장 핵심은 구단 이기주의에 의한 리그 중단과 이를 방관한 KBO, 선수를 포함한 야구 관계자들의 구시대적 인식과 태도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총재의 사과문의 핵심은 방역지침준수와 선수 관리”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팬들이 선수들의 일탈 행위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가장 화가 난 이유는 일부 구단들의 전력손실을 우려한 성적 유지 문제로 팬들과 야구 산업 참여자들을 무시하고 리그를 중단시켰고, KBO와 야구 관계자들도 팬들에 대한 존중과 야구 비즈니스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편의주의로 이에 동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알맹이 빠진 사과만 할 게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KBO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문이다. 그는 “제대로 된 총재라면 이번에 드러난 KBO의 문제점을 개혁하겠다고 해야 한다”며 “40년 된 KBO의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 짧은 기간 내에 개혁방안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에 대한 인식과 방향은 이번 사과문에 담겨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단 이기주의를 없애고, KBO의 이익을 위한 리그 가치를 존중하도록 하는 것, KBO리그 가치는 KBO를 보는 팬들과 이를 지지하는 야구 산업참여자들에 대한 존중의 토대에서 야구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라는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약속해야 했다”는 의견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총재의 사과문에는 KBO의 핵심가치를 지키고 조직 및 운영의 개혁 방법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고, 지극히 전형적이고 구시대적인 단체의 사과문으로 끝나고 말았다”면서 “앞으로 KBO에 리그의 개혁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대해 뭔가를 더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김 변호사는 단순히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KBO리그 개혁을 위한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구단 이기주의, 행정편의주의, 야구인들의 관성에 의한 경기중단은 없어야 하고 야구의 생활화, 계속성을 위해 시즌에는 매일 야구 경기를 팬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월요일 경기편성, 우천 경기 최소화, 월요일 팬서비스와 사회공헌활동 시간 정착, 패장 포함 공개 인터뷰 등 미디어 소통확대”를 거론했다.

다 큰 성인들을 구단이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김 변호사의 생각이다. 그는 “구단의 선수 관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서 선수들에 대한 징계 이외에 구단에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구단 징계를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그는 “구단이 왜 선수의 사생활과 관련된 선수 관리에 대한 의무가 있는지 의아하다. 이러한 논리라면 롯데 CCTV 사건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 뒤 “구단이 업무 관련성이 있는 선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용자로서 제삼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 이외에 매우 모호한 관리 소홀 책임을 지는 것은 구시대적, 아마추어적 발상”이란 의견을 밝혔다.

이는 야구선수의 직업선택 자유와도 관련돼 있다. 김 변호사는 구단의 선수 관리 프레임이 뿌리내린 근본 원인으로 “결국 구단이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KBO리그의 관행과 규정”을 지목한 뒤 “선수에게 구단선택의 자유(FA, 자유계약선수 완화)를 주고 책임을 더 부여하는 게 맞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경기 외적 문제에 대한 구단의 관리 소홀 책임이 면제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 변호사가 제시한 또 다른 대안은 공인 에이전트 제도의 활용이다. 그는 “에이전트제도를 통해 구단은 선수 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구단은 아직도 에이전트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며 에이전트가 대리할 수 있는 선수 수를 제한(법인이어도 무조건 15명)하여 선수 관리를 구단들이 통제하려 한다. 정작 문제가 생기면 선수를 버린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에이전트가 만일 이번 사건과 같은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역학조사에서 허위진술, 고의적인 사실 누락은 없었거나 최소화되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선수들을 향한 무차별 폭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에이전시들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변호사를 연결해서 법적 대응을 도와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김 변호사는 구단의 선수 관리라는 프레임이 오히려 선수노조 설립을 정당화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구단의 강한 통제력은 프로야구 선수를 노동자로 인정하여 노조설립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라며 “구단들은 노조설립을 가장 싫어하면서도 노조설립의 법적 근거를 가장 강력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김 변호사는 “KBO리그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른 체 하는 것, 노력하지 않는 것은 선수가 고의로 볼넷을 주고, 삼진을 당하고, 코칭스텝이 잘하는 선수를 빼버리는 것과 같이 KBO리그가 승리하는 것을 방해하고 막는 승부 조작”이라며 KBO와 구단들의 개혁을 주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KBO리그는 팬들의 신뢰를 잃고 출범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단순히 징계와 처벌, 무늬만 사과에 그친다면 이후 비슷한 문제가 다른 형태도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리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위기를 개혁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면, KBO리그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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