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위기 맞이한 KBO리그, 풍전등화 위기인데 KBO는 평온

-16일 야구 선배들 출연한 캠페인 영상 발표…대대적으로 활용할 예정

-메타버스, NFT 등 신기술 활용 ‘하겠다’ 선언문도…실체는 없고 선언만 있다

-잘못된 진단에 엉터리 처방만 거듭, 위기 헤쳐나갈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 사과문 한번 발표한 뒤 다시 자취를 감춘 정지택 총재(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 사과문 한번 발표한 뒤 다시 자취를 감춘 정지택 총재(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

“누구 보라고 만든 캠페인 영상인지 모르겠습니다.”

9월 16일 KBO가 공개한 캠페인 영상을 시청한 뒤 모 구단 관계자가 한 말이다. KBO는 이날 ‘유혹의 손길이 다가올 때’란 제목의 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다. 이승엽(KBO 홍보대사), 허구연(MBC 해설위원), 홍성흔(전 두산베어스 선수)이 출연해 품위손상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상이다.

영상에서 검은 배경 속에 무거운 표정으로 등장한 세 출연자는 “야구가 무너진다면 우리의 청춘이, 삶의 목표가, 인생이 무너진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한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입니다”라고, “공짜 술 좋아하다가 패가망신합니다”라고 경고를 보낸다.

KBO에선 이 영상이 선수들에게 꽤 호소력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KBO는 “이번에 제작된 캠페인 영상은 각 구장 전광판과 클럽하우스, 식당 등에 설치된 디지털 사이니지 모니터를 통해 상시적으로 표출하고 KBO 및 구단 소셜미디어 플랫폼에도 업로드 해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 밝혔다.

또 “KBO 신인선수 교육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교육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KBO와 KBSA 홈페이지 및 각 학교에도 배포할 계획이며, KBO는 이번 영상을 통해 선수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나아가 부정행위 및 품위손상 행위 등 유해행위 근절을 위한 KBO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KBO의 각종 발표문, 실체도 내용도 없고 ‘하겠다’는 선언뿐…손발이 오그라든다”

KBO리그는 지금 풍전등화 위기 상황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KBO리그는 지금 풍전등화 위기 상황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그러나 막상 영상을 접한 야구 관계자와 선수들의 반응은 전혀 딴판이었다. 모 구단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와 문자로 주고받은 대화에서 “영상을 보고 기가 차서 한참 웃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에는 공익광고도 이런 감성으로는 안 만든다. ‘공짜 술 좋아하다가 패가망신합니다’라는 문구는 공사현장에 붙은 안전표어가 떠오른다”고 비판했다.

야구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마케팅 전문가도 “이런 결과물에 귀중한 주최단체지원금이 쓰였다는 게 황당할 뿐이다. 이런 건 프로스포츠 최고 엘리트 단체에서 내놓을 게 아니라, 어디 지역 관공서에서나 내놓을 결과물 아닌가?”라고 지적한 뒤 “영상의 퀄리티를 떠나 이런 식의 캠페인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결정권자들이 문제다. 차라리 KBO 인턴사원이나 객원마케터들에게 ‘마음대로 만들어보라’고 했으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KBO가 캠페인 영상을 만들고 선수 교육을 강화하는 것 자체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선수 교육은 최근 다른 종목단체들도 다 같이 강화하는 추세다. 여러 종목단체와 교류하는 체육 관계자는 “이들 단체들과 얘기해 보면 하나같이 ‘우리는 KBO처럼 되지 말자’면서 KBO를 반면교사로 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제는 한국야구가 온갖 악재와 악조건 속에서 점점 존재감이 흐릿해져 가는 위기상황에 KBO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메달 실패나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문제는 KBO가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정확한 원인 진단을 못 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해법과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이 출연해 훈계하는 캠페인 영상을 문제 해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다. 한 지방구단 관계자는 “방역수칙 위반 사건이 터진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 머리를 짜내서 내놓은 결과물이 이거라면 참 놀라운 일”이라고 비꼬았다.

한가하기 짝이 없는 KBO의 행정은 9월 7일 대대적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도 드러난다. ‘KBO, 뉴미디어-NFT-메타버스로 야구팬과 더 가까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KBO는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및 다양한 콘텐츠, 새로운 플랫폼 개발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진단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실행에 착수했다”면서 “영상 컨텐츠 제작, 메타버스 추진, NFT 상품 개발 등 KBO가 팬들에게 다양한 경로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예고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하여 야구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팬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예정”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신한은행과 협업해 야구팬들이 즐길 수 있는 메타버스 공간을 마련해 이벤트를 진행하겠다” “포스트시즌 기간 다양한 이벤트와 경품을 제공하겠다” “NFT(대체불가능토큰) 기반 디지털 상품의 개발 및 출시를 준비하겠다” “KBO만의 오리지널 영상 콘텐츠를 발굴하고, 경기중 화제성 높은 장면들을 선정해서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겠다” “유명 인플루언서와 함께 하는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겠다”고 ‘선언’했다.

보도자료 발표 당시 모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엠스플뉴스와 대화에서 “요즘 KBO의 실체 없는 보도자료 업무에 어이가 없다”면서 “내용은 하나도 없고 다 선언 뿐이다. 통합 마케팅이니 NFT라든지......보도자료를 받을 때마다 실소만 나온다. 뭘 했다는 것도 아니고 온통 ‘하겠다’ 뿐인데 이걸 왜 발표하는지 알 수가 없다. KBO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비판이 자꾸 나오니까 뭐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도 “KBO리그가 풍전등화의 위기인데 우리도 메타버스, NFT를 하겠다고 예고하는 KBO 행태를 보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정말 디지털 환경 변화 적응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메타버스, NFT를 할 게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뉴미디어 계약을 체결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꼭 ‘롤린’ 유행한다고 롤린 댄스 영상 올리는 정치인들을 보는 느낌”이라고 비꼬았다.

블록체인 분야에 정통한 IT 업계 관계자는 “한국프로야구가 최고 전성기일 때도 야구카드, 기념품 등의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념품 수집 문화가 발달한 미국야구와 한국은 사업 환경 차이가 크다”며 “야구가 한창 잘 나갈 때 NFT가 나왔어도 성공을 장담 못 하는데, 야구가 지금 같은 상황일 때 얼마나 시장성이 있겠나”라고 진단했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발표라는 지적이다.

지구 멸망 앞두고 뜬금 러브신 나오는 재난영화 클리셰, KBO가 지금 그렇다

텅빈 야구장 풍경(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텅빈 야구장 풍경(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재난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남녀 주인공 간에 뜬금없는 러브라인이 진행된다. 적이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쳐 죽기 직전인데도 주인공들은 도망가거나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한가하게 러브신을 벌인다. 자기들 딴엔 관객들을 위해 넣은 장면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작 보는 관객들은 속이 터진다.

요새 KBO에서 하는 일이 그와 비슷하다. 코로나19 술판 사태가 벌어진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KBO에선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도 위기 탈출 해법도 비전도 내놓지 못했다. 올림픽 브레이크 때 사과문을 내놓고, 취재진과 일일히 악수하며 잘하겠다고 다짐했던 총재는 그 이후 모습을 감췄다. 후반기 KBO리그는 썰렁한 관중석 앞에서 경기 수를 채우기 위한 경기를 꾸역꾸역 치르는 중이다.

9월 1일 대전 KT-한화전 관중은 역대 최소관중 30위 안에 드는 227명이었다. 한때 2%는 기본이던 인기구단 경기 중계방송 시청률이 지금은 0.5%도 안 나온다. 이런 와중에 KBO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결과물은 메타버스, NFT를 ‘하겠다’는 선언문과 금연광고 감성의 캠페인 영상이다. 팬들은 KBO리그의 환골탈태를 바라는데, 팬을 핑계로 엉뚱한 결과물만 내놓고 있다.

한 지방구단 관계자가 물었다. “이러다 리그 망하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밤에 잠이 안 오는데, KBO가 하는 걸 보면 이렇게 한가하고 평온할 수가 없다. 내가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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