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나온 포수 FA 3인. 강민호와 장성우, 최재훈(사진=엠스플뉴스)
시장에 나온 포수 FA 3인. 강민호와 장성우, 최재훈(사진=엠스플뉴스)

 

[스포츠춘추]

뛰어난 포수 한 사람은 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1997시즌을 6위로 마친 현대 유니콘스는 쌍방울 레이더스에 현금을 주고 리그 최고 포수 박경완을 영입했다. 1998년 현대는 창단 첫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원소속팀 쌍방울과의 상대전적은 박경완 영입 전 8승 10패에서 13승 5패로 역전됐다.

박경완은 2000년대 SK 와이번스의 운명도 바꿨다. 2002년을 6위로 마친 SK는 FA(프리에이전트) 시장에 나온 박경완을 3년 19억 원에 영입했다. 이듬해 SK는 창단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뤘다.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출발, 정규시즌 1위 현대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후 SK는 박경완과 함께 2007년, 2008년, 2010년 통합 우승을 이뤘다.

올겨울 FA 시장엔 팀의 운명을 바꿀 능력을 갖춘 대어급 FA 포수가 여럿 나왔다. 36세 고령에도 포수 OPS 1위(0.839)를 차지한 강민호와 KT를 정상으로 이끈 우승포수 장성우, 한화의 대들보 최재훈이 FA 자격을 취득했다.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주전포수는 키우기도 어렵고 희소가치가 큰 자원이다. 지키려는 원소속팀과 빼앗으려는 다른 구단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예상된다.

A등급은 없지만 실력은 다들 A급, 포수 FA 3파전

현대와 SK의 운명을 바꾼 포수 박경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현대와 SK의 운명을 바꾼 포수 박경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특히 올겨울 시장에 나온 포수 FA 중에는 ‘A등급’이 없는 게 특징이다. 장성우와 최재훈은 B등급 FA에 해당하고 세 번째 FA 자격을 행사하는 강민호는 C등급이다.

전년도 연봉 300%, 또는 보호선수 20명을 제외한 1명과 연봉 200%를 원소속팀에 보상해야 하는 A등급과 달리 B등급은 보호선수 범위가 20인에서 25인으로 넓어지고 보상금액도 전년도 연봉 100%라 부담이 덜하다. C등급은 아예 보호선수 없이 전년도 연봉 150%만 보상하면 된다.

비록 FA 등급은 A가 아닌 B, C등급이지만 실력은 다들 A급이다. 포수 FA 빅3 모두 포수로서 풍부한 경험과 수비력에 공격력까지 겸비했다. 삼성 주전 포수 강민호는 지난 한해 0.291의 타율에 18홈런 67타점을 기록하며 중심타자 역할까지 소화했다.

내년 37세 시즌을 맞는 노장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앞서 박경완, 진갑용, 조인성 등 국가대표급 포수들은 하나같이 불혹이 넘어서도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팀 포수진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하고, 젊은 포수들이 성장할 시간을 버는 데 이만한 카드도 없다.

장성우는 리그 역사상 몇 안 되는 ‘우승포수’ 타이틀의 주인공이다. KT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포수로서 눈을 떴다. 시즌 막판 중요한 경기와 한국시리즈 4경기에선 물 흐르듯 부드러운 리드와 게임 운영을 보여줬다. 포구, 송구 등 기본 수비도 부쩍 안정된 모습.

내년 32세로 포수 FA 중에 가장 젊다는 것도 매력이다. 31세까지 장성우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포수는 역대 단 6명(강민호-박경완-김동수-양의지-홍성흔-김태군) 밖에 없었다. 두 자릿수 홈런도 여러 차례 기록한 만큼 공격에서도 보여줄 게 있는 선수다.

최재훈은 최근 5년 사이 부쩍 주가를 끌어올린 안방마님이다. 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고, 특유의 파이팅과 견고한 수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한 어깨와 블로킹 능력, 프레이밍 능력도 갖춰 좋은 투수진과 만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타격에선 역대 포수 출루율 4위(0.360)에 해당하는 좋은 선구안이 장점. 원래 좋았던 선구안이 지난 시즌 조니 워싱턴 코치의 ‘가운데’와 만나면서 리그 정상급 수준에 올라섰다. 지난 시즌 최재훈의 절대출루율(출루율-타율)은 0.130으로 추신수, 최정에 이은 리그 3위다.

항상 부족하고 귀한 자원 주전포수, 이적 사례 나올까

NC를 우승으로 이끈 양의지(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NC를 우승으로 이끈 양의지(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현재 KBO리그에서 ‘A급 주전포수를 보유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팀은 드물다. 양의지-김태군을 보유한 NC와 박동원-이지영이 있는 키움 정도가 주전급 포수 2명을 보유한 팀에 속한다.

KIA와 두산은 여러 포수를 번갈아 쓰고 있지만 공수를 겸비한 포수가 없어 고민이다. 롯데는 주전 포수 2명의 공격력은 나쁘지 않지만 아직 수비에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LG와 SSG는 믿었던 주전포수들이 최근 하락세를 보여 문제다. 충분히 포수 외부수혈을 고려할 만한 상황이다.

물론 원소속팀들도 순순히 주전포수를 내줄 순 없다. 삼성, KT, 한화 세 팀 다 주전포수와 백업포수의 격차가 크다. 삼성은 강민호가 빠지면 김민수, 김도환으로 버텨야 하고 최재훈 없는 한화는 장규현, 허관회, 백용환, 이해창으로 포수진을 꾸려야 한다. KT도 장성우를 지우면 김준태, 조대현, 문상인이 남는다.

주전포수를 다른 팀에 뺏길 경우, 자칫 몇해전 롯데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전포수 이탈은 기업으로 치면 전략기획실 브레인의 유출에 해당하는 손실이다. 포수 한 사람만 옮기는 게 아니라 팀 내 투수진의 특성과 작전, 사인 등 모든 암묵지까지 유출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기록 이상의 손실을 가져온다.

강민호를 뺏긴 뒤 롯데의 삼성전 상대전적은 7승 1무 8패에서 4승 12패로 더 크게 벌어졌다. 양의지가 있을 때 NC를 12승 4패로 압도했던 두산은 이듬해 8승 1무 7패로 고전했다. 2020 한국시리즈에선 NC에 꼼짝 못하고 우승을 내줬다.

만약 주전포수를 뺏기는 상황이 실제 벌어지면, 다른 포수 FA 영입이나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2003시즌을 앞두고 박경완을 SK에 뺏긴 현대는 SK에서 방출당한 김동수를 1억원에 영입했다. 그해 김동수는 펄펄 날면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올겨울에도 주전포수를 뺏긴 팀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 FA로 주전포수를 보강한 뒤 기존 포수 자원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는 팀이 나올지도 주목할 만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포수는 우리 리그에서 항상 부족한 자원이다. 포수가 FA로 나온 3개 팀 모두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본다”면서 “먼저 계약하는 선수의 조건에 따라 다른 포수들의 희소성과 시장가치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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